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130)

<62화>

아빠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서 고개는 숙인 채였지만, 그래도 아빠의 시선이 내게 닿아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정수리가 지금 무척이나 뜨거운 걸 보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본 것도 처음이지만, 선물을 주는 것도 사실 처음이다.

“책에서 봤는데요, 어느 나라에 제일 처음 번 돈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하는 풍습이 있댔어요.”

정확히는 빨간 내복이었던 것도 같고.

“아빠, 감사해요. 아빠가 절 데려와 준 덕분에 저 행복했어요.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게 됐고… 그리고….”

사무치도록 괴로웠던 삶에 복수할 기회도 얻었다.

처음 계획에는 없었지만, 진짜 가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됐다.

덕분에 배부르고 풍족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겐 감사하고 있었다.

“뭘 드릴까 했는데, 그게 좋을 것 같았어요. 물론 아빠 미적 감각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디자인은 아주 심플했다.

괜한 장식을 여러 개 넣었다가 조잡해지면 더 답이 없을 것 같았던 탓이다.

세밀한 세공이 조금 들어가 있을 뿐, 조잡하거나 화려하진 않았다.

“아, 그리고 이건 엄마 거고 이건 이노…, 아니, 오라버니 거예요.”

나는 브로치를 하나 가리키고 조금 작은 커프스 링크도 가리켰다.

상자를 내민 손이 허공에서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대체 왜 받지 않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슬쩍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아빠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전에 없을 정도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그, 아빠…?”

싫은가 싶어서 그를 부르자 눈도 깜빡이지 않았던 아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내게 주는 선물인 거냐?”

“네, 아빠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내가 제일 처음이라고?”

“네.”

맨 처음 만난 사람이 아빠여서인지 솔직히 가족 중에선 제일 정이 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솔직하나 솔직하지 못하나, 결국 날 가장 신경 써주고 자주 만나러 온 사람은 아빠였으니까.

“아빠.”

“…그래.”

“제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고통은 존재하는지라 슬슬 팔 아프거든요….”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표정을 무너뜨리며 그를 닦달했다.

그제야 아빠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게 뻗어 오더니 상자를 가져갔다.

“어때요?”

“…웬일로 별 기특한 생각을 다 했구나. 그래, 마음에 든다.”

그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고맙구나.”

게다가 덧붙여진 말은 나를 경악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뭐, 괜찮군.’이라든가, ‘마음에 차진 않지만, 네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주마.’ 정도의 대답을 생각했던지라 나는 그 믿기지 않는 대답에 떨리는 시선으로 아빠를 올려봤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나는 있는 힘껏 뺨을 꼬집었다.

“미쳤나?”

아빠가 손을 뻗어 내게 화를 낼 때까지.

‘꿈은 아니네.’

나는 급히 엉거주춤 상체를 숙인 아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도 없는데.’

내 이마에도 다른 손을 올려 온도를 재봤지만, 나와 체온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빠, 저한테 지금 고맙다고 했어요?”

그래, 이럴 땐 솔직하게 물어보자.

자존심 때문이라도 아니라고 하겠지.

“너는 내가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으로 보이느냐?”

아무래도 평소 행실에 따르면.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가씨, 이대로 포장을 진행하면 될까요?”

“네, 부탁드려요.”

“천만에요.”

아빠가 슬쩍 내가 준 상자를 장식장 위에 다시 올렸다.

“내 것도 포장해서 받는 걸로 하지. 가장 화려하게.”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아빠지만 정말 솔직하지 못하고 까다로운 인간이라니까.

“그건 오브리 공작저로 배달 부탁해요.”

“네, 포장을 해서 공작저에 맡겨두고 오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나는 아빠의 소맷자락을 슬쩍 잡고 그를 잡아끌었다.

“쯧, 소심하기는.”

그가 작게 중얼거리더니 내가 붙잡은 소맷자락을 다소 매정하게 내쳤다.

그러고는 내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그 브로치나 커프스 링크 중에 네 건 없어 보이던데.”

“네, 없어요.”

“왜지?”

“에이, 전 5년…, 아니다. 이제 한 4년쯤 뒤에 나갈 건데 아빠랑 엄마랑 세트로 맞춰서 뭐 해요.”

나는 찌르르하게 심장이 옥죄는 느낌을 애써 모른 척하며 말했다.

“이건 다른 대단한 의미가 있다기보단 절 보육원에서 꺼내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그냥 그런 게 고마워서 드리는 거예요.”

“…….”

“그런 거 있잖아요. 은혜 갚기? 아빠 덕분에 부자가 됐는걸요. 그러니까요.”

그냥 그런 걸로 해두고 싶었다.

