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이제 거의 다 된 모양이다.
눈썹이 움직였다는 건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증거였다.
“아버지이…, 제가 잘못했어요.”
양손을 가볍게 맞대며 울먹거리는 얼굴로 말하자 샤콜 오브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귀엽게 군다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거 당신만 그렇게 생각해.
뭐야, 나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 어머니가 속상해할 거다.”
“네, 알아요.”
“그래서 무슨 동물을 키우고 싶었길래 몰래 데리고 와? 키우고 싶었으면 내게 말했으면 됐잖아.”
세상에, 거기까지 알고 있었냐고.
진짜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애교 작전이 아니라 모르쇠 작전으로 갔다간 큰일 날 뻔했다.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활짝 웃었다.
“사실 이게…, 희귀 동물이래요!”
“희귀 동물?”
“네, 근데 희귀 동물은 제국의 수출입 관리국에 제대로 신고해서 허락받아야만 키울 수 있다고, 몰래 키우면 안 된다고 해서요…. 들키면 잡혀가니까 조심하라고 그 가게 주인이 자꾸만….”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입술을 웅얼거렸다.
어려울 땐 일단 전부 남에게 떠넘기자.
“…….”
내 말에 샤콜 오브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 속으려나?’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그 가게의 철장에 그 애가 너무 안쓰럽게 갇혀 있었어요….”
“그랬군.”
“그게 뭔가 저랑 닮아 보여서….”
내가 덧붙인 말에 샤콜 오브리가 팔짱을 끼곤 다리까지 꼬았다.
그렇게 세상 오만할 수가 없는데, 그게 또 너무 잘 어울려서 도리어 보는 사람이 억울할 정도다.
“그리고 동물을 싫어하실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기가 무서웠어요.”
언뜻 보기에도 그는 결벽증이 있을 듯 보여, 동물을 키운다고 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
“죄송해요….”
“널 가볍게 여기지 말거라. 공녀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곤란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참고로 그 가게가 어디에 있는 가게라고?”
관심 없다는 듯 내 곁을 스쳐 지나가던 샤콜 오브리가 슬쩍 물었다.
“아, 수도 시장에 있는 반려동물을 파는 제일 큰 가게예요.”
“그래, 돌아가서 쉬도록.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면….”
“주의할게요.”
“그거 다음에 데려와 보거라.”
“네? 아, 네….”
그날, 수도 시장에서 반려동물 가게가 전부 사라졌다.
샤콜 오브리가 설마하니 평소와 같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공작저를 걸어 나가선 시장을 전부 쓸어버렸을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다.
당연하지만, 그 사실을 내가 알게 되기까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끼웅….”
힘없는 울음소리에 살짝 시선을 내리자 겁에 질린 키메라가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아마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게 분명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그렇게 학대를 받았으니까.
‘정말 최악의 인간이지.’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실패작이라는 이유로 온갖 화풀이를 하다가 적당히 처분하기 위해 팔아버렸을 미친 과학자가 눈에 선했다.
“아버지가 널 보여달라고 하셨는데, 얌전히 있어야 해. 알았지?”
그에게 애교를 부려 간신히 그 심각한 상황에서 벗어난 지 벌써 사흘째였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샤콜 오브리가 티 타임을 갖자고 하며 내가 데려온 동물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래서 꽃단장을 하고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끼웅…?”
키메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친 과학자가 키메라를 탄생시킨 취지는 ‘길들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는 마물과 동물을 합쳐서 충성스러우면서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괴물을 만들길 원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저열한 생각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놈이 그 뒤로 밥은 잘 준 모양이네.”
푸석푸석하고 기운 없었던 때에 비하면 키메라의 상태는 꽤 좋아 보였다.
내가 으름장을 놓고 간 보람이 있었다.
‘물론 신고했지만.’
불법 거래를 한 가게로 신고하게 되면 키메라를 데리고 올 수 없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값을 치르고 데려왔다.
‘뭐 잘됐으니 다행이지.’
거기까지 생각하니 한결 가벼워진 머리를 흔들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갈 시간이었다.
똑똑.
단정한 노크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아가씨, 들어가겠습니다.”
“응.”
문고리가 부드럽게 돌아가고, 메리와 골드가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님께서 할 말이 있으니 아가씨를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응, 갈게.”
내가 손을 뻗자 키메라가 망설이더니 내 팔을 타고 어깨에 올라탔다.
메리와 골드를 따라 집무실로 들어가자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무섭도록 자극했다.
종이와 잉크 냄새만 가득하던 집무실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샤콜 오브리가 오만한 낯으로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 앞에 화려하고 귀여운 간식들을 가득 쌓아둔 채로.
