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뭐라고?
나는 절로 벌어지는 입술을 애써 힘을 주어 닫았다.
진짜 딸이 살아 있다는 거야?
재빨리 반문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치겠네.’
해야 할 일이 왜 이렇게 늘어나는 기분이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차례 문지른 나는 샤콜 오브리에게 훌쩍 다가갔다.
‘내숭이라면 내가 한 수 위야.’
나는 방긋 웃으며 샤콜 오브리의 손을 붙잡았다.
“아빠, 일 다 끝났어요?”
“…시찰은 대충 끝났다.”
“그럼 저랑 가요! 제가 사실 누굴 찾으러 마을 밖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눈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역시 혼자선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시무룩한 내 말을 들은 샤콜 오브리의 눈썹이 한 차례 크게 꿈틀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샤콜 오브리의 손가락을 슬쩍 붙잡았다.
그러자 흠칫 몸을 떤 샤콜 오브리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쯧, 내 딸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군.”
“하지만, 아빠가 있으면 든든한걸요.”
“알고 있다.”
퍽이나 알겠다.
…라고 되받아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애써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허리를 숙여 나를 품에 안았다.
“어디에 가려는진 모르겠지만, 이만 가자.”
“삼촌도 같이 가요.”
내가 아데우스 공작에게도 손을 내밀자 그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느리게 내 손을 붙잡….
짜악-!
…으려고 했는데, 샤콜 오브리의 손길에 정말 매서울 정도로 내팽개쳐졌다.
“저런 더러운 거와 닿으면 안 된다.”
“질투하십니까? 녹.”
아데우스 공작이 발갛게 달아오른 제 손등을 반대쪽 손바닥으로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닳는 것도 아니고 참 너무하는군요.”
“닳는다.”
“…….”
“…….”
그의 팔불출 같은 발언에 나도 말을 잃고 천하의 아데우스 공작도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입을 다물며 어색하게 웃자 아데우스 공작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만 가지.”
샤콜 오브리가 흘긋 한쪽에 오도카니 서 있는 소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너도 이만 돌아가라.”
“…네, 아저씨.”
샤콜 오브리의 말에 셰키나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샤콜 오브리의 품에 안겨 가는데 어깨 너머로 싸늘하게 굳은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하, 나한텐 표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건가?’
나는 부러 환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처럼 손을 흔들어주었다.
‘표정 한번 살벌하네.’
나는 보란 듯이 샤콜 오브리의 어깨에 뺨을 기대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하긴, 내가 아니었으면 저 애는 시간이 흘러 오브리 가문에 자연스럽게 입양됐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보다 내가 한발 더 빠르게 오브리 공작가에 입양됐다.
그 탓에 셰키나는 소설 속에 쓰여 있던 예정보다 빠르게 등장한 거다.
다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눈 색이랑 머리 색은 그렇다 치자고. 특이하다곤 해도 뒤져보면 이 세상에 같은 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순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가진 힘이다.
‘녹의 힘.’
그것은 오로지 오브리 공작가의 직계에게만 전해지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어떻게 저 애가 가졌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다.
‘만약 저 애가 가짜라면 진짜는 또 어딨고.’
으악, 머리 아파.
일이 여러 개가 동시에 진행되니 머리가 아파 미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지.’
빨리빨리 처리해 버려야겠다.
내게는 이제 5년도 채 남지 않았다. 아니, 5년은 무슨.
기록서를 읽은 대가로 벌써 팔 한쪽이 다 먹히지 않았는가.
어쩌면 생각보다 더 적은 시간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시간 동안 진행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거지만.
“아빠.”
“왜?”
“저 애 데리고 올 건가요?”
데리고 온다고 한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내가 왜.”
“하지만, 저 애….”
샤콜 오브리는 딸로 인식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게, 빼도 박도 못할 정도의 증거들이 보란 듯이 널려 있었을 테니까.
머리 좋은 그가 모를 리가 없다.
“내 딸은 너다.”
“…….”
“네가 알아둘 사실은 그것뿐이다.”
샤콜 오브리는 묵묵히 걸어가며 그렇게 말했다.
‘이상해.’
친딸로 인식했는데, 가짜를 위해서 친딸을 버리겠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그냥 두려고요?”
