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30)

<17화>

“…….”

“…….”

“…….”

삭막하고 숨이 막히고 그야말로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왜냐고?

왜긴.

“왜 그렇게 쳐다보지?”

“…….”

가시방석에 앉아 있으니까!

그것도 한쪽만 가시가 아니라 양쪽이 다 가시다.

그렇다, 나와 이노스 오브리는 오브리 공작의 감시하에 침대 두 개가 놓인 널따란 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오늘로 벌써 사흘째였다.

나도 한계다.

감금?

아니, 따지자면 이건 황제 감금이겠지.

원하는 건 뭐든지 주어졌으니까.

다만, 침대에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요양’이라는 명목 아래에.

“…….”

그뿐이랴.

내가 그를 쳐다보는 건 내 옆 침대에 앉은 누군가가 내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나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오라버니,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딱히 너 본 거 아닌데.”

이노스 오브리가!

심지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도 나빠 보였다.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랬더니 이번엔 샤콜 오브리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 저 이제 건강한데요.”

“네가 의원인가?”

“그건 아닌데….”

“그럼 가만히 앉아 있어라.”

하지만, 엉덩이에 종기 나겠다고….

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자 오브리 공작이 서류를 내려놨다.

“확실히 혈색은 많이 좋아졌군.”

더 거무죽죽해지진 않았고?

“네, 아버지 덕분에요.”

“이노스, 너도 괜찮나?”

야, 말 잘해라.

멀쩡하다고 하라고.

“…….”

이노스 오브리가 오브리 공작을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보더니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리며 누웠다.

“아뇨, 아직 아픕니다. 걔도 아파 보이네요.”

이 망할 이노스 오브리이이이!!

“역시 좀 더 쉬는 게 좋겠군.”

“아니, 저는 튼튼해서….”

“나는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오마. 방에 잘 있을 수 있겠지?”

이건 분명히 피 말려 죽이려는 거다. 걱정 따위가 아니라 골려주려는 것이 분명해!

“네에…, 아버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가.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는데.

흐트러진 적이라곤 없었던 것처럼 말끔해진 오브리 공작이 나와 이노스 오브리를 한 차례씩 바라보곤 방을 나섰다.

“에휴.”

할 짓도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자볼까 싶어서 막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였다.

“너….”

같은 방을 쓰는 지난 사흘간 절대 말을 먼저 걸지 않았던 이노스 오브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너랑 한 내기 때문이었잖아.”

“그런 위험한 내기라는 말은 없었잖아!”

그가 이불을 거칠게 걷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너 위험에 처하게 한 건 미안한데, 나름대로 충분히 계산해서 한 거라 죽진 않았을….”

“네가 죽을 뻔했잖아!”

새하얀 손등 위로 핏줄이 돋아 있다. 핏발 선 눈에 순간 말문이 멎었다.

“수영도 못 하는 주제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노스 오브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죽을 뻔했다고….”

침대 시트를 쥔 손이 애처롭게 떨렸다. 그 격렬한 감정에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겨우 그런 거 때문에….”

무너지듯 숙어진 고개 아래로 투명한 물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져 시트를 적셨다.

“야, 너 울어…?”

“울기는 누가 울어!”

이노스 오브리가 소매로 눈을 벅벅 문질러 닦으며 고개를 벌떡 들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너 사랑하는 건 확인했잖아.”

내 말에 그가 발갛게 물든 눈가로 나를 노려봤다.

그 시선이 어찌나 따가운지 함부로 입을 열기도 눈치 보였다.

“그래, 확인했어!”

“그럼 됐….”

“너도 확실히 알아둬! 그 뒤에 너 구하겠다고 아버지가 연못에 뛰어들었어!”

“그거야 공작가 뒤뜰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할 순 없잖아.”

“그게 아니라….”

애초에 그것까지 계산에 있었다. 한 사람 구하고 나면 뒤늦게라도 날 구하겠지 싶었으니까.

