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에그타르트를 마저 입에 넣으며 묻자, 빈센트가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게 건네주었다.
“비전하께서 지시하셨던 일을 모두 완수하여, 차후의 일은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여쭤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아, 수고했어요. 생각보다 빨리 완수했네요.”
희소식에 나는 활짝 웃으며 보고서를 건네받았다.
서류에는 기계를 다루는데 능통한 기술자와 제지 및 조폐 기술자 등을 섭외하여 대공령으로 이동시켰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뭘 연구할지는 말 안 해 줬지만, 연구비를 엄청나게 주겠다는데 안 올 사람이 어딨겠어.’
특히 학구열이 엄청난 사람이라면 연구를 하며 돈도 받는다는 생각에 눈이 돌아가서 제발 데려가 달라며 옷자락이라도 잡고 매달리겠지.
“그런데, 이들에게 맡기고 싶은 연구가 대체 무엇입니까?”
빈센트가 궁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인쇄술 향상에 대한 연구요.”
“네?”
“보통 책을 만들 때 방법을 보면, 필사하거나 활자를 판에 끼워서 한 장씩 찍어 내잖아요. 그 때문에 책 한 권의 단가가 높아서 천민들은 물론 일반 평민들도 책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실정이고요.”
“아…….”
“그래서 저는 기계를 통해서 책을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도 책에 대한 접근이 더 쉬워질 테니까요.”
물론 우매한 백성들을 계몽시키리라는 숭고한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이기적인 속셈이라면 또 모를까.
“비전하…….”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 줘 봤자, 저렇게 감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빈센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
나는 오늘도 흐린 눈을 뜨며 허허롭게 웃었다.
우리 빈센트, 사람이 저렇게 선해서 어찌할꼬…….
* * *
“……그러니까, 대공비 전하께서 반- 아니, 거래를 제안하셨다고요?”
에이리트의 중앙 광장 옆에 위치한 대형 오페라하우스, 카나리아.
다른 오페라하우스의 박스석에 비해 카나리아의 박스석은 두꺼운 벽과 두터운 휘장으로 인해 내부의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그 때문에 킬리언과 바네사는 밀회를 할 때 이곳의 박스석을 애용하고는 했다.
꼼꼼히 친 휘장 사이로 가수의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킬리언은 은빛 눈동자를 크게 뜨고 제게 묻는 바네사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황가를 완전히 뒤엎는 것은 아닙니다.”
“멀쩡한 후계자를 뒤엎는 것도 충분히 반역인데요. 하, 어쩐지 대공비가 갑자기 신교에 후원을 시작하더라니…….”
바네사는 골치 아픈 듯 미간을 찡그리며 은홍빛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킬리언이 보기엔 어때요? 우리의 관계를 알고 협박했다면서요. 신교를 반역도로 몰아가 멸절하기 위한 큰 그림이라든지, 뭐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나요?”
대공비의 후원을 받아들여서 신교의 입지를 키우면 뭐 하나. 반역을 꾀하다가 멸절해 버리면 아무 소용 없는데.
아무리 대공비가 해수라고는 하지만, 대공비는 구교파의 중심 세력 중 하나인 셀루리아의 조카딸이지 않은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네사의 걱정을 잘 알고 있는 킬리언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셀루리아가 걱정되는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공비께서는 과거 셀루리아 영애였을 적, 그곳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으니까요.”
“……네?”
바네사가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킬리언이 말을 이었다.
“해서 그분은 성인이 되자마자 가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몰래 해수라는 가명으로 금전을 모았고, 대공비가 되신 후 셀루리아 가문에 복수를 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된 건 반역이 아니라 셀루리아에 대한 복수네요? 셀루리아가 하필 황가의 혼약 가문이라서 반역까지 판이 커진 거고?”
킬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네사는 하, 하고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동에 대한 학대는, 바네사가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죠.”
‘학대’에 잠시 이성을 잃을 뻔했던 바네사는 가까스로 이성적으로 사고했다.
고개를 끄덕인 킬리언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녹셰에 해당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오늘 아침, 그것이 사실이라는 답변을 받고 당신께 연락한 겁니다.”
“……하하, 셀루리아 이 미친 새끼들.”
살벌하게 웃으며 씹어뱉듯 중얼거린 바네사가 이내 곧게 고개를 들고 킬리언을 바라봤다.
“그래서, 차후 약속 일자는 잡았어요?”
“대공비 전하께서 황태자 전하의 성혼식 이후 후원자로서 신교 성전에 방문하실 예정이라며, 관련 서신은 당신께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킬리언이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바네사에게 건네주었다.
“차후 대공비 전하께서 방문하시거든, 이것을 그분께 전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그에게서 받아 든 서신을 갈무리한 바네사가 슬쩍 손을 뻗어 휘장을 살짝 젖혔다.
가늘게 비치는 무대에서는 마침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내용의 아리아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무대를 지그시 응시하던 바네사가 문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저도 기대되네요.”
“…….”
“비전하께서는 어떤 분이실지.”
적어도, 학대에 굴복하지 않고 복수를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넓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