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
“…….”
“…….”
식탁에 셋이 둘러앉았다.
왜 셋이냐고?
그게, 이노스 오브리가 참석했거든.
못 본 새 훤칠한 청년이 된 이노스 오브리는 나를 품에 끌어안은 채 놓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오라버니, 나 밥은 먹어야지.”
눈앞에 진수성찬을 두고도 그의 팔 사이에 끼어 있어야 하는 게 다소 낯설었다.
‘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문제는 아빠도 이런 이노스를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또 멋대로 사라지려고.”
이노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안 사라져. 이제 여기에 붙어 있을게. 진짜로 약속.”
나를 무릎에 앉힌 채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이노스가 눈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그럼… 내 선물 받아줄 수 있어?”
“어, 으응. 당연하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왜 불안하지?
이노스가 손가락을 딱 쳤다. 그러자 뒤에 있던 시종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목걸이와 팔찌와 발찌가 세트로 들어 있는 상자였다.
“와, 예쁘네.”
“응, 차볼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민 때였다.
“아서라, 위치 추적부터 온갖 마법이 다 걸려 있는 아티팩트다.”
셀렘이었다.
또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허공에 둥둥 뜬 채 그가 말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둬들였다.
‘아니, 아티팩트?’
대체 왜요.
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이노스를 바라봤다.
이노스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그냥 여상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를 선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응, 근데 이거 무슨… 마법 걸려 있어?”
“…….”
이노스가 흘긋 나를 보며 눈동자를 굴리다가 살짝 고개를 주억였다.
“조금…. 그냥,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위치 추적 마법?”
“그것만?”
“방어 마법이랑 공격 마법도 조금….”
“음, 그거뿐이야?”
내가 은근하게 묻자 이노스가 다시 눈동자를 굴렸다.
“강제 소환 마법…?”
“…또 있어?”
설마 또 있겠냐는 생각에 묻자 이노스의 얼굴이 살짝 울상이 되었다.
“건강이 나빠질 때를 대비해서 신체 건강 측정기…랑, 혹시나 나쁜 남자한테 당할까 싶어서 반경 10미터 내에 진입하는 남자들을 강제로 이동시키는 마법….”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10미터 이내면 대체 어디까지 강제 이동을 시키겠다는 거야.
아티팩트를 만들려면 마력이 꽤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쓸데없는 마력 낭비를 한 거냐고.
“…이제 더 없지?”
“아….”
또 있군.
“또 뭔데?”
“누가 너한테 욕하면 반사해 주는 마법이랑, 혹시나 납치당했을 때를 대비해서 네 몸에 손대는 사람들을 강제 구속하는 마법이랑 그리고… 혹시나 우리가 싫어져서 집을 나가겠다고 할 때를 대비해서…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마법….”
저기, 마지막은 좀 심하지 않아?
그거 감금이라고.
아니, 강제 소환 마법도 좋은 건 아닌데. 위치 추적은 그렇다고 쳐도….
줄줄 읊을수록 아찔해지는 마법 목록에 나는 한층 더 손을 뒤로 숨겼다.
흘긋 뒤를 보자 아빠는 놀란 기색도 없다. 이미 알고 있었거나 짐작했던 게 분명하다.
2년 동안 자고 일어났더니 아빠와 오빠가 미쳐버린 건에 관하여….
라는 논문을 쓰고 싶어질 지경이다.
“이야, 진짜 집착이 대단하다. 근데 네가 회까닥 돌게 했으니 어쩔 수 없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노스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이번에는 순순히 팔을 풀어줘서 다행히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건 받고 싶지 않아.”
“…응.”
“물론 내가 지금까지 이리저리 휩쓸렸으니까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건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감금이랑 강제 소환은 아니잖아.
“네가 또 사라지면 어떡해.”
“안 사라져.”
“…날 처음 만났을 때도 아버지의 애정을 확인하게 해주겠다고 스스로 연못에 뛰어들었으면서. 너는 무모….”
“야, 그건….”
“뭐?”
스산한 목소리에 나와 이노스의 어깨가 동시에 크게 튀었다.
곧이어 이노스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아니, 그걸 여기서 말하면 어떡해. 이 미친놈….’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뭘 했다고?”
“하긴 뭘 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나는 냉큼 고개를 저었지만, 아빠는 그냥 넘어갈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빠의 입술 사이로 옅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연못에 뛰어들어? 설마 그때….”
“아니, 그거 정말 발을 헛디뎌서….”
반사적으로 거짓말을 내뱉고 있노라니 아빠의 시선이 한층 매서워졌다.
거짓말했다가 들키면 가만 안 둘 기세다.
“그게, 아이… 좀 오래된 일이잖아요. 저 지금도 완전 멀쩡하고, 오라버니도 멀쩡하고!”
