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커흡, 사, 살려… 푸헙, 헉, 살려주세…!”
물에 빠진 이노스 오브리가 허우적거리며 버둥거렸다.
연못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버둥거릴수록 점점 더 몸이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노스 오브리는 수영을 못 한다. 그걸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물이 무섭다는 얘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으니까.
“커흑…!”
부족한 숨에 물이 코로 세차게 넘어왔다. 막 정신이 몽롱해지려는 때였다.
“이노스!!”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목소리에 반응할 힘도 기운도 없었다. 점점 더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에 막 정신을 놓으려는 때였다.
물이 크게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위로 뻗었던 손이 거세게 붙잡혀 몸이 끌어당겨졌다.
“푸학…!”
순식간에 코로 밀려들어 오는 공기에 숨통이 확 트였다.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 또렷해졌다. 이노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콜록, 콜록! 콜록….”
“이노스! 괜찮으냐, 다친 데는…, 아니. 의원! 당장 의원을 불러!”
눈가의 물이 주르륵 다 흘러내리자 흐릿했던 시야가 한층 또렷해졌다.
눈앞엔 새하얗게 질린 낯의, 평소의 모습이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늘 흐트러짐 없는 차림을 유지했던 아버지의 재킷이 바닥을 나뒹굴고 언제나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쫄딱 젖어 엉망이었다. 그가 온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이노스, 너!!”
작은 목소리에 샤콜 오브리가 바로 반응해 제 아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대체 뭘 하는 거냐! 물도 무서워하는 녀석이 죽고 싶어서 작정했느냐? 도대체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샤콜 오브리가 소리치는 말에 이노스 오브리의 눈이 한껏 커졌다.
“알고, 계셨어요?”
“뭐?”
“제가… 수영을 못하는 거, 물을… 무서워하는 거요.”
“넌 내가 눈뜬장님으로 보이는 거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만히 누워 있어, 곧 의원이 올 거다.”
샤콜 오브리의 험악한 표정에 이노스 오브리가 입가를 허물어뜨렸다.
혼이 나고 있는데도 어쩐지 바보처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졌어.’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벗어난 이노스 오브리가 멍하니 생각했다.
그것도 완전히 패배다.
이노스 오브리는 이런 표정의 제 아버지를 볼 수 있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노스는 아버지가 늘 제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버지의 관심은 오로지 어머니에게만 닿아 있노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노스, 대체 뭘 하느라 빠졌느냐고 물었잖느냐!”
“걔랑…, 아니. 아네트랑 놀다가 실수로….”
“아네트…?”
이노스 오브리의 말에 샤콜 오브리가 미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저랑 놀다가 물에 같이 빠졌…는데….”
이노스 오브리가 천천히 대답하며 연못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노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런, 젠장!”
동시에 샤콜 오브리가 체통이라곤 다 던져버린 채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그대로 연못을 향해 뛰어들었다.
***
‘추워.’
연못 아래로 느리게 가라앉으며 든 생각은 다소 건조했다.
생각해 보니 수영을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귀찮은 걸 빨리 떼어내려고 했을 뿐인데.’
그래도 숨을 참는 것은 꽤 익숙했다.
물에 얼굴이 처박히는 일이 흔하진 않다고 하지만, 내게는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막 물에 빠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샤콜 오브리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모양인지, 이노스 오브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기는 내 승리네.’
이노스 오브리도 인정할 것이다.
이노스 오브리가 수영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면 성립되지 않았을 내기였지만 말이다.
‘난 대체 이노스 오브리가 수영을 못 하는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참나, 진짜 이젠 내 것도 아닌 기억이 주는 정보력이 놀라울 정도다.
꼬르륵-
폐 속 가득 머금고 있던 공기가 거의 빠져나갔다. 서서히 호흡 충동이 들었다.
‘이대로 죽는 것도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죽으면 복수고 뭐고 떠올릴 수 없다는 거잖아.
그건 나쁘지 않다. 어쩌면 난 줄곧 이렇게 편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숨이 막혔다.
고통스러웠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입이 벌어지고 연못의 물이 해일처럼 코와 목구멍을 뚫어가며 넘어왔다.
숨을 쉬고 싶은데, 꽉 들어차는 물로 인해 들어오는 공기가 없다.
머릿속이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정신이 멍해졌다.
‘와, 여기서 죽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끝인 것만 같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연못의 바닥까지 거의 다 내려온 듯했다.
느리게 눈을 감으려는 때였다. 물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등지고 누군가가 코앞까지 내려와 내 허리를 단숨에 낚아챘다.
샤콜 오브리였다.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중지에 끼고 있던 녹색 보석이 박힌 반지가 은은한 녹색 빛을 내더니 그의 손바닥에서 작은 꽃을 피웠다.
샤콜 오브리가 꽃 한가운데서 씨앗을 빼내더니 그것을 내 어금니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화악-!
꽉 막혔던 숨통이 확 트였다.
아직 주변은 새파란 물로 가득 차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샤콜 오브리가 눈을 가늘게 뜨곤 내 안색을 확인하더니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촤아악!
물살을 가르는 거친 소리가 들리더니 부드러운 풀이 손끝에 닿았다.
“콜록, 콜록!”
나는 주저앉아 먹었던 물을 토해 내며 두 팔로 바닥을 짚고 부족한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어금니 안쪽에 있던 작은 씨앗이 데굴데굴 굴러 풀숲 위로 떨어졌다.
“너…!”
샤콜 오브리의 매서운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나는 간신히 호흡을 진정시키곤 표정을 갈무리한 뒤 방긋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오라버니랑 놀다가….”
고개를 돌리자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세상이라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노스 오브리가 있었다.
‘쟤는 또 왜 저래?’
혹시 충격받았나 싶어서 내가 괜찮다고 입술을 달싹이며 손을 흔들었지만, 반응은 없었다.
‘수영도 못 하는 애한테 너무 심했나?’
그래도 충분히 안전거리를 다 계산하고 저지른 일인데.
“둘 다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 의원에게 살펴달라고 할 테니 우선 방으로 돌아가서 얼른 따뜻한 물로 씻거라.”
“네, 아버지. 죄송해요.”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샤콜 오브리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쫄딱 젖어 물을 뚝뚝 흘리는 옷을 짜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조금 과했던 모양이다.
“흑, 아가씨…. 허어어엉….”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아가씨.”
한쪽에서 굳은 채 서 있는 메리와 골드에게 다가가자 메리가 울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한 울음에 내가 당황해서 그녀를 보고 있자 이번엔 골드가 굳은 낯으로 안부를 물었다.
“응, 괜찮아! 놀다가 빠졌을 뿐인걸. 걱정했구나, 미안해.”
“허어엉…. 어디 다치신 덴 없으시구요?”
메리가 내 몸을 이리저리 만지며 상처를 살폈다.
내가 괜찮다며 자리에서 방방 뛰고 있으니 뒤에서 오브리 공작이 당장 방으로 가라고 호통을 쳤다.
“아프지 마세요, 다치지도 마세요…. 아가씨께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주인님도 주인마님도 크게 슬퍼하실 거예요.”
“응, 앞으론 조심할게. 이런 일 절대 없을 거야. 약속.”
이노스 오브리와의 관계도 해결했으니 물에 빠질 일은 이제 없을 거다.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메리가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손가락을 걸어왔다.
“정말, 사랑스러우시다니까….”
그게 울면서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방으로 돌아가 씻고 의원에게 검사받은 나와 이노스 오브리에겐 5일의 요양 처방이 내려졌다.
그건 단언컨대 그야말로 지옥의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