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조연인데요, 죽이지 마세요 1화
[최종장 : 어서 오세요, PARK에.]
모니터에 뜨는 흰 문구를 보며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여기까지 오는 데 3년이 넘게 걸렸어. 진짜 난이도 기가 막힌다.’
내가 아직도 붙잡고 있는 이 <살인자들의 밤>은, 정말 지독한 난이도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추리형 공포 게임이라는 독특한 장르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캐릭터 조형을 워낙 잘한 덕분에 폭풍 같은 인기몰이를 했었다.
하지만 고작 두 달여 만에 그 많던 팬덤이 빠르게 식기 시작하더니, 1년이 다 될 때쯤에는 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스트리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식었다.
‘재밌긴 한데…… 툭하면 개복치처럼 죽어 버리고, 툭하면 배드 엔딩에 도달하니까 환장하지.’
난 투덜거리면서도 모니터를 볼 때마다 웃음이 샜다.
시간이 안 나도 매일 10분, 20분이라도 붙들고 있었던 보람이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최종장.’
난 하나를 잡으면 좋든 싫든 진득하게 파고드는 편이다.
미련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타고난 성격이 그런 걸 어쩌겠어.
남들이 다 그만둔 게임을 아직도 혼자 붙들고 있는 건 그래서일 거다.
아마, 지금까지 이 게임을 하고 있는 건 나뿐일지도 모른다. 새 공략법이 올라오지도 않은 지 꽤 된 데다가, 심지어는 내가 아무도 올리지 않은 루트의 공략법을 정리해서 올려도 조회 수가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니까.
“최종장이라니, 어디 한번 해 볼까.”
난 화면 가운데에서 반짝거리는 흰 문구 위에 마우스 커서를 놓고 클릭했다.
* * *
[공포 게임 <살인자들의 밤>에 참여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르비체 그린>은 Lv.1의 캐릭터로 총 3개의 하트가 지급됩니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시야의 한가운데를 틀어막은 안내창이었다.
눈을 몇 번 깜박여 보아도 동공에 아로새긴 것 같은 그 문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꿈인가 싶어 주위를 휘휘 둘러보는데, 안내창 이외에도 시야의 테두리에 웬 상태창이 보였다.
좌상단에는 ‘아르비체 그린’이라는 이름과 하트 세 개. 우상단에는 클릭하면 옵션이 펼쳐지게 생긴 인포메이션 마크.
‘<살인자들의 밤>이랑 똑 닮았는데?’
꿈인가?
왜 이런 꿈을 꾸는지는 알 만했다.
‘게임을 많이 하긴 했지.’
난 속으로 스스로를 나무랐다.
게임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거기에 과몰입하는 순간이 있다.
걸어서 이동하는 게 억울해서 워프를 타고 싶고, 장을 본 물건이 많을 때는 인벤창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들처럼.
매일 밤 <살인자들의 밤>을 해 댔더니 이런 시스템창이 달린 꿈이라도 꾸게 된 모양이었다.
상태창 때문에 주위 시야가 잘 보이지 않아서 손을 몇 번 휘저어 보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확인! 확인했다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동시에 클릭이라도 한 듯 창이 사라졌다.
양손을 움직여 보고 양발을 내디뎌 보자, 몸은 VR 게임을 할 때보다도 훨씬 더 부드럽게 인식을 따랐다. 아니, 그냥 내 몸인 거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도 서 보았다. 녹색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한 아가씨가 창백한 낯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게, 나인가? 아르비체 그린?’
게임 속에서 제 본모습이 아닌 다른 외양과 닉네임을 가지는 건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르비체 그린이라는 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뭔가 신경이 쓰이는 게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캐릭터인데.
내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신중하게 관찰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어머, 깨셨어요?”
붉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둥근 안경을 쓴 키가 큰 캐릭터. 30대 중반 정도 될까?
선명한 붉은 입술과 새하얀 피부의 대비가 인상적인 매력적인 여인이다.
그녀는 이 게임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끼는 대표 NPC, 블리에 씨였다.
