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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데기 영애의 반격을 조심하세요 (17)화 (17/139)

17화

샤샤가 내 기분을 회복시킨 게 기쁘다고 몸을 흔들었다. 나는 샤샤를 두 손으로 소중히 들어 올려서 눈을 맞췄다.

“샤샤.”

- ……!

나와 눈을 마주치자 부끄러웠는지 샤샤가 꼬리를 발갛게 물들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 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어떡하지, 샤샤?

네가 너무 귀여워서, 자꾸 웃음이 나와.

* * *

시간은 생각보다 고요하게 흘러갔다.

저번에 있었던 카리에의 독살 미수 사건 이후, 분명 카리에라면 히스테리를 더 심하게 부리거나 독살을 다시 시도할 줄 알았는데, 지금 카리에는 지나치게 잠잠했다.

‘왠지 폭풍 전 고요 같달까.’

고요라 해 봤자 일주일에 대여섯 번은 후작 부부에게 불려 가서 요란하게 욕 처먹고 세뇌당하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각설하고.

나는 그 고요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는데, 문제는 내가 대비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비한다고 몸을 사리고 샤샤를 최대한 숨기고 해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젠장, 나는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고 뼛속 깊이 생각하는 사람인데!’

미성년자란, 보호자를 상대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인 것이다.

나는 이를 갈듯 샤샤가 준 구름빵을 팍팍 뜯어 먹었다. 역시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먹을 게 최고다.

마지막 빵 조각까지 입에 넣고 손을 털던 나는 힐끔 눈동자를 굴려서 자고 있는 샤샤를 바라봤다.

원래 낮잠은 전혀 자지 않던 샤샤는 요즘 들어 저렇게 조금씩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마…… 카리에가 내 수통에 독을 타고 난 이후부터였던 것 같은데.’

아마 그 일이 샤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던 모양이지.

하여간, 개똥조차도 거름으로 쓸모를 다하는데 카리에 자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쓸모 있는 구석이 없었다.

샤샤가 자는 터라 소리 없이 분노하던 내 눈에, 문득 손목 안쪽에 있는 꽃문양이 들어왔다.

나는 손목을 들어 올려서 눈높이까지 그 문양을 올렸다.

‘근데, 이건 대체 뭘까.’

이 꽃이 언제 생겼는지는 명확했다. 저번에 샤샤가 내 손목에 제 몸을 처음 감았을 때 생겨난 흔적이니까.

‘샤샤가 가까이 있을 때만 하얗게 반짝거리고 샤샤랑 멀리 떨어지면 사라진단 말이지. 지워지지도 않고.’

무슨 GPS도 아니고, 참으로 신통방통하지 않은가.

나는 반쯤 흐린 눈으로 내 손목에 그려진 꽃문양을 요리조리 살폈다.

왠지, 샤샤와 관련되면 ‘신.로.줄’에 부여된 설정이 맥을 추리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높은 확률로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고개를 기울이다가,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샤샤를 보고 샤샤가 깨어나면 이 문양에 대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방문이 거칠게 두들겨 맞기 시작한 것은, 그 생각이 끝나자마자였다.

쾅쾅쾅! 쾅쾅쾅쾅!

“아이 씨…….”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긴 나는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내 방문을, 정확히는 그 너머에 있는 하인을 노려봤다.

천하의 몹쓸 새끼. 지금 우리 귀염둥이 샤샤가 행복하게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깨 버렸잖아!

“주인님께서 부르시니까 냉큼 튀어나와요! 지금 당장!”

아니 이 새끼가. 방문을 폭행하는 것도 모자라 그 돼지 멱 따는 것 같은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다.

샤샤가 시끄러운지 눈가를 찡그렸다. 나는 얼른 샤샤의 위로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 줬다.

“이러면 좀 나을 거야.”

그래도 이불이 한 겹 씌워졌다고, 아까보다는 훨씬 나았다.

- 고마워

샤샤가 마치 인사하듯 내 다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뺨을 비볐다. 그 감촉이 매끄러우면서도 간지러워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샤샤에게로 얼굴을 숙이며 속삭였다.

“샤샤, 여기서 놀고 있어. 나 금방 갔다 올게.”

- ……

샤샤의 별빛 두 눈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샤샤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손가락을 뻗어 샤샤의 작은 뺨을 살살 쓰다듬었다.

“나, 샤샤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 ……!

시무룩해 있던 샤샤가 ‘화아’ 소리라도 낼 것처럼 반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갔다 와서 물어볼 테니까, 내가 궁금해하는 게 뭘지 생각하고 있어.”

꼬리 끝을 발갛게 물들인 샤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빨리 와야 해

그러고는 수줍게 덧붙이는 말에, 나는 포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ㅇ……”

“아이 씨, 반쪽짜리 아가씨 주제에 빨랑빨랑 안 나오고 뭐 하고 자빠진 거예요! 그냥 문 확 열고 끌고 나와 버릴까 보다!”

“…….”

하인이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리면서 소리 질렀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말갛고 고운 웃음만 떠올라 있던 내 얼굴에 반쯤 썩은 표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진득한 살기를 머금고 번들거리는 내 눈동자가 문을 뚫고 하인까지 뚫을 기세로 방문을 응시했다.

