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130)

<121화>

그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옅게 웃으며 팔을 뻗어 먼저 손을 맞잡았다.

“당연한 소리는 묻지 않아도 돼.”

“…응.”

닉스 이그나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근데 여기서 놀기엔 우리 복장 너무 눈에 띄지 않아?”

“그런가?”

내 지적에 닉스 이그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그 표정에 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보았다. 모두가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눈에 띈다.

“옷 사서 갈아입을까?”

때마침 근처에 적당한 옷 가게가 있었다.

“음, 그래!”

닉스 이그나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앞장섰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 어머…. 어서 오세요! 귀한 분들께서 오셨네요.”

밝게 인사를 건네던 주인이 허둥지둥 허리를 굽혔다.

그제야 닉스 이그나가 다시 한번 제 복장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내 귀에 속삭였다.

“그렇게 티가 나나?”

“그렇지?”

“…그렇구나. 주변에 신경을 잘 안 써서 몰랐어.”

“그럴 수도 있지.”

사실 개인적으로는 닉스 이그나 같은 성격이 부럽기는 했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위해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 말이다.

“닉스, 너 이런 건 어때?”

가볍게 휙휙 고개를 돌려 적당해 보이는 상의를 내밀자 닉스 이그나가 눈을 반짝였다.

“직접 골라 주는 거야?”

“어…, 직접 고를래? 그냥 눈에 띄어서….”

“아니, 이게 좋다. 이걸로 하지.”

“바로? 그래도 일단 입어보고 어울리는지 확인은….”

내가 들고 있던 옷을 슬쩍 뒤로 빼며 말하자 닉스가 내 손을 가볍게 붙잡아 옷을 빼갔다.

“네가 골라 줬으니까 이대로 좋아.”

설핏 웃으며 덧붙이는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겨우 이런 것도 좋아하다니, 그간 너무 관심을 주지 않은 건가 싶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

지금까지는 그냥… 치기 어린 농담으로만 생각했다.

웃음기 섞인, 가벼운 농담을 던지듯 내뱉은 청혼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게 정말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 새삼 부끄럽네.’

인지하고 나니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타인의 호의를, 그것도 가족이 아닌 누군가로부터 이성적인 호의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느낀 것이 얼마 만이더라.

어쩌면 최초일지도 모르겠다.

“…내 옷은 네가 골라볼래?”

내가 고른 상의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닉스 이그나에게 공평하게 제안했다.

“그래도 돼?”

“응.”

“…내가 보는 눈이 별로 없는데.”

뭐, 골라봐야 얼마나 이상한 걸 고르겠는가.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뭐, 나도 네 거 골라줬으니까 괜찮아.”

“그럼….”

고개를 끄덕인 닉스 이그나가 퍽 심각한 표정으로 가게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나도 골라 준 상의에 어울리는 바지랑 로브를 고를까 싶어서 천천히 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 옷 골라 주는 건 처음일지도.’

그것도 내게 호감이 있는 남자애에게 말이다.

‘이것도 데이트지?’

결국은 데이트의 일종이지 않은가.

가볍게 뺨을 긁적이다가 바지와 로브, 그리고 가벼운 액세서리를 하나 골라 몸을 돌렸을 때였다.

“여, 여기서 마음에 드는 걸로…!”

뒤돌아본 곳에는 옷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닉스.”

닉스 이그나가 꽤 여러 종류의 옷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 있었다.

치마와 바지, 상의와 원피스 등 종류별로 고른 모양인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 그게….”

닉스 이그나가 점원의 도움을 받아 잔뜩 든 옷을 한 곳에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뭘 입어도 너한텐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의 살짝 가무잡잡한 뺨에 옅은 붉은 기가 돌았다.

“…그게 뭐야.”

“미안해, 다시 진지하게 고를게. 아, 물론 지금까지 진지하게 고르지 않았다는 건 아니고….”

닉스 이그나가 모아둔 옷 앞에 쪼그려 앉아 다시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오늘 하루가 꼬박 지나도 고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마저 들었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건 어때?”

나는 개중에서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닉스 이그나가 꽤 오래 들고 있었던 옷이기도 했다.

“어, 좋아! 네 흰 피부에 잘 어울릴 것 같아.”

“…고마워. 그럼 갈아입고 나올게. 너도 갈아입고 나와.”

“응.”

민망한 칭찬에 애써 대답해 주곤 탈의실로 쏙 들어갔다.

원단이 고급스럽지는 않아서 닿는 느낌이 거칠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편하지는 않다.

‘꽤 괜찮네.’

이런 종류의 옷도 가게에 들여놓으면 좋으려나?

확실히 매장에 의류가 거의 없기는 하니 말이다.

