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30)

<11화>

“어머니가 널 딸로 여긴다고 네가 진짜 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너는….”

나는 그 이유 모를 적의를 가만히 마주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아, 얘 내가 자기 자리를 빼앗을까 봐 저러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 났던 이노스 오브리가 조금은 또래처럼 귀엽게 느껴졌다.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왜, 한낱 미물도 제 영역이 있다잖나.

“아니.”

나는 단호하게 대답해 주었다.

단언컨대 나는 추호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다.

가족? 사랑?

그런 꿈은 그날, 미친 과학자에게 뒤통수 맞아 죽을 때 가장 먼저 버렸다.

“난 너희랑 가족 따윈 안 될 거야.”

“…뭐라고?”

“네가 해달라고 빌어도 안 할 거야. 그게 걱정이라면 걱정하지 말라고.”

애초에 수명이 6~7년 남았는데 가족이라니 우스운 일이다.

내가 이 가문에 온 이유는 미친 과학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복수를 하려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서민보다는 돈 많은 상인이, 돈 많은 상인보다는 귀족이 훨씬 더 복수하기 쉽다.

사실 귀족가로의 입양은 예상에 없었지만, 나한텐 오히려 잘된 일이지.

“가족이, 될 마음이 없다고…?”

“응, 없어.”

“그럼 여긴 왜….”

“너도 알고 있다며? 여기서 딸 노릇을 하면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나는 이노스에게 다가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겨우, 그거?”

“응, 겨우 그거.”

거기에 있었으면 내게 남은 것은 또 실험체가 되는 끔찍한 미래뿐이었을 테니까.

나는 손을 뻗어서 이노스의 어깨에 올렸다.

“그러니까 어머니 앞에서 연기 잘해. 아까처럼 어벙하게 굴지 말고.”

날 보는 이노스의 얼굴이 이상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알았지? 오라버니.”

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다행히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족이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얘기다.

‘정말 가족이 될 마음이 있다면, 이 집안사람들이 뻔히 죽을 걸 알면서 이렇게 가만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 정말 웃음도 안 나와.

“아, 아버지…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가 조금 더 잘하겠습니다. 멍청해서 죄송해요….”

“이건 아버지를 위해서니까…. 날 사랑한다고 해줬잖아. 그러니까 이런 실험쯤은 얼마든지….”

“맛있게 하면 아버지께서 분명 칭찬해 주시겠지.”

진짜 가족이 아닌 이상 가족은 전부 허상이다.

사랑을 갈구하던 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비위가 상한다.

나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

달그락, 달그락.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퍽 경쾌하다.

아, 경쾌하다는 게 좋다는 의미는 아니고.

“시끄럽구나, 이노스. 식기를 다룰 땐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라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또 네 어머니에게 안겼다고 들었다. 몸이 좋지 않으니 그러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건.”

그래, 불편했다.

나와 오브리 공작, 그리고 이노스 오브리.

우리는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네 여동생보다도 못하구나.”

그거야 당연하지.

보육원에서 귀족 예법을 철저하게 가르친 데다 미친 과학자는 귀족도 아니고 식사도 안 주면서 내가 예법을 틀리는 걸 무척 싫어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이노스 오브리의 목소리가 한층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를 으득 갈면서 나를 노려보는 게 불똥이 괜히 나한테 튈 것 같다.

‘아, 귀찮아.’

축 처진 그를 곁눈질하다 다시 오브리 공작을 보았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되는 거지.’

어땠을지 그림이 훤히 그려졌다.

오브리 공작은 공작부인을 보호하겠다며 싸고돌았을 테고, 한창 사랑받았어야 했을 이노스 오브리는 외롭게 자랐을 거다.

‘왜 나한테 예민하게 구는 건가 했더니….’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고 씹으며 고민했다.

이대로 이노스 오브리와 오브리 공작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앞으로도 괜히 시비가 걸릴 것 같았다.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

오브리 공작은 본래 가족을 아끼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지독한 츤데… 아니, 지독히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도 사랑했지.’

