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30)

<92화>

일은 이른 아침부터 은밀하게 진행됐다.

참석자는 이른 새벽에 도착한 아데우스 공작과 아빠, 그리고 올람과 프릭, 나뿐이었다.

주술은 저택의 지하에 있는 넓은 방에서 진행하게 됐는데, 방음 처리가 잘 되어 있어서 소음이 흘러나갈 위험이 없다고 한다.

‘정말 이 기록서가 제물로 충분할까?’

올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워낙 음흉한 놈이니 무슨 생각을 숨기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올람에게 다가갔다.

“뭐 하세요?”

“주술진 그리는 중.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이 사람 진짜 믿어도 돼?

내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프릭을 바라보자 그가 주먹을 꽉 쥐더니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믿으라는 걸까? 믿어도 된다는 걸까?

불안한 시선으로 쪼그려 앉은 그를 내려다보자 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을 지웠다가 그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진짜 믿어도 된다고?’

손톱을 세워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듯했다.

“정말 믿어도 돼요?”

“아, 요즘 시대에 주술이라니 낡았잖아. 나도 안 쓴 지 꽤 됐어.”

생긴 건 거의 20대 초중반인데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었다.

‘프릭이 30대일 텐데….’

물어보고 싶었지만, 딱히 대답해 줄 것 같진 않다.

“아, 이거였나 보다. 됐다.”

올람이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시작하면 돼.”

그가 한쪽에 서 있는 아데우스 공작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종이를 내밀었다.

“이쪽이 주문, 이쪽이 마력을 넣는 순서, 그리고 이쪽이 네가 견뎌야 하는 시간.”

“…숫자가 없습니다만.”

종이를 살펴보던 아데우스 공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일 전부터 계속된 부탁에 오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섬세한 주술이고 난해했다.

“정확해!”

올람이 활짝 웃었다.

“시간은 쟤가 눈을 뜰 때까지야. 그 전에 네 마력이 바닥나면 끝.”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얼마나 얄미워 보이는지,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다.

“고대 주술은 다 이렇게 위험성이 많습니까?”

“대개는 그렇지. 지금은 사장(死藏)된 이유가 다 있는 법이야.”

올람이 말했다.

“고대의 것은 강력하지만, 위험하지. 어느 시대든 이걸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흘러넘치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강력한 힘은 늘 누군가를 홀린다고 말하며 올람이 느긋하게 뒤로 물러났다.

“참고로 나는 할 거 다 해줬으니까 큰 도움 주지 않을 거야.”

“스, 스승님.”

한쪽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프릭이 그의 곁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올람이 단숨에 프릭을 낚아채 뒤로 물러났다.

“거기 제단에는 제물을, 진의 사방에 그려둔 원에는 씨앗을 올려둬. 신기한 아이는 거기 가운데.”

올람이 하품을 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빠는 올람의 태도가 썩 마음에 안 드는지 눈살을 찌푸렸지만, 굳이 그를 자극하진 않았다.

“난 뭘 하면 되지?”

“아, 아빠. 아빠는… 기도?”

올람이 고개를 툭 기울이며 말했다.

“…뭐?”

“진이 발동을 시작하면 피를 떨어뜨려. 그리고 마력을 흘려 넣어주며 눈뜰 때까지 기다리면 돼.”

“…실패할 확률은 얼마나 되지?”

“모두가 잘한다면 성공률은 백 퍼센트야. 내가 보통 천재여야지.”

“세상에 백 퍼센트는 존재하지 않아.”

늘 변수가 있는 게 인생이다.

열 가지 계획을 세워뒀어도 한 가지 계획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삶이다.

“으음, 그렇게 말하면 어려운데. 평균적으로 이 주술을 시도했던 놈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1%였어.”

올람이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실패율이 1%면 거의 성공한다고 보면 되겠군.”

아데우스 공작이 안도한 듯 말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저놈 지금 말장난하고 있다고.

“그거 성공할 확률이지?”

내 말에 올람이 나를 보았다. 실실 웃는 모습을 보아하니 내 말이 틀린 건 아닌 모양이다.

“응, 여태 성공한 게 한 사람 정도 있었나?”

“…뭐라고?”

“근데 그건 준비가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 주술을 제대로 진행할 고위급 주술사도 없었고.”

