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 *
아무리 지금이 추운 겨울이라 하더라도, 얼음으로 만든 과자라 그런지 가격은 꽤 비쌌다.
컵에 담긴 얼음과자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넣자, 얼음 특유의 찬 기운과 함께 달콤함이 입 안을 가득 휘감았다.
‘이렇게 차가운 데도 달달함이 느껴지다니, 대체 설탕을 얼마나 많이 넣었으면…….’
그렇게 농도 짙은 설탕물을 자연의 힘으로 얼린 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렇게 비싸지.
나는 얼음을 오도독 씹어 먹으면서 과자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그렇게 손에 들린 것을 입에 막 넣으려 했을 때였다.
“…….”
움찔할 정도로 빤한 시선이 관자놀이에 꽂혔다. 나는 과자를 입에 넣으려다 말고 시선이 느껴지는 쪽을 흘끗 쳐다봤다.
그곳에는 세이룬이 내 손에 들린 과자를 뚫어질 정도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음, 세이룬, 이거 먹을래?”
나는 내 입 안으로 직행하던 과자의 경로를 우회해서 세이룬에게로 내밀었다.
그가 티가 날 정도로 기뻐하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 주시는 겁니까?”
이거 먹겠냐는 말에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면서 쳐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안 주고 나만 먹을 수 있겠어.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응, 너 주는 거야. 자, 아― 해 봐.”
“……아.”
나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인 세이룬이 귓가를 붉히며 입을 벌렸다.
나는 도톰한 붉은 입술 안으로 얼음과자를 넣어 주었다.
세이룬이 과자를 완전히 삼킨 것을 확인한 뒤 손을 물리려는데, 문득 그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 왔다.
“세이룬?”
“손에…….”
그렇게 중얼거리던 세이룬이 내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손가락에 묻은 설탕물을 핥아 가져갔다.
“……설탕물이 묻어서요.”
슬쩍 고개를 든 그가 생긋 웃고는 내 손가락을 제 손으로 한 번 스윽 문지른 뒤 담백하게 놓아 주었다.
“……!?!?”
사고 회로가 멈췄다.
나는 잠시 그대로 몇 초간 굳었다가, 이내 한 손으로 미간을 짚었다.
‘본인은 정말로 딱 내 손에 묻은 설탕물만 없앨 생각이었나 본데…….’
나만 또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지고 그러지, 또.
울고 싶다.
우뚝 걸음을 멈춘 채 심각한 얼굴로 미간만 짚고 있으려니 세이룬이 의아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에리카?”
“……갑자기 안구에 습기가 차서 그만. 별거 아니야. 이제 가자.”
나는 애써 씩씩하게 웃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녹이 슨 그네처럼 걸음이 삐걱거리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일 터다.
걸어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세이룬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리카, 지금 같은 쪽의 팔과 다리가 동시에 나가고 있습니다.”
“…….”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 * *
그 뒤로는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부스에서 진행하는 소소한 게임에 참여하거나, 종이꽃으로 화환을 만드는 행사에서 화환을 만들어 세이룬의 머리에 얹어 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축제를 즐겼다.
“나 화환은 처음 써 봐.”
나는 한 손을 머리 위로 들어서 세이룬이 만들어 준 종이 화환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세이룬이 묘하게 설레어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에리카에게 처음으로 화환을 씌워 드렸습니까?”
“응, 처음이야.”
“처음, 처음…….”
달콤한 꿀을 녹여 먹듯 중얼거리던 세이룬이 방긋 웃음 지었다.
나는 그 보배로운 광경으로부터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프롬나드 음악회?”
아무렇게나 시선을 돌린 곳에는 축제를 기념하여 ‘프롬나드 음악회’가 개최된다는 홍보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포스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프롬나드 음악회는 신교 측에서 단돈 동화 2개로 입장할 수 있도록 개최한 간이 음악회로, 신분고하로 인한 규제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까지 음악을 상류층에서만 향유해 오던 과거를 생각하면 참으로 획기적인 음악회가 아닐 수 없었다.
“가고 싶으십니까?”
뒤따라온 세이룬이 내게 물었다.
나는 가만히 포스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연고가 없거나 학대당하는 아동들을 후원하는 것에 이어, 음악에 대한 접근을 대중에게로 확장시키는 신교라니.
‘그건, 그냥 나 때문에 곁들인 설정이잖아.’
내가 현실에서 고통받았던 원인이, 자신의 소설에서는 없었으면 싶어서.
정말이지, 신아의 세심함은 소설 설정이나 학점 관리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드러났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목을 가다듬으며 공연 시각을 확인해 보니, 세 번째 공연이 곧 시작할 예정이었다.
나와 세이룬은 곧장 음악회가 개최되는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동화 2개씩을 주고 들어간 천막 안은 정말로 ‘음악회’처럼 정갈하면서도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천막이 작았던지라 천막 안의 의자도 적었는데, 늦게 들어온 까닭인지 의자는 모두 자리가 차 있었다.
