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30)

<15화>

“희귀 생물이라고 해서 샀는데 영 짜증 나는군. 성격이 사나워서 도통 길들지도 않고 작아서 뭐 경비용으로 쓸 수도 없고.”

주인이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나는 천천히 숨을 삼켰다.

“키메라….”

표범과 비슷한 검은색 줄무늬를 가졌지만, 귀는 사막여우처럼 크고 머리에는 아주 작은 뿔이 뾰족 튀어나와 있었다.

꼬리는 두 개였는데 둘 다 축 처져서 기운이 없어 보였다.

오래전, 미친 과학자가 본격적으로 살상용, 전투용 키메라를 만들기 전에 실험작들이 있었다.

‘키메라에 손을 댄 건 그 미친 과학자뿐이었으니까.’

키메라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신을 기만하는 행위라거나 생명을 경시한다거나 불쌍하다거나 하는 말들.

- 캬아아악!

하지만, 키메라의 살상 능력을 알아본 자들이 입을 다물어버리자 결국 알음알음 유통되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두 생물의 장점만을 합쳐 만든다는 그 끔찍하고 괴이한 생물체는 수명이 짧았다.

또한, 오로지 명령만을 따랐기에 지성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키메라를 만든 뒤로 미친 과학자의 후원이 한층 늘어났다.

‘이것도 실패작인 모양이구나.’

실패작이든 실험작이든, 나와 같은 처지가 분명했다.

순간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녀석이 나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잠시 녀석을 쳐다보다가 느리게 몸을 돌려 가게를 지나쳤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브리 공작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으악, 미쳤지.’

내가 후다닥 달려가자 그는 여전히 지갑을 꽉 쥔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흠.”

오브리 공작이 흘긋 나를 보며 말했다.

“뭐, 갖고 싶은 건 없나? 이런 평민 가게의 물건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네가 원하면 특별히 사 줄 수도 있고.”

“네?”

또 뭘 사려고.

장난감 가게에 옷 가게를 털고도 이 사람은 뭔가 부족한 걸까?

‘이게 바로 돈지랄이구나.’

이 사람은 성격이 오만해서 그럴 법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뤄질 텐데.

“저는 아버지가 오늘 사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수도 구경도 즐거웠어요.”

나는 왁자지껄한 수도를 멀뚱히 바라보며 말했다.

“평생 나와 보지 못한 곳이라서요.”

오브리 공작의 시선이 내게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녀 본 적도, 곁에 누가 있어준 적도, 손을 잡아준 적도 처음이라서 무척 좋았어요!”

그러니까 제발 뭐 사 준다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전부 아버지 덕분이에요!”

내가 활짝 웃자 오브리 공작이 미간을 살짝 움찔하더니 낮게 혀를 찼다.

“선물은 충분히 받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요, 아버지.”

내가 손을 슬쩍 내밀자 오브리 공작이 못마땅한 얼굴로 몸을 홱 돌렸다.

‘어휴, 어렵다. 정말.’

무시당한 손을 다시 거두어들이려는데 오브리 공작의 오른손이 슬쩍 소매 밖으로 쭉 뻗어 나왔다.

손바닥을 슬쩍 펴고 있는 모양새가 와서 잡으라는 제스처가 분명했다.

‘…진짜, 저 망할 성격.’

저렇게까지 솔직하지 못한 남자에게 고백받아 결혼한 공작부인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버지, 손잡아도 될까요?”

“그러든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손을 냉큼 뻗어 잡는 손길이 퍽 서투르다.

그는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마차에 올라탈 때도.

‘어?’

마차에 올라서도.

“…….”

저택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이 사람은 정도를 모르나?’

그리고 마침내 방 앞에 도착했을 때에야 그는 손을 놓았다.

손이 뜨거워서 후끈거렸다.

“뭐, 좀 귀찮았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네….”

“그럼 쉬도록.”

나는 멀어지는 오브리 공작의 등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어.’

정말로 그랬다.

나는 침대 위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역시 그 키메라, 자꾸 눈에 밟히네….’

할 수만 있다면, 데려오면 좋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다.

‘합성 마석이 빨리 상용화가 되면 좋을 텐데.’

상품화된다면, 분명 내 몫의 돈도 생길 테니까.

눈이 끔뻑끔뻑 감겼다.

밀려오는 수마는 순식간에 정신을 어둠으로 끌어내렸다. 이른 밤이 내려앉았다.

***

“…….”

샤콜 오브리 공작이 매일같이 산책하는 산책로 끝에 있는 연못 앞에 선 이노스 오브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라고 해서 오긴 했는데….’

두 살이나 어린 애의 말에 제가 왜 휘둘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실제론 열 살이랬으니까 세 살 차이인가?’

애초에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

설령 만에 하나, 그 어린애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늘 엄한 표정을 지으며 웃지 않는 아버지가 그걸 드러낼 리도 없다.

‘그래, 그러니까 증명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거기까지 생각하니 여기에 나온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냥 돌아갈까 싶어 고민하는 찰나, 멀지 않은 곳에서 그의 죽은 여동생 대타가 모습을 드러내고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왔다.

아네트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있는 가짜.

가짜인 주제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노스 오브리는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노스 오브리는 아픈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어머니가 아픈 이유는 알고 있다.

자신이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여동생이 납치된 뒤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한 기억에 아직 갓난아기였던 제 여동생의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기억한다.

제비꽃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던 귀여운 아이였다.

그 아이의 대역을 누군가가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노스 오브리는 어머니가 아파서 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아버지의 허락이 없으면 어머니 역시 보러 갈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어머니 로사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다.

그도 그럴 게, 늘 엄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언제나 다정했으니까.

‘근데 저 표정은 뭐야? 어머니랑 아버지 앞에선 그렇게 생글거리더니….’

지금은 얼굴에 웃음기는커녕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표정이 없었다.

아니샤는 이노스 오브리를 발견한 뒤에야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왔네.”

“괜한 짓이라고 생각해서 돌아가려던 참이야.”

“아버지가 널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고 싶은 거 아니었어?”

“…아버지는 날 사랑하지 않아.”

아니샤가 흘긋 수풀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색을 강제로 빼앗긴 것만 같은 잿빛 눈동자가 금세 둥글어졌다.

“피곤하군.”

멀리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니샤가 미간을 찌푸리곤 도망가려는 이노스 오브리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오라버니, 누군가의 사랑을 가장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아?”

“뭐?”

“감정조차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의 상황….”

그녀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두 팔로 이노스 오브리를 품에 안았다.

“그러니까…, 죽음이야.”

이윽고 아니샤는 이노스 오브리를 끌어안은 채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야, 너 뭐 해.”

“이건 내가 너한테 억지로 놀자고 하다가 벌어진 실수야. 네 탓이 아니야.”

“야, 하지….”

“나는 아버지가 네 이름을 먼저 부르고 널 구한다는 데 이 자리를 걸게.”

그의 말을 끊어내고 제 할 말을 마저 한 아니샤가 이노스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몸을 던졌다.

몸이 잠시 허공에 뜬 순간, 그의 몸을 꽉 끌어안고 있던 아니샤가 귓가에 속삭였다.

“대신 내가 이기면 나 그만 귀찮게 하는 거야.”

풍덩-!

두 아이의 몸이 시원스럽게 새파랗고 투명한 연못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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