다시는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하면 유치하잖아.

“아빠, 나는요. 내가 사라져도 아빠가 진짜 딸은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그가 최근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저주에 실패한 셰키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뭐라고?”

“이런 말 하면 아빠가 화내실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한 번쯤은 말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때 자르단 마을에서 봤던 여자애요.”

“…….”

“그 애는 아빠 진짜 딸이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면 사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나는 일단 입을 열어보았다.

“질투심이나 이런 게 아니라…! 만약 진짜 딸이면 제가 물러날 생각도 있고 그랬는데요….”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라면, 나는 그게 당신의 진짜 딸이 되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셰키나. 아니… 그 ‘공허’는 당신을 다치게 하고 죽게 할 테지.

‘이유를 잘 모르겠어.’

나와 거래했는데 왜 부득불 내 부모를 죽이는 거지?

대체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무슨 거래를 한지도 모르겠고.

“근데, 아닌 것 같아서요.”

“…….”

내 말에 그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물론 제가 주제넘게 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따지고 보면 참 상황도 이상했다.

가짜 딸이 명백한 내가 녹의 힘까지 쓰는 그 애를 가짜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말도 점점 꼬이고 말이다.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냥 요즘 아빠가 고민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그의 눈에 내가 얼마나 치졸하게 보일까 싶었다.

“아, 이번엔 여기예요.”

“…아티팩트 상점?”

“네, 여기에도 제작을 맡겨둔 게 있거든요.”

혹시나 그가 폭주의 위험에 처했을 때 막을 수 있는 물건의 제작을 의뢰했다.

‘흡혈석’이라는 건데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었다.

흡혈석은 거북이 형태의 마물, ‘터틀백’의 등껍질에서 얻을 수 있는 돌이었다.

오래된 거북이의 등에 이끼가 자라고 나무가 자라듯이 이 ‘터틀택’이라는 마물의 등에서는 석순처럼 돌이 자라나는데, 그걸 가공하면 흡혈석이 된다.

이것도 프릭의 작품이었다.

아직 상단이 공식 출범을 하기 전인 터라 개발된 물건들은 전부 출시 직전이지만, 가게 준비는 거의 되었다.

‘가게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회계나 인사 능력도 있고 가게 전반의 관리도 해줄 수 있으면서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가 영 쉽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맡겨둔 거 찾으러 왔는데요.”

“아, 어서 오십시오!”

허름한 마법사 모자를 쓰고 있던 주인이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후다닥 달려 나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수염까지 길게 기르고 백발이 성성한… 청년에게 과한 인사를 받으려니 부담스러웠다.

‘마법사라는 걸 보이기 위한 콘셉트라곤 들었는데….’

대체 왜 그 생각의 결말이 백발이 성성한 청년이 된 건진 모르겠다.

이미 노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가 생각한 마법사 이미지는 깨진 지 오래일 텐데….

“그러니까 이건 안 해도 된다니까요….”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제가 아가씨 덕분에 마탑에서 표창장까지 받았습니다!”

그가 눈을 반짝이며 투명한 장식장 가장 상단에 전시해 놓은 상장을 가져와 내게 펼쳐 보였다.

“아…, 축하드려요.”

“네, 저희 마탑과 가장 먼저 그런 놀라운 발명품의 납품 계약을 맺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납품 계약…?”

아빠가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말 안 했던가?’

하긴, 요 몇 달간 내가 정신없이 좀 바쁘게 돌아다니긴 했지.

내겐 시간이 없으니까 필사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빠를 보며 배시시 웃어주자 그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 한쪽을 비틀었다.

“말씀드린 건요?”

“저희도 샘플을 넉넉히 받아서 이리저리 가공해 보았습니다!”

“다행이에요.”

“이건 보내주신 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떤 강력한 마력으로 공격받아도 바로 흡수가 가능할 겁니다.”

나는 오묘한 회색빛을 띠는 돌이 달린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늘 착용하고 다닐 거니까 최대한 세련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취향에 완전히 딱 맞았다.

본래 투박한 돌을 보석처럼 가공해 목걸이에 달아놓은 것이, 뛰어난 세공사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마탑 내 최고의 마석 세공사에게 부탁했습니다!”

보석에도 꽤 정교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렇게 살짝 흠집을 내두면 마력 흡수가 더 빨라지는 거 같더라고요.”

아티팩트 상점의 주인이 말했다.

“탑주님께서 특별히 마법을 걸어주셔서 강한 마력 반응이 느껴지면 방어막도 펼쳐지게 되어 있어요.”

“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탑주님의 편지입니다.”

그가 생글 웃으며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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