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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7화 (7/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7화

‘레이커스의 호감도 이벤트였잖아, 아침 식사. 그러니까 좋든 싫든 가긴 가야겠지.’

공작가의 아침 식사라니 기대될 법도 했지만, 마음은 침울하기만 했다.

미적미적 아주 느린 걸음으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앞에서 문을 열어 주는 하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가자, 높은 천장의 식당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긴 바게트 모양으로 길고 둥글게 만들어진 식탁에는 먹음직스러운 흰 빵 여러 개와 잼, 튀기듯 구운 베이컨, 굽거나 삶은 달걀 요리, 샐러드가 보기 좋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요리들이 놓여 있는 체크무늬의 베이지색 식탁보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며 아옹다옹하는 샤인과 루나가 보였고, 그 옆에서 나 몰라라 냅킨을 펼치고 있는 그 희대의 잘생긴 살인마 새끼가 앉아 있었다.

레이커스는 냅킨을 자로 잰 듯 가지런히 접어 무릎에 올리며 나를 쳐다봤다.

‘어우, 거북해.’

첫 트라이 때 만나자마자 죽었던 것을 빼면 지금까지 마주친 게 두 번째인데…… 레이커스는 매번 만날 때마다 참으로 사람을 지독하게 뚫어져라 바라본다.

아르비체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지기라도 한 듯, 섬세하게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눈이 범상치 않았다.

마치, 속내를 전부 읽힐 것 같은 그런 느낌.

엷은 구름이 낀 듯한 부드러운 회색 눈을 마주 보는 동안, 야생 육식 동물을 마주했을 때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시선을 먼저 떼어 낼 수조차 없는 공포감과 등줄기를 달리는 짜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레이커스가 픽, 입꼬리를 휘며 말했다.

“역시 어제부터 생각했지만, 그린 양…… 표정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워낙 레이커스의 시선이 따가워서, 그가 아르비체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조차 뒤늦게 알았다.

‘무슨 일이 있기야 했지. 이 캐릭터에 빙의하자마자 저 잘생긴 살인마한테 살해당하고 하트가 하나 줄어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실토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네요. 그간 여독이 단단히 올랐나 봐요. 그보다 아침 식사 하시죠.”

내가 시치미를 뚝 떼자 레이커스의 표정에서 도저히 떨어지지 않을 듯하던 그 묘한 의혹과 매혹이 뒤섞인 표정이 간신히 지워졌다.

그는 그 잘생긴 왼쪽 눈썹을 쓱 밀어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레이커스가 입을 다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사 자리가 평온하지는 않았다.

레이커스는 평온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는데, 우아하게 고기를 써는 동작만으로도 어딘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 심장 마비로 죽겠어.’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곤 달아나고 싶은 다리를 붙들어 풀떼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당연하지만 맛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가정 교사도 함께 식사해야 하는 거야? 보통 가족끼리만 먹지 않나?’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슬쩍 둘러보자, 샤인과 루나의 기세가 왕성하긴 했다.

둘은 사랑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어마어마한 활동량-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말썽-을 자랑해서, 그 잠깐 사이에 테이블보를 엎을 뻔하고 은접시를 두어 개 떨어뜨렸다.

보모가 있는데도 도대체 왜 가정 교사까지 식탁에 함께 초대하는지 너무나도 알 것 같았다.

‘휴.’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급식으로 다져진 빠른 식사 솜씨를 선보일 수밖에…….’

살인마와 겸상이라니, 어차피 오래 즐길 것도 못 되리라.

“샤인, 루나, 그만해요.”

“하지만, 오빠가……!”

“루나가 먼저 그랬는데?”

“둘 다 잘못했어요.”

샤인과 루나를 야단쳐서 떨어뜨려 놓은 나는 둘의 앞으로 아이가 먹기 좋을 부드러운 음식을 밀어 주곤 똑바로 앉혔다.

“자, 장난은 나중에. 밥상머리에서는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입에 붙은 한국의 예의범절을 강요한 것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은 아까 내 방에서 야단쳤을 때와 똑같이 이상하리만큼 깜짝 놀라서 입을 벌리고 나를 보았다.

게다가 문득 볼이 따가운 걸 보니 날 뚫어져라 보는 건 아이들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와 아이들의 대화가 아주 흥미진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포크에서 아예 손을 뗀 살인마가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왜 저래? 스테이크 다음에는 나를 썰어 버릴 생각인가?’

나는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소름 끼치는 시선을 피해 다시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루나가 입을 샐쭉거리며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로 나에게 물었다.

“이제 루나 미워요?”

“무슨 말이야, 밉긴 왜 미워. 하지만 이렇게 장난치면 아침부터 모처럼 차려 주신 맛있는 식사가 엉망이 되잖아요.”

샤인은 내가 나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 조그맣고 붉은 입술을 겨우 다물었다. 그러곤 슬쩍 루나를 보더니 내게 턱을 높이 들고 말했다.

“귀족은 노동의 가치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그런 거로 화내는 거야, 아르비체?”

진지하게 화를 내는 9살 꼬마의 언변에는 놀랐다.

‘하지만 고작 식탁에서 장난치려고 근엄한 얼굴을 해 봤자 하나도 안 무섭단 말이지.’