나로선 상관없지만, 그로선 괜찮을지 모르겠다.
샤콜 오브리가 내 머리카락을 몇 차례 슥슥 쓰다듬었다.
“글쎄.”
그렇게 말하는 샤콜 오브리의 표정이 퍽 어두워서 나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게, 저 애에겐 정이 가지 않는군.”
작게 읊조린 그가 느리게 나를 땅에 내려놓았다. 두 발로 선 나는 한참 만에 뺨을 긁적였다.
‘가짜라는 게 느껴지는 건가?’
으음, 모르겠다.
나로선 잘된 일이지.
“그래서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뭐지?”
“아, 누굴 좀 찾아야 해서요.”
“누구?”
“우리 숙소의 원래 주인들이요. 어린 남매인데 여자아이 쪽은 숙소에 있고, 남자아이를 찾으려고요.”
내가 숲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두 공작이 내 뒤를 쫓아왔다.
“그 남매, 병에 걸리지 않았어요.”
“…뭐라고?”
“그 남매만 유일하게 병에 걸리지 않은 것 같아요.”
내 말에 샤콜 오브리가 내 곁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 반대쪽엔 아데우스 공작이 자리 잡았다.
“알아보니까 그 남매는 이 마을에서 배척받고 있더라고요.”
“배척받았다고….”
“네. 그리고 이 병은 마을 밖으론 빠져나가지 않았잖아요.”
걸린 건 온통 마을 사람뿐이다.
시골 마을이라고 한들 사람이 아예 오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상단이 달에 몇 번씩 마을을 지나쳐 가곤 했다.
하지만, 아마 어떤 상단에서도 이 병이 발병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겠지.
“제 생각은 이래요.”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나는 바닥에 난 작은 발자국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이 병은 이 마을에서, 이 마을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을 사람들이 사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닐까요?”
“…확실히.”
작은 목소리로 동의한 것은 아데우스 공작이었다.
“그렇다면 배척받은 그 남매가 병에 걸리지 않은 이유도 그거겠군.”
“네, 그 아이들은 그 ‘뭔가’를 이용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마, 그 남매는 처음부터 뭐가 문제인지 알았을지도 모른다.
순진무구했던 어린 여자아이는 몰라도 생각이 있는 오라비 쪽이라면 더욱.
“이쪽이다.”
샤콜 오브리도 발자국을 발견했는지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네 말은 그 애들이라면 이 사태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거라는 뜻이구나.”
“네.”
“…그래, 그렇군.”
샤콜 오브리는 신기했다.
땅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흔적이 사라졌는데도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망설임 없는 발걸음이었다.
“숲은 녹의 공간입니다. 이곳에 오브리 공작의 발길이 닿으면 그가 모르는 건 없다고 봐야 하겠죠.”
아데우스 공작이 내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저번에는 꽤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더니 이번에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혹시 내 가문으로 올 마음은 없습니까?”
“…네?”
아데우스 공작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아데우스 가문으로 오라고?
내가 왜?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도 있을 겁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못 도와주는 일이니까.
기록서한테 확인 사살도 받았으니 말이다.
“너 내 딸에게 이상한 바람 좀 그만 불어넣으라고 했을 텐데.”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샤콜 오브리가 아데우스 공작에게 말했다.
“그리고 네가 찾는 애가 저 애가 맞나?”
샤콜 오브리가 느리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눈을 돌리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바짝 긴장한 채 굳어 있는 소년이 보였다.
“너희 뭐야?”
이를 드러낸 소년은 한 손엔 피가 뚝뚝 흐르는 도축용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엔 허름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뺨에 칼에 베인 듯한 큰 상처가 있는 소년이 이를 드러냈다.
“우린 널 찾으러 왔어.”
“망할 귀족 놈들이 나를 왜?”
입이 꽤 거칠고 험했다.
“네 동생을 우리가 데리고 있어서 말이야.”
“뭐…?”
“그러니까 우리랑 같이….”
“죽여버리겠어….”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 소년이 도축용 칼을 든 채 그대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눈을 한 번 깜빡한 사이 순식간에 다가온 소년의 두꺼운 도축용 칼이 내 머리 위에서 반짝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