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130)

<21화>

소리를 들은 알프 아르고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곁을 보니 샤콜 오브리는 이 상황이 퍽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크릉! 하아악!”

뭐야, 짐승이라도 잡아 와?

다소 노골적인 짐승 소리에 당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잠깐만 기다리렴.”

“네, 형님.”

결국 알프 아르고가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그제야 나를 흘긋 본 샤콜 오브리가 입을 열었다.

“아르고 가문의 후계자는 어린 시절 짐승의 품에서 자란 것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사실 짐승이 아니라 마물의 품에서 자랐거든요.

“네.”

“말이 안 통하니 뭔가를 가르칠 수도 없어. 하지만 암살과 무술엔 재능이 있어서 아르고 공작가의 정예 중 정예, 창천 기사단에서 그를 돌보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애를 먹지.”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렇군요, 친하게 지내볼게요.”

내 담담한 대답에 그가 말없이 와인을 기울였다.

본래라면 내가 아니라 여자 주인공이 이곳에 와서 그를 끈질기게 가르쳐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카펠 아르고는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게 된다.

‘…잠깐, 내 머릿속에 내 생각인 것처럼 멋대로 해설 넣지 말라고.’

불쾌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진 자연스럽게 내가 생각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순간 확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또다시 머릿속에 내 생각이 아닌 무언가가 떠올랐다.

- 하지만, ‘나’는 그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나’는 ‘나’의 기록서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뭔데, 이게.

나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불쾌감에 손바닥으로 귀 부근을 두어 번 툭툭 치자 뭔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샤콜 오브리였다.

“왜 그러지? 어디가 아픈가?”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깐 어지러워서.”

나는 적당히 말을 빠르게 얼버무렸다. ‘머릿속에서 이상한 게 말을 합니다.’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겠지.’

세상에, 진짜 무슨 하자품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 ‘나’의 기록이 ‘나’에게 한 번에 쏟아지면 ‘나’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했던 소설처럼 지문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체 이게 뭐야.

나는 머리를 짚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기록서’라면 그 이상한 그림자가 보여줬던 그거 말하는 건가?

아니, 대체 기록서가 말을 어떻게 해?

- ‘나’는 ‘나’의 기억을 매개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지식, ‘나’의 생각, ‘나’의 패턴,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말투 소름 돋아….

차라리 기계처럼 해주든가. 자꾸 나, 나, 거리니까 마치 내 생각 같아서 불쾌했다.

- 알겠습니다, ‘나’지만, ‘내’가 불쾌한 ‘나’를 위해 호칭을 ‘주인님’으로 변경하겠습니다. 또한, 주인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금부터 시스템의 말투로 변경합니다.

이게 대체 뭔데….

머릿속에서 내가 아닌 무언가가 날뛴다. 불쾌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진짜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남은 인생도 길어야 몇 년일 텐데.’

시끄럽고 귀찮은 일만 생겼다. 나는 피곤함에 고개를 젖혔다.

“크르릉!”

“카펠, 식사하자꾸나. 밥, 좋아하지?”

문이 열리고 아르고 공작과 그의 품에 안긴 카펠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겼다기보단 사지가 제압당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렸다. 알프 아르고의 품에 안긴 작은 몸이 이리저리 버둥거렸다.

제대로 자르지 못한 듯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로 인해 눈은 보이지도 않고 옷은 간신히 입힌 듯 엉망진창이었다.

제대로 씻기지도 못했는지 이곳저곳이 꼬질꼬질했고 긴 손톱과 적대감을 가득 드러낸 이가 퍽 사나워 보였다.

“조카님께서도 여전히 건강해 보여 다행입니다.”

샤콜 오브리가 퍽 차분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무사히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런 것치곤 이런 식사 자리에 데리고 온 것이 욕심이 꽤 있어 보이는데.

‘저런 상태의 애를 저렇게 다루면 어쩌자는 건지.’

하기 싫은 일을 강제하려고 하니까 애가 반항밖에 하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마물과 명령, 힘만이 전부인 세계에서 살아온 아이를 오로지 힘으로 제압하니까.

“앉거라. 식사해야지.”

알프 아르고가 제 아들을 의자에 앉혔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아이가 목을 움츠리며 하악질을 했다.

“안 돼!”

카펠 아르고가 벗어나려고 하자 알프 아르고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카펠 아르고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잔뜩 움츠러든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사방을 힐끔거리는 게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보였다.

“저번엔 식탁에 앉지도 못했는데, 많이 발전했군요.”

“그래, 계속 반복해서 훈련을 시켜주니 이제 앉아서 식사하기는 하더구나. 언젠가는….”

알프 아르고가 살짝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얘가 개도 아니고….’

나는 뺨을 몇 차례 매만지곤 한숨을 내쉬며 폴짝 뛰어내렸다.

“아네트?”

카펠 아르고에게 다가가자 그가 다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먹을까?”

나는 카펠 아르고에게 식당의 한구석을 가리켜 보였다.

인상을 찌푸린 카펠 아르고가 이를 드러낸 채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빵 하나를 들고 구석으로 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빵을 반으로 나눠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카펠 아르고의 입이 벌어졌다.

“아네트!”

샤콜 오브리의 얼굴이 퍽 무서웠다. 나는 찔끔 눈을 피했다.

그 순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펠 아르고가 로스트 치킨의 다리를 손에 쥐곤 후다닥 내게 뛰어왔다.

다리만 잡힌 터라 몸체가 덜렁거렸다.

‘통닭을 한 마리 그대로 가져오네….’

폴짝폴짝 뛰어오는 게 신이 나 보였다.

‘신이 나겠지.’

여기선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못 하게 했을 테니까.

카펠 아르고가 내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식사하는 나를 유심히 보곤 김이 폴폴 나는 닭을 냅다 그대로 와앙 깨물었다.

“야, 그거….”

“캬악! 크르르…!”

퍼억-!

뜨거운 걸 예상하지 못했던 듯 카펠 아르고가 닭을 내 쪽으로 내던지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카펠! 안 돼!”

커다란 노성에도 카펠 아르고는 분을 참지 못하고 닭을 주먹으로 퍽퍽 내려쳤다.

눈앞에서 고기 조각이 되어가는 통닭을 보며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와, 진짜 짐승이 따로 없네.’

아르고 공작이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오려고 하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고갯짓에 그가 멈칫했다. 샤콜 오브리가 굳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잘 보라고, 당신은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걸.’

이걸 보면 오브리 공작은 원하던 대로 아르고 공작한테 점수를 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 아저씨도 슬슬 내가 천재라는 걸 인정해야 할 텐데 말이야.’

나는 생각하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두 팔을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 쪼그려 앉아 주먹질을 하던 카펠 아르고가 고개를 들었다.

덥수룩했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사나운 눈동자가 드러났다. 짙은 보랏빛의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듯 신비로웠다.

나는 그대로 뻗은 팔로 카펠 아르고를 힘껏 끌어안았다.

“쉬이.”

“크아아악!”

버둥거리는 카펠의 등을 토닥거려 주자 하악질을 하며 난동을 부리던 몸이 씩씩거리는 숨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움직임이 점점 잦아들었다.

“잘했어.”

나는 카펠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곤 반으로 자른 빵 중 하나를 카펠의 입에 쿡 쑤셔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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