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30)

<103화>

“오, 뭐야. 네 딸 일어났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그나 공작도 있었다.

내가 닫은 문을 대번에 확 열어젖힌 이그나 공작이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못 본 새 한층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구나.”

“…감사합니다.”

그쪽은 못 본 새에 바뀐 게 없으시네요.

“아네트.”

“네, 아빠.”

“크, 나도 아빠, 아빠, 하고 귀엽게 부르는 딸이 가지고 싶었어…!”

아들놈의 새끼 둘 있는 게 전혀 귀여운 짓을 하지 않는다며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아빠 옆에 가서 슬쩍 앉았다.

“여긴 어쩐 일이냐?”

“아빠한테 사업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뭐, 이그나 공작이 있으면 바로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

“사업?”

“네, 근데 이그나 공작님께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요.”

“…왜?”

아빠가 어쩐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짓고 있는 숙박업소에 관한 거라서요….”

“…나도 출자했다.”

“알아요, 들었어요.”

“5할쯤 지분이 있어.”

그 정도면 거의 공동 창업 수준 아니야? 그만큼 아빠가 수익을 가져가는 거니까 다행이지만.

“그…, 그럼 두 분이서 같이 들어주세요.”

나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저희 상단이랑 거래를 트러 멀리서 야르카족이 오는데요. 하필이면 제국 축제랑 기간이 겹치더라고요.”

아마 야르카족 입장에서는 일부러 이런 정신없는 시기를 골랐을 확률이 높았다.

본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다. 아니면 그냥 축제를 즐기고 싶었던가.

‘그 일정은 안 된다고 거절을 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러기엔 살짝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뭔데?”

“말해 봐라.”

호기심 가득한 이그나 공작의 시선과 그 이그나 공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빠가 동시에 말했다.

“숙박시설이요, 한창 건물 올라가고 있는 그거… 축제 전에 오픈할 생각이시죠?”

이그나 공작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이그나 공작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축제 때가 가장 성수기일 테니까요.”

“정확해, 그래서 곧 예약을 오픈해 보려고.”

“그 방들이요, 저한테 반 정도만 파시면 안 돼요? 가격은….”

“그래, 된다.”

내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옆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나도 이그나 공작도 순간 단번에 이해를 하지 못해서 두어 차례 눈을 끔뻑거리다가 서로를 마주 봤다.

그러곤 이내 아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서류에 사인하면 되는 건가?”

아니, 물론 여기 오기 전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오기는 했는데.

아니, 저기, 이렇게 바로?

“…초록아, 좀 너무하지 않냐? 내가 그래도 업체 대푠데….”

“나도 반 댔다. 정확히는 너보다 조금 더 댔지.”

“100데르크 더 낸 것뿐이잖나!”

이그나 공작이 울컥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100데르크?

확실히 생색을 내기에는 다소 미약한 금액이기는 했다.

“그래서 내 딸한테 자리 내어주는 게 아깝다는 건가?”

“아니, 아까운 게 아니라 협상이라는 걸….”

“필요 없다. 무료 대여를 하도록 하지.”

사람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일 수가 있구나. 내 동업자가 아빠면 좀 싫을 것 같긴 한데….

“좋아요!”

아무래도 아빠는 내 협력자지 동업자는 아니니까.

나는 아빠가 사인한 서류를 냉큼 받아 내 사인을 했다. 무료라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허….”

눈앞에서 코가 베인 이그나 공작이 허탈한 숨을 뱉었다.

“출자한 만큼의 방 수는 내가 구해서 채웠으니 나머진 네가 알아서 채우면 되겠군.”

아빠는 제 분량을 무료로 대여한 것뿐이라며 뻔뻔하게 나갔다.

나는 모른 척 아빠 옆에 앉아 생글생글 웃었다. 자고로 무료로 주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댔다.

암튼 나는 그래.

“…이렇게 나오기야?”

이그나 공작의 주변으로 이글거리는 기운이 들끓었다.

“이그나 삼촌!”

내 부름에 이그나 공작이 순간 몸을 기우뚱하더니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며 나를 보았다.

“아빠 괴롭히지 마세요….”

내가 아빠의 팔을 끌어안으며 작게 말했다.

그러자 이그나 공작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억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표정을 보면서 나는 입술을 툭 내밀었다.

“…만 봐라.”

“…네?”

“다시 한번만 불러볼래?”

이그나 공작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직진만 하던 닉스 이그나를 떠오르게 했다.

