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30)

<63화>

내게 살짝 윙크하는 모습이 아마도 여기서 대놓고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 안쪽에 집어넣고 목걸이를 아빠에게 내밀었다.

“아빠, 이것도 아빠한테 드리는 선물이에요.”

“나에게?”

“네,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요. 아빠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 다치지 않는다.”

“알아요, 그래도… 딸로선 아빠가 걱정된단 말이에요.”

내가 시무룩하게 읊조리자 그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쯧, 그렇게 걱정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가 퍽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내가 들고 있는 목걸이를 냉큼 가져가 착용했다.

“와, 그 목걸이 아빠가 하니까 엄청 멋져요.”

“당연한 소리를.”

“…….”

“…….”

그의 오만하고도 담담한 말에 나와 아티팩트 상점의 주인이 멈칫했다.

“그럼 첫 납품은 일전에 마탑주님께 말씀드렸던 대로 다음 달 중으로 하는 걸로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역시나 과한 인사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왔다.

“다음은….”

이건 아빠가 삐지기 전에 미리 보여줘야지.

“이번에 가는 곳은 선물을 사 드리려는 건 아니고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보여주고 싶은 거?”

“네.”

귀족들의 부티크 거리를 지나서 일반 거리로 들어서자 시장이 한층 활기를 띠었다.

부티크 거리와 일반 시장의 정확히 중앙에 커다란 가게 앞에 섰다.

내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빠의 눈이 커다래졌다.

“네 가게였군.”

“네.”

“너무 심심하지 않나?”

아빠가 팔아준 ‘합성 마석’으로 번 돈으로 가게를 인수해 적당히 보수공사만 한 것뿐이라서 화려한 맛은 없었다.

그래도 총 4층까지 이뤄진 커다란 가게였다.

1층은 접하기 쉬운 생활용품과 잡화, 그리고 상비약과 포션 같은 것들을 취급해서 판매할 예정이다.

또, 2층에는 합성 마석을 비롯해서 흡혈석과 공명석, 제작에 필요한 재료나 소재가 되는 것들을 판매할 예정이었고.

물론, 프릭이 만들어내는 것 외에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희귀 재료 수급처에서도 물건을 공급할 예정이다.

3층은 사실 상인이나 상단, 아니면 돈이 많은 모험가나 귀족을 위한 구역으로 꾸몄다.

판매되는 제품 중 재료나 제품의 대량 구매 상담이나 개인 무기의 제작 의뢰 상담 등, 큰손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3층은 개인이나 가정이 아니라 상단이나 가게 등에 필요한 물건 등을 판매할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얼음과 바람의 마석을 녹여 만든 합성 마석으로 에어컨 같은 것을 만들어서 말이다.

‘더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선 문명의 이기가 필요하니까….’

전생의 기억도 좋긴 좋단 말이지. 이런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손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층은 성인만 출입할 수 있는 구역으로 만들어서 무기를 비롯해 방어구, 그리고 포션 등 각종 위험 용품을 진열할 예정이었다.

“괜찮아요, 수도에서 가장 북적이는 가게가 될 테니까요.”

일단 사람만 뽑히면 말이다.

총책임자 겸 관리자를 뽑아야 직원도 뽑고 할 텐데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꽤 정리되어 있구나. 요즘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나 했더니….”

“어…, 정말로 모르셨어요?”

사람을 붙여놔서 이미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네게 호위를 붙이기는 했지만, 위험하거나 특이사항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지는 않아.”

“그랬구나….”

그럼 보고가 들어간 건 결국 내가 위험했을 때뿐이라는 거구나.

“어쨌든 이 가게도 아빠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아 보이곤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혼자서 준비한 것치곤 훌륭하군.”

“그렇죠! 난 역시 천재라니까.”

키득키득 웃으며 나는 고개를 젖히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기저기 새 상품을 진열해 두었기 때문인지 특유의 냄새가 가게에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내 도움을 받았으면 더 훌륭한 가게가 됐을지도 모르겠군.”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훌륭하진 않아도.”

