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30)

<35화>

“너는 종종 선을 넘어.”

“녹, 나는 그저 사실을…! 큭.”

바닥에 엎어진 아데우스 공작의 위로 샤콜 오브리가 그의 멱살을 붙잡고 올라타 잡은 부분을 거세게 짓눌렀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지. 네놈만의 세계를 창조한 건 알겠지만, 바깥에 나오기엔 사회성이 부족해. 아나?”

“오브리 공작! 당장 떨어지지 못하겠나! 오냐오냐 봐줬더니, 감히 짐 앞에서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보다 못한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일갈에도 보라색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내는 걸로 보아 샤콜 오브리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브리 공작. 마지막일세.”

황제가 한 차례 덧붙인 서슬 퍼런 말에 그제야 샤콜 오브리가 아데우스 공작의 멱살을 놓고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흑의 지배자는 저주와 죽음을 지배한다는 얘기도 있었지.’

아마 그런 유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아데우스 공작이 넘어진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저 사람이 쓸데없는 말까지 하는 건 사양인데.

“아데우스 공작, 자네도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닐세.”

아르고 공작이 오브리 공작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청.”

“애초에 아직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가 죽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그건….”

그가 막 입을 열려는 때였다.

“삼촌!”

나는 방긋 웃으며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데우스 공작의 목을 끌어안았다.

“너…!”

그가 소스라치게 몸을 떨었다.

굉장히 더러운 것에 닿기라도 한 듯이.

“말씀하시려는 게 뭔지 저도 알고 있으니까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나는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삼촌은 제가 싫어요? 저는 삼촌이 좋아질 것 같은데….”

나는 서글픈 얼굴로 보란 듯이 목청을 높였다.

굳은 채로 입술을 달싹이던 아데우스 공작이 천천히 눈동자를 내게로 돌렸다.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다시금 숨을 바짝 죽이고 입을 열었다.

“죽는 것도, 어떻게 죽는지도 아니까요. 근데 아버지는 몰라요. 난 5년짜리 딸이니까요.”

주변엔 들리지 않을 정도의, 희미한 바람 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저주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말할 생각도 없고 알릴 생각도 없다.

말한다고 한들, 해결책은 없다. 있었으면 그 미친 과학자가 나한테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해결했겠지.

알면 그저 걱정이 깊어질 뿐이다.

모르면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투닥거리며 5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의 5년은 불행한 시간이 될 거다.

샤콜 오브리는 내가 가짜든 진짜든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을 테고 찾지 못할 때마다 그는 죄책감과 절망을 알게 될 테지.

그건 이 평화로운 시간이 끝난다는 의미다.

그래,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일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그러니까… 부탁드릴게요.”

아데우스 공작에게 작게 속닥거리고 몸을 막 물리려고 했을 때였다.

갑자기 뒷덜미가 잡히더니 몸이 덜렁 허공에 들렸다.

순간 당황해서 살짝 굳은 채 고개를 돌렸다.

“넌 대체 뭘 하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안기는 거 아니다.”

“아하하…, 아버지 친구라고 하셔서 반가워서요.”

내가 어설프게 대답하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형님께는 낯을 가렸으면서….”

그러고 보니 아르고 공작도 있었지.

“그게….”

나는 급히 눈동자를 굴려 아데우스 공작을 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꾹 다문 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잘생겼잖아요!”

“…뭐?”

“삼촌이 잘생기셔서요….”

내 말에 샤콜 오브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근데 정말로 얼굴만 따지자면 아데우스 공작이 제일 내 취향이기는 했다.

다들 각자 다른 의미로 잘생기기는 했는데….

새까만 머리카락과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 거기에 새까만 눈동자까지, 완벽에 가까운 미형이었다.

“저게 잘생기긴 뭐가 잘생겼지?”

“어….”

객관적으로 보면 잘생기지 않았나?

“저한텐 아버지가 제일 멋지지만요!”

“흥, 그건 객관적으로 당연한 소리다.”

아, 네.

“그래서 방금 한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게, 아데우스 공작.”

황제가 손을 가볍게 들며 말했다. 내가 아데우스 공작을 올려다보자 그도 내 시선을 느낀 듯 나를 보았다.

“…그냥, 제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농이 지나쳤습니다. 녹.”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내가 방긋 웃어주자 아데우스 공작이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고개를 돌렸다.

