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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데기 영애의 반격을 조심하세요 (44)화 (44/139)

44화

“……네?”

빈센트는 갑자기 홍수처럼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감당하지 못한 채 멍하니 되물었다.

다시금 한숨을 내쉰 타한이 재차 입을 열었다.

“……우선 체사 님도 하르센 남작님과 함께 응접실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곧 대공 전하와 대공비 전하께서 오실 것입니다.”

“응, 알았어!”

타한의 입에서 나온 허락에 활짝 웃은 체사는 제가 직접 응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작님, 궁금한 점이 많으시겠지만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대공 전하께서 의문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네.”

빈센트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그는 대공령으로 향하던 중에 만났던 사람이 무려 대공의 친우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 * *

“……체사.”

세이룬은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체사를 노려보았다.

반색하는 얼굴로 세이룬의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던 체사는 들어온 사람이 세이룬 혼자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곧장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왜 너만 왔어? 제수씨는? 타한이 제수씨도 온다고 했었는데?”

체사가 불만스럽다는 듯 응접실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렸다. 그런 그를 익숙하게 무시한 세이룬은 시선을 돌려서 그 옆에 앉아 있는 빈센트를 봤다.

“그대가 빈센트 하르센 남작이로군.”

빈센트의 외모가 상당히 준수하다는 것을 확인한 세이룬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세이룬의 견제를 받게 된 빈센트는 당황스러운 속마음을 가다듬으며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하르센 남작, 빈센트가 드레인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셀루리아 저택에서 내 부인님을 많이 도와드렸다고 들었다. 감사의 의미로 보답을 하고 싶은데, 원하는 것이 있다면 편히 말하도록.”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니 감사 인사는 괜찮습니다.”

“내 부인님의 남편으로서 그대가 부인님을 도와드린 것이 고마워 그런 것이니, 보답을 하게 해 주면 좋겠군.”

‘내 부인님의 남편’을 특히 강조하며, 세이룬은 한 글자 한 글자 짓씹듯 읊조렸다.

분명 말의 내용은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해 주겠다는 것인데, 목소리만 들으면 원수에게 결투를 청하는 사람처럼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체사가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웃어 재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빈센트는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원하는 것은 추후 집사님께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는지, 세이룬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응접실을 나서면 타한이 부인님께서 계신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부인님과 쌓인 회포가 많을 테니, 이만 나가 보도록.”

“알겠습니다.”

빈센트는 세이룬에게 목례한 뒤 응접실을 나섰다.

빈센트가 나간 뒤, 세이룬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체사를 바라봤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내가 오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너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죽마고우를 결혼식에 초대도 안 해 줬으면서, 이제는 제수씨 소개조차 안 해 준다고? 필요할 때는 왕창 써먹었으면서?”

체사가 울상을 지으면서 세이룬을 바라봤지만, 그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가차 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님이다. 그리고 이제 그만 돌아가.”

“와, 너 지금 너 보려고 하던 일 전부 집어치우고 온 사람한테 이렇게 축객령을 내리냐? 제수씨는 네 파탄 난 인성 아시기는 해? 너 이거 사기 결혼이다?”

“……부인님 앞에서는 안 그러니 상관없어.”

잠시 멈칫했던 세이룬은 차분하게 반박했다.

별로 동요하지 않는 그를 보고 입술을 삐죽거린 체사는 이내 짓궂은 장난기를 머금고는 비죽이 웃었다.

“아니, 잠깐만. 너 사람이 아니니까 인성이 아니라 용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우와, 내가 결혼한 사람이 실은 사람이 아니었다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사기 결혼이잖아~?”

순간, 세이룬의 핏발 선 눈이 체사에게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에 숨이 막혀 제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리던 체사는 겨우 제힘을 사용해서 숨을 막던 기운을 몰아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체사를 노려보던 세이룬이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그 말 부인님 앞에서 입에 올리면.”

“아, 알지, 알지 그럼! 내가 먼저 함부로 제수씨 앞에서 발설하는 일은 없을 거야! 맹세!”

체사가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며 외쳤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체사의 맹세를 감상한 세이룬은 느긋하게 입을 열어 체사의 말 속에서 거슬렸던 부분을 정정했다.

“형수님.”

“아무튼, 네가 나를 결혼식에도 초대 안 하고 제수씨도 못 만나게 하는 이유도 그거 때문일 거 아냐. 제수씨한테 네가 용이라는 거 말 안 하겠다고 맹세까지 했으니까 나 여기 더 있어도 되지 않아?”

“…….”

