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30)

<83화>

[★고대 주술을 훌륭하게 성공하는 법★]

진짜 어울리지도 않게 발랄하게 써놨다. 아니… 그 외모에 어울리기는 하는데, 솔직히 조금 짜증 난다.

[1. 네가 살기를 바라는 피가 이어진 가족을 준비한다!

2. 네 저주를 한 번 몸에 받았다가 흘려보낼 세 개의 씨앗을 준비한다!

3. 이 모든 주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디고 주관할 흑의 아이를 준비한다!

4. 너 스스로가 살기를 바란다.

5. 영혼을 정착시키기 위한 제물을 준비한다.

6. 모든 준비가 끝나면 나에게 찾아온다!

성공률 100% 간단 주술이었습니다!]

올람 짜증 나.

그리고 준비할 것도 많다.

‘피가 이어진 가족이 나한테 어딨어.’

이건 뭐, 처음부터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니지, 이 몸은 아네트니까….”

육체만으로 따지면 있기는 있다.

샤콜 오브리가 내 가족이 되는 거겠지. 몸이 약한 공작부인은 일단 배제하고.

역시 올람 짜증 나.

‘내 저주를 한 번 몸에 받았다가 흘려보낼 세 개의 씨앗은 뭔데?’

녹의 힘으로 씨앗을 구해 오면 되는 걸까? 근데 난 아직 녹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 아닙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흠칫 어깨가 절로 떨렸다.

“너… 뭐 하다가 이제 나오냐? 없어진 줄 알았는데.”

- 신변 정리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주인님의 세계가 빠르게 변해서 조금 더 기록을 하기도 했고요.

“신변 정리라고…?”

무슨 책이 신변 정리를 다 하냐.

-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을 변한다고 합니다.

뭐가 변했다는 걸까?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대충 손을 휘휘 저으며 침대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그래그래, 어차피 다 안 되는 내용인데.”

다른 것들은 어떻게 준비한다고 해도 ‘제물’이라니 어불성설이다.

나 살겠다고 남을 죽일 순 없다.

“글렀네.”

나는 이제는 한층 가라앉은 마음으로 하품을 했다.

사실 여기 빙의됐을 때부터 계속 죽는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이제는 별로 두렵지도 않았다.

“저주라도 끊어야지.”

또 회귀하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 포기는 김치를 담글 때나 사용하는 말입니다.

“어…?”

- 기록서에 있는 내용을 응용해 보았습니다.

너무 낯선 말이 들려서 순간 흠칫했다.

- 세 개의 씨앗은 아르고 공작가, 오브리 공작가, 이그나 공작가의 후계자가 들고 다니는 성장의 씨앗을 말하는 겁니다.

아, 내 목에 걸려 있는 이런 거 말하는 건가?

‘이노스의 목에도 뭐가 걸려 있기는 했었지.’

그걸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는 건가?

‘흑의 아이라면 사브나크 아데우스를 말하는 건가?’

- 그보다는 아데우스 공작이 좀 더 적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떻게 부탁해 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네 번째는…….

생존 욕구에 관한 거다.

“살 수 있다면 사는 게 좋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늘 살고 싶어 했으니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물은 무리지.”

제물이라고 하면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말이다.

“너는 아까부터 혼자서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허공에서 뒹굴던 셀렘이 내게 훌쩍 다가오며 물었다.

“기록서랑 대화하는데….”

“기록서? 그 책?”

“응.”

셀렘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마에 손을 올리더니 이내 청진기 같은 것으로 내 이마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뭐 하냐?”

“어디 아픈가 해서. 책이 무슨 말을 한다고….”

“아니, 머릿속에서 말하지 않아?”

기록서와 얘기할 수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같은 일을 겪은 셀렘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기록서는 기록서야. 그게 말을 어떻게 해?”

셀렘이 도리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 흠흠, 록서는 상냥하고 훌륭한 록서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보통은 불가능합니다.

갑자기 불안감만 커졌다.

‘…나 정말 미친 건가?’

혹시 기록서가 실제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거 아닐까?

내가 급히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뇌에 빠지자 머릿속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 절 제물로 쓰세요.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나는 움직임을 뚝 멈췄다.

- 록서를 제물로 바치면 주인님께선 다섯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는 겁니다.