나와 세이룬은 의자 뒤편에 나란히 섰다. 세이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리에 앉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어왔지만, 이미 신이 잔뜩 난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음악회가 시작하길 기다리는 나를 바라보던 세이룬이 조용히 물어왔다.
“음악이 그렇게 좋으십니까?”
“응, 좋아. 정말 좋아해.”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 대답은 곧장 나왔다.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왠지 흠칫한 세이룬이 “그렇습니까……”하고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음?’
그 모습이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도 잠시, 음악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말에 나는 시선을 무대 쪽으로 돌렸다.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연주회가 시작했다.
* * *
음악은 주로 클라비코드를 중심으로 한 합주곡이었다.
‘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바이올린 합주에 중간에 클라비코드 독주를 첨가한 거지만.’
만약 바이올린과 클라비코드를 동시에 연주한다면 클라비코드의 가녀린 소리는 금방 묻혀 버리고 말 테니까.
클라비코드는 하프시코드보다 음량이 약할 뿐만 아니라 건반 개수도 작아서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하거나 연주회에 사용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이런 소규모 간이 음악회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클라비코드가 확실히 하프시코드보다 가성비가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포르테가 최애인 나는 이번에도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내 최애 악기가 배경 설정에 막혀서 등장을 못 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요 친구 양반!
‘원래 좋아하는 거는 숙제를 다 마친 다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이쯤 되니까 피아노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참을 수가 없어!’
건반 악기를 볼 때마다 피아노의 그 맑고 영롱한 음색이 그리워지는 것을 대체 어찌하란 말입니까…….
‘좋았어. 어차피 바로크 선을 여러 번 넘은 전적도 있고, 처음부터 바로크와 다른 설정도 많았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빨리 악기 장인을 여러 명 불러서 피아노를 발명해 달라고 의뢰해야겠어.’
고급 인력과 두둑한 예산을 갈아 넣으면 탈바로크는 어찌어찌 가속화되겠지.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막 지었을 때, 마침 연주가 모두 끝났다.
나는 다른 관객들처럼 힘차게 박수를 치면서 세이룬을 돌아봤다.
“세이룬, 어땠어?”
내 물음에, 다른 이들처럼 박수를 치던 세이룬이 빙긋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듣기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
“네,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곤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가 소곤거렸다.
“……에리카가 직접 하는 연주는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어, 어?”
“어떤 악기든 좋으니 에리카의 연주가 듣고 싶어요.”
그가 웃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불현듯, 기억 한구석에 존재하던 신아의 목소리가 세이룬의 말과 겹쳐 들렸다.
“김해수. 난 말이지, 적선만 할 줄 아는 멍청이처럼 네가 불쌍해서 학비와 생활비 책임져 줄 테니 작곡과 가라고 하는 거 아니야. 나는 그냥 네 음악이 좋아서 계속 듣고 싶은 것뿐이라고. 정 못 믿겠으면, 내가 미래의 유명한 작곡가한테 투자한다고 생각하든가.”
고졸도 뽑아 주는 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내게, 신아는 자신이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질 테니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라고 했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꿈과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서포트해 주는 거라나 뭐라나.
하지만 그 호의가 부담스럽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신아의 제안을 계속 거절하던 나는, 결국 과제곡이나 취미로 작곡한 곡을 신아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는 조건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 있으나 마나 한 조건은 신아가 나를 위해서 덧붙인 것이겠지만.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작곡했던 그 노래, 신아한테 들려주지도 못한 채 죽어 버렸네.’
그날 저녁에 들려주기로 했었는데.
오랜만에 과거 회상을 하니 기분이 먹먹해졌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그래?”하고 묻자, 세이룬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곡도, 에리카가 직접 작곡한 곡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예시를 주듯, 세이룬이 노랫가락을 가볍게 허밍했다.
그 가락은, 세상에서 그와 나밖에 모르는 노래의 가락이었다.
신아에게 저녁에 들려준다고 했지만, 결국엔 들려주지 못했던 바로 그 노래.
“……하지만, 나는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피아노밖에 없는걸.”
그냥 “응” 한 마디면 끝날 일이었지만, 나는 구태여 투정 부리듯 볼을 부풀렸다.
피아노가 뭔지 모를 텐데도, 그는 싱긋 미소 지으며 빵빵한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피아노를 저택에 들여놓겠습니다.”
“난 그랜드 피아노가 좋아. 엄청 크고 멋있고 웅장한 거.”
“네, 그랜드 피아노로 구해서 들여놓겠습니다.”
“음색도 엄청 깨끗하고 영롱한 걸로.”
“네, 세상에서 가장 음이 좋은 피아노로 들여놓겠습니다.”
내가 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어리광에 불과했지만, 세이룬은 세상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고 들어주었다.
덕분에 조금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됐어. 그냥 해 본 소리니까 세이룬도 흘려들어.”
“…….”
“……그리고, 내 연주…… 궁금해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