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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데기 영애의 반격을 조심하세요 (41)화 (41/139)

41화

“아, 알았어, 알았어.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이 유혹해도 절대로 안 따라갈게.”

“정말로, 저엉말로 안 돼요. 알겠죠?”

“오구오구. 그럼그럼.”

나는 인자하게 웃으며 손주들의 재롱을 보는 할머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가 누가 성년이고 미자인지 모르겠다.

“비전하! 제가 거울을 가져왔어요!”

그때, 포카가 내 앞으로 전신 거울을 가져왔다.

‘내가 직접 전신 거울 앞으로 가서 모습 확인해도 되는데…….’

하지만 포카가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데 앞으로는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서 괜히 포카를 풀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포카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거울 앞으로 다가가서 내 모습을 확인했다.

“오…….”

에리카의 얼굴을 몇 년째 매일 봐서 이 미모에 익숙해진 나조차도 무의식적으로 감탄을 터뜨릴 만큼, 지금 내 모습은 정말로 예뻤다.

머리카락은 곱게 틀어 올려서 진주와 자색 사파이어가 달린 헤어바인으로 장식했고, 머리에는 대공비임을 알리는 티아라를 얹었다.

귀걸이는 무척이나 세세하게 세공된 진주와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것을 착용했고, 목걸이도 같은 세트의 것을 걸었다.

드레스는 금실로 자수를 놓은 보랏빛 최고급 원단으로 만든 하이 웨이스트 드레스에, 앞쪽에 드러나 있는 아이보리색 페티코트 장식은 진주와 금실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퍼프 소매에 달린 장식은 또 어떻고, 사각형의 목선을 덮은 파틀릿의 섬세한 레이스는 또 어떻고……!

‘큼. 어째 감탄하는 게 전부 드레스와 장신구뿐인 것 같은데.’

괜히 찔린 나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패션의 완성은 옷과 장신구라고. 그걸 보는 게 당연하지.

‘그나저나, 새삼 느끼는 거지만 대공가 진짜 부자네…… 이런 억 소리 날 옷도 아무렇지 않게 사들이는 거 보면. 역시 가문의 재력은 영지 갖고 판단하면 안 돼.’

이 조그만 진주를 꿸 금실을 뽑는 데만 대체 얼마나 들었을까.

내가 드레스를 노려보며 드레스의 가격을 가늠해 보고 있을 때였다.

“비전하.”

포카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포카가 상기된 얼굴로 내게 총총 다가왔다.

“대공 전하께서 와 계세요.”

아니, 그 말을 왜 그렇게 비밀인 것처럼 소곤소곤 말하는 건데.

나는 그렇구나, 하고 대꾸하며 포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멎은 곳에는 나와 한 세트임이 명확한 의복을 입은 채 어쩐지 불퉁해 보이는 세이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손을 보고 있는 건가?’

미묘하게 맞지 않는 각도로 보건대, 세이룬은 분명 내 손을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을 슬쩍 옆으로 옮겼다. 세이룬의 고개가 내 손을 따라 이동했다.

다시 반대쪽으로 이동하자 고개가 또 따라왔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여운 강아지가 연상돼서 웃음이 나왔다.

“세이룬.”

이름을 부르자, 손을 따라다니던 고개가 나를 향해 올라왔다.

곧 그가 입술을 삐죽이며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부인님.”

“네.”

“늘, 이렇게, 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까?”

그가 삐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는 슬쩍 고개가 내 뒤쪽으로 틀어지는 게, 아무래도 포카를 비롯한 하인들을 노려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상사의 째림을 받다니, 저 사람들은 이게 웬 날벼락이냐.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세이룬의 시선을 차단하면서, 아이 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우리 세이룬 미자, 까꿍! 착하죠?”

“……안 착합니다.”

그가 심통 난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그래 봤자 목소리가 많이 누그러진 건 숨겨지지 않았다.

나는 빙긋 웃으면서 아까 세이룬이 계속 쳐다봤던 손을 들어 올렸다.

“착한 미자는 아낌없이 써도 줄어들지 않는 공공재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 줬다고 질투하지 않아요.”

“…….”

“세이룬도 머리 쓰다듬어 줄까요?”

나는 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손이 그의 머리께로 올라갈 때까지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세이룬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에 막 닿으려는 내 손을 부드럽게 당겨 제 앞으로 가져갔다.

“……공공재인 겁니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왠지 시무룩하게 들렸다.

그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내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순간 나를 제 쪽으로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코앞까지 이끌려갔다.

당장이라도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세이룬이 내 쪽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보여서, 나는 상황 인지가 덜 된 것처럼 멍하니 세이룬을 바라봤다.

“오늘, 너무 아름다우세요.”

나를 거의 안다시피 한 자세로, 그가 내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머리카락을 모두 틀어 올렸던 터라, 귓바퀴와 목덜미에 그의 숨결이 고스란히 닿았다.

나도 모르게 흠칫하며 뒷걸음질 치려는데, 그러지 못하도록 나를 더욱 단단히 붙잡은 그가 이어 속삭였다.

“에리카의 모습을 볼 다른 자들의 시력을 모두 앗아 버리고 싶을 만큼.”

“……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뭐를 앗아 버리고 싶다고?’

머릿속에서 물음표 수백만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평소 세이룬의 순둥순둥 귀염뽀짝한 모습과 방금 전 발언이 인지 부조화를 일으켰다.

