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그게 무슨 말이야?”
묘하게 어딘가 거슬리는 이상한 말이었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사브나크가 냉큼 말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야, 암암리에 소문이 퍼져서 거기에 가서 소원을 빈 사람들이 꽤 되는 모양이거든.”
“그거야 뭐, 나라도 그러겠네.”
소원을 이뤄주는 석상이라니 가서 소원을 빌겠지.
세상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얼마나 많은데.
“문제는 소원이 이뤄진 다음 날 아침에 모두 어딘가를 뺏겼다는 거야.”
“어딘가?”
“응, 멀쩡했던 한쪽 눈이 안 보이게 된 사람도 있고 팔 한쪽이 마비된 사람도 있고….”
사브나크가 느른하게 말하며 턱을 문질렀다.
덜컹!
그의 말이 나올 때마다 닉스 이그나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더 말하는 것도 미안해질 정도다.
“닉스, 너 괜찮아?”
“어, 어…. 괜찮다. 나, 나는 무섭지 않아.”
그래, 애쓴다, 애써.
“듣기 힘들면 다른 방 가 있어도 되는데.”
“아니야! 그렇지 않다!”
닉스 이그나가 눈에 힘을 주었다.
주먹을 꽉 쥔 채 버티고 있는 모습이 조금 웃겼지만, 입 안을 깨무는 것으로 웃음을 참아냈다.
“신체 일부를 빼앗겼다는 거야?”
“맞아, 신체 일부.”
나는 닉스 이그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곤 다시 사브나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뤄진 소원은 뭔데?”
“뭐, 부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에겐 꽤 많은 양의 금화가 떨어졌고 병자는 말끔히 나았어. 누군가를 저주하는 사람은 그 저주가 이뤄졌고.”
“…아.”
“그 대가로 빼앗긴 건 신체 일부분이고.”
확실히 신기하고 거슬리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신경이 좀 쓰이기도 하고….’
신체의 일부를 야금야금 빼앗아 가는 존재를 하나 알고 있기 때문일까?
다만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근데 그걸 왜 얘기하는 거야?”
“가보자.”
“…뭐?”
“그 소원을 이뤄주는 천사 석상 말이야, 같이 가보자고.”
사브나크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얘는 갑자기 찾아와서 뭐래.
‘역시 괜히 시간을 냈어.’
그냥 아직도 요양 중이라고 할걸.
‘카펠도 그러고 나가서 신경 쓰이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갑자기 거길 왜 가!”
닉스 이그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가 슬슬 뭐 하나 처리하고 오라고 하는데, 제일 가까운 데에 그런 소문이 도니까.”
“아, 주술 연습 같은 거 하는 건가?”
“비슷해. 아데우스 가문은 저주나 흑마법 관련이니까 그런 쪽으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거든.”
아하, 세상엔 크고 작은 저주들이 꽤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 그런 이상한 소문 같은 게 돌면 거기까지 가서 해결하는 거야?”
“응, 해결해서 보고서 작성하고. 뭐… 근데 대체로 진짜 저주인 경우는 흔하지 않아.”
사브나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도 했다는 보고는 해야 하니까. 다른 소문은 다 너무 멀었어.”
사브나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후계자에게도 각자의 고통이 있는 거지.
“근데 거길 내가 왜 가?”
“그야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그리고 나 밤에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뭐래, 불 다 끄고 음침하게 방에만 박혀 있을 것처럼 생긴 놈이.”
내 말에 사브나크가 눈을 크게 뜨더니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너는 왜 나한테만 그렇게 퉁명스럽냐? 사과도 했는데.”
“음, 그러게. 네가 그렇게 생겼나 보지.”
내 대꾸에 사브나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얘도 갈 거니까 너도 가자.”
그가 닉스 이그나를 한 차례 가리키더니 내게 말했다.
“내가 언제!”
닉스 이그나가 자리에서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정말 싫은 모양이다.
근데 나라도 싫다. 무슨 심령 스팟 체험도 아니고, 굳이 문제 있다는 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건.
“귀찮아서 싫어.”
“아, 같이 가자. 나 혼자는 싫단 말이야.”
“왜? 너도 무섭냐?”
“…아니?”
대답이 의미심장하게도 조금 늦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사브나크를 보자 그는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그럼 혼자 가면 되지?”
“그러다가 위험한 존재면 어떡해? 혼자 해결하기 힘들 수도 있고.”
“그런 위험한 곳에 친구라면서 데리고 가려고?”
내가 팔짱을 낀 채 말하자 사브나크가 입술을 뻐끔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못 들어줄 것도 없고.”
내 말에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같, 이 가줄 거야?”
사브나크의 말에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건 아닌데, 솔직히 섬뜩하긴 해서…. 소원을 이뤄주는 귀신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고….”
그게 결국 무섭다는 거잖아.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아니면 혹시….’
설마 하는 마음이 있긴 했다.
‘확실히 신경 쓰이네.’
이렇게 신경 쓰이면 결국 나도 가보기는 해야 할 듯했다.
그래도 나 혼자 가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서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언제 갈 건데?”
“오늘.”