“너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아?”

“모르지, 무슨 말인데?”

셀렘이 정말 눈치도 없이 끼어들었다. 나는 셀렘을 붙잡아 대충 이불 밑에 쑤셔 넣었다.

“야, 야!!”

그가 소리를 질렀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 주인님께서 록서를 제물로 바치면 앞으로 필요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없고 미래의 일도 볼 수 없어서 평범한 사람이 됩니다.

지금 그게 문제는 아니잖아.

갑자기 있던 놈이 자기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 하지만, 살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요.

들려오는 말이 심장 어딘가를 찌르르하게 울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것처럼.

“너, 누구야?”

- 주인님의 상냥한 친구 록서입니다.

언제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답이 돌아왔다.

이윽고 눈앞이 새하얗게 번지기 시작하더니 내 손바닥 위로 A5 사이즈의 책이 툭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이게 늘 내 머릿속에서 말하던 ‘기록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녹의 눈물>

이라는 제목이 적힌 샤랄라한 표지의 책이었다.

‘내가 봤던 기록서가 아니네….’

검은색과 하얀색 표지가 앞뒤를 장식하고 있는, 셀렘이 있던 그 공간에서 본 표지는 아니다.

“야, 기록서.”

가볍게 책을 툭 두드리며 물었지만 언제나처럼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록서야? 상냥한 록서?”

침묵이었다.

마치 정말로 책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푸하! 뭐야? 이건?”

이불 속에서 기어코 빠져나온 셀렘이 물었다. 나는 가만히 책을 바라보다가 다시 철퍼덕 드러누웠다.

“친구.”

울적하게 중얼거리며 나는 책을 끌어안은 채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

“아아악!”

어두컴컴한 실험실 내에서 코가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끔찍한 냄새와 비명이 풍겼다.

“하, 이게 아냐. 이게 아니라고. 여기서 조금 더 쓸모가 있어야 해.”

“헤하, 헤…! 윽, 으그그!”

혀를 잃은 듯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실험체를 보며 로버트 화이트는 콧노래를 불렀다.

“흐흐….”

로버트 화이트가 낮게 웃음을 흘리며 주삿바늘을 손에 쥐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실험체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사지가 온전한 사람이 드물었다.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대개는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긴 시간 샹그릴라 보육원을 관리하고 감독하던 선생님들이었으니까.

“선생님들이 지원해 줄 줄은 몰랐는데….”

로버트 화이트가 웃었다.

“튼튼해 보여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다행이지.”

로버트 화이트가 작게 중얼거리며 약물을 이리저리 조합했다.

푸시식 기묘한 연기가 나면서 색깔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한 액체를 그가 주사기에 조심스레 담았다.

“이번 실험은 분명히 성공할 거야. 그래서 이번에는 꼭 그 계집애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그 계집애도 이것만큼은 따라 하지 못할 것이다.

“내 회심의 역작이니까!”

살아 있는 생물로 만드는 마나 저장석.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마나를 충전하는 천재적인 발상을 그 도둑년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 역시 인간은 강하단 말이야….”

생명력도 질기고 쉽게 죽지도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로버트 화이트가 웃었다.

빌린 돈을 일정 부분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전부 새 실험체를 사는 데에 투자했다.

‘처음 거래를 트는 곳이었는데 괜찮았지.’

이놈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에선 늘 비싼 값을 치러야 했는데 이번에는 질 좋은 실험체가 꽤 저렴하게 굴러 들어왔다.

‘1천만 데르크를 눈앞에서 뜯긴 건 안타깝지만….’

이것만 출시해서 성능을 증명하기만 하면 돈방석에 앉아 후원금을 쓸어모으는 건 순식간이었다.

“돈 따윈 다 갚아버리고 협회도 탈퇴해 주지.”

그가 주삿바늘을 의자에 묶인 실험체, 이리나의 목에 사정없이 꽂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그는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아, 이대로는 크기가 너무 크니까 휴대성도 중시해야지.”

뭔가를 중얼거리던 그가 펜을 꺼내 이리나의 몸 위에 X 표시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는 발표할 수 있겠지.”

벌벌 떨며 바닥을 축축하게 적시는 실험체를 보면서도 그는 그저 즐겁다는 듯 웃었다.

본인의 말로 따위는 모르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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