폭주하면서도 제 아들은 공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상처 입힐 정도로.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각에 나는 식기를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뭔가 이상해.’

슬슬 외면하고 있던 걸 직시할 때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기억에 뭔가가 섞여 있다.

‘아니샤’로 살아온 삶 이외에 무언가 다른 기억이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

“아네트.”

“네, 아버지.”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들린 목소리에 시선을 옮기자 오브리 공작이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왜요?”

“식사 중에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는 거지?”

“아, 슬슬 배불러서요.”

“…배가 부르다고?”

오브리 공작은 물론 이노스 오브리까지 나를 기괴한 눈으로 보았다.

슬쩍 시선을 내리니 덜어놓은 샐러드 조금과 두세 조각 먹은 스테이크가 보였다.

“겨우 그거 먹고?”

“네…, 너무 적어서 불편하시면 더 먹을까요?”

“됐다.”

식기를 다시 드는 시늉을 하자 오브리 공작이 쌀쌀맞게 말했다.

고개를 기울이며 식기를 내려놓고 물을 홀짝거리고 있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보육원에서도 그 정도만 식사했나?”

“네, 배부르면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몸이 둔해지거든요.”

“몸이 둔해져?”

“수업도 받아야 하고 그날 할당된 일을 해야 했거든요.”

“일? 일도 시키나? 어린애들에게?”

이 사람은 무슨 세상 물정 모르는 귀여운 소리를 하는 건지.

“아버지,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특히나 샹그릴라 보육원은 상벌이 확실한 곳이었다. 잘하면 상을, 못하면 밥을 굶는 벌을 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배부르다는 감각은 꽤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여기에 온 첫날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아예 모르고 살았을지도.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식사를 마쳤으니 이만 가봐도 될까요?”

“…그러든가. 일주일 뒤부터는 가정교사가 올 테니 수업을 받도록 하고.”

“네.”

“그리고 그 전에 널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 북부에 한번 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네.”

담담하게 대답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탁, 소리가 나더니 그가 탁자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 채 뚱한 낯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다소 불량해 보인다.

“너는 통 뭘 묻지 않는군.”

“네?”

“무슨 수업을 받는지 누굴 소개받는지 언제 가는지 궁금하지 않은 건가?”

이상한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그걸 궁금해하면 뭔가 바뀌나요?”

“…뭐? 당연히 아니지.”

“근데 제가 그걸 뭐 하러 궁금해해요. 달라지는 게 없는데.”

내 말에 오브리 공작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내 그가 퉁명스러운 낯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나가 보라는 신호였다.

나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네려다 잠시 멈칫했다.

“아, 혹시 저 수도 구경 좀 다녀와도 되나요?”

“수도 구경?”

“네, 사실 제가 밖으로 나온 게 처음이라….”

말하는데 조금 부끄러워져서 뺨이 달아올랐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나는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지하실이나 보육원의 살풍경만 생각날 뿐이다.

“어렵다면 괜찮아요.”

“누가 안 된대?”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싶어서 물러나려고 했더니 오브리 공작이 반문했다.

“오늘은 일이 있다.”

“아, 네.”

본인 일이 있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뭐, 내일이라면 못 가줄 것도 없지.”

“네?”

“내일이면 가줄 수도 있다고 했다.”

혼자 가려고 했는데 따라오려고? 근데 같이 가주면 가주는 거지, 가줄 수도 있다는 건 뭐야?

내가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자 그가 미간을 좁혔다.

“가줄 수도 있다고.”

어쩌라고, 이 아저씨야.

불쑥 튀어나오려 한 반박을 애써 억누른 채 나는 가만히 웃으며 그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아, 설마….’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니겠지.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뭔가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설마설마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아버지…. 바쁘시겠지만, 저랑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흥,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특별히 가주마.”

샤콜 오브리 공작이 참으로 새침하게 말했다.

그 재빠른 대답에 순간 식당에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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