‘에리카, 뚝. 진정해. 당황하지 마.’

‘당황하지 마’를 세 번쯤 기계적으로 중얼거리자,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뭔가를 잘못 들었겠지.’

나는 가장 가능성 있는 선택지를 떠올리며 안정을 되찾았다.

하하, 그렇지.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우리 순둥이 귀염뽀짝 세이룬이 시력을 앗아 버리고 싶다는 그런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말을 했을 리가…….

“그들의 시력은 부인님의 아름다움을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

내게로 숙였던 허리를 곧게 편 세이룬은 언제 구해 왔는지 모를 비단 장갑을 내 손에 끼워 주며 뿌듯하게 웃음 지었다.

그 웃음이 평소에 자주 지어 주고는 하던 그 따사로운 미소와 같은 종류라서 더 기가 막혔다.

한없이 순수한 그 웃음에, 나는 흐린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그래. 우리 순둥이 귀염뽀짝 세이룬이 시력을 앗아 버리고 싶다는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말을 할 수도 있지. 뱀도 사람과 하하 호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에서 이런 것쯤이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럼 가실까요, 부인님?”

그가 나와 맞잡은 손을 작게 들어 올렸다.

나는 해탈한 성인의 얼굴로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이룬이 귀여우면 된 거지 뭐.

응, 그러면 된 거다.

* * *

서약식이 진행되는 연무장은 이미 정리와 세팅이 말끔하게 완료된 상태였다.

세이룬의 손을 잡고 단 위로 올라가자, 연무장 가득 기사들이 기사단별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와, 군기 봐…….’

기사들은 그 분야와는 거리가 먼 내가 보기에도 대단하다 느껴질 만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군기와 질서가 꽉 잡혀 있었다.

역시 기사들, 멋있다…….

예전에 세이룬이 말해 줬던 바에 따르면, 드레인의 기사단은 총 7개로, 기사단 전체를 통솔하는 중앙 기사단과 그 휘하의 제1기사단부터 제5기사단까지로 나뉜다고 했다.

그중에서 기사단장이 있는 다른 기사단과는 달리, 중앙 기사단의 총기사단장은 대대로 대공이 겸직한다고 했다. 그래서 평상시에 실질적으로 중앙 기사단을 이끄는 사람은 총부기사단장이라고.

‘그러니까, 전직 대공이셨던 우리 어머님은 전 총기사단장이시기도 했다는 거잖아.’

하. 박력 있는 미인이 검을 들고 이렇게 멋있는 기사단을 호령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에리카?”

몽롱한 눈으로 기사단을 바라보는 내가 이상했던지, 세이룬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나를 불렀다.

나는 흐뭇한 얼굴을 한 채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중에 어머님이 오시면 검 쓰시는 거 보여 달라 졸라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서약식이 시작되자, 각 기사단의 기사단장과 부기사단장이 차례로 단 위로 올라왔다.

서약식은 원래 기사 전원이 나와서 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드레인 대공가는 보통의 가문과는 달리 기사의 수가 월등히 많은 까닭으로 기사단장과 부기사단장이 각 기사단의 대표로 충성의 서약을 바쳤다.

‘정말로 한 가문보다는 한 나라에 어울리는 병력이잖아.’

각 기사단 밑으로 딸려 있는 병사들의 규모까지 생각하면, 음, 여기가 왜 드레인 ‘공국’인지 새삼 이해가 됐다.

물론 단순히 병력이 많아서 드레인 가문이 ‘공국’ 칭호를 받은 건 아니지만.

‘황가의 견제가 심하겠는걸…….’

뭐, 지금이야 셀루리아 가문의 영애가 대공비가 되었으니 황가에서도 드레인을 황제파로 끌어들인 줄 알고 마음 놓고 있겠지만, 나중에 그 대공비가 해수인 것이 밝혀지고 셀루리아와 황가에 위협을 가하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면 그때부터 극심한 견제가 시작될 것이다.

이 많은 병력이 모두 적이 된다는데, 당연히 몸속에서 암세포 덩어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드레인 공국을 짓눌러 버리려고 발악을 해 대겠지.

‘그러면 나는 먹잇감을 갖고 노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그 발악을 구경하며 서서히 숨통을 조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완전히 끊어 놓아야지.’

지금껏 쌓아 올린 그 모든 부와 명성은 서서히 차근차근 무너뜨리고,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귀족으로서의 긍지는 시궁창 속으로 처박아 버리면서.

차라리 깔끔하게 죽여 달라고 짐승처럼 울부짖도록, 그렇게 숨통을 끊어 버릴 것이다.

“중앙 기사단의 총부기사단장, 라인이 대공비 에리카 르 드레인 전하께 충성의 서약을 바칩니다.”

제일 앞에 서서 내게로 한 걸음 다가온 여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검을 건넸다.

나는 일전에 타한에게서 배웠던 대로 검을 받아 들고 말했다.

“그대의 충성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를.”

그러곤 라인의 앞으로 손을 내밀자, 그녀가 내 손을 받아 들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내 손을 쥐고 입술 가까이로 가져간 라인의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라인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옆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을 알아차리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룬, 왜 그렇게 차가운 공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거죠…….’

그것도 지금 내 손을 쥐고 있는 라인의 손을 죽도록 노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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