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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27화 (27/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27화

심장 고동이 빠르게 울렸다.

‘……내가 본 건 목록뿐이었으니까, 원본은 자료 창고에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설마…… 아니겠지?’

억지로 내가 떠올린 가정을 부인해 보면서도, 나는 점점 더 레이커스가 만든 치밀한 거미줄에 사지가 꽁꽁 옭아매지고 있다는 소름 끼치는 감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분명 플레이어였을 때 경관이나 경감으로부터 레이커스에 대한 파일을 받은 적은 없어…….’

……이 시점에 레이커스에 대한 자료가 불탔기 때문일까?

너무 넘겨짚는 걸까?

아니기를 바라지만, 난 직감적으로 레이커스에 대한 사건 파일 같은 편리한 자료가 남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수긍했다.

혹시 모르니 다음에 청사에 들를 일이 있다면 다시 한번 조사해 보겠지만, 정말로 불타 버렸다는 가정하에 행동해야 하리라.

‘만약 그렇다면, 레이커스가 경감에게서 받은 파일들은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

플레이어일 때, 레이커스의 방을 샅샅이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그의 방에 난 비밀 통로도 이용해 본 적이 있을 만큼 샅샅이.

하지만 그때 경시청에서 받은 걸로 보이는 사건 파일 같은 건 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경시청의 자료가 불탄 이상 기댈 곳은 레이커스가 가지고 있다는 파일뿐이야.’

어떻게 해서든 그걸 찾아야겠다.

그런 다짐을 하는 순간, 다시 뚝 끊겼던 대화가 들려왔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리고 이건, 가시는 길에 여비로 쓰십시오. 모자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허허허. 아이, 참. 이런 걸 받으면 안 되는데.”

아니, 경찰한테 돈을 이렇게 보란 듯이 찔러 주다니. 게다가 저렇게 능글맞게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받고 있다니……?

‘이래서야 이 시의 정의가 살아 있겠어? 어? 연쇄살인마를 잡겠다는 각오, 제대로 서 있는 게 맞아?’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나 나눠 주게 생겨서는…… 일 처리도 저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내가 저런 핫바지 경감을 믿고 정보를 물어봤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문소리와 발소리가 들리더니 둘의 목소리는 점점 더 멀게 들렸다. 둘은 마차를 타는 곳까지 함께 걸어가며 대화를 나눌 요량인 것 같았다.

대화를 엿들으며 얻은 정보들을 속으로 곱씹고 있는데, 창 너머 저 멀리 마차 근처로 트리버 경감과 레이커스가 나타났다.

‘배웅까지 해 주다니, 아주 살인마와 경감이 돈독해서는…… 잘하는 짓이다.’

기가 막혀서 쭉 시선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데, 마차가 출발하는 순간 레이커스가 문득 고개를 들더니 내 쪽을 홱 돌아봤다.

‘……힉.’

아주 먼 거리인데도 그의 시선은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둘의 대화를 아주 관심 있게 경청했다는 것을 안다는 듯, 날카로운 빛을 띤 은빛 눈은 아주 오래도록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해 창가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겨우 그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빠르게 뛰던 맥박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휴.”

한숨까지 절로 나와서, 아이들이 잘 보이는 높은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다가 문득 둘의 대화에서 이상한 내용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아이들과 놀아 줄 때의 함정은, 내가 아무리 질려서 다시는 꼴 보기 싫을 정도로 같은 놀이를 여러 번 했다고 해도 아이들은 나처럼 쉽게 질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숨바꼭질을 하기 싫은 이유도 그거다.

한 번을 하기에도 공포스러운 놀이건만, 한번 하고 나면 같은 놀이를 또 하자고 조를 것이 뻔하다는 것.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어쩔 수 없지.’

오늘의 독후감은 둘 모두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써 냈다. 샤인은 글씨마저 꽤 수려하게 썼다. 상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숨바꼭질을 빌미로 찾아내고 싶은 게 생겼으니까.’

레이커스가 트리버 경감에게 자료를 찾아내서 주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가 정말로 자료를 찾아서 돌려줄까?

리어먼드가 내 어딘가에 자료가 있다면, 그건 내 손으로 직접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덕분에 아이들이 졸라도 하기 싫은 이 공포스러운 놀이를 내가 먼저 여러 번 하자고 제안해야 하게 생겼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데, 그럴듯한 조력자도 없다니. 이 게임, 난이도 패치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한숨을 삼키며 신이 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정원으로 나갔다.

리어먼드가의 정원은 내가 지금까지 다 둘러본 적도 없을 정도로 넓고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매일같이 우중충한 날씨를 자랑하는 게임 속이라 꽃이 피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온 정원을 뒤덮은 붉은 장미가 밤낮으로 피어 있었다.

내가 찾고 싶은 물건은 실내에 있었지만…… 아까 레이커스와 눈이 마주친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지금 당장 실내에서 물건을 뒤지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너무 티가 나겠지.’

그렇게 그의 신경을 긁었다간 언제고 목이 댕강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

“어디서 시작해?”

“언제 시작해요?”

“신발 끈도 고쳐 묶었다?”

“루나도!”

“이거 봐, 활동하기 편한 신발을 신었어.”

“루나도!”