사브나크가 냉큼 대답하며 씩 웃었다.
덜컹!
닉스 이그나가 또 움칫 떨며 테이블을 건드렸다.
‘…그냥 혼자 갈 걸 그랬나.’
가지 말라고 해도 꾸역꾸역 따라올 기세인 닉스 이그나를 보며 생각했다.
***
“음, 여긴가?”
새벽 2시.
아빠는 허락해 주지 않을 테니 비밀로 하고 나오라는 사브나크의 성화에 결국 창문을 타고 내려왔다.
‘내가 침대 시트를 묶어서 이걸로 내려올 줄이야.’
이런 건 만화에서나 본 장면이었는데 내가 실제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딱히 별다를 건 없는데.”
“소문이 돈 것치곤 사람도 없네.”
사브나크의 말에 대답해 주자 뒤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흡…!”
아니, 얘는 대체 왜 온 거야.
“닉스,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
“안 돼. 이그나 가문의 사람은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어. 내, 내가 지킨다!”
닉스 이그나의 주변으로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뜨거워….’
이 애 나름대로 무서움을 털어내려고 힘준 건 알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소원을 빌 때만 나타나는 귀신을 어떻게 소환하게?”
“소원을 빌어봐야지.”
사브나크가 천사 석상 앞에 서며 말했다.
“그러다 눈이라도 빼앗기면 어쩌려고?”
“음, 그 전에 해결하면 되니까 괜찮겠지.”
사브나크가 막 입을 열 때였다.
화악-!
갑작스럽게 천사 석상의 뒤쪽에서부터 거센 바람이 훅 불어왔다.
순간 몸이 휘청일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는데, 뒤에서 뻗어 온 손이 나를 단단하게 붙잡았다.
“괘, 괜찮나?”
“아…, 고마워.”
닉스 이그나였다.
제 손은 벌벌 떨면서도 나를 단단히 붙잡고 지탱한 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도 괜찮아?”
“어, 어, 괘, 괜찮다.”
아닌가.
어쩌면 그냥 다리가 굳어서 안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기특한 일이네.
‘후계자가 아무나 되는 건 아니네.’
무서워하면서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타인에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용기다.
- 소원, 소원을 이뤄줄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꽤 낯이 익은 것이다.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 꽤 반투명한 존재가 보였다.
- …너어!
“…….”
‘공허의 악마’, 셰키나였다.
그녀가 나를 보고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무서운 기세를 내뿜었다.
‘아, 최종 보스가 여기에 있네….’
사실 신체 일부를 빼앗아 간다고 할 때부터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는데….
‘왜 내 예상은 항상 안 좋은 쪽으로 들어맞는 건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 내, 몸, 내 몸 내놔아아아아!! 내 건데… 그건 내 건데…-….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한 셰키나의 주변으로 새까만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내게 꾸물꾸물 다가오는 기운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닉스 이그나와 사브나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벌벌 떨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닉스 이그나는 불의 검을 만들어낸 채 내 앞을 지키고 있었다.
“쟤 뭐야? 너 저 귀신이랑 아는 사이야?”
사브나크가 흑의 기운을 일으키며 물었다.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지.”
“혹시 친구는 아니지?”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화를 해보고 싶었는데, 대화를 할 기회를 주려나 모르겠다.
- 아아아, 왜, 왜 나만… 왜 나마아아안!! 나는 단지…, 단지… 아….
셰키나가 허공에 울부짖었다.
그녀의 울부짖음에 따라 공기가 날카롭게 진동했다.
- 단지,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한데.
“궁금해?”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요즘 통 보이질 않던 셀렘이 그곳에 있었다.
“…뭐가 궁금해?”
“궁금하면 저 안개 속으로 들어가 봐. 그냥 이대로 마무리하고 싶으면 저 상태 그대로 죽여.”
셀렘이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셀렘, 너는 쟤를 죽이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랬는데, 뭐… 결국은 저것도 나도 다 똑같은 꼴이니까.”
그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위험한 일은 하기 싫은데.’
오지랖이 병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움직이는 이유는 내가 호구이기 때문일까, 그나마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일까.
“잠깐 비켜봐.”
“왜?”
나는 두 사람 사이를 가볍게 가르고 앞으로 향했다.
넘실거리는 검은 안개는 닉스 이그나와 사브나크 아데우스 덕에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으니 내가 갈 수밖에.
“야, 어딜 가! 위험하게!”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아, 안 돼! 너 잘못되면 오브리 공작님이 우릴 가만둘 것 같아?”
“어….”
나는 생각하는 듯 잠시 멈춰서 눈을 깜빡이다가 활짝 웃었다.
“어쩔 수 없지. 네가 끌어들인 거잖아.”
“아니, 야!”
사브나크가 제 기운을 죽이고 내 어깨를 붙잡으려 다가오는 순간, 검은 안개가 내 허리를 순식간에 낚아채 잡아당겼다.
“아….”
“아네트!”
닉스 이그나가 급히 내게 달려오며 손을 뻗었지만, 순식간에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아, 평화롭게 살고 싶다.’
이게 부디 이 삶에서 마지막 귀찮은 일이기를 바라며 나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