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30)

<46화>

“모, 모, 못된 짓을 했어! 지, 짐승과 마물을 강제로 서, 섞다니….”

프릭이 발을 쿵 구르며 분노했다.

체스는 물끄러미 프릭을 보다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 내가 여, 연구해 봐도 돼?”

“…어? 연구?”

얘를 연구하겠다고?

그러잖아도 실험실에서 있었던 애인데, 또 실험대 위에 올리는 건 좀 내키지 않는다.

“다, 다치게 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 그냥 피를 조금 뽀, 뽑긴 할 테지만…. 어, 어느 마물과 어, 어느 짐승이 섞였는지 알아내면 어느 정도 클지, 무, 무슨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습성이나 그런 걸 아, 알 수 있으니까!”

프릭이 필사적으로 그 긴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말했다.

그를 믿지 않는 건 아니다. 프릭은 호기심으로 마물을 죽이거나 짐승에게 손을 대진 않을 것이다.

긴 시간 그의 적은 마물이나 짐승 따위가 아니라 그에게 편견 어린 시선과 돌멩이를 던지는 인간이었을 테니까.

“응, 체스가 괜찮다고 하면.”

나는 시선을 내려서 체스를 바라봤다.

“어때? 체스.”

“까웅!”

체스가 가볍게 울며 내게서 프릭의 어깨로 넘어가 앉았다.

“괜찮은 모양이야.”

“이, 이 애가, 마, 마, 말을 알아들어…?”

“응. 키메라라서 똑똑한 게 아닐까?”

“마, 마물 중에 인,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지, 지능이 높은 개, 개체는 드, 드문데….”

프릭의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뭔가 달라지는 걸까?

“보, 보통 키메라를 만들 땐 중심체가 되는 게 마, 마물이라서… 마물의 지능이나 능력을 계승하는 편이라….”

즉, 마물의 지능이 높을수록 키메라의 지능도 높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아프지 않게 부탁할게.”

“으, 으응….”

대화를 마친 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이노스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달려들었다.

“아네트! 다친 데는?”

“없어, 멀쩡해.”

나는 양팔을 활짝 벌려 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저 덩치 큰….”

이노스 오브리가 내 뒤를 바라보더니 순간 말끝을 흐렸다.

그럴 만도 했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3분의 1이 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말이다.

“누, 누구야?”

“프릭 박사님.”

“…….”

이노스 오브리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도통 믿기질 않는 모양이었다.

“여기 별채에서 지내게 되실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불편할 수 있으니까 벗어달라고 부탁했어.”

“저택에서 지낸다고?”

“응, 지금부터 허락받으러 가려고.”

아버지는 무서우니까 어머니한테 가야겠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메리, 골드. 박사님을 별채로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이노스와 함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리와 골드가 허리를 굽혔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응! 고마워. 프릭, 메리랑 골드를 따라가면 돼. 안내해 줄 거야.”

“이, 이 애는….”

“같이 데리고 가줘. 곧 다시 갈게.”

“으, 으응…. 고, 고마워.”

프릭이 체스를 흘긋 보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냐, 고마운 건 나지.”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프릭이 뺨을 살짝 붉혔다. 이런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응, 고마워.”

“그, 그거에 대해 아, 아는 사람이 있어. 서, 성격은 아주아주 나쁜데 그, 방면으로는 천재라서…, 어, 어쩌면….”

더듬더듬 이어지는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그럼 부탁해도 될까?”

이 저주에 대해 알 거라는 기대감은 없지만, 그래도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으, 응!”

내가 웃자 프릭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못마땅한 낯으로 지켜보던 이노스 오브리가 나와 프릭 사이를 가로막았다.

“내가! 나도 같이 데려다줄게!”

프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노스 오브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응, 마음대로 해. 근데 괴롭히지는 말고.”

“안 괴롭혀. 오라버니는 상냥하고 착해서 거짓말이나 협박 같은 거 못 하잖아.”

…라고 이노스 오브리가 사기를 쳤다.

“으응, 알지. 그럼 난 어머니께 가볼게.”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는… 좀 무서워.”

분명히 또 뭐냐고 하나부터 열까지 캐물을 텐데, 대답하다가 심력이 전부 소모될 것 같았다.

“일단 어머니께 말씀드려 보려고!”

“그래, 가봐.”

이노스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박사님 괴롭히지 마!”

“응, 난 그런 거 못 해.”

나는 이노스의 대답을 들은 뒤 곧장 몸을 돌려 로사나 오브리가 있을 방으로 향했다.

***

이노스 오브리는 아네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던 이노스는 아네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웃음기를 싹 지운 채 입을 열었다.

“야.”

이노스의 부름에 프릭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너 내 동생이랑 무슨 얘기 했냐?”

그의 말에 프릭의 입술이 꾹 닫혔다. 키는 자신이 두 배는 더 큰데 왜 위압감이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웃는 낯으로 건네는 목소리가 퍽 사납기 때문이리라.

“아네트에겐 말하지 않을 테니까 나한테만 살짝 말해 봐.”

“아, 안 돼. 비, 비밀이랬어.”

“나랑도 비밀 하면 되잖아.”

이노스의 손이 프릭의 가늘고 긴 손을 단숨에 낚아챘다. 꽈악 움켜쥐는 손에 프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아, 아파….”

“말만 하면 여기에 있게 해줄게. 아버지한테도 내가 대신 허락받아 줄 수도 있고.”

“시, 싫어. 야, 약속했어.”

프릭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비틀어 뺐다. 생각보다 강한 악력에 이노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너, 너어…. 나 혀, 협박하면….”

“협박하면? 뭐,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

“아, 아네트에게 다, 다 말할 거야! 거, 거짓말하고, 나, 나한테, 혀, 협박했다고.”

“…….”

이노스 오브리의 입이 순간 꾹 닫혔다.

“그건 좀 치사하지.”

“치, 치사한 건 거짓말을 친 사람이야. 나, 나쁜 사람.”

프릭의 말에 이노스가 조용해졌다.

“좋아, 돈을 줄 테니 무슨 얘기를 했는지 말해 봐.”

“도, 돈은 나도 많아.”

사실이었다.

프릭은 오랜 시간 마물과 살아온 터라 사람의 말이 서툴고 발음도 어눌했지만, 그게 바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한 것들이 이미 ‘제.학.협’의 도움을 받아 발표되었고, 그로 인해 생긴 수익금이 꽤 있었다.

“나, 나를 별채로 데려다줘.”

프릭이 고개를 돌려 메리와 골드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이노스를 바라봤다.

이노스가 낮게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붙잡아 둘 방법이 없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노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쉽지만, 아네트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은 완전히 실패였다.

‘엿듣기도 안 됐지.’

목소리를 얼마나 작게 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아네트의 방에 방음 마법이라도 발동되었는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함만 가득했었다.

“나중에 아버지께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네.”

한숨을 내쉰 이노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

내가 샤콜 오브리를 찾아가는 대신 로사나 오브리에게 온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그녀에게 너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샤콜 오브리의 추궁에 대답할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로사나 오브리의 말이라면 샤콜 오브리는 무엇이든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매번 오지 않는다고 네 어머니가 서운해하던데, 이제야 얼굴을 보여주는구나.”

“아네트…, 어서 오렴.”

왜 로사나 오브리의 방에 이 두 사람이 오손도손 나란히 앉아 있는 걸까?

차마 목까지 튀어나온 말을 내뱉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해사하게 웃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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