물속에 들어가서 산소가 부족해지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뛰는 거 난생처음 봤어!”

“…….”

“그러니까 아버지는 너도 아끼고 있다고.”

그 확신 어린 말에 순간 대꾸할 말을 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비웃어줬어야 했는데, 아무런 말도 못 한 탓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 가짜라고 불러서 미안했어.”

“아니, 그건 사실이라 괜찮아.”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이노스 오브리가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내 앞에 섰다.

“특별히! 널 내 동생으로 인정해 주지.”

“아니, 필요 없어. 그보다 약속대로 앞으로 귀찮게 하지 않고 서로 모른 척하면서 지내는….”

“영광인 줄 알아, 나같이 대단하고 엄청난 오라버니를 가지기 쉽지 않으니까.”

아니, 별로 가지고 싶지 않은데.

데자뷔인가?

분명 얼마 전에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어봤던 것만 같다.

‘누가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정신이 아득해졌다.

“…….”

나는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조용히 닫았다. 말을 더 섞었다가 속이 터져버릴까 봐 겁이 났던 탓이다.

“네 맘대로 해라.”

나는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쓰며 털썩 드러누웠다.

때마침 문이 살짝 열렸다.

“아버지, 오라버니가 침대 밑으로 내려와서 저 귀찮게 해요. 콜록콜록.”

부러 마른기침 소리를 내며 흘린 내 말에 이노스 오브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노스…, 넌 내 말이 우스운가 보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오브리 공작이 이노스 오브리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그게 아니라, 아버지.”

“내가 보기에 넌 2일 정도의 요양이 더 필요할 것 같구나.”

“아버지, 저 사실….”

나는 두 사람이 아옹다옹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아웅다웅하는 목소리들이 적당한 저음이라 듣기 좋은 까닭인지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다.

수마가 휘몰아쳤다.

어느 순간, 주변이 적막해졌다.

동시에,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

“아네트, 이노스. 놀다가 물에 빠져서 감기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니?”

“네, 어머니.”

“문제없습니다, 어머니.”

나와 이노스가 동시에 대답했다.

“당신도 애들 간호하느라 수고했어요.”

얼마 만에 식당에 나와 밥을 먹는 것인지 감개무량할 정도다. 샐러드와 스튜를 먹으며 나는 방긋 웃었다.

스튜 몇 스푼을 뜨고 샐러드를 몇 번 집어 먹으니 배고픔이 사라져서 배가 부르기 전에 식기를 내려놓았다.

“아네트.”

“네, 어머니.”

“식사량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은데. 혹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건 아니지?”

“네, 음식은 맛있어요!”

내 대답에 공작부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배가 부르니?”

“배가 고프진 않아요.”

“한창 자랄 때인데 배부르게 먹지 않고.”

안쓰러움이 담긴 목소리에 나는 슬쩍 식기를 들었다.

“배가 부르면 잠도 오고 몸이 둔해지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

“보육원에는 일손이 부족해서….”

음, 이건 아닌 모양이다.

“근데 이제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랑 아버지도 있으니까 잔뜩 먹어도 되겠어요!”

나는 냉큼 말머리를 돌리곤 급히 스푼을 들고 스튜를 푹 퍼서 입에 넣었다.

사실 음식은 맛있어서 먹으라고 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몇 스푼 더 먹는 거로 충분하단다.”

곁에 앉은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내 뺨을 가볍게 닦아주었다.

“식사량은 조금씩 늘려가면 되지.”

“네.”

결국 나는 평소보다 1.5배는 더 많은 식사를 하고서야 식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윽, 배불러.’

이렇게까지 몸이 무거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감각이 낯설었다.

“오늘은 외출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이면 오브리 공작을 두고 혼자 다녀오고 싶었다.

‘역시 그 키메라가 신경 쓰여.’

침대에 누워 있으면 괜히 생각나고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마 나와 처지가 썩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지?’

고민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때마침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자, 누군가가 내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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