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와, 정말 불이 붙었나 보네.”
승부욕이 있있어선가. 뭐 이그나 가문의 사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 특별한 공을 찾을 것 같긴 한데….’
그걸 내게 주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김칫국이라면 다행이지만.’
내게 정말로 주려고 한다면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평생은 무리야.’
닉스는 상냥하고 다정하고 꽤 귀여운 면도 있지만…, 그래. 평생을 같이 있을 자신은 없었다.
손을 잡고 있어도 같이 있어도, 심장이 떨리는 느낌이 없다.
몸을 섞고 입을 맞추며 사랑을 속삭이거나 그의 아이를 낳는 그 일련의 과정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음, 아니야.’
친구로서는 얼마든지 미래가 상상됐다.
그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내가 그 집에 놀러 가고,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종종 만나는 모습은 상상이 됐다.
하지만, 그 곁에 내가 있는 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떠올리려고 해도 선명하기보다는 흐리멍덩했다.
그렇다는 건 내게 닉스와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거절하는 게 맞겠지.”
미안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계속해서 희망을 주는 건 확실히 못 할 짓이었다.
나는 느리게 마을을 거닐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면서 보물을 찾기에 바빴다.
‘잘 안 보이네.’
골목길은 물론이고 벽의 작은 틈새까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마을 사람들은 허허실실 웃으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니 뭔가 어색하게 놓인 사다리가 보였다.
‘설마….’
슬쩍 사다리를 붙잡고 올라가자 지붕 위쪽으로 구슬이 보였다.
“오, 있네.”
금색으로 칠해진 구슬이었다.
이 정도면 면은 세운 거겠지 싶어서 다시 사다리를 붙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땅에 발을 딛고 구슬을 반으로 갈라 열어보니 ‘포키’라고만 적혀 있었다.
‘포키…는 뭔데?’
괴상한 이름이다.
사람 이름은 아닐 테고, 무슨 과자나 새로 나온 보석의 이름인가 싶었다.
“광물 중에 포키라는 게 있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나는 얻었으니 이만 됐지 싶었다.
‘돌아갈까?’
포키가 뭔지는 몰라도 좋은 거면 아빠한테나 주든가 셰키나에게 주든가 해야지.
“이걸로 열 개째!”
“와….”
아예 이 보물찾기를 노리고 온 모양인지 전문적으로 공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었다.
‘얘는 어디 갔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며 왔지만 닉스 이그나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으음, 뭐지?’
어디까지 뭘 찾으러 갔는지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친구로서는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그의 구애를 받고 있는 입장에선 찾지 못했으면 좋겠다.
“아, 못 해먹을 짓이다.”
진짜.
친구는 친구로 있는 편이 좋은데.
“친구라….”
생각해 보면 제대로 사귄 친구라고 해봐야 정말 공작가 애들밖에 없기는 했다.
셰키나는,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말이다.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마감하시려는 걸까요?”
“네, 다리가 아파서요.”
“찾은 공은 있으실까요?”
“여기요, 하나밖에 찾지 못했어요.”
“감사합니다, 여기 성함 옆에 번호를 적고 가주시면 되겠습니다!”
신청서를 찾아 온 남자가 내게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하라는 대로 작성해 주니 그가 공을 열어 풀로 거기에 ‘포키’라고 쓰인 종이를 붙였다.
“오, 포키가 당첨되셨군요! 금 구슬 중에선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좋은 상품입니다.”
“…그래요?”
그래서 대체 포키가 뭔데.
“네, 경품은 이벤트가 종료된 후 시상식 뒤에 드리고 있습니다, 자리에 가서 앉아 기다려주세요.”
“네.”
느릿느릿 걸어가 하품하며 의자에 앉았다.
“…어?”
그 때, 골목 사이로 누군가가 모습을 훅 감추는 것이 보였다.
‘…뭐지?’
언뜻 든 느낌이지만 셰키나랑 굉장히 닮았네. 뭔가 체구라든가 걸음걸이라든가 말이다.
“아니겠지.”
벌써 셰키나가 보고 싶은 것도 아닐 테고.
애초에 그녀는 오늘 집에서 뒹굴겠다고 나랑 같이 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날 떠민 것도 셰키나이긴 했지만.
‘거절이라….’
내가 뭐라고 누굴 거절하겠냐마는, 마음의 크기가 다른 것을 보고 있으니 죄책감이 들었다.
오늘 하루 내내 그랬다.
“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분!”