올람이 손을 휘휘 저었다. 얼른 시작하라는 모양새에 나는 엉거주춤 진 안으로 들어갔다.

“흑의 아이가 있으니 괜찮아.”

올람이 선심 쓰듯 한마디를 더 뱉었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괜찮은지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닫았다.

내가 자리에 서자 어수선한 공간 내에서 아데우스 공작이 입을 열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새까만 마력이 그의 몸에서 넘실거리더니, 이윽고 올람이 그려둔 진을 천천히 덧그리며 따라갔다.

“아네트.”

검은 마력이 내 발치까지 다가왔을 때 아빠가 날 불렀다.

“네.”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돌아오렴.”

“…네.”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흩뜨리고 지나갔다.

아빠가 제 왼쪽 손바닥을 오른손 검지로 느리게 긋자 손에 실금이 생기더니 이내 그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새까만 마력과 새빨간 피를 머금은 주술진이 아이러니하게도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와, 신기하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됐다.

***

쿠구구구-!

후두둑.

“꺄아아악!”

“다 나가! 다 나가아아아! 나가라고! 빨리, 빨리!”

귀를 따갑게 울리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이 확 뜨였다.

“억…!”

누군가 배를 밟고 지나갔는지 배에서 거센 통증이 느껴졌다.

엉거주춤 앉아 눈을 뜨자 반대쪽에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우르르 달려오는 인파가 보였다.

“뭐, 뭐야…?”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피했다.

후두둑.

머리 위로 뭔가가 흠뻑 쏟아졌다.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훑자 부서진 콘크리트 같은 것이 떨어졌다.

“이게 뭐야?”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사방이 낯설고도 익숙하다. 멍하니 고개를 들자 머리 위에서부터 뭔가가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아.”

바닥에 떨어진 깨진 거울 사이로 내 얼굴이 비쳤다.

“차신아 씨! 가서 대피 방송 해요! 대피 방송! 꾸물거리지 말고!”

차신아?

귀를 때리는 이름에 절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잖아?

“아, 네….”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아, 알겠습니다…!”

“당장 가서 방송해! 아무도 안 남았다고 뉴스에 뜨고 싶어?”

호통을 치는 목소리 뒤로 울먹거리며 대답하는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상이 된 얼굴로 남들은 도망치는 곳으로 뛰어가는 그녀가 보였다.

아니, 저건 나였다.

‘내가 차신아인데….’

근데 나는 여기에 있고 차신아의 몸을 한 누군가는 저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럼 나는 지금 누구야.”

나는 급히 손을 들어서 내 얼굴을 만졌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이게 일단 내가 아는 누군가의 몸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뭐야….”

흘긋 시선을 내리자 깨진 유리 조각에 내 얼굴이 비쳤다.

처음 보는 여자가 상처가 나 창백한 뺨을 한 채 갈 곳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나야?’

아니, 자세히 보니까 낯선데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다.

“신 차장! 뭐 하나, 빨리 나가지 않고!”

신 차장?

아, 사사건건 나 불러서 괴롭혔던 그 신 차장을 말하는 건가?

문득 떠오른 정보에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아, 네…?”

“빨리 나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 등을 퍽퍽 밀쳤다.

출구는 여전히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울고불고 몇몇 노인은 넘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는 아비규환이었다.

그제야 조금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테마파크.”

아, 생각났다.

그래.

나는 실내 테마파크에서 일했었다.

거대한 부지에 커다란 건물이 세워져 그 안에 놀이공원이 만들어진.

개장 전에도 개장 후에도 말이 많았다.

도심 한복판에 지어진 거대한 놀이공원은 규모에 맞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사가 진행됐다.

종종 부실 공사라느니, 금 간 천장 벽을 보았다느니, 쩌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느니, 시체를 봤다느니, 온갖 괴담이 나돌곤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아까 차신아 씨가 방송을 하러….”

거대한 건물이 사방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어서 엉망진창이었다.

그녀가 방송을 하겠다고 사라진 곳은 이미 전기가 다 나가서 뭐가 보이지도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않나! 누구 하나라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대피 유도했다고 뉴스에 그렇게 말해야지!”

이 미친 상사 새끼가 사람 방송실로 밀어 넣고 뒤에선 이 지랄을 했다 이거지?

나는 이를 악물며 놈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 때였다.

지지직-

머리 위에서 작은 노이즈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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