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내 질문에, 후작 부인이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왈칵 얼굴을 구겼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어떤 변수가 될 줄 알고―”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어깨를 으쓱인 나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휙 몸을 돌렸다.
“어쨌거나, 이게 예정되어 있었던 결말이라는 거지.”
“…….”
“미련 없어서 좋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곧장 중앙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말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 * *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카리에가 수감되어 있는 곳이었다.
벽에 기대앉아 있는 카리에는 넋이 나간 듯이 멍하니 반대편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더럽고 어두운 곳에 몇 시간 동안 홀로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곧 반역죄로 불명예스럽게 대중 앞에서 목이 잘려야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뭔가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카리에, 하나만 묻자.”
내가 지척으로 다가갈 때도 미동조차 하지 않던 카리에는, 내 말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주었다.
산발이 된 머리와 옷차림 때문일까. 카리에의 텅 빈 눈동자는 더욱 공허해 보였다.
“넌, 왜 ‘에리카’를 그렇게 싫어했던 건데?”
카리에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에리카를, 싫어해……?”
그녀는 멍하니 혼잣말하듯 되물었다가, 이내 픽 웃었다.
“맞아……, 나 에리카 싫어하지. 그래, 싫어해. 이건 싫어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싫어해…….”
카리에가 횡설수설하듯 중얼거렸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나는 이 질문을 하기 위해 카리에를 찾아왔다. 이유를 듣고 싶었던 나는 다시금 차분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거, 생각보다 감정 소모가 엄청 크거든. 천민의 피가 섞여 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는 사람을 죽일 만큼 싫어할 수 없어.”
그것도 쓸모가 많아서, 후작과 후작 부인은 죽이지 않기로 결정한 패를 말이다.
내가 아는 카리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앞뒤 분간 못 하고 감정에만 휘둘리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왜 카리에는 유독 에리카에게만 그토록 악랄했던 건지.
나는 카리에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동요 없는 내 눈동자를 빤히 응시하던 카리에의 공허한 눈동자에 일순 빛이 스쳐 갔다.
“하하…… 이제야 알겠어.”
카리에의 입술이 웃는 듯 우는 듯한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너, 에리카가 아닌 거지?”
“……뭐?”
순간, 나는 놀라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지금껏 한 번도 들키지 않았던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 들켜 버린 까닭인지, 나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스스럼없이 반응할 수가 없었다.
정곡을 찔린 듯한 내 반응에, 카리에의 하늘색 눈동자가 광기에 젖어 번뜩였다.
“그래, 그랬던 거였어……. 에리카가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흐려진 말끝은 광기 어린 폭소에 삼켜졌다.
하하하, 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적요했던 공간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재미있는 얘기라도 들은 것처럼 미친 듯이 웃던 카리에가 이내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당연하지. 에리카가 절대 그럴 리 없지……. 순수하고 멍청한 에리카는…… 절대로…….”
카리에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절대로 날 싫어할 수 없어…….”
눈물이 흐르는데도, 입꼬리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활짝 웃고 있어서 뭔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카리에는 분명 나를 보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가 담아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한동안 울면서 웃기만 하던 카리에가 돌연 불쑥 내뱉었다.
“네가 너무 커서.”
앞뒤 맥락 없이 갑자기 꺼내진 말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카리에는 내 대꾸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듯 이어 말했다.
“네가, 고작 반쪽짜리 귀족뿐인 너 따위가― 나보다 너무 커서.”
“…….”
“내가 커야 맞는데, 응당 온전한 귀족인 내가 더 커야 하는데, 귀족은 항상 천한 것들보다 우월해야 하는데…….”
“…….”
“근데 네가 나보다 더 크잖아. 커서, 네 그림자로 나를 집어삼키잖아.”
카리에가 울 듯이 웃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네가 나를 폐품으로 만들었잖아…….”
그런 네가 너무 싫어. 싫어. 싫어서 죽이고 싶어. 죽여 버리고 싶다고. 그녀가 횡설수설하듯 쉼 없이 말을 토해 냈다.
나는 망가져 가는, 어쩌면 이미 망가져 있던 카리에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싫어한다’고 자신을 세뇌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리카.”
카리에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내가 걱정된 건지, 세이룬이 내 손을 감싸 쥐며 나를 불렀다.
세이룬의 입에서 흘러나온 ‘에리카’란 이름에, 쉼 없이 중얼거리던 카리에가 돌연 중얼거림을 뚝 멈추더니 이내 발작하듯 소리쳤다.
“에리카라 부르지 마―!”
순간 흠칫할 정도로, 외침은 절박했다.
“저건 에리카가 아니야! 에리카가 아니라고! 하하, 에리카가 아니었어! 그래, 에리카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잖아? 에리카가 감히 나한테 그럴 리가 없지. 그 멍청하고 순진한 게 절대로 나를 다치게 할 리가 없어. 에리카가 아니었어, 아니었다고. 하하…….”