리어먼드가의 집사인 그녀를 아끼는 이유는 그녀가 저장을 담당하는 캐릭터라서다.
나는 게임의 등장인물을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좀 놀랐지만, 블리에 씨를 보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블리에 씨가 눈을 깜박이며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괜찮으신 거죠?”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괜찮죠. 그보다 세이브나 로드가 되나요?”
“……네?”
“안 되나요?”
블리에 씨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듯 눈을 한참 깜박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보다 요즘 내내 기분이 몹시 나쁜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요즘이라니, 마치 아르비체가 여기 줄곧 있었던 것처럼 말하네.’
“제가 그랬어요?”
“어머. 주인님이나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전혀 안 하려 하셨잖아요. 다른 사용인들이나 저하고도요.”
주인님? 아이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 속에서 블리에 씨와 이야기를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데…….’
<살인자들의 밤>은 잠깐만 방심하면 죽어 버리는 게임이다. 선택지를 잘못 골라도 죽고, 시간제한이 있는 퍼즐을 못 풀어도 죽고, 호감도를 쌓지 못해도 죽고…….
그렇게 쉽사리 줄줄이 죽어 나가는 게임에서 세이브 로드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
그러니 블리에 씨는 이 게임 속에서 거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란 말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블리에 씨와 이야기를 안 하다니, 제가 왜 그랬나 몰라요. 정말이지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소중한 분인걸요.”
말에 담긴 절절한 진심이 잘 전해졌을까?
블리에 씨는 뭔가 감동한 눈치로 볼까지 붉어져서 컬링이 잘된 속눈썹을 깜박였다.
“어머,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런 말을 듣긴 또 처음이네요…….”
띠링-!
[블리에 화이트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Lv.1(20/99)]
시야의 왼쪽 아래에 있는 알림창에 짧은 문구가 떠올랐다.
‘……정말 게임이네.’
호감도 시스템까지 게임과 비슷한 이 상황에 묘하게 감탄하는데, 블리에 씨가 감동했다는 듯 멍하니 서 있는 내 손을 꼭 쥐었다.
나는 별것도 아닌 그 몸짓에 흠칫 놀라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야……. 너무 소름 끼치게 사실적인데?’
꿈인 걸까?
정말로 꿈인데 이렇게 사실적인 감촉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색깔도 그렇다. 아주 간혹 어떤 특정한 색을 꿈속에서 봤다고 믿는 날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총천연색인 꿈을 본 적은 없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점점 더 수상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낡은 가구 냄새,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 이게 어떻게 다 꿈이란 말이야?’
하지만…… 이런 의심이 드는 것까지 포함해서 꿈인 거겠지?
‘정신이 들고 나면 아주 창의적인 꿈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겠지?’
내가 블리에 씨의 손을 막 놓으려는 순간, 높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우리는 화들짝 놀라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죠?”
“그러게요.”
나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제야 나는 이 삭막하고 좁은 다락방이 지독하게 눈에 익은 거대한 고저택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안개가 낀 저녁 풍경과 가스등이 즐비한 사이로 오가는 마차들, 매캐한 공기와 저 멀리 보이는 불꽃들이 익숙하다는 것도.
여긴 <살인자들의 밤>의 트레일러에 나오는 대표 건물이다.
삐이이이-!
“추가 지원 요청하라! 불길이 잡히질 않아!”
“저쪽이다! 잡아라! 살인마 자식, 오늘이야말로 도망치지 못하게 해 주마!”
“잡아라! 혼자 다니지 마라!”
‘저 호루라기 소리도, 저 말들도 아주 익숙해.’
이 게임을 리트라이(재시도)할 때마다 들어서, 완벽히 외울 수밖에 없는 대사.
<살인자들의 밤> DAY 1의, 다섯 번째 연쇄 살인을 예고하는 프롤로그 대사다.
‘하필……. 고르고 골라도 이 게임이냐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꿈을 꿀 거면 좀 더 분위기 좋은 게임도 많잖아.
‘게다가 첫날 전개가 완전히 똑같은 것도 아주 불안한데…….’