‘원단이 저가인 것치곤 품질이 꽤 좋은데.’

재봉선이나 실틈이 꽤 촘촘하고 디자인도 무난하다. 게다가 일단 입는 사람을 생각한 듯 움직임이 편했다.

옷을 입고 나가자 이미 닉스 이그나는 밖에 나와 있었다.

나를 본 닉스 이그나의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예쁘네, 아네트.”

“그래? 너도 잘 어울려.”

순수한 칭찬에 칭찬을 되돌려주자 닉스가 제 옷을 한 차례 보더니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곤 안 하는 걸 보아 본인도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자, 아네트.”

“좋아.”

닉스 이그나가 내민 손을 가볍게 붙잡자 그가 눈을 크게 뜨면서도 내 손을 깍지 껴 단단히 맞잡았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열기가 훅훅 느껴졌다.

닉스 이그나는 항상 불쾌하지 않은 열기를 머금고 있다.

‘불을 다루는 사람이라 그런가.’

그 곁에서 춥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딱히 없는 것도 같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우리 마을의 자랑! 우리 마을의 명물!”

밖으로 나가니 한껏 들뜬 분위기의 마을 광장에서 뭔가를 홍보하고 있었다.

“보물찾기가 시작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은 앞쪽 접수대에서 접수해 주세요! 이제 곧 참가 접수가 마감됩니다!”

“우리도 할까?”

내가 권하자 닉스 이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참가서를 작성하면 되는 거겠지? 내가 다녀올게, 여기 있어.”

“음, 같이 가자. 뭐 멀지도 않은데.”

“어, 그래.”

씩 웃은 닉스 이그나가 성큼성큼 인파 사이로 끼어들었다.

“참가서 작성할 거다.”

닉스 이그나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은 접수대의 사람이 우리 두 사람분의 서류를 내밀었다.

성은 뺀 이름을 포함해 가벼운 인적 사항을 적었다.

“자, 보물찾기 참가 접수를 마감합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이 마을 전체가 무대로! 보물을 찾아내시면 됩니다!”

사회자가 확성기 같은 것을 든 채 커다랗게 소리쳤다.

“보물은 이런 동그랗고 작은 공입니다!”

사회자가 높이 들어 보인 것은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꽤 작은 공이었다.

“공에는 각각 동색, 은색, 금색이 칠해져 있고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오, 생각보다 제대로네.”

사회자가 공을 반으로 갈라 안을 열어 보여주었다.

“이 안에는 선물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딱 한 개! 동색도 은색도 금색도 아닌 공이 있습니다!”

그가 한 손으로 공 세 개를 가볍게 가지고 놀듯이 던졌다가 받으며 설명했다.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색입니까?!”

“무슨 색이냐고요? 그건 비밀입니다! 하지만 보면 바로 알 수 있죠!”

사회자가 잔망스럽게 한쪽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 윙크에 여기저기서 탄식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특별한 공 안에는 올해 마을에서 채취된 광물 중에서 가장 좋은 광물로 만든 반지가 들어 있습니다!”

“우오오오오!!”

여기저기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나로서는 도리어 당황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반응이었다.

‘반지가 뭐… 대단한 건가?’

비싼 반지라 그런가?

이제야 알았지만, 유독 주변에 커플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으음….’

뭔가 장물아비처럼 생긴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저희 마을에 오신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계시겠죠! 이 광물로 만든 반지를 착용하면 평생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사실을요!”

“…아.”

흘긋 닉스 이그나를 보자 그의 뺨이 상당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 눈치를 슥 보곤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걸 보아하니 아마도….

‘알고 있던 모양이네.’

이 소문에 대해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불쑥 찾아간 것이니 여기에 온 일은 어디까지나 우연일지라도 말이다.

‘…난감하네.’

이 순진한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여서 문제다.

“앞으로 두 시간 뒤까지 여기에 와주셔야만 성공으로 인정됩니다!”

사회자가 긴장한 사람들을 한 차례 훑어보더니 씩 웃었다.

사람들의 긴장감을 유쾌하게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인 듯했다.

“자, 그러면… 시자아악! 행운의 주인공을 기다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순식간에 튀어 나갔다.

닉스 이그나는 내 옆에서 꽤 느긋하게 선 채 가볍게 몸을 풀었다.

표정이 꽤 진지한 것을 보아하니 곧 튀어 나가도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닉스, 우리 흩어져서 찾아볼까?”

“어, 그래도 돼?”

“응, 네 속도 못 따라갈 것 같거든.”

내 말에 닉스가 가볍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씩 웃었다.

“좋아, 다녀올게. 너는 피곤하면 쉬고 있어도 돼., 아네트.”

“알겠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닉스 이그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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