난 숨바꼭질에 아주 진심인 두 아이의 신난 음성을 들으며 살벌한 생각을 억지로 뒤로 미뤘다.

너른 정원을 휘둘러보자, 숨을 공간은 충분히 많아 보였다. 아니,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스산한 분위기를 머금은 공기가 정원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붉은 장미만 가득 장식된 덤불은 얼핏 피가 흠뻑 묻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역시 이 저택에서 숨바꼭질을 하다니, 심장마비 걸리기 딱 좋을 것 같은데.

“정원 안에서만 숨어야 해. 알았지? 멀리 가면 안 돼.”

샤인과 루나는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선생님이 술래야.”

“술래하세요!”

그래, 뭐, 숨는 역할이 아무래도 재밌겠지.

난 기왕 이렇게 된 거 신나게 어울려 줄 생각으로 음산한 목소리를 꾸며 냈다.

“좋아. 흐흐흐, 선생님과 숨바꼭질을 하고 싶다고 한 말을 후회하게 해 주지. 으흐흐흐.”

“꺅! 루나 무서워!”

“잡아 봐라!”

샤인과 루나가 나란히 나를 놀리고는, 내가 흡사 괴물이라도 된 듯 양손을 허공에 휘젓자 까르르 웃으며 각자의 위치로 도망갔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셋, 둘…… 하나…… 이제 찾는다! 어디에 있을까? 여기 있나?”

리어먼드 공작가의 정원은 전문 정원사의 손길로 다듬어진 거대한 미로 같은 공간이었다.

그나마 키가 큰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내기 쉬웠지만, 샤인이나 루나 같은 꼬맹이들은 마음먹고 숨으면 잘 안 보일지도 모른다.

어디 다듬어진 장미 덤불 뒤에 웅크리기라도 하면 아주 근처까지 다가가기 전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모든 수풀의 키가 컸다.

좋게 말하면 세월과 역사를 담은 정원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원수가 그렇게 비싸다고 하던데. 다 뽑아다 팔면 돈은 꽤 만지겠네.”

나는 비딱하게 중얼거리며 정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시선이 잘 닿지 않을 법한 가스등 뒤나 커다란 호두나무 둥치 뒤 같은 곳을 뒤적뒤적 살펴보던 나는, 쪼그리고 앉은 루나를 금방 발견했다.

나만큼이나 겁이 많은 루나는 구석진 곳까지 숨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루나의 새하얀 원피스 자락이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미나무 덤불 사이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금방 찾아내면 또다시 숨바꼭질이 처음부터 시작될 게 뻔하다.

최대한 천천히 찾기로 마음먹은 나는 허위허위 주변을 돌아다니는 척하면서 ‘못 찾겠는데?’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내가 저들을 찾지 못하는 게 그렇게나 재밌는지, 키득키득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샤인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2(90/198)]

[루나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2(35/198)]

그리고 이런 안내창까지 뜬다.

정말 이 아이들, 숨바꼭질에 진심이란 말이지.

나는 픽 웃으며 몇 번 정도 봉사 정신을 가지고 ‘못 찾겠는데?’를 더 외쳐 주고서야 루나가 숨어 있는 덤불 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사이에 몸을 조금 옮겼는지, 흰 원피스 자락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수직으로 아주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는 덤불을 손으로 훑으며 부러 발소리를 내어 움직였다.

“어디에 있니?”

내 키보다도 훨씬 큰 덤불들이 쭉 줄을 이루고 서 있어서, 마치 거대한 담벼락 같다.

나는 그 뒤에 몸을 바싹 붙이고 서서, 루나를 놀라게 해 줄 생각에 잔뜩 부풀어 옆으로 몸을 쑥 내밀었다.

“찾았……!”

그리고 발견해 낸 것은, 루나가 아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시선을 맞닥뜨린 것은, 정원의 가스등에 비쳐 노란빛이 감도는 얼굴의 레이커스 리어먼드 공작이었다.

“……고, 공작님?”

솔직히 말해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숨바꼭질하다가 마주치기 싫은 직업 앙케트 조사라도 하면 1위가 바로 살인마가 아닐까?

물론…… 그것을 직업이라고 할 수 없을뿐더러, 있어도 조사지에 보기로 넣어 주지도 않을 테지만…….

게다가, 아까 전 시선을 맞닥뜨렸던 그를 피해서 일부러 정원으로 온 거였는데…… 그를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나는 멎을 뻔한 불쌍한 내 심장께를 손으로 문지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레이커스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그가 갑작스레 튀어나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여긴 또 어쩐 일이세요.”

“볼일은 따로 없고. 그린 양이 조카들과 하는 놀이가 퍽 재밌어 보여서, 잠깐 들렀을 뿐입니다.”

“……그러셨군요.”

이 집 주인이, 제가 고용한 사람이 하는 일을 구경하러 제집을 배회한다는데 거기다 대고 할 말은 없다.

게다가 이제 와서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문득 레이커스의 호감도가 오른 순간 한꺼번에 떴던 호감도 이벤트 중에서 ‘숨바꼭질’이 있었다는 게 갑자기 떠올랐다.

‘……이걸 어쩐다.’

이 놀이, 간단한 놀이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절로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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