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30)

<6화>

“지금 뭐 하는 거니, 아네트. 네 어머니가 아프니 오늘은 이만 방으로….”

“엄마아!”

나는 천진한 아이처럼 두 손으로 머그잔을 쥐고 공작부인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의식은 있어 보였다.

“엄마, 이거 드세요. 금방 괜찮아지실 거예요.”

내가 잔을 내밀자 오브리 공작이 어깨를 확 붙잡았다.

“너!!”

그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흠칫 어깨가 반사적으로 굳었다.

“지금 뭘 하는 거냐!”

굳은 얼굴로 그가 외친 말이 쩌렁쩌렁 사방을 울렸다.

언성을 높이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다시 방긋 웃었다.

그러자 오브리 공작이 순간 멈칫했다.

“괜찮아요, 아버지. 저 아버지 닮아서 천재잖아요!”

“아네트…. 콜록. 이리, 줘보렴. 우리 딸.”

뒤에서 마른기침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다시 몸을 휙 돌렸다.

“네, 엄마. 여기요.”

“로사나….”

“내 딸이, 내 아이가 처음으로 준 건데 어떻게 거절해요.”

공작부인은 여린 낯으로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정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잔을 입술에 대고 기울였다.

“음, 달구나. 달고… 살짝 쌉싸름하네.”

“네, 맛있죠?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얼른 나으세요, 엄마.”

“그래, 얼른 나아야지. 함께 나들이도 가고 쇼핑도 가자꾸나.”

“네.”

나는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는 오브리 공작에게도 허리를 숙이곤 몸을 돌려 방을 나왔다.

쿵.

문을 닫은 뒤 곧장 닫힌 문에 기대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너!!”

“지금 뭘 하는 거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괜찮아.’

여기는 미친 과학자의 실험실이 아니다. 다소 실수해도 실험당하진 않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아프지 않아.’

이곳은 평화로운 데다, 작은 실수의 대가로 고통이 돌아오는 곳이 아니다.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메리와 골드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차….’

실수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 척 해사하게 웃으며 검지로 입술을 꾹 눌렀다.

“사실 어른한테 혼난 게 처음이거든.”

거짓말이다.

보육원에서도 미치광이 과학자의 실험실에서도 늘 혼이 났다.

“이건 비밀이야, 알았지?”

웃는 얼굴로 작게 중얼거린 후, 나는 메리와 골드를 데리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

“당신, 간신히 찾은 우리 딸한테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네게 이상한 걸 먹이려고 하니까 순간적으로 화가 났을 뿐이야.”

“그래도 그 어린아이가 날 생각해서 가지고 온 거잖아요. 아무리 오래 보지 못해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앞으론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지 마세요. 당신 그거 나쁜 버릇이에요.”

“…알겠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따지는 로사나에게 샤콜 오브리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로사나, 기침이 멎었군, 몸에 이상은 없나?”

샤콜의 말에 로사나의 눈이 커졌다.

“어…? 그러게요, 숨 쉬는 것도 괴롭지 않고 기침도 나지 않아요. 몸도 따뜻한 느낌이라 춥지도 않은 것 같아요.”

로사나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지 제 몸을 몇 차례나 주무르며 말했다.

‘정말 그게 효과가 있는 건가?’

샤콜 오브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아이에게 로사나가 아프다곤 했지만, 그녀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건 불치병이다.

‘이런 효과가 있는 약은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걸 단시간에 어떻게 구한 거지?

‘우연인가?’

아니다, 그런 것치고 아이는 자신이 천재라고 말했다. 확신이라도 있는 듯이.

미간을 좁힌 샤콜 오브리가 오만하게 손가락을 까딱했다.

“페드로.”

“네, 주인님.”

“아네트에게 이 음료를 준비해 준 메리와 골드를 데려와라.”

“네, 알겠습니다.”

샤콜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로사나의 손을 느리게 붙잡았다.

“몸이 편안할 때 자도록 해, 로사나.”

“응, 아네트에게… 꼭, 사과해요….”

“…그러지.”

아니나 다를까, 로사나는 오늘 제법 무리했던 탓인지 금세 잠들었다.

샤콜이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느리게 쓸어 넘겼다.

“아니샤….”

완전히 잠이 든 로사나를 내려다보는 샤콜의 눈이 느리게 침잠했다.

그가 아니샤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사진을 봤을 때부터였다.

로사나의 몸은 하루가 지날수록 나빠지고 있다.

아이에겐 다소 잔혹할지 모르지만, 그는 아내를 살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다소 몸이 약한 것을 제외하면 그래도 건강했던 그녀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시점은 십 년 전, 한 사건으로 인해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부터였다.

십몇 년 전, 제국에는 한동안 반귀족파가 들끓었다.

원인을 찾자면 선대 황제의 멍청한 통치 때문이었다.

