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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데기 영애의 반격을 조심하세요 (46)화 (46/139)

46화

“……고마워요.”

내 감사 인사에, 사르르 웃은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과편을 하나 입에 넣었다.

“와, 이 과편 정말 맛있네요. 역시 베렌은 앵두과편을 참 잘 만든다니까.”

언제 차분했었냐는 듯, 체사는 다시 처음의 그 깨발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모과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체사를 가만히 응시했다.

‘자신은 뭐든지 알고 있으니까,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어. 그렇다는 건, 물어보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입수했더라도 알려 주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마냥 발랄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보니 상당히 음험한 사람이지 않은가.

이후로는 간단한 한담이 이어졌다.

물론 그 한담은 포카와 레비나의 보고를 들은 세이룬이 쳐들어오면서 막을 내렸다.

* * *

드디어 셀루리아에서 내가 원하던 서신이 도착했다.

바로, ‘대공가의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에리카’에게 대공가의 자금을 조금씩 자신들 쪽으로 빼돌리라고 압박하는 내용의 서신이!

‘뭐? 지난번 해수의 농간으로 영지에서 세금을 걷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공가도 사돈 가문이 재정난에 시달리는 걸 원하지 않을 테니 대공가의 예산을 이렇게 저렇게 빙빙 돌려서 셀루리아로 보내라고?’

“응, 택도 없어~”

황가가 알아서 차 사업을 키워 주고 계시거늘, 재정난은 무슨 놈의 재정난이란 말인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이때를 위해 마련해 둔 고급스러운 상자에 셀루리아의 약점 1을 고이 모셨다.

“포카!”

“네, 비전하!”

내 부름에 포카가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상자를 마저 서랍 속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체사 씨랑 빈센트 좀 불러 줄래?”

“네, 알겠습니다!”

심부름을 받아서 신이 난 포카는 힘차게 대답한 뒤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저번에 나와 한담을 나누다가 세이룬에게 발각된 뒤로 곧장 쫓겨날 뻔했던 체사는 나의 온정에 빌붙어 대공성에 손님 자격으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체사는 빈센트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는데, 그 이유가 자신과 닮은 붉은 눈동자를 가져서 반가워 그렇다나 뭐라나.

붉은 눈동자라면 레비나도 있는데 대체 왜 유독 빈센트한테 집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빈센트 미안…….’

하지만 일단은 체사가 대공성에 있는 게 정보 취득 면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걸…….

안타깝게도 나는 갑자기 묻고 싶은 걸 모두 물어보라고 하면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 버리는 사람이라, 묻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그때 물어보고 해결하는 게 가장 편하고 좋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얻은 사교계에 대한 정보가 4건, 여론에 대한 정보 및 요청이 3건, 황가에 대한 정보가 13건, 사피엔 황자에 대한 정보 및 요청이 39건, 세이룬에 대한 정보가 137건이었지.’

물론 체사가 알려 주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천하의 녹셰 마스터도 알려 주지 못하는 세이룬의 눈동자 색깔이라니.’

이거 실화가 맞습니까.

진짜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었다. 그때 느꼈던 황당함을 다시 회상하고 있을 때,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포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전하, 체사 님과 하르센 보좌관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고 포카와 체사, 빈센트가 들어왔다.

“제수씨, 또 궁금한 거 있어요?”

“비전하,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경쾌하게 외치며 가장 먼저 불쑥 들어오는 발랄한 남자와, 맨 뒤에서 차분한 걸음으로 들어와 정중하게 예를 갖추는 남자.

거의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데 저렇게 성격이 물들지 않는 것도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두 사람 다 소파에 와서 앉도록 해요. 업무 관련 지시할 일이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냥 의자에 앉는 단순한 동작도 어쩜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포카와 레비나에게 차를 부탁했다.

그들이 집무실을 나서고 나서,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우선, 체사 씨한테 요청할게요. 대공비가 바로 해수였다는 소문을 자연스럽게 내 주세요.”

“……네? 그거 해수 관련 정보 중에서도 무려 S등급인데요?”

물론 나라고 그걸 몰라서 퍼뜨리려는 게 아니었다.

해수의 정체.

한때는 억만금의 대금을 치르면서까지 숨기려던 정보였지만, 신교와 손을 잡고자 하는 나로서는 대공비인 내가 해수라는 것이 밝혀져야 앞으로의 행보가 매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황가와 완전히 대립한다는 걸 사피엔 황자에게 보여 줘야 그와의 거래도 잘 성사될 수 있겠지.’

아무래도 사피엔 측에서는 경계심이 강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드레인 대공비가 갑자기 거래를 들이미는 것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겠지.

게다가, 마리오네트 에리카가 해수가 아닌 그저 대공비이기만 할 때 얻을 수 있는 셀루리아의 약점도 이미 얻었으니 밝히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네, 우리 S등급이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훨훨 풀어 주세요. 음, 사람들이 해수에 관한 S급 정보를 요구할 때 팔아 버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네요. 아, 켈타카 은행장한테도 내 정보 슬쩍 흘리라고 서신 보내야겠네.”

