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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25화 (25/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25화

모두가 날 염려하고 있다는 블리에 씨의 말은 그냥 해 본 말은 아닌 듯했다.

단호박 수프를 비우기가 무섭게 앰버가 따뜻한 차를 가지고 왔고, 뒤이어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두 아이가 들이닥쳤다.

루나는 펑펑 울면서 앉아 있는 내 다리에 매달렸다.

“알비 선생님! 루나는, 선생님 걱정 이만큼 했어! 죽으면 어쩌나 하고. 흑흑.”

“어머, 죽긴 왜 죽어요. 이렇게 귀여운 루나를 두고.”

“하지만, 눈을 안 떴잖아. 하늘나라로 가 버리는 줄 알고.”

이 두 아이는, 부모님을 잃어서 여기로 온 거다.

루나는 그럴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리 말하며 눈물을 흘려 대는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찡했다.

나는 루나를 안아 올려 무릎에 앉혔다.

그러곤 샤인을 향해 손을 뻗자, 금발 머리의 남자아이는 제 동생이 안겨 있는 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쭈뼛거리며 몇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을 듯 말 듯 한 곳에서 멈춰 서는 게 또 귀여워서, 나는 힘껏 힘을 주어 샤인을 당겨 품에 쏙 안았다.

샤인은 그간 내가 걱정되긴 했던지, 내 품에 안겨서 얼굴이 발그스름해져서도 힐끔힐끔 내 안색을 살폈다.

“인제야 일어난 거야?”

“게으르다고 할 생각이죠?”

“잘 아네.”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응?”

“걱정 같은 거 안 했어.”

“이젠 안 아플 테니까. 알았죠?”

“……그래. 아프지 마.”

그러고 보면 샤인과 루나의 부모님은 어떻게, 왜 죽었던 걸까?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물어볼 기회가 있겠지.

샤인과 루나는 내가 꽤 오래 안고 있었는데도 얌전히 안겨 있었다. 난 둘이 귀엽고 기특해서 차례로 머리를 쓸어 주고서 놓아주었다.

“선생님이 사과의 의미로, 내일은 둘이 하고 싶은 대로 놀아 줄게요. 그러니 지금은 가서 쉬어요.”

“정말?”

“정말이야?”

저렇게까지 반색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 조금 불길하긴 한데.

‘이 집 안에서 할 만한 대단한 놀이가 있나?’

“……그럼요. 뭐가 하고 싶은데요?”

“숨바꼭질!”

“숨바꼭질!”

아주 귀여운 두 아이가 입을 모아 외치는 말을 듣자, 어딘가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 다과회에서 들었던 괴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 건 왜일까.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인 시체가 있다는 괴담이 있지요.’

‘어머, 그거 저도 들은 적 있어요. 밤마다 쇠사슬 소리가 들린다면서요?’

‘꺅, 무서워요!’

‘저주받은 시체가 잠들어 있다나?’

난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 고저택은 공포 게임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건물이란 말이야. 그러니 괴담이 실제여도 할 말 없지. 그런데 굳이 리어먼드가에서 하고 많은 게임 중에서 숨바꼭질을 한다고?’

안 될 말이다.

그렇게 공포 게임의 소재로 쓰이기 좋은 놀이가 또 어디 있냔 말이야.

“그럼 내일 봐!”

“내일 봐요, 알비 선생님!”

하지만 내가 창백하게 질리건 말건 두 아이는 숨바꼭질할 생각에 들떠서 쪼르르 달려 나갔다.

신이 나서 내게 손을 흔들어 댄 아이들은 이내 문밖의 유모 손을 잡고 사라져 버렸다.

“……그게.”

……아닌데.

“재밌겠네요.”

그 순간, 뒤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레이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그는 어느새 신문을 접고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숨바꼭질. 재밌겠다고요.”

“……아, 아하하.”

“당분간 그린 양의 곁에 가까이 있을 셈이니, 저도 함께 어울려 보는 것도 좋겠군요.”

……숨바꼭질 말이야?

‘이 날씨에, 이 저택에…… 그렇지 않아도 공포스러울 텐데, 살인마까지 더해서 숨바꼭질을 하라고……?’

나는 상태창 위쪽에 있는 하트 두 개를 바라보았다.

‘이 게임의 죽음 조건에 심장마비도 포함이 될까?’

만약 그렇다면,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레이커스 님도 많이 바쁘실 텐데, 저를 그렇게까지 챙겨 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레이커스는 닫힌 문 쪽을 흘끗 바라보곤 신문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러고서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바로 옆으로 와서 다시 앉았다.

훅 좁혀진 거리에 순간적으로 긴장해서 그를 빤히 보는데, 창 사이로 비친 햇살에 그의 옆얼굴이 유려한 선을 뽐내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얼굴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선이 또렷한 그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고, 새하얀 피부 위에서 햇살이 부서지는 것이 그의 결점 하나 없는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더군다나 그의 은빛 눈은…….

레이커스가 재밌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난 내가 그의 미모를 또 탐닉하듯 관찰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시선을 떼어 냈다.