‘…왜 이 사람은 티 타임을 갖자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솔직하지 못한 것도 이쯤 되면 병이 아닐까 싶었다.
“왔나?”
“네, 아버지.”
“앉아라.”
“네.”
“오다 주웠으니 먹도록.”
오다 줍기는 개뿔이!
나는 황당함에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다잡으며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와, 아버지 기뻐요!”
“흥,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래도 아버지가 절 생각해서 준비해 주신 거잖아요.”
“오다 주운 거라고 했을 텐데.”
…콘셉트도 이 정도면 병이라는 걸 이제 좀 알아줬으면.
“절 생각해서 오다 주우셨잖아요.”
“뭐, 네 비루먹은 몸이나 쪼그만 키가 생각난 건 맞지.”
“네에…, 감사합니다.”
나는 쿠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사회생활 힘들다.’
그와 별개로 쿠키는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다음 주부터 수업을 듣게 될 텐데 괜찮나?”
“네, 아버지.”
내 대답에 그는 홍차를 한 모금 입술에 머금었다. 그는 태생부터 귀족이라는 티가 팍팍 났다.
움직임은 늘 물 흐르듯 유려했으며, 고결하고 품위 있어 보였다.
“아네트.”
“네.”
“네가 알려준 ‘합성 마석’이라는 거.”
“아, 네.”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걸까?
바짝 긴장한 채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그가 느리게 잔을 내려놨다.
“어떻게 알게 됐지?”
“네?”
“네가 알려준 대로 몇 가지 시험을 해봤다. 다양한 힘이 담긴 마석은 전부 ‘특정한 온도’에서만 녹더구나.”
987도.
미친 과학자가 괜히 미친 과학자였겠는가.
키메라 합성 시험을 하기 전, 그는 마석을 합성하는 실험을 했다. 하지만, 마석은 녹지 않았다.
딱 한 온도만 제외하고.
‘…그걸 솔직하게 말할 순 없어.’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문제가, 있나요?”
“아니, 혼자서 알아낼 수 없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그냥 알게 됐어요.”
“그냥….”
샤콜 오브리가 말꼬리를 가볍게 물고 늘어지며 작게 읊조렸다.
“내 딸은 참 숨기는 것도 많아. 그 머리통을 열어 볼 수도 없고.”
저기, 그런 말은 무서우니까 속으로만 해주면 좋겠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니까 더 무서워.
“합성 마석, 네가 알려준 정보들 덕분에 곧 상용화할 수 있겠더구나.”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곁을 지키고 있던 집사, 페드로가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서류 세 장을 샤콜 오브리의 손에 올렸다.
그가 가볍게 내용을 살피는 듯하더니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계약서다.”
“계약서요?”
“네가 말했잖나, 합성 마석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대가를 줬으면 한다고.”
아, 1할이나 2할 정도 나눠 줬으면 한다고 하긴 했지.
‘욕심은 2할 정도면 좋겠지만.’
사실 앞으로 돈이 될 걸 생각하면 오브리 공작이 나한테 그렇게까지 떼 줄 이유는 없다.
‘합성 마석’은 누가 봐도 대박 상품이다. 실제로 점점 상용화가 되면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할 거다.
미친 과학자도 그 덕분에 억 소리가 나는 돈이 드는 온갖 괴이한 실험도 진행할 수 있었고.
‘1할 주면 많이 준 거지.’
나는 별 기대감 없이 서류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어?”
묵묵히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내 머리가 절로 기울어졌다.
“아버지, 여기 글자 잘못 쓰셨는데요?”
“검토해 봤을 때 이상은 없었는데.”
“하지만…, 수익 10할을 저한테 배분한다고 되어 있는데…. 0이 하나 잘못 들어간 것 같은데요.”
나는 서류를 들고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가리키며 샤콜 오브리에게 쭉 내밀었다.
샤콜 오브리는 가만히 나를 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곤 입을 열었다.
“잘 안 보이는데, 뭘 말하는 거지?”
“여기, 이 부분이요!”
상체를 앞으로 숙이자 샤콜 오브리는 몸을 도리어 소파에 푹 파묻었다.
‘…뭐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 멀뚱히 바라보자 그가 다시 여상스럽게 입을 열었다.
“잘 안 보인다고 했을 텐데.”
“몸을 앞으로 좀 숙여주시면….”
“내가 왜?”
그래, 이 오만한 인간아.
나는 부글부글 들끓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소파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여기까지 오면 보이겠지.’
샤콜 오브리의 옆자리에 기어 올라가서 코앞에 서류를 들이밀어 주자 그제야 그의 입술이 미려하게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