설마 이 이상하게 사실적인 꿈, 캐릭터만 같은 게 아니라 사건의 흐름이나 게임의 전개 자체도 똑같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코난이나 김전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의 조연이 된 셈이다.
‘무슨 말이냐면, 언제 죽게 될지 모른다는 소리지.’
이런 건 사양인데.
꿈에서 깨어나 보려고 내 볼을 쭉 잡아당기고 있는데, 블리에 씨가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주인님께서 아직 밖에 계시는데, 밖에 무슨 큰일이라도 난 모양이에요.”
“주인님이라면…… 레이커스 님이요?”
“네.”
레이커스?
‘그 지독하게 잘생긴 캐릭터 말이야? 이 게임에서 주인님이라고 부를 만한 캐릭터는 레이커스 말고는 없는데.’
“사람을 보내야 해서 전 이만 가 볼게요.”
“네? 아아…… 네.”
블리에 씨가 급한 걸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묘하게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되었다.
‘레이커스 리어먼드.’
그는 이 게임에서 가장 매력적인 메인 캐릭터다.
그 완벽한 조형은 취향도 타지 않고 모든 플레이어의 하트를 사로잡았다.
금발, 잿빛 눈, 창백할 정도의 흰 피부와 종종 띠는 아름다운 미소.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잘생겼다.
물론 나도 그 얼굴을 더 클로즈업해서 볼 수 있는 이벤트를 위해서 일부러 배드 엔딩을 수집하고 같은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 정도로 그를 좋아했다.
‘연예인이 꿈에 나오는 건 길몽이라고 하던데……. 레이커스가 나오면 길몽인가?’
그를 꿈에서나마 직접 볼 생각을 하니 조금쯤 설레긴 했지만, 길몽이냐고 한다면 아닐 것 같긴 하다.
‘그 잘생긴 얼굴로 하필 배역이 살인마라니.’
적어도 내가 플레이한 최종장 바로 전까지의 시나리오로 미루어 보아서는, 그가 범인인 게 99% 확실했다.
꿈에서라도 직접 만나는 건 역시 무서울지도 모른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레이커스를 두고 혼자 두근거리고 있는데, 그때 또 한 번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그 소름 끼치는 비명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뭐야…….’
제대로 된 환한 조명도 없는 조그마한 다락방 안이다. 그곳에 홀로 남아 요란한 비명을 듣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자꾸만 사락거리는 흰 커튼에 눈이 갔고,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식은땀이 나고 등줄기를 따라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괜히 공포 게임 속이 아니네, 정말.’
나는 후다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도 그리 밝지 않고 고요했다.
계단을 지나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일꾼 몇 명을 마주쳤지만, 나를 보고서 슬금슬금 피하기만 하는 그들은 전혀 마음의 위안이 되질 못 했다.
결국, 초조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1층 현관에 도착했다.
‘밖으로 나가면 좀 나을지도 몰라.’
조금의 설렘과 불안감이 뒤섞인 기분으로 까마귀 모양이 조각된 둥그런 철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 섰다.
‘……이게 뭐야.’
나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외면해 왔던 수없이 많은 감각들.
하지만 이번의 것은 절대 외면할 수가 없었다.
손바닥 안에 아주 차갑게 느껴지는 철의 감촉. 쥐고 있는 사이에 손안에서 쨍하게 서늘하던 손잡이의 온도가 체온에 의해 서서히 미지근해지는 그 느낌.
‘이건 절대 꿈일 수가 없잖아……?’
꿈이 아니라면? 아니라면 뭐지?
설마 게임 속에 들어오기라도 했다는 건가?
나는 시선을 돌려 상태창에 적혀 있는 이름을 다시 한번 보았다.
‘아르비체 그린’.
나는 간신히 떠올렸다,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가 누구인지.
그러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문손잡이를 놓았다.
‘눈에 많이 익다 했는데…….’
이게 꿈이 아니라면 나는 캐릭터를 아주 잘못 고른 거다.
아르비체 그린은 이 게임이 시작되고 오래지 않아 시신으로 발견되는 희생자 중 한 명의 이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