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30)

<90화>

전생에는 딱히 부모의 정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다.

내 부모가 얼마나 답이 없었느냐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나는 정말 논문 수십 편도 쓸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성장기 아이에게 얼마나 거지 같은 일인지에 관해서도 말이다.

전생의 기억이 꽤 떠오른 지금에야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내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답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빠는 도박, 엄마는 주식.

말아먹고 말아먹고 말아먹었는데, 그 위에 또 말아먹는 인생이었다.

빨간 딱지가 온 집 안에 붙다 못해 내 얼굴에도 붙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한 곳에 일주일 이상 살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폭력을 행사했냐? 그건 또 아니었다. 내 부모는 너무나도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하하, 다음 기회도 있겠지!” 하면서 잡초를 따서 풀죽을 끓여 먹을 정도로….

집안일은 당연히 안 했고 자식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때로는 내게 앵벌이를 시킬 때도 있었다.

‘와, 생각하니까 암울해.’

그래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아빠가 첫 진짜 아빠인 것 같아요.”

그게 돌고 돌아와서 지금에서야 이뤄진 느낌이다.

“왜, 전생이 있다면서.”

“와, 그게 아빠면 저 나가 죽어야 해요.”

나는 아빠의 품에 그대로 안긴 채 느릿하게 전생의 친아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풀을 뜯어 주전자에 물을 넣어 끓여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빠는 어이가 없어진 것 같았다.

“그만큼 답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구제 불능이군.”

아빠의 말에 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구제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여전히 도박이나 하면서 살겠죠.”

내가 스물이 넘어서 상사의 갑질에 치여가며 일할 때도, 내 통장에서 돈을 훔쳐 가면서까지 도박했던 인간이니까.

“그 인간들 운이 더럽게 없어서 돈을 제대로 따지도 못했어요.”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자 아빠가 낮게 웃었다.

“아네트.”

“네.”

“…고맙다.”

어?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아빠의 품에 안겨 있던 몸을 휙 떼서 고개를 홱 들었다.

나는 눈을 벅벅 문지르다가 휘둥그레 뜬 눈을 숨기지 못한 채 아빠를 보았다.

“아빠.”

“뭐냐.”

“혹시 해가 내일 서쪽에서 뜬대요?”

신전에 가서 신에게 물어봐야겠다.

혹시 해를 서쪽에서부터 뜨게 할 생각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적재적소에 적당한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음, 이런 말은 살면서 처음 들었지만 그렇다고 합니다.

“우와아.”

짝짝짝.

열심히 손뼉을 치며 나는 활짝 웃었다. 아마 가증스럽기 짝이 없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내가 짜증 났는지 아빠가 한숨을 뱉었다.

“아빠.”

“…너 이만 가라.”

“아, 왜요. 내가 싫어요?”

“누가 싫…!”

울컥한 아빠가 한마디를 흘렸다가 다시금 한숨을 내쉰다.

나는 아빠를 물끄러미 보다가 웃었다.

“아빠.”

“또 왜.”

잔뜩 심통 난 표정이면서도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는 게 괜히 좋았다.

“만약에요.”

아빠가 내게로 시선을 내렸다.

“엄마가 다 낫고 제가 죽지 않게 되면요. 다 함께 가족 여행 가지 않을래요?”

“여행?”

아, 여긴 가족 여행이라는 개념이 없나?

아빠는 일을 해야 하니 확실히 며칠씩 시간을 빼는 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 가족 여행은 가족이 다 같이 며칠씩 좋은 데로 놀러 가는 건데, 아빠 바쁘니까 피크닉이라도요!”

내 말에 아빠의 입술이 둥글게 휘어졌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아빠는 그 모습을 상상이라도 한 듯 작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건… 혹시 몰라서 드리는 말씀이니까 화내진 마세요.”

“네가 화나게 하지 않으면 나는 화를 내지 않아.”

화나게 할지도 모르니까 화내지 말라는 거잖아.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아빠가 코웃음을 쳤다.

“만약 제가 죽으면요.”

“…하지 마라, 듣기 싫으니.”

내 말에 아빠가 정색하며 말했다.

“안 돼요, 들어주세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말했다.

손을 뻗어 아빠의 손까지 붙잡자 답지 않게 긴장한 듯 그의 목울대가 한 차례 일렁거렸다.

“이그나 공작님이 무슨 사업 시작한다고 하면 꼭 투자하세요. 제일 많은 지분으로. 알았죠?”

