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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2화 (2/130)

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2화

아르비체 그린.

나는 문손잡이 앞에 멍하니 서서 아르비체 그린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떠올려 보려 했다.

하지만 하찮은 조연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 사항이랄 것도 없었다.

워낙 비중이 적었으니까.

‘특이한 점이라면 빨리 죽는다는 점일까…….’

난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내 기억으론 아르비체 그린은 다른 시체들에 관한 기사들과 함께 한꺼번에 플레이어의 수첩 기록에 등재되었던 게 전부였다.

친한 인물이 한 명도 없는 비운의 조연이라서 평소 행적을 증언해 줄 사람조차 없었고, 자살이었는지 타살이었는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었던 것 같다.

‘왜 하필 이런 게임 속인데다, 이런 캐릭터인 거야?’

나는 소름이 돋은 팔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대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어둑어둑한 도심에 노란 가스등이 늘어서 있었고, 소란 통에 놀란 사람들이 건물 창문마다 고개를 빼고 있었다.

어디선가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품고 있는, 음산하고 비밀스러운 공기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화재의 냄새가 나는 매캐한 숨을 삼키며, 난 다시 한번 확신했다.

‘어떤 이유로 내가 이런 게임 속에서 눈을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꿈이 아니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그런데 어쩌다 이런 곳에 와 있는 거야?’

나는 제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억을 애써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평소와 같이 술이라도 먹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낯선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쩌지?’

레이커스를 보러 가려던 순간 느꼈던 설렘 같은 것은 이제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일단 원래 목표했던 사건 현장에 가 보기로 했다.

어쨌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내야 했으니까.

그래도 본디 나는 긍정적인 성격이었다.

‘이거, 재밌긴 하네.’

겁에 질린 채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느릿느릿 내딛는 사이에 문득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게임 속에서 보았던 공간들이 자세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점이 그랬다.

개가 여럿 누워 있는 공원, 그래, 저기가 쓰레기통에서 레일러 남작의 팔인지 다린지가 발견되었던 곳이었고, 저 이끼가 잔뜩 끼고 그늘진 끝이 막힌 골목은 살인자의 메시지가 아로새겨질 곳.

그렇게 기억을 좇아 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정신을 차리자 어느덧 인파가 잔뜩 몰려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공기가 매웠고 아주 뜨거워서,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침을 꼴깍 삼켰다.

‘여기가 바로…….’

DAY 1에 매번 보았던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거대한 고저택을 화마가 집어삼키고 있는 광경은 게임 속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실감 나고 무서웠다.

붉은 불길이 고저택 4층 끄트머리에서 긴 혀를 내밀어 새까만 뼈대밖에 남지 않은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뒤늦게 뿌려지는 물줄기 사이로, 4층 한가운데에는 기이한 상태로 전시하듯 매달려 있는 시신 하나가 보였다.

‘이걸 직접 보고 싶진 않았는데.’

불길이 거세 제대로 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바싹 마르고 비틀어진 시신이 가볍게 흔들리는 광경은 속을 퍽 수선스럽게 했다.

붉게 반사되는 불빛 사이로 보인 군중들의 얼굴에 공통으로 떠올라 있는 감정은 깊은 공포심이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제 입을 막았다.

“욱.”

‘토할 것 같아.’

현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이 거의 없다. 죽음이란 철저히 일상과 분리되어 있어서,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처리된다.

눈앞에서 시신을 마주하는 것은…… 모니터 너머로 몇 번이나 본 장면인데도 여상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순간, 아르비체 그린의 죽음이 사건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그 페이지가…… 눈앞에 펼쳐진 죽음의 현장과 겹쳐져 보이기까지 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비일상적인 광경이 주는 어떠한 혐오감 때문에 몸이 떨렸다.

이게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제 볼을 다시 한번 힘껏 꼬집어 봤다.

역시 진한 고통만 느껴졌을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뒤로 몇 발짝 더 뒷걸음질 쳤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겠어.’

도저히 더 이상 여기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 머리채를 쥐어 당길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으로부터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발이 닿는 대로 내디뎠다.

패닉에 빠져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그렇게 정처 없이 걸었을까?

골목이 직각으로 꺾이는 곳에서,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뭐야, 막다른 골목이잖아.’

그제야 머리가 식었다.

너무 막무가내로 걸었더니 어디까지 온 건지도 모르겠다.

‘진정하고 사람들이 많은 골목으로 일단 나가자. 여긴 너무 어두워.’

그렇게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그제야 눈앞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빛에 반짝이는 환한 금색의 머리카락, 쭉 뻗은 다리와 낭창한 몸. 눈에 익을 대로 익은, 아름다운 남자.

이 게임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 레이커스 리어먼드.

