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우리 집은 대체 보안 설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무슨 놈의 집이, 외부인이 심심하면 다 들락날락하냐고.
올람도 그렇지만, 카펠 아르고도 마찬가지다. 이쯤이면 집안의 보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보안? 잘 되어 있지. 공작이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졌어.”
올람이 활짝 웃으며 해맑게도 말했다.
침입자가 본인이 침입한 저택의 보안 시스템을 칭찬하는 꼴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왜?”
“아, 그 미친 과… 아니, 로버트 화이트 씨요. 혹시 어디에 있어요?”
“아.”
올람이 눈동자를 한 차례 도르륵 굴리더니 다시 생글생글 웃었다.
“왜? 필요해?”
“그건 아닌데 어쨌든 제가 시작한 일이니까 끝도 제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건 내가 실험체로 갖기로 하고 끝난 거잖아?”
“그건 그렇죠….”
내 수긍에 올람이 고개를 주억였다.
“음, 그럼 잊어. 내가 알아서 쓰다가 질리면 처리할 테니까.”
“…네, 그럴게요.”
올람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뭔가 있는 건가 싶기는 했지만, 내가 살아나기 위한 대가로 그를 바쳤으니 이제 와 복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어볼 건 그게 끝?”
“아, 궁금한 게 생겨서요.”
“좋아, 말해 봐.”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어떻게 되나요?”
내 물음에 올람의 눈이 두어 번 끔뻑였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던 건지 어이가 없는 건지, 그는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조용했다.
“그게 왜 궁금한데?”
“그냥, 어쩌다 궁금해졌어요.”
그는 잠시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젖혔다가 다시 웃었다.
“음, 말해 주고 싶지 않은데.”
“왜요?”
올람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도 말해 줄 기미가 전혀 없었다. 눈동자 안에 심드렁함이 흘러넘쳤다.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릴 게 뻔하니까? 간신히 이야기가 제대로 궤도를 타고 있는데.”
“그럼 제 질문에 예, 아니오, 로만 대답해 주실 수 있어요? 스무고개처럼요.”
“스무고개?”
“네, 스무 번의 질문 안에 정답을 맞추면 제가 이기는 거고, 그러지 못하면 올람이 이기는 게임이에요.”
그는 가볍게 턱을 문질렀다.
“내가 왜 그런 내기를 해야 하는데? 내게 득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잖아.”
“뭘 원하세요?”
“너?”
“저요? 그건 수지 타산이 안 맞아요. 제가 얼마나 귀한 천잰데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네 사지 중 두 개.”
선량한 얼굴로 잘도 저런 잔인한 말을 한다 싶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는 내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몇 가지 의심과 불안이 사라지질 않았으니까.
“좋아요.”
“좋아, 그럼 어디 들어가서 해볼까?”
“네.”
우리는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곁에 서 있던 프릭이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나를 쫓아오려 하자, 올람이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짚었다.
“제자는 출입 금지.”
“하, 하지만, 스승님…! 아, 아네트는….”
“내기는 내기. 내가 강요하지 않았는데, 네가 끼어들 이유도 없겠지?”
올람이 다시 한번 말하자 프릭이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나와 올람은 응접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주변에 장막을 치곤 다리를 꼬고 앉아 고개를 까딱였다.
“시작해 볼래? 얼마나 재밌는 얘기를 할지 궁금하네.”
그가 양쪽 색이 다른 눈동자를 보기 좋게 휘며 물었다.
“그럼, 악마는 영혼을 먹나요?”
흔히 우리는 악마가 영혼을 먹는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러했다는 기록을 본 적은 없다.
내 첫 질문에 올람은 가만히 나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먹지 않아.”
“악마가 세상에 존재하나요?”
“존재하지. 역사서나 고서의 이야기가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거야.”
올람이 친절하게도 설명을 덧붙였다.
악마는 존재한다.
악마는 영혼을 먹지 않는다.
두 가지 명제가 나왔다.
“그럼 악마는 왜 영혼을 노리나요?”
올람이 입술을 비뚜름하게 끌어 올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아니지. 예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잖아?”
“아, 음.”
나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악마는 영혼을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 악마에게 팔린 영혼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나요?”
“응, 존재하지.”
올람은 잠시 망설인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없으니 솔직하게 답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공허의 악마와 악마에게 팔린 영혼이 관계가 있나요?”
“…흠, 어떤 관계?”
그가 답지 않게 되물었다.
대답을 꺼리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요.”
“…….”
올람은 내 말에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꽤나 긴 침묵 끝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응, 관계있어.”
혹시나 했던 몇 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파바박 스쳐 지나갔다.
“…하.”