“제수씨…… 그래도 한때는 어마어마한 돈으로 막았던 정본데, 그걸 그렇게 망설임 없이…….”

“아, 그리고 소문이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나는 짝 손뼉을 치며 체사에게 추가 요구 사항을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카와 레비나가 트롤리를 밀고 들어와 다과를 세팅했다.

세팅이 끝나고 그들이 나가고 난 후, 나는 장미청을 타서 만든 냉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음, 역시 맛있네.

“모호하게요?”

나처럼 냉차를 한 모금 마신 체사가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대공비가 에리카 후작 영애였을 때부터 해수였는지, 아니면 대공비가 된 이후에 해수가 된 건지에 대한 해석의 논란이 있도록요.”

“아아. 알겠어요.”

체사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금 냉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에리카가 해수라고 알려진 것은 대공비로 책봉된 이후이고, 그녀는 책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뜬금없이 원래 해수의 행보와는 영 동떨어진 후원만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공비 에리카는 후작 영애였던 시절부터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계속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고, 그녀가 적을 두었던 셀루리아 후작 가문은 구교파 소속이야. 그리고 해수는 셀루리아 후작 가문을 한 차례 공격한 전적이 있지.’

자, 위와 같은 정보를 모두 추려 봤을 때 사람들은 과연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원래 대공가가 가지고 있던 ‘해수’라는 타이틀을, 대공비가 된 에리카에게 준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충 끼워 맞춰지는 부분이 몇 군데 존재한다.

해수의 정체가 실은 대공가에서 관리하고 있던 허상의 타이틀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동안 아무리 파고들어도 해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던 이유가 납득된다.

갑자기 달라진 해수의 행보도 사람이 달라진 거라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해수가 갑자기 셀루리아 가문을 공격한 것 또한, 드레인 대공가가 보내는 청혼을 더 쉽게 승낙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아니면, 구교파를 공격하기 위한 드레인의 밑그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적어도, 실은 후작 가문에서 구박받으며 살고 있던 에리카가 성인이 되면 가문으로부터 도망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해수라는 가명으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 둔 거라는 사실보다는 더 개연성 있지 않은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냐고? 그건 말이야, 이곳이 실은 소설 속 세계인데 그 소설 설정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에리카의 몸에 빙의해서 그래.

‘하하. 내가 생각해도 진짜 개연성 없다.’

근데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개연성 없는 이쪽이 진실이란 것이다.

‘……갑자기 사학과 다니던 친구 하나가 전공 공부하다가 개연성 돌려달라고 울부짖던 게 생각나네.’

갑자기 소름이 쫙 돋는 바람에, 나는 서둘러 양팔을 슥슥 문질렀다.

“비전하, 어디 편찮으십니까?”

“제수씨,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잠깐 개연성 생각 좀 하다가……. 전 괜찮아요.”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냉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달달한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제수씨는 왜 굳이 모호하게 소문을 내려고 하시는 거예요?”

체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나는 짓궂게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냥요.”

“그냥?”

“그냥…… 배부른 고양이의 심술이라고나 할까요.”

내가 소문을 모호하게 내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예전에, 빈센트에게서 답장을 받았을 때 내 행보로 결정한 ‘천사병’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내가 셀루리아와 대적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단칼에 그들을 없애 버리는 것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새 짓을 하는 편이 셀루리아를 차근차근 엿 먹이는 데 더 나았으니까.

나 혼자서 그들을 상대해야 했다면 모를까, 대공가라는 든든한 아군을 얻은 이상 나는 절대로 그들을 쉽게 죽일 생각이 없었다.

내 대답을 들은 체사가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제수씨한테 잘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네요.”

“과장이 심한데요.”

이거 갖고 무슨. 어깨를 으쓱인 나는 이어 빈센트에게 그 소문에 맞춰서 진행할 해수의 업무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줬다.

그리고 정확히 보름 뒤, 해수에 대한 S등급 정보가 팔렸다고 체사가 알려 왔다.

* * *

“오늘 담소 즐거웠네, 카리에 영애.”

황후가 우아하게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대가 한시라도 빨리 황태자의 반려가 되어 본인의 말벗이 되어 주었으면 참 좋겠어.”

“저를 좋게 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황후 폐하.”

부드럽게 미소 지은 카리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카리에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황후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영애의 나이가 금년 열아홉이던가?”

“그렇습니다, 폐하.”

“내년이면 소후작의 지위도 받게 되겠군. 황태자비 수업에 셀루리아의 후계자 수업도 들으려면 몹시 다망할 텐데, 그런 몸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야 없지. 영애는 이만 귀택하도록 하게.”

황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카리에는 단정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제국의 황후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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