“…뭐?”

이그나 공작이 처음에 그 사업을 시작할 때는 사방에서 도박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여관을 두고 누가 그런 호텔 같은 곳에서 자느냐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는 거다.

게다가 돈만 있으면 평민과 귀족이 한 건물에서 숙박할지도 모른다?

귀족이 반발하기 좋은 구조였다.

게다가 요구하는 투자금이 상당했는데, 그맘때 이그나 공작가에서 전부 감당하긴 조금 힘든 수준이었다.

그래서 투자자를 모으는 데 꽤 난관을 겪어 이그나 공작이 무리해서 진행했었고.

물론 대박이 터져 그는 돈방석에 올랐다.

“이그나 공작님의 등에 빨대를 꽂을 수 있는 기회라고요!”

“뭔, 대…?”

“아, 이그나 공작님이 고생한 결과에 돈을 빨아 먹을 수 있는 기회!”

내 말에 아빠가 조금 혹한 모양인지 턱을 문질렀다.

“꼭이에요.”

“…알겠다.”

“그리고 혹시나 제가 복수 다 못 하고 죽으면 그 새끼 끝까지 괴롭혀주세요!”

내가 죽어서 그놈이 남은 인생은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하면, 벌써 배가 아팠다.

내 박력을 못 이긴 듯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 그렇게 제가 죽으면, 주변 사람한텐 죽었다고 하지 말고 멀리 유학하러 갔다고 해주세요.”

은근슬쩍 덧붙인 내 말에 아빠의 입가에 걸려 있던 희미한 미소가 사라졌다.

아빠가 한마디 할 것 같기에 나는 냉큼 손을 올렸다.

“미리 말하는데, 만에 하나예요. 성공하겠지만, 혹시나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내 말에 한마디 할 것처럼 굴었던 아빠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약속해 주세요.”

내 재촉에도 아빠는 끝까지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 주술, 언제쯤 행할 거지?”

그저 한참의 침묵 끝에 조용히 되물었을 뿐이다.

“음, 내일 해볼까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얘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건강해져서 직접 복수해야지.’

이 거지 같은 삶에서 나도 좀 벗어나 보자.

“…그래, 준비하마.”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아빠가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올람에게 가봐야겠네.’

아빠에겐 성공한다고 말해 두긴 했는데,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되는진 사실 확인하지 않았다.

‘…아, 죽기 싫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빠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

“으응? 주술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되냐고?”

과일을 한 상 차려놓고 오독오독 먹고 있던 올람이 느릿하게 물었다.

아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프릭은 그에게 시달렸는지 다크서클이 한층 짙어졌고.

“으음, 그때 메모에 적어 줬잖아? 성공률 100%라고.”

“그거 정말 내가 사지 온전하게 제정신까지 가지고 살 수 있는 확률이에요?”

무슨 신화 속 그림처럼 동그란 과일을 여유롭게 입에 넣으며 올람이 웃었다.

“사지는 온전하지, 뭐 잃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신은, 글쎄.”

그러고 웃었다.

“네가 노력하면 멀쩡할 수 있는 거고, 아니면 영원히 허공을 떠도는 거지.”

올람이 과일을 한 주먹 쥐어 허공에 던지자 새까맣고 동그란 열매들이 허공에 붕 뜬 채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게 뭔데요.”

“너 왜 네가 여기에 오게 된 건지 기억해?”

“그거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환생 같은 걸 한 거겠죠….”

“네가 한 건 환생이 아니잖아. 다른 사람 몸에 환생을?”

올람이 말도 안 된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뭔가의 개입이 있었겠지. 너한테 선택권을 줬을 거야.”

“그런 기억 없는데요….”

사실 죽을 때의 기억이 희미하긴 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내가 안내 방송을 하던 건 기억하는데, 그뿐이다.

어떻게 죽었는지가 정확히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기록서에도 없었어.’

내가 죽은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네 정신이 멀쩡하면 무사히 돌아오는 거겠지, 뭐.”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네.

아니, 정신만 똑바로 잡고 있으면 된다는 말인가?

“근데 있잖아, 신기한 아이야.”

“네.”

“네가 만약에 죽으면.”

올람이 빙긋 웃었다.

“내가 네 몸 가져도 돼?”

이런 세상에 몹쓸 변태 새끼를 보았나.

내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올람이 눈을 끔뻑이더니 작게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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