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30)

<48화>

자르단 마을에 발병한 역병은 정화 능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역병이다.

샤콜 오브리는 수습에 실패할 것이다. 그 후발주자로 간 아르고 공작 역시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역병을 해결할 방법은 자르단 마을을 봉쇄한 뒤, 자르단 마을에 생존자가 거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어떤 의문의 인물이 보낸 투서로 인해 밝혀졌다.

정화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건 역병이 아니라 저주였기 때문이다. 주술이 복합적으로 섞인 저주였다.

신문에 대대적으로 대서특필됐었다. 황실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기도 했었고.

아르고 공작의 정화 능력은 물론 주술이나 저주도 정화할 수 있긴 하지만, 그건 근원을 찾았을 때다.

이미 퍼진 저주를 정화할 순 없었다.

저주의 근원은 아주 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자르단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우물 깊은 곳에서.

감염원도 간단했다.

저주를 품고 있던 물을 모두가 나눠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르단 마을이 1년쯤 뒤에 다시 열렸을 때 온전히 살아남은 사람이 있긴 했다.

자르단 마을에서 배척받아 우물을 이용할 수 없었던, 어린 남매였다.

‘사실 이 역병은 그 뒤에 일어날 사건을 생각하면 큰일은 아니지.’

몇 년 뒤쯤엔 제국 전체에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네가, 역병의 치료법을 안다고?”

샤콜 오브리가 미간을 좁힌 채 반문했다. 나는 바짝 긴장해서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가 어떻게 그걸 알지?”

살짝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게….”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또 대답할 길은 없다.

“애초에 어떤 역병인지에 대해선 네게 설명한 바가 없다.”

그거야 그렇겠지.

나도 설명을 듣지 못했으니까.

“친구가 알려줬어요.”

그래, 기록서도 친구라면 친구니까.

따지자면 거짓말은 아니다. 애초에 친구라고 인정한 적도 있지 않은가.

“네게 친구가 있었나?”

그가 정말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와, 너무해. 아버지도 친구 없잖아요.”

“난 내가 사귀지 않는 거다.”

그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그쪽은 안 사귀는 거고 나는 못 사귀는 거고.

“그리고 전 역병 같은 거 안 걸려요.”

“그래, 나도 그맘땐 내가 병에 걸리지 않는 줄 알았지.”

“아하, 그럼 지금은 병에 걸려요?”

“아니? 난 병 따위에 걸리지 않는다.”

근데 뭘 이제는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말하고 있냐.

“…데려가 주세요.”

“너는 네가 공녀라는 자각은 있는 건가?”

“다 이유가 있어요.”

“…….”

샤콜 오브리는 내가 쉽게 고집을 꺾지 않자 내심 당황한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아버지, 제발요.”

내가 두 손 모아 부탁하자 그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너는 그 나쁜 버릇부터 어떻게 해야겠구나.”

“나쁜 버릇이요?”

뭐가 나쁜 버릇이지?

“그렇게 두 손을 꼭 모아 잡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다가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널 귀여워해서 모든 부탁을 다 허락해 줄 것처럼 생각하는 그 나쁜 버릇 말이다! 하는 수 없지, 허락하마!”

‘…뭐야, 이 사람. 이상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마도 당신밖에 없을 거라고 어떻게 해야 설명할 수 있는 걸까?

‘그래도….’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푸흡….”

이런 거, 싫지는 않네.

“아버지.”

“왜 또 아버지야?”

…따지는 것도 참 많다.

“아빠.”

“왜?”

“그냥, 오래 사시라고요. 엄마랑 이노스랑 같이요.”

이제는 그냥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주는 당신들이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당신들이 정해진 소설 속 이야기처럼 불행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갑자기 뭐지?”

“아무것도 아닌데요?”

나는 어린애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픽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더니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슥슥 문질렀다.

“아네트.”

“네?”

“너, 만약에 혹시….”

샤콜 오브리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혹시나 이상한 걸 가져갈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였다. 자르단 마을에 따라가는 건 허락하마.”

“정말요? 감사해요!”

“단, 무조건 내 말을 잘 따르기로 약속한다면.”

“넵!”

내가 힘껏 대답하며 경례 자세를 취해 보이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영 미덥지 않군.”

“에이, 믿으세요!”

“…알겠다. 어차피 네가 찾아달라던 그 여자도 자르단 마을 근처에 있었으니까.”

“…어, 정말요?”

“그래, 자르단 마을의 바로 옆 마을이다.”

그나마 동선이 겹쳐서 다행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은 탓인지 정신도 없다.

욱신-!

