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쫙 펴진 손이 내가 아무리 손가락이 아프도록 꽉 잡고 있어도 그 틈새를 훅 빠져나갔다.
시커먼 어둠 속으로 ‘내’가 사라졌다.
“아….”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코앞까지 먼지바람이 다가왔을 때 이를 악물고 출구를 향해 달렸다.
쾅-!
내가 밖으로 뛰어나가자마자 건물의 출구가 막히더니, 그로부터 5분도 되지 않아 그 거대한 건물이 그야말로 폭삭 무너져 내렸다.
나는 멍하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생각났다.
괜히 착한 척을 하다가 손을 놓아버렸다.
나를 살리겠다고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는 신 차장님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와, 나도 참 답이 없었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지막까지 저러고 죽네.
다행히 그 뒤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떨어지다 기절했거나 떨어지다 즉사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가면 반드시 이기적이고 나만 생각하는 그런 인간으로 쑥쑥 자라야지.
할 말 다 하고 복수도 다 하고 가진 것도 펑펑 쓰고.
“…그래, 그러고 지내자.”
무사히 돌아가면 말이다.
나는 주저앉은 채 고개를 젖혔다.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새파랬지만 온 천지가 울음바다였다.
가족을 부르짖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양복이 휘날리도록 달려와 멍하니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딱 알맞다.
지상 4층, 지하 4층. 아니…, 직원들 휴게실까지 생각하면 지하 5층이다.
개중 얼마나 대피했을지가 관건이다.
“뭐야, 저놈도 결국은 살았네….”
나는 머리에 혹을 단 채 아픈 척을 하며 응급차에 실려 가고 있는 상사 새끼를 보면서 이를 아득 갈았다.
그래서….
“나 대체 어떻게 돌아가면 되는데?”
‘나’도 죽었는데 왜 나는 이 사람 몸에 여전히 있는 건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서 있는데,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아….”
이제야 돌아가지는구나.
버퍼링 걸린 것도 아니고 뭔가 진행이 이상하게 느리네.
나는 고꾸라지는 몸에 순응하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돌아가자.’
아빠와 모두가 있는 곳으로.
…라고 아련하게 눈을 감았는데.
“뽀삐야, 밥 먹어!”
“왈!”
정신을 차리니 이번엔 개가 되어 있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와그작와그작.
거의 본능처럼 사료를 씹어 먹던 나는 그 끔찍한 맛에 입을 헤 벌리고 먹던 사료를 다 토해 냈다.
우엑!
‘대체 이게 뭔데….’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고 이건 뭔데!
왜 개가 된 거야!
“왈왈!”
새까맣게 암전되었던 시야가 천천히 밝아지자 보인 것은 누군가의 발이었다.
‘…정말 지옥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누군지도 모를 집 강아지가 되다니.
‘설마 실패 확률이 높단 이유는 이거 때문이었나?’
내 몸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 기나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뭐 이런 거야?
‘아냐, 살아 돌아가야 돼.’
아직 못 한 것도 너무 많고 쌓인 돈도 다 쓰지 못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돌아가서 떵떵거리면서 살 거야!
“이채야, 저녁 차렸는데 안 먹을래?”
“…응, 다음에.”
“벌써 이틀째 제대로 안 먹고 있잖아. 엄마가 부담 없게 죽 만들었는데, 그래도 싫어?”
“…….”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누군지 몰라도 꽤 불효자식이다 싶었다.
‘근데 이 목소리 꽤 익숙하지 않아?’
내가 의아함을 담아 바닥을 데굴거리고 있으려니 안에서 제 딸을 부르던 중년의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아휴, 뽀삐야. 네 언니 좀 어떻게 달래볼래?”
그녀가 나를 품에 냉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 테마파크 붕괴 이후로 회사도 그만두고 저렇게 넋만 놓고 있으니 원….”
테마파크 붕괴….
이채…. 신이채….
‘아, 설마 신 차장님인가?’
아하, 이번엔 신 차장님 집 강아지가 된 거구나.
‘근데 갑자기 내가 왜 신 차장님의 강아지가?’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들 이 상황이 좀 당황스럽기는 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갑자기 신 차장님이 됐다가 이번에는 신 차장님의 강아지가 됐는데!
‘안 되겠다. 뭐 때문인진 몰라도….’
어쨌든 뭔가를 내가 알아야지.