지금 샤샤랑 오붓한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데 저 새끼가…….

* * *

훌륭한 사냥꾼은 인내심이 깊은 사냥꾼이다.

저번 작전이 실패한 이후, 패인을 눈치챈 카리에는 우선 에리카를 쫓아내는 것보다도 에리카의 앙큼한 아군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부모님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에리카에게 아군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경로까지 말해야 하는데,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에리카를 죽이려 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내가 직접 없애야지.’

카리에는 훌륭한 사냥꾼처럼, 대략 한 달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에리카와는 다르게 그 아군은 제법 똑똑한 것 같으니, 분에 겨워서 곧바로 일을 치는 것은 성공 확률도 낮거니와 공연히 경계심만 키우는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처리하기 더 까다로워지지.’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카리에는 바로 그것을 노렸다.

“아가씨, 반쪽짜리 아가씨께서 주인님께 불려 갔습니다.”

에리카가 부모님에게 불려 갔다는 보고를 듣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있어 왔던 일이었다. 지금 에리카가 부모님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지 생각한다면 행복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에밀리의 보고를 들은 카리에는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미리 준비해 뒀던 작은 호리병이 들려 있었다.

“알았어. 나 잠깐 밖에 나갔다 올 테니까 따라올 것 없어.”

“네, 아가씨.”

에밀리가 순종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방을 나선 카리에는 곧장 4층으로 올라갔다.

달칵.

조심스럽게 들어간 방 안에서는 에리카 말고 다른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카리에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방 안을 차분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누추한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던 카리에의 시선이 문득 창틀 선반에 닿았다.

방의 주 생활 공간과 다소 거리가 있는 선반은 방향제를 올려놓으면 향이 잘 퍼질 것 같았다.

카리에는 곧장 창틀 가까이로 다가가면서 혼잣말을 했다.

“에리카가 돌아오기까지는 1시간 가까이 남았으니까, 그 정도면 이 독 향이 공기 중으로 완전히 퍼지는 데 충분할 거야.”

방 안은 아무런 인기척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카리에는 비리게 웃으면서 창문을 완전히 닫은 후 이어 중얼거렸다.

“이번에야말로 에리카 너는 정말 죽었어. 이건 면역 없는 사람은 한 모금 맡기만 해도 폐가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향이니까, 저번처럼은 절대로 못 벗어날걸.”

소리 죽여 웃은 카리에는 마지막으로 호리병을 쓰다듬으며 “잘 부탁해”하고 속삭인 후 방을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발소리를 점점 작아지게 냈다.

이윽고 발소리를 완전히 죽인 카리에는 잠자코 방문에 귀를 대고 기다렸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안에서는 꽤 오래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에리카의 아군은 역시 멍청한 에리카와는 달리 경계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카리에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창문을 여는 듯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이어 쨍그랑, 하고 병이 깨지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사방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서 들을 수 있던 소리였다.

‘지금이다.’

카리에는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창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자, 창틀 위에 빳빳하게 굳어 있는 작은 실뱀이 보였다.

분명 이것이리라.

“잡았다.”

카리에는 손을 뻗어 잽싸게 검은 실뱀을 움켜쥐었다.

푸른 하늘을 닮은 청명한 눈동자에 일순 옅은 불쾌감과 함께 잔혹한 희열이 스쳐 갔다.

“너구나?”

분홍빛 입술이 비릿한 곡선을 그리며 치켜 올라갔다.

“에리카가 의지했던 아군이.”

* * *

느낌이 이상했다.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건 결코 좋은 종류의 느낌이 아니었다.

평소였더라면 속으로 잔뜩 후작의 말을 빈정거렸을 텐데, 지금은 마음이 심란해서 빈정거리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뭐지?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서 그런가…….’

하지만 비가 올 때도 이렇게 불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결국 나는 최대한 고분고분하게 후작의 심기에 맞춰 나를 자학해서 평소보다 더 빨리 응접실을 탈출했다.

“샤샤……!”

나오자마자 곧장 4층으로 뛰듯이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뛰어가는 나를 보며 하인들이 역시 천한 것의 피는 못 속인다며 혀를 찼지만, 내 알 반가.

하지만 들어간 방 안은 지독히도 고요하기만 했다.

“샤샤……?”

문득, 덜컥 겁이 났다.

살갗에 와닿는 공기가 시렸다. 양손을 들고 팔을 한 번 쓸어내리던 나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서둘러 침대를 살폈다.

샤샤는 작으니까, 이불에 묻혀 있기라도 하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잖아?

나는 미친 듯이 이불을 뒤졌다.

있을 리 없는 베개 밑이나 매트리스 아래, 침대 아래까지 살폈지만, 샤샤는 보이지 않았다.

“샤샤!”

손끝이 떨려 왔다.

나는 얼른 발을 움직여서 방 안 곳곳을 둘러봤다. 옷장, 화장실, 벽장 안, 책상 서랍 안…… 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 시선이 열려 있는 창문에 닿았다.

‘창문이…… 열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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