“잘 생각해 봐. 제수씨의 입장에서도 나와 친해지면 득이 됐으면 됐지 나쁠 건 없어. 다른 정보 길드가 녹셰 눈치 보는 거, 너도 알고 있지? 그 녹셰의 수장이 나라는 것도 알고 있지? 봐 봐, 나랑 친해지면 이렌텔에 유통되는 정보가 제수씨의 손에서 쥐락펴락 된다니까? 이건 황제조차도 못하는 일이야!”

체사가 한없이 선량하고 순수한 얼굴로 자신의 쓸모를 피력했다.

그런 그를 흘끗 본 세이룬은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딱 잘라 말했다.

“너의 쓸모만큼 내가 더 쓸모 있게 되면 되니 필요 없어.”

“……저기요. 죽마고우 씨. 지금까지 해수의 정체를 알려 달라는 의뢰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그래도 네 첫사랑이니까 의뢰 다 뿌리치고 최대 D등급까지만 넘겨줬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쓸데없는 짓을 했군.”

“와, 진짜 인성 봐. 아주 제대로 파탄 났다니까. 제수씨, 도망쳐요…… 도망쳐야 해요…….”

체사가 뭐라고 중얼거리든 완전히 무시한 세이룬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너와 낭비할 시간은 없으니 이제 정말로 돌아가도록 해.”

그 말만 남긴 세이룬은 그대로 곧장 응접실을 나섰다.

안에 혼자 남겨진 체사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닫힌 문을 노려보다가, 이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아무리 필요 없다고 축객령을 내려도, 과연 제수씨도 같은 의견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세이룬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할지라도, 어차피 최종 결정권자는 에리카였다.

“나는 제수씨의 허락만 받으면 된다 이거야, 친구.”

그리고 체사가 아는 에리카는 사소한 거라도 절대로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체사는 느긋한 얼굴로 빈센트와 에리카의 회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 *

“빈센트!”

나는 빈센트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그를 와락 껴안았다. 내 생각보다 훨씬 컸던 반가움을 주체하지 못해서 저지른 행동이었다.

원래 나는 세이룬과 함께 1층에 있는 중앙 응접실에서 빈센트를 맞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막 응접실로 출발하려던 도중, 타한의 보고를 들은 세이룬이 심각한 얼굴로 응접실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고, 그래서 나는 응접실로 가는 대신 집무실에 딸린 작은 응접실에서 빈센트를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비전하.”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빈센트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빈센트를 놓아주었다.

“빈센트는 내 은인이잖아요. 와 준 게 너무 기뻐서 그랬어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오는 데 뭔가 불편했던 점은 없었고요?”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빈센트에게 물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잠시 멈칫거렸던 그는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잘 지냈습니다. 비전하야말로 잘 지내셨습니까? 힘든 일은 없으셨고요?”

“나도 잘 지냈어요. 다들 친절하게 잘 대해 줘서.”

“네. 비전하의 얼굴을 보니 말씀대로 잘 지내신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정말로 마음이 놓인 듯, 내 대답을 들은 빈센트의 웃음은 아까보다 한층 밝아져 있었다.

‘정말이지, 무르고 착한 사람이라니까.’

덤으로 사람 보는 눈도 없고 말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응접실에 차와 과자를 세팅한 하인들이 물러간 후, 나는 빈센트와 대화를 나눴다.

빈센트가 의식적으로 셀루리아 가문에서의 일을 말하는 걸 꺼리는 탓에, 우리의 주 화제는 앞으로 빈센트가 맡게 될 책무에 관한 내용이었다.

“생각해 봤는데, 빈센트는 해수로서의 내 업무를 보좌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해수 님…… 의 업무 말씀입니까?”

“네. 지금까지 부려 왔던 은행장은 아무래도 타인이고, 내 일만 온전히 처리해 주기에도 무리가 있잖아요. 또 이제 저도 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 해수로서의 일을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벅찬 감이 없잖아 있거든요.”

“제가 비전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고 싶습니다.”

빈센트의 승낙에, 나는 활짝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빈센트. 보좌에 필요한 내용은 지금 설명해 줄게요. 이따 나가기 전에는 관련 정보를 정리해 둔 서류도 줄 테니까 필요할 때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빈센트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흡족하게 웃은 뒤,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 * *

처소가 다 정리되었음을 알리러 온 하인장에게 빈센트를 딸려 보낸 후, 나는 남은 서류를 마저 처리하기 위해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얼마나 대공비의 인장을 찍어 대고 있었을까.

문 너머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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