“응?”

대체 뭘.

“아빠 괴롭히지 마세요…?”

“아니, 나 말이다.”

아.

설마 자기 불러달라는 거야?

“이그나 삼촌?”

내가 부르자 이그나 공작이 “크으~!” 하는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더니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그래, 조카야.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나 조카야?

시원스레 허락을 얻어내서 다행이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뒤가 찝찝한 기분은 어째서일까?

“감사합… 으억!”

그래도 허락해 준 건 고마운 일이니까 고개를 숙이려는데, 아빠가 뒤에서 내 허리를 낚아채 잡아당겨 앉혔다.

“저놈에게 감사할 거 없다. 내 지분으로 해준 거니까.”

“아, 아빠 감사해요. 역시 아빠가 최고예요!”

“안다.”

음, 2년 만에 봐도 이 성격은 바뀌질 않았네.

“볼일이 그거뿐이면 이만 가보렴.”

“네에-!”

아빠도 뭔가 사업 얘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네?”

“일전에 말했던 ‘가족 여행’을 갈까 하는데, 시간 되는 날 있으면 알려주렴.”

그 말에 순간 무슨 소린가 싶어서 입을 작게 벌렸다가 이내 머릿속을 때리는 기억에 저도 모르게 작은 탄식을 흘렸다.

“…아.”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만약에요. 엄마가 다 낫고 제가 죽지 않게 되면요. 다 함께 가족 여행 가지 않을래요?”

“여행?”

“아, 가족 여행은 가족이 다 같이 며칠씩 좋은 데로 놀러 가는 건데, 아빠 바쁘니까 피크닉이라도요!”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문득 떠오른 기억에 절로 입가가 풀어졌다.

그때 아빠는 꽤 담담하게 대답했었고 그 뒤로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아서 예상치도 못했다.

아빠는 그거 같았다.

소중한 건 아무도 모르게 가슴 가장 안쪽에 깊이 묻어뒀다가 아주 가끔 정말로 필요할 때만 꺼내는 사람.

“네! 바로 가서 알아볼게요.”

“그래, 가봐라.”

음, 아닌가?

내가 오케이 했는데도 생각보다 덤덤하다.

머리를 긁적거리는데 문득 여전히 아빠의 목에 걸려 있는 부서진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도 돌아왔으니 버릴 법도 한데 꾸역꾸역 차고 있는 것이 대단도 했다.

‘다시 제작해 줘야겠다.’

마탑에 또 의뢰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몸을 돌렸다.

“가볼게요.”

“그래.”

“아쉽네, 다음에 또 보자.”

이그나 공작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나를 더 붙잡거나 하지 않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우리 아들들이 네가 꽤 보고 싶은 모양이야. 눈을 떴다고 하면 무척 좋아하겠구나. 다음에 한번 놀러 와도 되겠니?”

그렇게 묻는 이그나 공작은 꽤 부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걱정을 많이 끼쳤네요. 다음에 놀러 오라고 해주세요.”

“그래.”

이그나 공작이 씩 웃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한 번 더 허리를 꾸벅 숙이고 집무실을 나왔다.

***

“네 딸 많이 컸네, 초록아.”

“흥, 당연한 소리를.”

이그나 공작의 말에 샤콜 오브리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이그나 공작을 비롯한 네 명의 공작은 같은 아카데미를 졸업한 선후배나 혹은 동기 사이였다.

싫든 좋든 꽤 오랜 시간 서로를 봐왔다는 거다.

“네가 왜 딸을 그렇게 싸고도는지 알겠어. 확실히 저렇게 쳐다보면 다 해 주고 싶어지지.”

이그나 공작이 키득키득 웃었다. 샤콜 오브리는 반응하지 못했다.

“여행 가는 게 그렇게 좋냐?”

“무슨 소리지?”

“네 그 풀어진 입가나 어떻게 해보지 그래. 눈에 힘을 준다고 표정이 무서워지는 건 아니니까.”

샤콜 오브리가 제 입가를 몇 번 더듬으며 인상을 팍 찡그렸다.

“어디 딸자식 없는 사람은 억울해서 살겠나!”

이그나 공작이 과장되게 말했다.

호선을 그린 샤콜 오브리의 입가는 여전히 내려올 생각을 할 줄 몰랐다.

“그나저나 그 소식 들었어?”

“뭐.”

“네 형님들, 수도 들어왔다던데.”

샤콜 오브리의 입가가 그때야 느리게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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