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30)

<55화>

“윽….”

끔찍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악취였다.

‘이건….’

그리고 아주 익숙한 악취이기도 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불쾌한 악취다.

“여기 어디에 사체라도 있나 보군요.”

아데우스 공작이 제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어둠 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던 시먼이 주머니에 있던 부싯돌을 꺼내 탁탁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벽에 달린 횃대에 말려 있던 홰에서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마치 지하도나 하수도가 연상되는 바닥이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 일부러 뚫어놓은 것이 분명한, 꽤 잘 닦인 길이었다.

“여긴 지하수가 시작되는 곳이에요. 이 물이 우물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썩은 내가 풀풀 나는 곳에서 솟은 물을 먹으면 저주가 아니라도 병이 생기겠다.

“지하 방공호 겸 대피로군.”

샤콜 오브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게 어디로 이어져 있지?”

“집이요.”

“설마….”

“당신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요.”

시먼이 덤덤하게 말하며 모퉁이를 돌았다.

“여긴 원래 비밀기지였어요. 미사와 저만의 비밀기지.”

그러면서 입술을 달싹이다, 그는 끝내 뒷말을 느리게 삼키는 듯 보였다.

“미사가 또래 아이보다 말이나 행동이 좀 어려 보이죠?”

“아….”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조금 말도 더듬는 듯했고 겁에 질려 움츠러들었다곤 하지만 열 살 정도의 아이라고 하기에는 어휘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원래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 애는 똑똑했어요. 다음, 점술사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다음 점술사?”

“점성술의 힘은 여자아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계승되거든요.”

시먼이 복잡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망설임 없이 나아가면서도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을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그 애는 앞으로도 행복할 예정이었는데….”

시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윽고 시먼의 걸음이 천천히 멈췄다.

“여깁니다. 여기가 이 지하수의 시작점입니다.”

그곳에는 바싹 마른 미라가 하나 있었다.

새까맣게 타들어 간 것처럼 바싹 마른 터라 순간 흠칫했다.

“강력한 저주가 걸려 있군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데우스 공작이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주술을 공부하는 흑마법사답게 파악이 빨랐다.

그 말에 샤콜 오브리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아데우스 공작을 데리고 오자고 한 게 나였기 때문이겠지.

물론 나는 모른 척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녹, 당신이 해결할 수 있습니까?”

“내가 해결할 수 있겠나? 나는 형님처럼 정화에 관련해선 만능이 아니다.”

“그렇군요.”

“그래. 정화는 성수를 머금고 자란 식물이 있어야 하지. 물론, 성수에 씨앗을 담아 가지고 오긴 했지만….”

그건 기껏해야 더러워진 물이나 공기를, 병균을 정화하는 정도다.

저주를 해결할 정도였다면 청의 지배자는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 형님께서 오는 게 나았겠군.”

샤콜 오브리가 짧게 혀를 찼다.

“으음….”

나는 미라가 되어 지하수의 시작점에 똬리를 튼 채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의 몸에선 찐득한 검은 액체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물에 섞여 들어가자 무색투명하게 바뀌었다. 물과 다를 바가 없이.

이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걸 누가 이랬는지 알고 있나?”

“네, 누군가 저에게 와서… 복수를 도와준다고 했거든요.”

시먼의 말을 들으며 나는 조금 더 미라에 가까이 다가갔다.

바닥 아래쪽엔 무언가 그려져 있었다. 이 악취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오호, 이건 재밌는 고대의 저주네.”

그 때였다.

머리 위에서 막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내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머리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새까만 무언가가 내 앞에 두둥실 뜬 채 손을 흔들었다.

“안녕, 두 번째. 덕분에 밖으로 무사히 나와서 육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

“…그, 기록실에 있던 그림자?”

“정답!”

“그게 육체라고?”

“음, 제법 귀여운 마스코트 느낌으로 만들어봤는데 별로인가?”

귀여운 마스코트?

혹시 얘는 귀엽다와 마스코트의 뜻을 잘 모르는 걸까?

아니, 달라진 게 없잖아.

새까만 모습은 그대로다. 거기에서 그냥 크기만 작아진 것뿐이었다.

아, 무슨 이상한 모자를 쓴 것 같기는 했다. 그 왜 마술사들이 쓰는 그런 둥글고 깊은 모자 있지 않은가.