어떻게 보면 회사의 노예로 월급을 받던 입장에서 귀족 운운하는 소리가 좀 짜증 나기도 하지만 아이의 말에 불과하잖아.

그냥 웃기기만 하다.

난 피식 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샤인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은 고작 가정 교사 주제에 저를 쓰다듬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듯 미간을 한껏 찡그려 보였지만, 내 손길이 싫지 않은지 얌전히 머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말이죠, 샤인.”

“응?”

“노동의 가치도 모르는 귀족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에요. 계속 그렇게 버릇없이 모처럼 차린 식사를 망칠 생각이면 내일 아침에는 빵을 굽는 곳으로 보내 버릴 테니까, 마음대로 해요.”

본래 저렇게 다 아는 체하면 어른들이 샤인의 말을 들어 줬던 모양이지.

이 별것도 아닌 나무람에도 샤인은 시무룩해져서는 눈썹을 꺾었다. 루나도 표정이 뜨악해서는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모처럼 쌓은 호감도가 깎일 것도 염두에 두고 으름장을 놓은 건데, 의외로 그런 상태창은 뜨지 않았다.

둘은 눈치를 한참 보며 침묵하더니, 내가 계속 엄격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보곤 뭉그적거리면서도 숟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풀이 죽은 아이들이 좀 안돼 보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루나는 그래도 아직 어리다 치고, 샤인은 이제 9살.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 남짓의 나이잖아? 저렇게 철없이 구는 게 이상할 정도의 나이니까.’

그리고 한국 정서가 뼈에 박힌 나에게 다른 곳도 아니고 밥상 앞에서 장난치는 것은 넘어갈 수가 없단 말이야.

대신 나는 얌전히 구는 둘에게 아낌없이 칭찬도 해 주었다.

“어머, 착하고 얌전하게 식사할 줄도 아네요? 어쩜 이렇게 안 흘리고 잘 먹지요? 이렇게 의젓하고 어른스럽게도 행동할 줄 알았네요. 어머머.”

당근과 채찍은 어디 가나 먹히는 법인지, 아이 둘은 입에 수프를 잔뜩 묻히곤 눈을 반짝거렸다.

애써 부풀린 볼이며 표정은 아직도 불퉁하긴 한데, 그래도 기분은 썩 풀린 모양이지.

귀여운 둘의 식사하는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나도 냅킨을 펼쳤다.

이제 좀 뭘 먹어도 맛이 느껴질 것 같았고, 기운을 내야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좋아.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식사를 해 볼까?’

흐뭇하게 빵을 찢는데, 아주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두 아이를 빼면 식탁에 앉은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아차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귀족 나리의 조카 자제분을 이렇게 엄하게 나무랐다고 목이 매달리는 거 아냐? 연쇄 살인마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 과연 그 정도로 끝날까?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천천히 레이커스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띠링!

—하는 경쾌한 작은 알림 음과 함께 작은 상태창이 떴다.

[레이커스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Lv.1(120/198)

호감도 퀘스트 : 샤인과 루나의 식사 완료 보상으로 호감도 추가 상승+50

Lv.1(I70/198)]

‘네? 상승이요?’

황당해서 그만 잘생기기 짝이 없는 그의 낯짝을 정면으로 쳐다봐 버렸다. 아침 식사 자리라 헐렁하게 입은 로브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 근육도 1초 정도.

정말 일러스트레이터가 신의 계시를 받아 디자인한 게 틀림없는 얼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안 볼 때는 괜찮은데 이렇게 마주 보면 저런 꼴을 한 새끼가 나쁜 놈일 리 없다는 기묘하고 말도 안 되는 신뢰가 싹튼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지. 인간의 뇌는 얼마나 미를 숭상하게 만들어진 거야?’

나는 최대한 뇌에 힘을 주었다.

‘안 돼. 저걸 보라고! 제가 잘났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라고! 언제까지 헤벌레 넋을 놓고 있을 거야?’

나는 양손을 들어 내 뺨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손바닥 자국이 남았겠다 싶을 정도로 세게 때린 덕분에 볼이 얼얼했지만, 정신은 번쩍 들었다.

‘살인마 새끼의 얕은 수작에 놀아나서 되겠어?’

잿빛 눈동자는 아직도 나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절대 그 얼굴에 홀리지 않았다는 뜻을 담아 눈썹과 눈매를 한껏 구겨 주었다.

사람이 가는 정이 고와야 오는 정이 곱다느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느니 하는 말들이 있질 않은가? 내가 얼굴을 구겼으니 당연히 상대는 기분이 나빠야 한다.

하지만 내가 예측한 대로 뭐 하나 행동해 주지 않는 레이커스는 이번에는 작게 눈물까지 흘려 가며 웃어 댔다.

“푸하하, 정말 재밌는 분이시군요. 제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모습과 정말 다르신데…… 아니, 그동안은 낯설어서 얌전한 척하신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표정이 이렇게까지 다양한 분은 처음 뵙는다 싶어서. 이곳에 그런 사람은 잘 없으니까요.”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들은 것 같아 생각에 잠기려는 순간이었다.

[레이커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2(4/298)

호감도 이벤트 : 다과회 초대]

얼굴을 찌푸린 대가로 예상치 못한 알림창이 연달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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