순간, 왼팔에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위로 들어 올렸던 손에 힘을 주었다.

‘슬슬, 시작될 때구나.’

내가 이 문양을 끔찍하게 여겼던 이유는 하루가 다르게 내 몸에 점점 퍼진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 통증 때문이기도 했다.

검사를 해보면 이상은 없는데, 끔찍한 격통이 온몸을 휘감곤 했다.

그래, 지금처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겉보기에도 멀쩡하지만, 살점이 터져 나가는 듯 아팠다.

환상통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아픔은 언젠가 내게서 모든 감각까지 앗아 갔다.

이 고대어가 온몸에 번져서 쇠약해졌던 그때, 나는 미각도 촉각도 후각도 시각도 청각도 거의 희미해졌었다.

“아네트?”

“아…, 네!”

흠칫 놀라 고개를 번쩍 들며 웃자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그가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며 나는 냉큼 입을 열었다.

“아, 그… 혹시 갈 때 아데우스 공작님도 데리고 갈 수 있나요?”

“아데우스? 그놈은 왜?”

“역병을 잡으려면 그분도 필요하거든요.”

“그놈이 필요하다고?”

샤콜 오브리가 정말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에….”

“…알았다.”

그는 퍽 짜증 난다는 얼굴을 하고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였다.

“왜 그런 얼굴로 보지?”

“아, 조금 의외라서요.”

“뭐가.”

“그게….”

그가 순순하게 굴면 뭔가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느낌이 묘했다.

“아버지는 아데우스 공작님을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요.”

“싫어한다.”

“아, 네….”

“근데 네가 필요하다며.”

그 말에 눈이 절로 살짝 커졌다.

“딸이 필요하다는데 뭐 어쩌겠나.”

샤콜 오브리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설핏 웃었다.

“아빠로서 해줄 수밖에 없지.”

“…….”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이건 좀 울 것 같다.’

가끔, 이 남자는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온다니까.

아무리 친근한 관계인들, 얼마만큼 정이 들든, 결국 5년 뒤에 헤어질, 결국은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인데 말이다.

나는 벌게진 눈시울을 달래기 위해 눈을 꾹 감고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아네트, 뭐 하는 거지?”

“안 웃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요.”

“…뭐?”

“아빠가 그렇게 진지한 얼굴 하면 조금 웃겨요.”

내가 고개를 들곤 키득키득 웃자 그가 팔짱을 끼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됐다, 준비나 제대로 해라.”

“네.”

심장이 몽글몽글 따뜻해지는 그런 오후였다.

***

흐르는 시간은 유수와도 같다고 했던가.

어쩌면 유수와도 같은 건 내 배 속일지도 모르겠다.

“우욱…!”

“쯧, 그러게 내가 분명히 고될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빠가 언제 나한테 그런 소리를… 욱.”

마차가 멈춘 뒤 나는 곧장 나무 그늘 밑으로 달려가 열심히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생각지도 못했다.

비포장도로를 마구잡이로 달리는 마차는 생각보다도 더 사람의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는 사실을.

‘잘 닦아진 마차길과는 달랐어….’

그리고 출장용 마차는 공작가의 마차보다 훨씬 성능이 좋지 못했다.

온몸이 들썩거려서 나중에는 샤콜 오브리의 무릎에 앉아서 가긴 했지만, 그래도 속은 이미 뒤집힌 후였다.

“멍청하기는.”

그가 내 등을 도닥거려 주었다.

“욱….”

뭘 먹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밭은 숨을 흘렸다.

“먹어라.”

옆에서 뭔가를 하던 샤콜 오브리가 무슨 씨앗을 내밀었다.

“속을 좀 진정시켜 줄 거야.”

“네, 감사합니다….”

“바로 먹지 말고 살짝 씹어서 혀에 올려뒀다가 청량한 느낌이 퍼지면 삼키도록.”

“네.”

뭔진 모르지만, 멀미약 같은 거면 좋겠다….

씨앗을 살짝 깨물자 입 안에 순간 시원한 느낌이 살짝 번지기 시작했다.

혀에 올려두고 기다리니 울렁거리는 속이 조금 진정될 정도로 청량한 향이 퍼졌다.

이윽고 그걸 삼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요동치던 위가 진정됐다.

“아빠는 정말 대단하네요.”

“흥,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새침데기 같은 성격만 제외하면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덕분에 조금 숨쉬기가 편안해졌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무슨 소리지? 우린 이미 도착했다.”

“네…?”

아, 멀미하는 나를 데리고 기어코 도착까지 한 뒤에 마차 문을 열어준 거였구나.

다소 서운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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