나는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얼굴을 느리게 쓸었다.
“혹시, 악마에게 팔린 영혼이… 악마에게 소원을 이뤄주는 대가로 영혼을 주기로 한 그 영혼이….”
“…….”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설이다.
“그게, 공허의 악마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셰키나의, 아니, 그 ‘공허의 악마’의 이상할 정도로 지독한 집착이.
계속 눈에 밟히고 거슬렸다.
이 정도 당했으면 사실 다른 곳으로 갈 때도 됐는데 굳이 다른 가족들에게 붙어서 자신이 ‘진짜’라고 우기는 점까지도.
“…….”
올람은 난감하다는 듯, 처음으로 입가에서 미소를 지운 채 설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올람?”
“음, 여기까지 왔네. 괜히 받아들인 것 같은데.”
그가 애꿎은 제 뒷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그래, 맞아.”
올람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숨처럼 흘러나온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졌다. 허탈함에 숨이 탁 터졌다.
“아…, 그러면 제게 엮여 있던 공허의 악마가, 혹시… 원래 이 몸의 주인인가요?”
“네가 이겼어! 정답을 맞혔지. 근데 내가 이 이상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올람이 매정하게 말했다.
“저는 정답을 외치지 않았고 답을 얘기하지도 않았어요.”
당연하지만, 나도 물론 질 마음은 없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몇 개가 더 있었으니 말이다.
“말장난에 올라타서 놀아줄 기분 아니야.”
“그럼 제가 직접 가서 물어볼게요.”
아빠의 형제들이랑 같이 있다고 했으니 그쪽에 가면 찾을 수 있겠지.
“근데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이유가 없으면 굳이 이 이상 깊이 알 필요가 없지.”
그의 말에 나는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설령 그게 진짜라고 해도, 이제 와서 그 몸을 돌려주기라도 하게?”
“…그건 아니지만.”
“그럼 네가 하는 일은 사치라고 말해 두지. 쓸데없는 짓이야.”
올람이 매정하게 말했다.
“그럼 그냥 그쪽이랑 대화를 해볼래요.”
나는 올람에게서 뭔가를 더 알아내는 걸 포기했다. 말해 주지 않을 상대를 붙들고 지지부진 일을 끄는 것도 싫었다.
‘…….’
내 추측이 맞다면, ‘공허의 악마’는 지금 제자리로 돌아오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뿐이다.
당연히 지금 이 자리를 양보하진 않을 것이다. 나도 아빠의 딸로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돌아오고자 하는 셰키나의 마음을 모르지도 않는다.
‘…공허의 악마라.’
결국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공허의 악마라고 부르게 된 걸까?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쁜 시간 뺏어서 죄송했어요. 그리고 로버트 화이트, 처리해 줘서 고마워요.”
아까 눈동자를 굴리던 모습을 보니 아마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꼴이 됐을 거다.
“단지 난 내 몫을 받아 간 것뿐인데.”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주술에 걸렸다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사람은 사실 오랜만에 봐. 보통은 차원에서 미아가 되는데.”
올람이 신기하다는 듯 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이어 깨끗해진 내 팔을 붙잡고 한 번 쓸어내리더니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해부해 보고 싶기는 한데…….”
그가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지.”
사람을 저렇게 실험체 보듯 하며 웃으면서 말하는 점이 유독 섬뜩했다.
‘이런 사람 밑에서 제자 노릇을 했다니 프릭 박사님이 좀 불쌍하네.’
올람은 확실히 성격이 나쁜 것 같다.
“네가 알아서 딱히 좋을 얘기는 아닐 거야.”
“…….”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공허의 악마는 세상에 딱 한 개체만 존재해.”
딱히 궁금하지 않은 일이다.
어차피 제대로 말해 줄 마음도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셰키나를 만나러 혼자 가기는 좀 그런데….’
누굴 데리고 가야 하나 싶었다.
아빠한테 허락도 받아야 하고….
‘아빠한텐 또 뭐라고 전하냐.’
진짜 어떻게든 멸문 위기에서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빠의 앞길은 왜 이렇게 불꽃 길인지 모르겠다.
‘엄마한텐 또 뭐라고 말하고….’
이러다 나 쫓겨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빠가 쫓아낼 리는 없겠지만….’
사실 아빠와 애정을 쌓은 만큼 엄마와는 크게 애정을 쌓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오랜 시간 엄마가 아픈 탓에 자주 만날 수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더 말해 줄 마음은 없죠?”
“내가 말해도 소용은 없지.”
“그런데요, 올람.”
“응?”
그가 제 머리카락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꼬며 빙긋 웃었다.
“당신 대체 누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