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28화
“전에도 말했지만, 숨바꼭질할 거면 같이하죠. 재밌을 것 같고.”
숨바꼭질에 꼭 함께 어울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레이커스는, 이런 유치한 게임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말쑥하고 단정한 차림새였다.
난 그에게 지독하게 잘 어울리는 흰 셔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풀잎에 물이라도 들면 큰일이니까요. 비싼 셔츠인 것 같은데요. 다음에 어울려 주세요.”
“그럼 정원 대신 실내에서 하면 되겠군요.”
‘왜 그렇게까지 진심인 건데?’
마치, 재밌는 놀이에 저를 끼워 주지 않는다고 삐진 꼬마같이 군다.
하지만 살인마가 나를 찾겠다고 이 정원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지.
술래가 그로 바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용 놀이가 아니라 공포 장르가 될 텐데.
안 그래도 공포 게임이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에 매일 하늘도 우중충하고, 가끔 박쥐가 날아다니고, 주로 출몰하는 새는 까마귀밖에 없는 데다 정원이며 길에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도 까만 고양이뿐이라 아주 죽겠는데…….
살인마와 숨바꼭질까지 할 마음의 여유는 없다. 그랬다간 정말 심장이 멎어 버릴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끼면 단서를 찾아다닐 수가 없잖아.’
곤란하기 짝이 없다.
난 거절할 만한 이유를 떠올리려 애쓰며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레이커스는 지금껏 샤인과 루나에게 재정적으로 후하게 지원을 해 주고 꼬박꼬박 식사 자리를 함께하며 신경을 써 주긴 했지만, 아이들을 직접 안아 주거나 손수 놀아 준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숨바꼭질을 같이하겠다며 우기는 건, 이제 와서 아이들과 돈독한 정을 쌓겠다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 지키고 싶은 건지…… 내가 재밌는 장난감이라, 죽이기 전에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가지고 놀고 싶은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 때문인 것 같은데…….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요즘 퍽 한숨이 늘었다고 생각하며 긴 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마음대로 하세요.”
‘뭐, 저렇게 의욕적으로 나오지만 조금 같이 어울리다 보면 이내 질리겠지.’
이게 얼마나 단순하고 유치한 놀이인데. 그리고 아이들이 반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 고용주님께서도 가끔은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착오였다.
한가한 뱃놀이나 테니스 따위의 여가가 어울릴 법한 우아하기 짝이 없는 리어먼드 공작에게는 예상외의 뻔뻔함이 있었다.
그는 샤인, 루나와 내가 번갈아 술래를 하며 잡으러 다닐 때마다 성의껏 장미 덤불 속에 몸을 숨겼고 우리는 그를 찾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샤인과 루나는 삼촌을 어려워하긴 했지만 퍽 따랐다.
둘은 그렇게 열광하는 놀이에 레이커스가 어울려 주자 아주 신나하는 눈치였다.
나는 여기저기서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들으며, 나 혼자 매번 레이커스를 발견할 때마다 겁에 질리기 바빴다.
‘……이게 무슨 호감도 이벤트야? 호감도 이벤트라는 건 좀 더 달콤한 사건이 일어나는 거 아니냐고. 그냥 무서워 죽겠어.’
그렇게 열 번쯤 정원에서의 숨바꼭질을 반복했을까?
슬슬 잠이 쏟아지는지 루나가 자꾸 바닥에 주저앉자 샤인이 루나 옆에서 계속 사소한 장난을 쳐 댔다. 풀로 볼을 간지럽히거나 빛이 반사되는 거울로 장난을 치는 것들이었다.
그 순간 다과회 손님들에게서 들은 괴담이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괴담을 농담처럼 섞어 입에 올렸다.
“그렇게까지 자꾸 장난치면 지하실의 괴물이 잡으러 온다! 왁!”
그냥 장난 한번 친 것뿐인데, 샤인과 루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샤인은 또래의 남자애답게 퍽 씩씩하고 장난기가 많은 소년이었는데도,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려서 굳어 버렸고 루나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괴, 괴물…….”
“흐아아앙!”
방금까지 함께 장난치고 떠들던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장난에 과민반응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어머, 괜찮아?”
“흑, 흐아앙!”
“괜찮아, 쉬이, 괜찮아요. 루나, 선생님이 미안해요.”
내가 더 놀라서 얼른 아이들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선생님이 너무 놀라게 했어요? 미안해, 쉬이. 진정해.”
“흑, 흐윽, 흑.”
루나가 숨을 몰아쉬며, 그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샤인도 내가 당기는 대로 얌전히 끌려와 안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괜찮아. 이런 걸로.”
샤인은 시답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평소 같으면 내 품에 얌전히 안겨 있을 녀석이 아니었는데 퍽 기가 죽어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루나도 곧장 눈물을 멈췄지만, 쉽사리 그 해맑은 미소를 다시 보여 주지 않고, 잠이 다 깬 얼굴로 풀이 죽어 있었다.
둘 다 왜 그렇게까지 놀란 거지?
