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30)

<44화>

편지 봤구나!

드디어 왔다, 다행이다.

이제 슬슬 문양이 조금만 더 올라오면 숨길 수가 없게 돼서 난감했던 참이다.

근데 솔직히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내 손님이야, 내가 나갈게!”

“아네트, 같이 가!”

나는 냉큼 이노스 오브리를 스쳐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이노스가 금세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어떻게 해도 나가지 않겠다면 베겠다.”

“그, 그러니까, 나, 나는 야, 약속을….”

“잠깐, 내 손님이에요!”

나는 병사에게로 달려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검을 휘두르려던 병사가 움직임을 뚝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아, 하아…. 내, 손님이니까… 헉, 안으로 들여보내 줘요.”

“…아, 아가씨?”

눈을 동그랗게 뜬 병사가 나를 내려다봤다. 병사의 다리를 놓으며 활짝 웃었다.

“아가씨의… 손님이시라고요?”

“네.”

“이런 거… 아니, 이런 사람이 말입니까?”

“네, 조금 행색이 추레하지만 제가 모신 박사님이에요.”

앞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소중한 손님이지.

내 말에 병사들이 주춤주춤 검을 집어넣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치를 살피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장신의 남자였다. 족히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였는데, 거기에 천을 두르고 덩치가 두 배는 되어 보여 위압감이 꽤 컸다.

게다가 확실히 음식물 썩은 내 같은 꽤 끔찍한 냄새가 나긴 했다.

하지만, 이건 그런 더러운 냄새는 아니었다. 알기로 여러 약초와 약물을 배합한 냄새다.

마물이 싫어하는 냄새이기 때문에, 마물과 싸우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마물을 공격하지 않고 마물의 공격도 받지 않아 서로 피를 볼 일이 없도록.

‘냄새가 아주 고약하긴 하네….’

솔직히 그 실체를 몰랐다면 나도 코를 막고 싶을 정도로 찌르르한 냄새였다.

“네, 네가, 나한테, 펴, 편지를 쓴….”

“응, 내가 썼어. 내 방으로 가자.”

내가 손을 내밀자 병사들이 기겁하며 앞을 막아섰다.

“안 됩니다, 아가씨! 이 남자가 저택에 들어갔다간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음, 확실히 냄새가 사방에 배는 건 어쩔 수 없겠다.

‘저 뚝뚝 떨어지는 건 뭐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확실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때문에 위에서 봤을 때처럼 노란 눈동자는 보이질 않았다.

푹 숙인 얼굴은 어쩐지 기가 죽어 보였다.

“어떡할래요?”

나는 병사를 살짝 옆으로 밀며 다시 그의 앞에 섰다. 그가 어깨를 움찔 떠는 것이 보였다.

“그냥 들어가고 싶으면 그래도 괜찮아요. 뭐, 사용인들이 청소하느라 조금 난감해지긴 하겠지만요.”

내가 방긋 웃으며 말하자 그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여긴 마물도 없으니까 냄새를 없애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일 테고요. 원하는 대로 하세요.”

“그, 그냥 가도 돼…?”

“네, 원하면 가도 돼요.”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버, 벗는 건, 부, 부끄러우니까… 그, 그냥 갈래….”

“뭐? 야! 너 미쳤냐? 저걸 들이면 밤새 냄새나서 잠도 못 잘걸?”

뒤늦게 쫓아와 대놓고 손가락질하는 이노스 오브리의 행동에 나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세상에, 오라버니는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이었구나.”

“뭐, 뭐? 나는 단지…!”

“훌륭한 연구를 하시는 박사님이라 내가 직접 초대한 건데….”

“그게, 그게 아니라….”

이노스 오브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실 냄새가 퍽 고약한 건 사실이었다.

나야 예전에 내 살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냄새에 익숙해져서 별생각이 없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겠지.

“하지만, 냄새를 없애겠다고 한다면 제가 그 옷을 벗지 않고도 냄새를 없애는 법을 알려줄게요.”

“버, 벗지 않고 냄새를 어, 없앨 수 있어…? 무, 물은 안 돼…. 없어지지 아, 않으니, 까….”

머리를 흔드는 프릭 박사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비인도적인 행위를 하진 않는다.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물을 뿌린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너무 야만적이니까.

“물을 뿌리긴 하는데 아주 조금이에요. 물에 섞어야 하는 거라서….”

“그, 그럼, 조, 좋아….”

“너! 얘가 누군 줄 알고 그렇게 말을 짧게 하는 거지? 제대로 경어를 쓰도록… 읍.”