카리에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더러운 감옥 바닥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원작 에리카와 카리에 사이에 무슨 우여곡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가해자의 과거 따위를 피해자인 내가 고려해 줄 이유는 없었다.
나는 카리에의 처벌을 원했고, 카리에는 본인이 지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는 세이룬과 함께 지하 감옥을 벗어났다.
* * *
이렌텔의 대관식은 대대로 황궁의 홀 중 가장 크고 장대한 홀인 카델리아 정궁의 화이트 홀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대관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폐제를 비롯한 죄인들의 재판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폐제 측을 변호하는 변호인을 붙이기는 했지만, 죄목을 입증하는 검사로 선임된 사람이 킬리언 르 세네카 소공작이었기 때문에 변호인은 있으나 마나 했다.
폐제의 압력으로 저택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온갖 고문서와 법률 서적을 정독했던 킬리언은 변호인이 변호할 틈도 주지 않고 폐제의 죄목을 차근차근 입증해 나갔다.
억지를 써서라도 킬리언의 논리에 반박해 보려던 변호인이 결국 변호를 포기했을 정도니, 재판장에서 킬리언의 활약은 더 말 안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긴, 칼릭스가 감히 바네사를 죽이려고 했는데, 킬리언이 제정신이겠어?’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완전히 눈이 돌아가 버린 그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본인의 무력을 사용하는 대신, 본인의 주특기인 펜으로 확인 사살을 넘어서 아예 부관참시까지 해 버렸다.
죽어서도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본디 반역죄를 저지른 자는 만백성이 볼 수 있도록 수도 광장에서 목을 자르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폐제 이하 죄인들은 일전에 황족, 그리고 황실의 외척이었음이 감안되어 특별히 화이트 홀 앞의 뜰에서 귀족들이 보는 가운데 목을 자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안 그래도 내전으로 어수선한 상황인데, 대놓고 백성들 앞에서 한때 황제였던 자의 목을 자름으로써 괜히 백성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인을 처형하라.”
가장 상석에 앉은 사피엔이 명령하자, 그 아래 있던, 대관식 때 새로 임명된 황제의 친위대장이 크게 외쳤다.
“죄인을 처형하라―!”
명령을 들은 황실 기사 두 명이 가장 먼저 셀루리아 폐후작 부인, 델레미아를 끌고 왔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델레미아의 머리를 모탕에 걸쳤다. 그간의 ‘셀루리아 후작 부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볼품없는 여자가 모탕 위에 힘없이 머리를 맡겼다.
신호를 받은 회자수가 단숨에 델레미아의 목을 내리쳤다. 그렇게 몇 번의 도끼질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숨이 끊긴 목이 도르륵 굴러떨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켜봤다. 조금씩 떨리는 손은 세이룬이 꽉 잡아 주었다.
다음으로 나온 사람은 셀루리아 폐후작, 펠리페였다.
역시 그간의 ‘셀루리아 후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남자가 기사들 손에 우악스럽게 붙들려서 모탕 위에 목을 처박았다.
도끼가 내려처질 때마다 거세게 울리던 비명 소리는 도끼질이 진행될수록 점차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비명이 완전히 멎었을 때, 목이 굴러떨어졌다. 나는 이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펠리페 다음으로 나온 사람은 카리에였다.
어제 감옥에서 보여 줬던 광기 어린 모습은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카리에는 지극히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천천히 귀족들을 훑어보던 하늘색 눈동자가 내게 닿았다. 잠시 그렇게 머물렀던 시선은 곧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떨어졌다.
그런 카리에를 보면서, 문득, 나는 죽은 샤샤를 찾으러 무작정 카리에의 방으로 쳐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에리카.”
복부에서 느껴지는 아픔도 잊은 채 비를 맞으며 달려간 너의 방.
그곳에서 너는 더없이 행복하게 웃으며 따뜻하게 데워진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서 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렇게 인사를 건네던 너는, 아름답고 안락한 방 안에서 최고급 로브까지 차려입은 단정한 모습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디 있어.”
네 인사를 듣고 피가 역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던 나는, 비를 맞아 더욱 헝클어진 머리로 꿉꿉하고 낡은 슈미즈를 입은 채 적의에 불타고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가 됐어.’
나는 최고급 비단으로 만들어진 에인시아의 제복을 입은 채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가해자의 파멸을 지켜보고 있었고, 카리에는 도망치기 위해 입은 먼지 묻은 평민복 차림으로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모탕 앞으로 끌려 나와 목을 얹었다.
세이룬의 손을 맞잡고 있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세이룬이 괜찮다는 듯, 반대편 손도 가져와 잔뜩 긴장한 내 손을 토닥여 주었다.
퍽.
회자수가 도끼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도끼가 내려쳐질 때마다 간간이 억눌린 신음 소리만 흘러나올 뿐, 카리에는 끝끝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도르르르. 수 번의 도끼질 끝에 잘린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숨을 잃은 그 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죽음을 되갚아 주는 것으로, 내 복수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