내가 죽었을 때를 자꾸만 보여주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왈왈!”
내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신 차장님의 방문을 발톱으로 긁자 그녀의 어머니가 옅게 웃었다.
“어머, 오늘따라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구네. 너도 네 언니가 저러고 있는 게 맘이 안 좋지?”
“왈!”
그건 모르겠고 문 열어주세요!
“그날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통 말을 안 해주니….”
그녀가 TV에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돌려 TV를 보자 한창 뉴스에서 관련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테마파크 붕괴로부터 32일]
뉴스의 왼쪽 상단에 있는 글씨로 대충 그때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저 애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신께 감사하고 있는데.”
나는 가만히 뉴스를 보았다.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이어지는 내부 고발]
[책임자 구속 영장 발부]
[익명의 제보자, 관련자 중 몇 명이 대피 방송을 위해 여직원 한 명을 강제로 방송실에 보냈음을 고발.]
쉬지 않고 뜨는 기사는 연신 그날의 일로 반응이 뜨거움을 알려줬다.
사망자 수백에 부상자 수백, 그리고 실종자까지 수백 명이다.
그 거대한 테마파크의 수용 인원은 4~5천 명쯤 됐었는데, 그날은 특히나 주말이어서 한층 더 사람이 많았다.
‘나도 보수 공사 요청한 곳이 몇 군데 있었지.’
청소 같은 걸 하다 보면 균열을 발견하게 되니까 말이다.
‘저 익명의 제보자는 신 차장님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용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이 꽤 많이 있었다.
증거자료로 첨부한 것들도 그랬다.
‘역시 만나봐야 알겠어.’
나는 다시 앞발을 들고 뒷발로 몸을 번쩍 세운 뒤 연신 발톱으로 문을 긁어댔다.
강아지의 체력이란 생각보다 대단해서 한 10분쯤 쉬지 않고 긁으니 안쪽에서도 포기한 듯 문을 열어온다.
“…왜 그래? 뽀삐.”
살짝 열린 문틈으로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강아지 이름을 꼭 뽀삐라고 해야 했을까?
아무래도 뽀삐라고 불리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김춘식이나 갑순이 같은 거면 좀 사람 같고 괜찮은데.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전국의 뽀삐 가족들에겐 심심한 위로의 말을 보낸다.
“왈왈!”
나는 냉큼 살짝 열린 문틈으로 머리를 비집고 몸을 밀어 넣었다.
‘윽….’
퀴퀴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제대로 불조차 켜지 않고 창문마저 열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언제 머리를 잘랐는지 단발이 되어 있었다.
미용실에서 자른 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게 신 차장님이라고?’
그 실수 하나 용납하지 않았던, 자기 관리가 철저하기 짝이 없던 신 차장님?
얼마나 안 먹은 것인지 몸은 마를 대로 말라 뼈밖에 없었고 눈 밑은 퀭했으며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한껏 떡이 져 있었다.
‘뭐야?’
어두운 방에는 컴퓨터만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고 침대엔 온기조차 없었다.
‘마치 죽을 수 없어서 마지못해 사는 것 같잖아.’
그래, 그녀는 마치 삶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되든 좋은 사람처럼.
“뽀삐, 방해되니까 얌전히 있어.”
사람과 오래 말하지 않은 듯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하곤 다시 털썩 의자에 앉았다.
바쁘게 키보드를 치기 시작하기에 그녀가 뭘 하는지 궁금해서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침대까지 버둥거리며 기어올랐다.
‘글?’
소설을 쓰고 있는 건가?
신 차장님이 소설이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열려 있는 한글 파일을 느리게 훑었다.
제목에 덩그러니 적혀 있는 이름은 눈에 익는 것이었다.
하지만 Re? 이건 처음 보는 것이다. 보통 리메이크나 할 때 저런 걸 적던데.
‘…잠깐? 그 소설 저자가 신 차장님이었어?’
장르 소설이나 영화 같은 건 전혀 안 볼 것 같은 신 차장님?
그도 그럴 게 신 차장님이 얼마나 깐깐했는지 모른다. 늘 엄했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기 관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역시 모른다. 소설을 읽거나 쓰기는커녕 집에서도 일만 할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뒷발로 서서 고개를 조금 더 들이미니 그제야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첫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멈칫했다.
‘아니샤…?’
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