“…그래도 역시 내 도움을 받는 편이….”

이 인간은 왜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 거야?

내가 의아하게 올려다보자 다소 구차하게 입술을 달싹거렸던 아빠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식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도….”

“네?”

“…부모로선 조금 서운한 법이다.”

“아….”

생각지도 못한, 아빠가 퍽 망설인 끝에 내뱉은 말에 말문이 절로 막혀버렸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나는 천천히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기에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너는, 돈을 벌고 싶은 건가?”

문득 들려온 말에 나는 변명이라도 하려 달싹이던 말을 삼킨 채 다른 대답을 내뱉어야 했다.

“…아, 음. 뭐, 그렇죠.”

“돈이 부족하다면 내가 줄 수 있다. 아니면, 아직도 내가 불편한가?”

와, 이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오네. 너무 정직한 직구라 괜스레 목구멍이 욱신거렸다.

“그건 절대 아니에요.”

“그럼?”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네 앞으로 용돈이 가도록 조치하마. 이 일도 애를 먹고 있다면 사람을 뽑아 관리해 주마.”

아빠의 말에 나는 그저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서 다행이야.’

다정하고 너무 다정해서 도리어 마음이 아프지만.

“사람은 뽑을 거예요. 가게 관리를 제가 할 자신은 없거든요.”

“그럼 괜찮은 사람을 알아보도록 하….”

“근데 그건 제가 할 일이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아빠가 해주지 않아도 돼요.”

나는 당장이라도 일을 진행해 버릴 것 같은 아빠의 말을 끊어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

“아빠 돈을 쓰고 싶지 않아요.”

“그건 내가 네게 5년짜리이기 때문인가?”

낮게 가라앉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잠시 굳었다.

“아빠?”

“그래서 의지를 못 하는 건지 묻고 싶은데.”

“에이,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따지면 저도 5년짜리 딸인데요.”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키득키득 웃었지만, 아빠의 얼굴은 도통 펴질 기미가 없었다.

“그런 무서운 얼굴 하지 마세요. 그냥 이번 일에는 아빠 돈을 쓸 수 없는 것뿐이에요.”

“왜?”

“나쁜 일을 할 거라서요.”

내 말이 퍽 의외였는지 아빠의 눈동자가 살짝 크기를 키웠다.

사실 아빠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기는 했다. 보육원에 복수한다느니, 미친 과학자에게 복수한다느니.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싫어하는 사람들?”

“네,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세상에서 사라져줬으면 해서요. 편하게 보내주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다.

먼저 나는 샹그릴라 보육원의 아이들을 전부 사들여 새 보육원에 보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샹그릴라 보육원의 원장과 선생들을 모두 미친 과학자에게 헐값에 팔 것이고.

미친 과학자는 인체실험을 하는 데 아주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니 어련히 잘 처리할 것이다.

그다음은 미친 과학자를 빚더미에 오르게 한 뒤부터 시작해야지.

“근데 그걸 아빠 돈으로 하고 싶진 않아요. 못된 일이니까요.”

“해도 된다.”

“네?”

“그런 거라면 오히려 해주고 싶어질 정도군. 그런 일을 네가 굳이 할 필요가 뭐가 있지?”

“네…?”

“마음에 안 드는 걸 짓밟아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게 왜 당연한데요.

하여튼 이 인간의 귀족적인 마인드는 영 변하지를 않는다.

어쨌든 이런 치부를 알리고 싶지도 않고 정든 사람이 해주길 원하지도 않는다.

“네가 화를 낸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잘못한 게 있다는 거겠지.”

“…이 방임주의.”

내 말을 들은 아빠가 인상을 찌푸렸다.

“넌 내가 언제 방임을….”

그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그리고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여기서 말하는 편이 낫겠지.”

“뭘요?”

“너와 내가 맺었던 5년짜리 계약.”

“네.”

“해지하자꾸나.”

아빠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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