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130)

<74화>

“너는 그거 좀 관둘 수 없나?”

“그게 뭔데요?”

“웃는 거.”

아빠의 말에 나는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아니, 울 순 없잖아요.”

그런다고 무표정을 하는 게 익숙한 것도 아니고 겁에 질려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울어.”

“네?”

“차라리 울라고.”

매정하게 떨어지는 한마디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너는 죽는 게 무섭지도 않나?”

무슨 소리야, 죽는 게 무섭지 않을 리가 없잖아.

다만, 한 번 죽음을 경험한 상태에서 또다시 시한부라는 얘기를 들어도 그렇게까지 충격적으로 들리진 않는다.

“아픈 걸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예전에도 말했을 텐데.”

아빠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근데 이거 고칠 수가 없대요. 좀 복잡한 저주라서요.”

어쩌면 나는 여기서 죽고 내가 해낸 모든 일들이 지워져 또 같은 삶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네트.”

“네.”

“나는 너 포기 안 한다.”

아빠가 팔을 뻗어 나를 끌어당겼다.

탁자 위로 엉거주춤 올라간 괴상한 꼴이 되었지만, 아빠는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내가 대체 어떻게 찾은 딸인데, 포기하겠나.”

그 목소리에서 온갖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서툴게 팔을 뻗어 아빠의 등을 천천히 토닥거렸다.

그러고 있다 보니 괜히 멋쩍어져 슬쩍 아빠의 품에서 벗어났다.

아빠도 생각해 보니 좀 민망했는지 순순히 나를 놓아주었다.

“아니, 근데 신전에 혈육 검사까지 해놓고 왜 4년 동안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네가 말하길 기다렸다.”

“…네?”

4년이나?

사리가 나오지 않은 게 놀라운 일이다.

“그래도 언젠가 말해 주겠지 싶었는데, 4년 동안 입도 벙긋하지 않더군.”

아빠는 그 일이 꽤 서운했던 듯, 목소리가 살짝 퉁명스러웠다.

“…그래도 조금 짜증이 나긴 한다만.”

“아, 네….”

“그래도 너 역시 너 나름대로 나와 네 엄마를 걱정해서 한 행동이었겠지.”

이미 오래전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또다시 누군가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할 얘기는 이게 다 끝인가?”

아빠가 내 양 뺨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물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아니, 마를 하라는 구에여 마라는 구에여….”

뺨이 뭉개진 만큼 소리도 퍽 뭉개져서 흘러나왔다.

“해봐.”

아빠가 고개를 까딱였다.

사실 이건 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할 수 없었던 말이기도 하고.

“아빠.”

“그래.”

나는 웃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어쩐지 울컥하는 기분에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죽기 싫어요.”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해서 고개를 들며 말했지만, 아마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

아빠의 얼굴이 이렇게 굳은 걸 보아하니.

“살려주세요….”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걸 말하는 순간 평화는 깨질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몇 번이고 몇 십 번이고 말하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으니, 살려달라고.

누구든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다.

“…그래.”

아빠는 아주 긴 침묵 끝에 내게 대답했다. 아주 무겁고도 단단한 대답이었다.

내가 아빠 품에 파고들자 그는 나를 묵묵히 끌어안아 등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아빠.”

“그래.”

“노력해도 안 됐다면….”

결국 내가 살지 못할 확률은 꽤 높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책하지 마세요. 그냥 엄마랑 이노스랑 행복하게 살아요. 난 그거면 돼요.”

최선을 다해 준 것만으로 충분했다.

“웃기는 소리. 너는 살 거다.”

“…….”

“나는 한 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킨다.”

아빠는 그렇게만 말한 채 내 등을 토닥거렸다.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그 단호한 말이 왜 그렇게 의지가 되는지 모를 일이다.

아빠의 품에서 까무룩 기절하듯 잠이 든 것은,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

제국에는 공식적인 정보 길드가 딱 한 곳 있었다.

말이 정보 길드지, 사실은 이런저런 의뢰를 받아서 더러운 일도 서슴없이 하는, 그래…. 이른바 황실의 용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청소부’들.

그렇다고 정보 길드가 황실 소속이냐고 하면 당연히 그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보 길드는 돈을 받고 의뢰를 받아 일을 처리하는 것뿐이다.

다만, 황실에서 주는 의뢰는 절대적이라서 거부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만 빼면.

어쨌든, 황실에서조차 정보 길드에게 뭔가를 ‘명령’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즉, 이놈들은 돈이면 뭐든 다 해준다는 말이다.