나는 손을 뻗어 이노스 오브리의 입을 막았다.

“오라버니 조용.”

그는 마물에게서 자랐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가 꽤 서툴렀다.

읽고 쓰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려했지만, 말을 더듬거리고 또 경어를 쓰지 못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나는 들어가는 길에 한쪽에 난 허브 몇 포기를 뽑아 저택으로 들어가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저 냄새는 무척 끔찍하기는 하지만, 마물을 쫓는 데 탁월하다.

다만, 탁월한 만큼 냄새를 지우는 것이 아주 난해했는데, 그 냄새를 중화하는 방법을 프릭이 찾아냈다.

방법은 간단하다.

계피와 로시아라는 허브를 적당히 으깨어 빻아서 물에 탄 뒤에 적당량 뿌리면 된다.

이 두 성분이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 물이 바로 저 끔찍한 냄새의 ‘중화제’였다.

그리고 이 중화제가 나온 뒤부터 저 마물 쫓는 액체의 판매량도 급증하게 됐다.

마물의 서식지 대부분이 북부에 있을 뿐이지, 다른 지역에 마물이 없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야만족’이라 불리는 이들의 크고 작은 국가들이 주 고객이었다.

몇 분 뒤 나는 분무기 형태로 만든 통에 중화제를 담아 프릭에게 살짝 뿌려주었다.

그러자 지독하게 났던 냄새가 채 5분도 되지 않아 말끔하게 사라졌다.

“…세, 세, 세상에. 이, 이걸, 네, 네가 만들, 만들었어?”

아니, 정확히는 미래의 네가 만들었는데.

얼마나 흥분했는지 콧김을 내뿜어가며 말을 더듬는 그를 보면서 나는 웃었다.

격의가 없는 만큼, 그는 마물 연구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방으로 갈래요?”

“으, 으응! 가, 갈래. 갈게…. 펴, 편지에 대해서도, 대, 대화를 해보고… 싶고, 나 그, 그것도 알, 알려주면…. 나, 나… 도, 돈 많아….”

“그래요, 원하면 알려줄게요.”

애초에 그가 만든 거니 공을 가로챌 마음은 없었다.

‘물론, 조금 이용할 마음은 있지만.’

아무래도 인재를 얻기 위해선 다소의 속임수도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나는 병사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늘어지고 헤진 천 조각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프릭 박사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흠칫, 몸을 떤 그가 엉거주춤 나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왔다.

“아네트, 나도 방에 같이 들어갈래.”

막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이노스가 나를 멈춰 세웠다.

“안 돼, 박사님이랑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거든.”

“여동생을 외간 남자랑 둘만 어떻게 둬!”

이노스 오브리의 말에 나는 뺨을 긁적였다.

하지만 프릭 박사는 아마 이 삶에서 내 비밀을 알게 될 유일한 사람이라 그를 들일 순 없었다.

“그래도 안 돼. 아주 비밀스러운 발명품에 대한 얘기를 할 거란 말이야.”

“내가 어디에 발설이라도 할까 봐?”

“아니, 물론 오라버니가 그러지 않을 건 알아. 하지만, 오라버니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뭐?”

“오라버니는 착하고 상냥하잖아….”

내 말에 이노스 오브리가 크흠! 헛기침을 크게 했다.

살짝 떨리는 동공이 자기가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기록서에 따르면 이노스 오브리는 콧대 높은 고고한 녹의 가문 사람이라서 필요하다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타인을 속이기도 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도움이 간절한 사람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한 면모도 있었다.

‘지금까진 누군가 나를 이렇게 좋아해 줄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했는데.’

지금은 조금 믿을 수 있었다.

“하, 하는 수 없지! 나는 착하고 상냥하니까… 동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든.”

“…아, 그렇구나.”

“대신 바로 문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불러.”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노스 오브리가 프릭 박사의 앞에 섰다.

“이 애에게 허튼짓하면 그 목, 내놓을 각오 해야 할 거다.”

이노스의 위협에 프릭 박사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고개를 돌렸다.

“들어가요.”

“으, 응.”

그가 눈치를 보며 나를 쫓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냉큼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래도 이노스가 꽤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를 티 테이블 한쪽에 앉히곤 적당히 홍차와 과자를 내와 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비밀은 지켜주시겠죠?”

프릭 박사가 엉거주춤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걸 감쪽같이 숨길 발명품이 필요해요.”

나는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놀란 프릭의 눈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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