“식사를 하실 거라면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가 짧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잡혔던 멱살이 꽤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후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살짝 고개를 숙이곤 성큼성큼 회의실을 벗어났다.

팔짱을 낀 샤콜 오브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아버지, 저도 잠시 볼일을 보러 다녀올게요.”

“그래라.”

화장실에 간다는 은근한 뉘앙스를 비추자 다행히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니 복도 끝을 걸어가고 있는 아데우스 공작의 뒷모습이 보였다.

“삼초온!”

내가 그를 부르며 달리자 순간 아데우스 공작의 발이 삐끗했다.

“…누가 삼촌입니까.”

“공작님이요! 까망이 삼촌!”

“날 그런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 하지 마세요.”

아데우스 공작이 설핏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도대체가 그러고도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군요.”

그의 질렸다는 표정에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저 새까만 눈동자엔 뭐가 비치기라도 하는 걸까?

흑의 지배자는 죽은 사람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얘기 숨겨줘서 고마워요.”

“녹에게 더 얻어맞고 싶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넓게 걷던 보폭이 아까보다 꽤 좁아졌다. 아닌 듯해도 다들 배려심이 넘친다니까.

“삼촌, 형을 찾고 있죠?”

“…….”

그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창백한 낯을 한층 더 창백하게 물들이며 걸음을 뚝 멈춘 아데우스 공작을 보면서 나는 방긋 웃었다.

“쌍둥이 형이요.”

내 말에 아데우스 공작이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 록서는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 ‘셰이드 아데우스’에 대한 정보를 열람합니다.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층 더 해사하게 웃었다.

내가 해사하게 웃을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는 것은 굳이 숨길 일도 아니었다.

‘난 좀 성격이 나쁜 편일지도 모르겠네.’

사람이 당황하는 모습을 퍽 재밌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데우스 공작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 왔다.

이제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기억.

도리어 친숙하기까지 할 정도다. 전생에 대한 거부감이라곤 사라졌으니까.

“붉은 바위산에 가보세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 산의 꼭대기에 붉은 바위가 있잖아요. 그 뒤에는 작은 바위가 있고요. 그 사이에 완전히 들어가면 좁은 틈이 있어요.”

“…틈?”

“아주 좁고 작은 틈이에요. 딱 어린아이가 들어가기 좋은 틈이요.”

내 말에 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좋지 않은 표정에 고개를 돌렸다.

아데우스 공작가에는 악습이 하나 있었다.

“대체…,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쌍둥이가 태어날 경우, 약한 아이를 제물로 바쳐 다른 한 아이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두 사람의 것이어야 했을 흑의 힘을 한 사람의 것으로 만드는 악습 말이다.

그렇게 하면, 아데우스는 강력한 후계자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적어도 높으신 사람 중에는 말이다.

현 아데우스 공작 역시 쌍둥이였다.

격리된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며 뛰놀던 제 형이 제물로 바쳐져 죽기 전까지는.

그가 공작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런 악습에 관한 폐지와 원로들의 숙청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불편한 참견이었다면 사과드릴게요.”

나는 걸음을 멈춘 채 덧붙였다.

“감사함에 드리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제 아는 척하지 않을게요.”

내게 저주가 붙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에게만 보이는 뭔가가 있는 것인지 내 존재가 꽤 거슬려 보였으니까 말이다.

“아,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안 할게요.”

설령 한다고 해도 어떻게 알았느냐고 추궁당하면 할 말이 없다.

“너는….”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죽는 게 두렵지도 않습니까?”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서운데요?”

“…뭐라고요?”

“무섭다고요.”

죽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미친 사람일 거다.

“근데 어떡해요, 고칠 수가 없을 텐데.”

나름대로 알아는 보고 있다. 고서도 보고 저주나 주술에 관한 다양한 서적도 읽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 팔에 새겨진 문양 비슷한 얘기는 없다.

“삼촌이 나중에 도와주시면 좋겠지만요.”

그가 내가 알려준 곳으로 가서 제 형을 찾는다면, 어쩌면 도와줄 수도 있겠지.

“그럼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먼저 가볼게요.”

나는 손을 붕붕 흔들곤 곧장 회의실로 돌아갔다.

등으로 뜨거운 시선이 꽤 오랜 시간 느껴졌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화이트 시즌은 무사히 끝이 났다.

***

“연회에 가는 건 내가 아니라 잘생긴 아데우스 공작에게 부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음, 무사히….

아닐지도 모르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