공포 게임 속 캐릭터들이라 괴담 같은 것에 약한가?
모처럼 즐거운 놀이 시간을 망친 것 같아 미안해서 둘에게 다시 한번 더 사과하려는데, 샤인이 문득 내 치맛자락을 잡아당기곤 소곤거렸다.
“……선생님, 그런데 그 이야기 안 하는 게 좋을걸.”
“……응?”
“부르면, 정말로 온다고들 해.”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샤인도 어린아이구나?”
내가 웃으며 달래 주었지만, 샤인은 어디까지나 진지한 말투로 답했다.
“하지만…… 자정이 될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아냐, 됐어. 그만두자.”
자정?
샤인은 거기까지만 말을 하고는 내 품에서 휙 벗어났다.
뒷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샤인은 뒷이야기를 끝내 들려주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레이커스가 우리를 찾아내는 바람에 그 괴담 이야기는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샤인과 루나가 꽤 풀이 죽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숨바꼭질을 그만두자는 이야기를 꺼내질 못하고 같은 놀이를 그 뒤로도 한 시간이나 해야 했다.
‘그렇게 겁을 먹었는데 숨바꼭질은 계속하고 싶어하다니. 정말 애들 속은 모르겠다니까.’
또 레이커스가 술래 할 차례가 돌아와서, 난 덤불에 기계적으로 숨으며 샤인과 루나가 해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긴 하지만 별난 소리가 들렸다면 알았을 거다.
아니면 그간 수상한 일이 있나 싶어 수소문했을 때 몇 마디라도 들었을 거고.
관련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냥 허튼소리만은 아닐지도 몰라.
어린아이가 아니면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는 숨겨진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지.
탁. 바삭.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술래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듣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인과 루나가 번번이 빨리 발각되니까, 분해서 자꾸 또 하자고 졸라대는 통에 레이커스와의 이 놀이가 절대 끝나지 않을 기미였다.
이번에는 조금 오래 끌어 볼까 해서 발소리를 죽이고 두 아이를 지나쳐 정원 안쪽으로 발을 더 들여 놓았다.
바삭. 바삭. 와작.
뒤를 쫓아오는 발소리는 한참 멀어졌다가, 이내 다시 가까워졌다. 레이커스가 두 아이를 찾은 다음 다시 나를 뒤쫓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키보다 높은 장미 덤불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적당한 시점에서 붙잡혀 주겠다고 생각했는데 레이커스의 발소리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사위가 붉은 장미와 덤불뿐인 공간이었다.
“……정원에서 길을 잃게 만들다니, 돈이 얼마나 많아야 이런 정원을 만드는 거야?’
그렇게 돈이 많으면 내 월급이나 올려 주지.
난 말도 안 되는 투덜거림으로 마음에 스치는 스산한 불안감을 애써 잊으려 했다.
아무리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뒤로는 이상하리만큼 음산하고 거대한 저택이 서 있다고는 해도 아직 대낮이다.
그리고 고작 숨바꼭질을 하는 중인걸.
무서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와작. 와그작.
작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레이커스가 날 쫓고 있는 소리.
본능적으로 그 소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지만, 언제까지고 정원에서 길을 잃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여기예요!”
손을 높이 흔들며 그렇게 외치는 순간, 내 귀에 다른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절그럭.
절그럭.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것이겠거니 했는데, 그 소리는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와는 반대편인 저택 쪽에서 들려왔다.
아주 희미한 그 소리는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난 그 소리에 이끌리듯 저택 쪽으로 발을 옮겼다.
정원수와 저택의 벽이 닿아 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 소리는 이제 제법 선명하게 들렸다.
절그럭, 절그럭 하는 소리에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아도, 역시 살아 있는 무언가가 쇠사슬에 묶여 몸부림치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살…… 려…… 줘.”
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사람의 목소리다.
동물이라도 갇혀 있는 걸까 생각했는데, 이건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다.
실종자.
사건 수첩에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분명 이맘때쯤 실종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최종장쯤에서 지금까지 실종 사건이 많았다고 나온 거라서……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는데.’
그 실종 사건과 연쇄살인 사건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게 최종장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였지.
문득 우연처럼 앰버의 말이 떠올랐다. 아주 피곤한 얼굴로 나와 부딪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그녀가 했던 말이.
‘……요즘 주방 보조 막내 둘이 갑자기 출근을 안 하는 바람에, 일이 너무 늘어나서……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세상에.
과연 우연일까?
사라진 사람,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쇠사슬 소리. 그리고 다과회에 온 사람들까지 알고 있는 이 저택의 괴담.
‘……사실은 나 말고는 다들 알고 있는 거 아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스락.
내가 더 이상 생각을 이어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풀과 나뭇가지를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난 이번에야말로 온몸에 오싹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달리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여기에서 레이커스의 눈에 띄었다간, 그야말로 살인마와의 숨바꼭질이 될 거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고작 서른 걸음 정도를 떼었을 때 레이커스와 그대로 맞닥뜨렸다.
그는 나를 보곤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 뒤를 흘끗 살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