‘……저놈의 잘난 얼굴.’

나도 참 나다.

저런 살인마 새끼가 얼굴이 다비드상처럼 생겼든 말았든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딴 별것도 아닌 것에 자꾸 시선을 줘서 어쩌자고?

난 최대한 목소리를 퉁명하게 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레이커스는 제 무릎 위에 손을 깍지 껴서 올리며 조곤조곤 말했다.

“손님이 없을 때, 미리 좀 물어봐 둘 것이 있어서요.”

“뭔데요?”

“그날, 경시청에 방문하신 날 있었던 일을 전부 다 말씀해 주시죠.”

“그건 왜요?”

그가 곤란하다는 듯 깍지 낀 손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곤 내게 하는 말이 아닌지, 저 혼자만 들릴 법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쩌다 놈의 주목을 끌게 되신 것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예고장도 보내지 않고 그러는 놈이 아닌데…….”

‘표적? 예고장? 그 얘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네 입에서 나와?’

그가 얘기하는 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살인 예고장은 아니겠지?

내가 그를 빤히 쏘아보고 있자, 레이커스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날이 아니라 그 전날. 헌트가에는 왜 갔던 겁니까?”

그가 내게 그런 말을 물을 개재는 아니었다. 그도 거기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당장 할 대답이 궁했다.

“좀…… 볼일이 있어서요.”

“어떤?”

집요하게 캐묻는 그에게, ‘네놈이 할 짓을 생각하니 집에 가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라고 할 수는 없잖아.

나는 별 이상한 핑곗거리까지 다 떠올려 보다가 할 수 없이 아무런 말이나 주워섬겼다.

“……추억을 되새기러 갔어요.”

“추억……?”

“……뭐, 길게 아실 필요는 없고요. 개인적인 거예요.”

레이커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경시청에 간 날은, 누굴 만나셨죠?”

“……뭐, 마부랑 경감님이요.”

“그게 전부입니까?”

한 명 더 있긴 한데…….

랑비엘 씨.

내게 웃으며 데이트를 신청해도 괜찮겠냐고 하는 그의 얼굴을 얼핏 떠올렸다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피해자 후보의 행적을 살인마에게 알려 주는 것도 영 이상한 일이잖아.

‘그러고 보니, 우산!’

돌려주긴커녕, 그대로 잃어버렸다.

‘……다음에 물건 사러 나갈 기회가 있으면 비슷한 걸 하나 사 와야겠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레이커스가 내게 고개를 바짝 기울였다.

이마가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기겁해서 몸을 훌쩍 뒤로 빼는데, 그가 내 눈에 제 그림자가 질 정도로 깊게 들여다보며 속살거리듯 말했다.

“더 있군요, 만난 사람.”

힉.

“……뭐 좋습니다. 그렇게 주위를 경계하는 태도 자체는 나쁠 것 없죠. 오늘은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만, 다음번엔 다 들려주셔야 합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이랑 내 행적을 캐묻는 게 무슨 상관인데?’

하지만 내 속을 낱낱이 읽는 듯한, 그 촘촘한 홍채 속에 잿빛에서 은색까지 가장 아름다운 색을 모아 놓은 듯한 영롱한 눈동자를 눈 바로 앞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속에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럴게요.”

난 되는 대로의 대답을 남기고 어쩔 줄 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레이커스도 더 이상의 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던지, 내가 그대로 자리를 피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레이커스가 내 곁에 있겠다고 선언한 건, 어쨌든 굉장히 진심이었음은 틀림없다.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어 아주 단호하게 그에게 거리를 유지해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그는 정말 최소한의 사생활만 보장해 주면서 내 주위를 뱅뱅 맴돌았다.

심지어는 의사가 내 진료를 보는 순간에도 곁에 와서 그를 지켜보았다.

‘뭔가 내게 호감이 있기보다는, 금방 죽을 개복치라도 키우는 양식장 주인 같달까.’

레이커스는 의사에게서 내가 이제 완전히 나았으며,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움직여도 좋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내 방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 세 끼를 먹는 식당에서는 물론이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는 놀이방이나, 가끔 산책을 위해 나가는 정원에서도 자주 맞닥뜨리다 보니 감시당하고 있는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그가 남긴 말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마치…… 나를 지켜 주겠다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도대체 내 어디가 그의 흥미를 끈 걸까.’

아이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창가에 앉은 나는 상태창을 열어 호감도 페이지를 조회했다.

[랑비엘 멕레이 Lv.2

레이커스 리어먼드 Lv3

루나 Lv.1

블란테 빅토리아 아레나 Lv.1

블리에 화이트 Lv.2

샤인 Lv.2

앰버 레몬 Lv.1

트리버 루악 Lv.1]

한꺼번에 많은 이벤트가 개방될 만큼 레이커스의 호감도가 엄청나게 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내 몸이 안 좋으니까, 또 쓰러질까 봐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조금쯤 고맙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를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 날 의심하는 걸지도.’

이렇게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난 갑작스러운 오한에 얼른 창문을 닫고 담요로 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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