선대 황제는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폭군으로, 사치와 향락뿐만 아니라 전쟁마저 즐기는 쓰레기였던 터라 매일같이 백성들 사이에서 병사를 차출했다.

전쟁하고 향락을 즐길 돈이 부족하면 세금을 끊임없이 올렸고 귀족들에게서 돈을 뜯어 갔다.

귀족들은 그 돈을 메꾸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영지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십 년 전부터 이어진 그 끔찍한 통치와 끝나지 않는 전쟁에 하나뿐인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가족을 잃은 제국민의 분노가 이윽고 폭발했다.

귀족이 한 명이라도 보이면 모두가 돌을 던졌다.

귀족이 검을 들고 위협을 해도 이미 소중한 사람을 잃은 제국민에겐 두려운 것이 없었다.

겁을 주겠답시고 목을 베고 또 베면 도리어 그들은 한층 더 분노해 저택을 습격하기도 했다.

사방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그것은 이내 잔인한 보복으로 돌아왔다.

그때 발발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이 훔치기’였다.

내 자식을 잃었으니, 네 자식도 잃어보라는 보복심에서 일어난 범죄였다.

그러면서, 귀족가의 아이들이 실종되는 일이 늘어났다. 오브리 공작도 저택의 경비를 강화했고 아이 곁에 있는 사람은 엄선된 이들로 선별했다.

그럼에도, 그는 지키지 못했다.

그래. 샤콜 오브리는 딸을 지키지 못했다.

꽤 오랫동안 가문에 충성했던 유모가 설마하니 제 아들을 잃은 후 보복심을 품었을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는 와중, 명망 있는 후작가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이 납치된 후 갈기갈기 찢겨 죽은 채 발견됐다.

아들을 잃은 후작은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이후 목숨을 위협받던 귀족들과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어버린 귀족들이 후작을 필두로 검을 뽑아 들었다.

겨우 열댓 살밖에 되지 않았던, 황자를 앞세운, 쿠데타였다.

제국민의 분노에 더해 귀족의 분노까지 더해져 그들이 앞장선 쿠데타는 다행히 성공했다.

폭군이 사라지고 나라가 조금씩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하자 잃어버린 아이들도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의 딸이 그러했고 청의 지배자인 아르고 가문의 아들이 그러했다.

다행히, 아르고 가문은 얼마 전에 아이를 찾아냈다.

그러나, 샤콜 오브리는 그 쿠데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문의 증표를 목에 매단 채 새까맣게 타버린 어린아이를 찾았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아직도 아이가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그의 아내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데려온 것뿐이었는데.’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제 딸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

“처음 뵙겠습니다, 각하. 저는 아니샤라고 합니다.”

처음 만난 순간, 그 아이가 정말로 자라서 돌아온 줄만 알았다.

제 품에서 무사히 자랐다면 저런 얼굴로 웃고 저런 표정으로 말을 할 것 같아서.

“흑…, 정말 어머니가 맞으시죠? 제 어머니… 맞죠…?”

울음을 터뜨리는 것도,

“아, 네, 네에….”

낯설어 몸을 움츠리는 것도.

무사히 아이를 찾아 다시 데려온다면 정말로 저렇지 않을까 싶어서.

“저는 이렇게 아버지랑 어머니를 만난 것만으로도 마치 꿈만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놀랐다.

줄곧 꿈에서나 듣던 그 말을 그 애가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웃기는 일이야, 전부 허상일 뿐인데.”

그 아이는 가짜다.

그만은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됐다.

산후조리를 하느라 아네트를 제대로 보지 못한 로사나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네트의 눈동자는 그를 닮아 옅은 보랏빛이었다.

‘무슨 실험이라도 당한 게 아니라면 눈 색이 바뀔 리가 없지.’

그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정중했다.

“들어와라.”

“네, 주인님.”

“그 차는 어떻게 된 거지?”

“아, 말린 려화를 빻아 설탕과 함께 개어낸 차입니다. 아가씨가 어머니께 드리면 아주 좋을 거라고 하셔서….”

“그 애가 그랬다고?”

“네.”

메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지시를 내렸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움직였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민간요법이라도 되는 건가?’

조금 예민하게 군 것 같기도 하다.

“아이는 어떻지?”

“지금은 방에 돌아가서 쉬고 계십니다.”

“…그렇군.”

말이 끝났음에도 축객령이 없다. 그것이 의아해 고개를 기울인 메리가 곧 작은 탄성을 뱉었다.

“아! 아가씨가 겁을 먹으신 것 같았어요. 혼난 게 처음이셨다고….”

샤콜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쯧, 귀찮군. 하는 수 없지.”

그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리곤 로사나에게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네, 주인님.”

“…애들이 좋아하는 게 뭐가 있지?”

방을 나서던 샤콜 오브리가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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