나는 정보 길드가 운영하는 술집에 한낮부터 발을 들였다.

“…여기는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오는 곳이 아닌데요.”

…라고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꼬마가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들린 목소리에 나도 걸음을 멈추고 소년을 마주 봤다.

‘많아야 열여섯, 열일곱인가?’

흔히 빵모자라고 부르는 베레모를 꾹 눌러쓰고 허드렛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허름한 소년이 고개를 기울였다.

살짝 눈꼬리가 아래로 처진 채 눈꺼풀이 반쯤 감긴 게 세상만사에 흥미 따윈 없이 졸음이 쏟아지는 모습이었다.

‘이런 애가 정보 길드의 수장이라니 믿기질 않네.’

이런 허드렛일이나 할 법한 아이가 한 번 본 건 절대 잊지 않는 천재라니 말이다.

“의뢰를 하러 왔는데.”

“의뢰?”

“응, 너한테.”

“…저한테요?”

소년이 퍽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더니 아랫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응, 나랑 아동학대범 응징하지 않을래?”

제 상체만 한 오크통을 들고 있던 소년이 그것을 느릿하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는 여기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놈인데요.”

“응, 근데 난 너한테 맡기고 싶어.”

“의뢰는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아, 정정할게. 혹시 인신매매범 응징할 생각은?”

나이대를 보면 알겠지만, 원작에서는 이 정보 길드장도 여자 주인공의 어장에 들어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여자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녀를 도와주는 역할.

“…왜 접니까?”

그리고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범죄 두 개가 바로 아동학대와 인신매매였다.

놀랍게도 샹그릴라 보육원은 이 두 개를 겸하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동족은 알아볼 수 있거든.”

나 같은 인간들은, 더는 부족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갈증이 나는 것처럼 구니까 말이다.

“이거 신기한 여자네.”

“음, 넌 신기한 남자고.”

“내가 누군지 아나 봐?”

“모르면 의뢰를 안 하지 않았을까?”

순식간에 껄렁해진 목소리에 꼬박꼬박 반말로 대답해 주자 소년이 베레모를 가볍게 벗어 던졌다.

‘아깝게 저건 왜 던져?’

꼭 저렇게 극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걸까?

“진짜 웃기네.”

“너도.”

“…시비 걸려고 온 건 아니지?”

“명백히 지금 내가 시비 걸리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내 말에 길드장도 할 말이 없었는지 낮게 혀를 차며 제 머리를 헝클였다.

“말해 두지만, 나한테 하는 의뢰는 비싸.”

“말해 두지만, 넘치는 게 돈이야.”

“…진짜 한 마디도 안 지네.”

그가 조금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가 고개를 까딱이며 몸을 돌렸다.

“하긴, 요즘 몸값이 가장 높은 화제의 인물이시니까.”

“내가?”

“그래, 수도에 그렇게 커다란 관광명소를 만들어 놨잖아. 돈을 갈퀴로 쓸어모으고 있다고 들었는데.”

음, 세간에는 소문이 그렇게 돌고 있는 건가?

하긴….

이 세계에는 아직 ‘백화점’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내 가게는 백화점보단 마트의 개념인가? 그렇다기엔 비싼 것도 있기는 하니까.

다음에는 부티크 거리에 정말 상류층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백화점을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았다.

‘내게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길드장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데 그가 흘긋 나를 보았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

“손님?”

“그래, 귀한 아가씨 말고도 오늘 세 사람이 더 왔거든.”

정보 길드가 아무 의뢰나 받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세 사람이라는 숫자는 꽤 많은 수였다.

“돈 많이 벌고 좋겠네.”

“다 너 관련이었지만.”

“…나?”

“그래.”

3층까지 올라간 길드장이 익숙하게 문지기 둘이 지키고 있는 문 앞에 섰다.

커다란 문의 손잡이에는 까마귀 모양이 각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하하, 혹시 오다가 습격당해서 뒈진 걸까? 난감하네~ 구해 주러 가야 할까? 까망아.”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탄내 나니까 저기로 꺼지지.”

문 안쪽에서부터 꽤 낯익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내가 막 멈칫할 때였다.

문지기들이 묵직한 문을 한 번에 열어젖혔다. 갑작스럽게 통한 공기에 순간 머리카락이 크게 흔들린다.

“오, 드디어… 엥?”

“아네트?”

“…사브나크 아데우스, 닉스 이그나?”

니네가 왜 여기서 나오는데….

차마 짐작지도 못한 두 사람의 등장에 나는 응접실로 발도 들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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