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130)

<27화>

“이렇게나 해야 곁을 내어주니 원.”

“…아버지?”

“비율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이상 없다.”

샤콜 오브리가 가볍게 대답했다.

“하지만 10할인데요?”

그럼 버는 돈을 전부 준다는 거잖아.

“그래, 제작비와 개발비, 인건비 등 필수적으로 드는 돈을 제외한 나머지 수익은 전부 네가 가지면 된다.”

“…하지만, 이거 엄청 대박 날 텐데요.”

“그래서?”

팔짱을 낀 샤콜 오브리가 곁에 앉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그러니까, 나한테 이렇게 정산을 해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거지.

“후회하실 텐데요….”

“너는 내가 주는 건 안 받으려고 하니, 네가 버는 걸 다 쥐여 줄 수밖에.”

“…정말로 엄청 큰돈을 벌 수 있다니까요?”

“그래서?”

샤콜 오브리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내가 그런 푼돈이 아쉬운 사람으로 보이나?”

“그러니까 푼돈이 아닌데….”

내가 작은 목소리로 항의하자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곤 나를 내려다봤다.

“…푼돈일지도.”

생각해 보니 제국의 수많은 상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쥐고 있는 오브리 공작가가 아닌가.

합성 마석으로 버는 돈은 확실히 정말 푼돈일 수도 있겠다.

“그럼 계약서를 조금 수정해요.”

“수정?”

“네, 만약 제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독점 유통권을 공작가에 양도하는 걸로요.”

제국의 상법에 따르면, 상품을 개발한 개발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특혜가 돌아간다.

제품을 발표한 뒤 향후 10년간 독점 유통권과 제작 독점권을 보장받는다는 게 그러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몇 년 뒤에 죽는다고 한들, 그 특혜들은 그때까지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라고?”

“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럴 일은 없다.”

“그래도요.”

내가 만약 공작부인의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하면 나도 죽고 당신도 죽을 것이다.

내가 만약 공작부인의 치료제를 개발해서 공작부인이 살더라도 나는 죽을 것이고.

“부탁드릴게요!”

나는 두 손을 냉큼 모아 잡았다.

“정말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에요.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요.”

내 말에 샤콜 오브리의 미간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쯧, 하는 수 없지.”

그는 귀찮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뺨을 씰룩거리며 손가락을 까딱했다.

페드로가 펜을 넘겨주자 샤콜 오브리가 자연스럽게 글을 적어 내려갔다.

유려한 글씨로 문장 하나가 추가됐다.

“됐나?”

“네, 아버지. 감사해요!”

“끼웅!”

내 감정의 고조에 반응한 듯 여태 가만히 있던 키메라가 끼웅, 울었다.

샤콜 오브리의 시선이 그제야 내 어깨로 옮겨 갔다.

“이게 그 희귀 동물인가?”

“네.”

“…….”

샤콜 오브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가만히 키메라를 살폈다. 바짝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픽,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꼭 저 같은 걸 데려왔군. 비쩍 말라비틀어진 걸.”

“…너무해.”

나한텐 그렇다 쳐도 학대받은 애한테 저런 말은 너무하다.

“…아버지 너무해요.”

“…뭐?”

“얘는 갇혀서 제대로 밥도 못 먹은 것뿐인데.”

내 말에 샤콜 오브리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내가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그의 눈가가 파르르 경련했다.

“저 이만 돌아갈게요. 계약서는 감사합니다.”

“…아네트.”

내가 대답하는 대신 허리를 꾸벅 숙이자 샤콜 오브리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농담이다.”

“…….”

“칭찬이야.”

“‘저같이 비쩍 말라비틀어진’이라는 내용 중에 어느 부분이 칭찬인가요?”

내가 따져 묻자 샤콜 오브리의 입이 꾹 닫혔다. 그의 흔들리는 시선이 페드로에게 닿았다.

‘…살짝 농담이었는데.’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조금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사실 제가 싫으시죠….”

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마저 소파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샤콜 오브리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싫었으면 데리고 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맨날 비루먹었다고 하시고 못생겼다고 하시고 키도 작다고 하시고….”

“난 관심 없으면 그런 말도 안 해.”

와, 이 인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놓고 무슨 미취학 아동 같은 변명을 하고 있네.

“싫어했다면, 이런 일 시작도 안 했다.”

‘…이쯤 괴롭힐까.’

나는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그래, 널 보고 있으면 내 딸이 정말 살아 돌아온 것 같아. 무사히 잘 자랐으면 너처럼 컸겠지.”

샤콜 오브리의 말에 몸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나는 곧 아무렇지 않은 척 활짝 웃었다.

“그거 다행이네요, 제가 따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뭐, 그렇지.”

옆에서 페드로가 이마를 짚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모른 척 소파에서 내려갔다.

“아차! 아버지, 생각해 보니까 저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뭐? 간식은….”

“다음에 먹을게요!”

탁-!

나는 후다닥 뛰어나가 문을 닫았다. 기분이 묘했다.

***

탁-!

샤콜 오브리는 매정하게 닫힌 문을 황당한 기분으로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곁에 있던 집사, 페드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10점 만점에 -5점 드리겠습니다.”

“…뭐?”

페드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샤콜 오브리의 단정한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뭐가 말이지?”

“방금 주인님께서 하신 말에 제가 매긴 점수입니다.”

“…내가 뭘 했다고 마이너스라는 박한 점수를 줘?”

샤콜 오브리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양되어 남의 대역을 하느라 불편하실 분께 그런 말이라뇨.”

“그런 말이라니, 뭐가? 난 칭찬을 한 거다.”

“칭찬하셨죠. ‘넌 내 딸이 아니지만, 내 딸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페드로의 단호한 말에 샤콜 오브리가 낮게 혀를 찼다.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다.”

“그러셨습니다.”

“게다가 엄연히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페드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껏 다정하게 대해 주시곤 ‘그래 봐야 너는 내 딸의 대역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샤콜 오브리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렸다. 다 식어버린 홍차와 쿠키들이 어쩐지 꼴도 보기 싫었다.

“이거나 치워.”

“네, 알겠습니다.”

페드로가 허리를 숙이곤 조용히 식기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 딸은 저렇게 귀염성이 없지도 않을 거야.”

샤콜 오브리의 말에 페드로는 대답하는 대신 그저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도와달란 말도 안 하고 뭐든 자기 혼자 하려고 하지.”

“…아네트 아가씨는, 꼭 어릴 적의 가주님을 닮으셨죠.”

페드로의 말에 샤콜 오브리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닮기는 무슨! 난 저렇게 비루먹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지도 않았다.”

“하지만, 뭐든지 혼자서 해결하려는 게 딱 가주님을 닮지 않았습니까.”

샤콜 오브리는 낮게 혀를 찼다.

과거 그가 혼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선대 오브리 공작이자 그의 아버지가 지독한 방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형제는 셋이었다.

당연하지만, 후계자는 없었다.

가문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하고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후계자가 된다.

그뿐이었다.

그 외엔 죽이든 살리든, 가문의 품격을 훼손하는 일만 아니면 모든 것이 용납됐다.

“페드로, 내가 대하기 어렵나?”

“대하기 편한 분은 아니시죠.”

“…너 말이 심하군.”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편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샤콜 오브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딸을 키우는 건 어렵군. 이노스는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던 것 같은데.”

“글쎄요.”

페드로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저는 가주님께서 드디어 어른이 되어가시는 것 같아 무척 기쁩니다.”

“나는 지금도 어른이다.”

그러나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타박한 샤콜 오브리는 조금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사과해야 하나?”

페드로는 대답하는 대신 그저 빙긋 웃었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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