멍하니 상념에 빠져 있으니 시간이 또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하나둘 광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얘는 진짜 어디 간 거야?’
하지만 1분만이 남아서 카운트를 시작했는데도 닉스는 보이질 않는다.
“10, 9! 8! 7…!”
점점 숫자가 줄어들었다.
‘아니,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찾으러 가기 위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였다.
골목길 사이에서 나타난 닉스가 순식간에 결승점 안으로 뛰어들었다.
“끝!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코앞에서 끊긴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대개는 전부 안으로 들어왔다.
닉스는 꽤 즐겁게 즐긴 듯 잘 차려입었던 옷이 엉망이었다.
‘능력은 안 쓴 모양이네.’
사실 그의 능력을 쓴다면 물건 찾기가 어려웠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대신 주변은 개판이 되었겠지만.
“헐, 저거 아냐…?”
“찾은 사람이 있네.”
“와, 대단하다.”
웅성거림이 퍽 심했다.
뒤를 슬쩍 돌아보자 공 몇 개를 꺼내 올려놓는 닉스가 보였다.
개중에는 은색도 금색도, 그렇다고 동색도 아닌, 햇빛에 비치면 비치는 대로 다채롭게 빛나는 구슬이 있었다.
“저걸 진짜 찾았네….”
불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류를 다 작성한 닉스가 절차를 마치고 몸을 돌려 휙휙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그가 나를 발견하고 곧장 내게 달려왔다.
“아네트!”
“너무 늦게 와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
“아, 마지막까지 못 찾아서 포기하고 오려는데….”
“오려는데?”
“달려오는 길에 발견했어. 고양이가 물고 있던데.”
고양이가 물고 있었다고?
그러니 사람들이 찾지 못할 만도 하다. 정말 운이 없으면 찾지 못할 것 아닌가.
“그건 좀… 지독하네.”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탄식을 했다.
“그걸 뺏은 거야?”
“아니, 생선 줬더니 주던데.”
“그 바쁠 때 생선도 줬어?”
“바로 근처에 생선 가게가 있어서.”
될 사람은 뭘 해도 된다더니.
정말로 닉스 이그나는 엄청난 운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정말 타고난 천운이네.’
가진 걸 다 가진 사람이 운까지 가지다니 대단할 따름이다. 그가 내 옆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재밌었다, 이런 거 처음이야.”
닉스 이그나가 옆에 앉아 키득키득 웃었다. 퍽 유쾌해 보이는 표정이다.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응, 진흙탕 속에 숨겨놨다니 꽤 머리가 좋았어.”
“그걸 찾아낸 네가 더 대단하다. 능력은 안 쓴 거잖아?”
“안 썼지.”
그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평하지 않잖아? 약자에게 능력을 쓰는 것만큼 비겁하고 없어 보이는 일도 없지.”
“그래, 너다운 일이야.”
정정당당함을 아는 닉스 이그나는 인간적으로 싫은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조금 더 여유로운 상황에서 닉스 이그나를 만나고 조금 더 그에 대해 깊이 알 기회가 있었으면, 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생각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슬금슬금 조심스럽게 뻗어 온 손이 내 손을 살짝 붙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가볍게 맞잡아 주며 앞을 보았다.
시상식의 시작이었다.
신기하게도 시상은 맨 꼴지부터 진행되었다.
“다음은, 아네트 님! 올라와 주세요! 금구슬 하나를 찾아오셨지만, 세상에 가장 귀한 금구슬을 뽑으셨군요!”
사회자의 호들갑에 작은 기대와 동시에 약간의 불안이 싹텄다.
대체 포키가 뭐길래 다들 이러는 걸까?
눈동자를 가볍게 굴리자 그가 웃었다.
“자, 우리 마을의 명물 포키를 소개합니다!”
“…어?”
“귀여운 망아지 포키입니다! 아, 정확히는 포키 2세라고 불러야겠군요!”
망아지였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털을 보아하니 상당히 귀한 대접을 받은 망아지임이 분명했다.
망아지…, 아니 포키가 또각또각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귀엽긴 한데….’
이게 상품이라고?
“이 애를 주시는 건가요?”
“네, 포키 2세는 훌륭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좋은 품종의 아이니 분명 훌륭하게 성장할 겁니다.”
그렇지.
이 시대에 말은 꽤 귀한 자원이기는 했다. 내가 힐긋 보기에도 확실히 좋은 망아지였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데려가?’
나는 곤란한 얼굴로 포키를 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