거기에 손에는 마술사들이 자주 쓰는 지팡이, 케인도 들려져 있었다.

아니, 작아져서 그런가 징그럽지 않기는 한데….

‘이걸 귀엽다고 말할 수 있나?’

아니, 애초에 얘 여기에 이렇게 나와 있어도 돼?

“야, 안 들키는 게 목표라며!”

“아, 안 들켜, 안 들켜~ 내가 또 잘 막아놨다니까? 웬만한 성력을 가진 놈이 아니면 안 들키지.”

“성력…?”

“엉, 내가 또 신이랑은 사이가 안 좋거든.”

얘 대체 뭐야.

무슨 존재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어졌다.

그래도 안 들킨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하긴, 아까부터 이렇게 떠들고 있는데 아무도 이쪽을 보진 않는다.

샤콜 오브리와 아데우스 공작은 퍽 심각한 얼굴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시먼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련한 표정으로 미라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이게 고대의 저주라고? 그럼 이게 뭔지 알고 있는 거야?”

“당연히 알지, 나를 누구로 보는 거야?”

‘굉장히 귀찮고 짜증 나는 그림자.’

“실례인 생각은 말지.”

‘헉, 마음도 읽는 건가?’

“마음을 읽지는 않는데 너는…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군.”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

늘 감정을 잘 숨긴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만약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누군가 웃으라고 한다면 누구보다도 생글생글 잘 웃을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이런 낡은 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텐데 이게 세상 밖으로 나오다니….”

퍽 신기한 일이라고 한 다음, 놈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마술사 모자를 쓴 채 마술사의 지팡이를 들고 허공을 날고 있으니 정말 마술사 같기도 하다.

“이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어?”

“해결?”

그림자가 허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뭐, 이 매개를 태워버리면 되지 않아?”

“…농담하지 말고.”

“농담이 아니라, 그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지.”

이걸 그냥 태운다고?

어쩐지 좀 찝찝한데.

태워서 저주가 사라진다면 그게 제일 편하겠지만….

“태우면 어떻게 되는데?”

“저주가 가루가 돼서 세상에 퍼지지?”

무슨 포자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기각.”

“그게 싫으면, 네가 하나하나 해체하든가.”

“뭐…?”

뭘 해체해?

저 미라를? 내 손으로?

그건 정말 끔찍할 정도로 싫은 일이다.

“보통 하위 등급의 저주나 주술은 상위 등급의 저주나 주술에 파훼되거든.”

약한 놈이 센 놈에게 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림자가 말했다.

“그리고 다행히 네 팔은 주술 중에서도 최상위급 주술이지.”

“…이게?”

“그래. 그러니까 즉, 네가 그럴 마음이 된다면 부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는 얘기야.”

그 말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주술을 푸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거구나.’

약간 우울해졌다.

“그나저나 이 오래전에 묻힌 낡은 저주를 끄집어내다니….”

저주를 바라보는 그림자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어느 세상이든 늘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채 피를 보고 싶어 안달 난 미친놈은 존재하는 모양이야.”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방법은?”

“뭐,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신관 놈들이나 그, 파란색 놈 데리고 와서 정화하면 되겠지.”

그림자가 씩 웃었다.

그러자 그림자의 새하얀 이가 조금 징그럽게 드러났다. 뭔가 즐거운 상황을 맞이한 사람처럼.

“뭐, 이걸 네가 발견해 버린 이상 이제 저주는 급격히 진행되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저주의 기본을 모르나?”

그림자가 뭐 이런 한심한 놈이 있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살짝 기분 상했다.

“그게 뭔데….”

“저주의 기본은 하나야.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쪽박. 실패하면 이 저주를 건 쪽이 대가를 치러야 해.”

“아….”

“이 위험하고 낡은 저주가 이 시대로 넘어오며 없어진 이유는 그런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야.”

그가 길쭉한 손가락을 하나 쓱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림자의 말에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지금까지야 시전자가 천천히 저주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네가 매개체인 ‘이것을’ 발견한 순간부턴 이제….”

그림자가 입을 쩍 벌렸다.

새빨간 입 안이 훤히 드러났다.

“시간 싸움이지.”

“시간 싸움….”

“그래, 네가 이걸 해주하는 순간 놈은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놈이 유쾌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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