비현실적일 정도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서 있어서, 나는 방금까지 느끼고 있던 혼란스러움을 전부 잊은 채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와…….’

어쩜 그저 눈앞에 서 있는 것뿐인데도 현실도 꿈도 아닌 것처럼 숨죽여 바라보게 되는 걸까?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가 살포시 미간을 찌푸리는 바람에 그가 아름다움을 빚어 만든 대리석 조각이 아니라는 것을 간신히 깨달았다.

레이커스는 그 우수에 젖은 잿빛 눈을 날카롭게 접으며 아르비체에게 경고했다.

“……지금은 내가 그럴 상태가 아니라서, 가까이 다가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만.”

바람이 스치는 듯한 스산한 목소리였지만 하잘것없는 싸구려 스피커를 통해 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좋았다.

너무 완벽하고 좋은 것을 들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소름이 끼치는 듯한, 목뒤를 달리는 기묘한 전율을 느낄 정도로.

내가 다가갈 생각도, 멀어질 생각도 없이 그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레이커스가 한숨을 쉬듯 손을 들었다.

그 손에, 뭔가 붉은 것이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저건 피……?’

다시 자세히 보니,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했다.

작은 상처 정도가 아니라, 한두 방울 정도가 아니라, 손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흠뻑.

‘누구의 피야? 레이커스의……? 그게 아니라면…….’

그제야 나는 레이커스가 그저 잘생기고 아름다운 남자가 아니라, 이 게임 속에서 살인마라는…… 아니, 살인마인 게 거의 99% 확실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상기해 냈다.

그제야 겨우 그를 홀린 듯이 바라보던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그 대신 레이커스의 손에 흥건한 피에, 나는 저도 모르게 입에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사, 살인마.”

혼잣말이 들렸을까?

그의 눈이 순간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그린 양, 지금 나보고 그런 말을 한 겁니까?”

그 스산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순간 긴장으로 혀가 굳었다. 재치 있는 변명이 나오질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의 끝에 레이커스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레이커스의 호감도가 하락했습니다.]

왼쪽 아래에 작은 알림창이 떴다.

동시에 그가 나를 벽으로 바싹 몰아붙였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뭘 어떻게 대응할 사이도 없었다.

벽과 레이커스의 사이에 단단하게 갇힌 나에게 그는 마치 키스라도 할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는 그의 손이 내 양 손목을 부드럽게 쥐었다.

너무 놀라서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는데,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기 직전에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린 양은 내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군요. 그렇죠?”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지금 이곳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 한편에서는 여전히 게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안일하게 내뱉었던 거다.

하지만 역시 너무 현실적이다.

눈앞에서 번들거리는 레이커스의 아름다운 보석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건, 터무니없을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다.

‘도망가야 해.’

나는 떨리는 몸으로 그를 들이받듯 움직였다.

“윽!”

그의 입술을 꽉 물어뜯듯 깨문 나는 간신히 그에게서 풀려나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정신없이 길을 헤매며 달렸다. 한참 어두운 골목을 헤매면서도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길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헛된 자신이었다.

현대와는 달리 가로등도 없는 골목이 연달아 이어져 있었고, 저 멀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목표로 발을 내디뎌 보아도 자꾸 골목을 빙빙 돌게 될 뿐이었다.

점점 더 겁이 나 머리카락만 쭈뼛 섰다.

“헉…… 헉…….”

얼마나 헤맸는지 머리가 팽팽 돌 정도로 숨이 찼다. 벽에 몸을 기대고 숨을 몰아쉬는데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레이커스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질겁해서 다른 골목으로 꺾어서 도망쳤지만 아르비체가 소리를 죽이고 이동하는 속도보다 상대가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고 생각한 순간,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신발이 벗겨졌고, 험하게 내팽개치듯 넘어졌다.

“악…….”

쓰라림에 신음을 할 새도 없었다. 커다란 손이 입을 틀어막는 게 느껴졌고, 머리채가 잡혔다.

힘의 차이는 저항을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아주 가볍게 들렸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목이 비틀어지는 감각은 끔찍했다. 내가 상상한 그 어떤 죽음도 그것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만큼, 짧은 고통은 나를 자비 없이 괴롭혔다.

몸이 뒤집히고, 눈앞에 검은 인영이 어른어른 스쳐 지나가는 순간, 겨우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그 지옥 같은 고통에서 죽음으로 달아날 것을 허락받았다.

그 사이로 새하얀 글자들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Game Over-]

[-Bad End – 루트 ‘위험한 함정’을 클리어했습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의 한가운데에 작은 안내창이 떴다.

[공포 게임 <살인자들의 밤>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르비체 그린>은 Lv.1의 캐릭터로 총 3개의 하트 중 2개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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