이노스 오브리가 바짝 긴장해선 내 말에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빠졌던 거군.”
아빠는 내 말에 한층 더 확신을 얻었다.
“아니, 다 오라버니 탓이에요.”
대충 이노스 오브리 탓으로 넘기자.
“야, 아네트. 너!”
그러자 이노스 오브리가 흠칫 놀라 나를 매섭게 바라봤다.
나도 지지 않고 그를 노려봤다.
네가 말실수했으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내 시선에 담긴 말뜻을 느낀 듯 그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오라버니가 그때 아빠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땅굴을 파고 있었는지….”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아빠는 오라버니를 사랑한다! 제가 또 아빠를 지지하면서 이제 아빠의 사랑을 증명해 주겠다고….”
“그래서 물에 빠졌다고.”
스산한 목소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우스갯소리로 넘기려고 해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을 앞으로 다소곳이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넵.”
“내가 거기 지나가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지?”
“그게 그것도 오라버니가 알려줘서 전부 계획하에….”
일단 좀 덜 혼나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이노스 오브리에게 탓을 돌렸다.
이노스 오브리의 얼굴이 새하얘지고 있었지만 알 바인가. 일단 나도 좀 살아야지.
“그래서, 큰일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느냐!”
아빠의 언성이 기어코 높아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우리는 서로 눈을 한 번 마주 보고 그대로 꼬리를 말기로 했다.
납작 엎드려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때는 그냥…, 아버지도 뺏긴 기분이 들고 그래서… 어린 마음에 동생에게 화풀이한 것뿐입니다.”
“…….”
“아네트가 방법이 있다고 해서 저는 호기심에 나갔는데, 사실 그런 방법이었다는 걸 알았으면 저도 허락하지는….”
어쭈, 이게 지금 내 탓을 하네?
내가 노려보자 이노스가 어깨를 움찔 떨더니 말끝을 흐려버렸다.
“그때 내가 얼마나 식겁했는지 너희는 모를 거다.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을 하다니….”
아빠가 실망스럽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아빠를 한 차례 보곤 입을 꾹 닫았다.
“죄송해요.”
“제가 제대로 말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옆에서 이노스도 함께 사과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빠에겐 꽤 잊을 수 없던 날인 모양이다.
‘…그날 이야기를 다시 꺼낸 적도 없었는데….’
겉으로 티를 내진 않는데 의외로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사람답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맞아요, 오라버니도 이제 아빠가 자기 사랑하는 거 다 안대요.”
나는 냉큼 달려가 아빠에게 안겼다.
“네? 아빠아~ 화내지 마세요! 사랑해요.”
아빠의 뺨이 움칫 떨리더니 살짝 부들거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보이지 않게 이노스에게 눈짓했다.
야, 안 와?
너도 와서 얼른 애교 부려.
내 눈짓에 이노스가 당황한 듯 입을 벙긋거리더니 결국 엉거주춤 내 반대편으로 다가와 아빠의 다른 쪽 팔을 살짝 끌어안았다.
다 큰 훤칠한 아들이 아빠의 팔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가 좀 웃기긴 했다.
“아, 아빠아…, 저, 저도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화내지 마세요…. 사, 사, 사….”
이노스가 푸시식 녹아내려 아빠의 팔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사랑해요….”
큽, 아니, 다 큰 남자가 왜 저렇게 귀여워.
나는 웃지 않기 위해 입 안쪽 살을 힘껏 깨물며 눈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웃었다간 이노스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뛰쳐나갈 것 같았거든.
비록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나는 보았다.
흘긋 이노스를 내려다보는 아빠의 뺨이 두어 차례나 씰룩거렸다는 것을.
‘하여튼 솔직하지 못한 사람….’
광대를 들썩거리던 아빠가 뺨에 힘을 주더니 그대로 나와 이노스에게 잡힌 양팔을 빼냈다.
“됐다, 얼른 식사나 해라! 둘 다 한 번만 더 그런 짓 하면 정말 집안 연못 다 막아버릴 줄 알아라!”
아빠가 인상을 찌푸린 채 엄하게 소리쳤다.
…근데 내용이 미묘하게 상냥해.
우리를 가두거나 혼내는 게 아니라 연못을 막아버린다니 말이다.
“네!”
“네.”
어쨌든 아빠의 기분이 풀린 건 분명하다.
이노스도 이제 아빠의 솔직하지 못한 부분을 알고 있는지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적당히 상황이 마무리된 터라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는 개 사료가 아닌 ‘인간의 밥’은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흑흑, 정말로 먹다가 울었다.
덕분에 아빠와 이노스가 난리가 나서 또 한바탕 식사 시간이 뒤집혔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