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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데기 영애의 반격을 조심하세요 (13)화 (13/139)

13화

내가 손을 내밀자, 고개를 끄덕인 샤샤가 내 손바닥 위로 올라탔다.

나는 샤샤를 내 목 뒤와 머리카락 사이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뒤, 떨어지면 안 된다고 단단히 당부했다.

- 걱정 안 해도 돼

샤샤의 든든한 한마디를 끝으로, 나는 방을 나섰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샤샤가 내 목에 있다는 것 하나뿐인데, 세상이 너무나 화사해 보였다.

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길인데, 이렇게까지 예뻐 보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샤샤, 날씨 너무 좋다. 그치.”

- ㅇ……

“아, 대답하지 마. 혹시 모르니까 말은 아껴 둬야지.”

나는 샤샤의 말을 자르며 재게 걸음을 옮겼다.

판타지 소설 안인데 왜 마법이 없니. 인간적으로 공간 이동 마법 정도는 나와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따가 샤샤와 함께 데이트도 할 건데, 시간 아까워 죽겠다.

투덜거리는 사이, 나는 어느새 켈타카 은행에 도착했다.

오늘도 은행장실로 곧장 올라간 나는 은행장에게서 이번 분기의 수익표를 받아 들었다.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흠흠, 누가 알았겠어.’

동쪽의 드레인 대공령과 맞닿아 있던 까닭에 헐값으로 팔리던 아이스멜 산이 실은 금이 가득한 황금 오리였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도 빵빵하게 들어온 수익을 흡족하게 감상한 후 고개를 들었다.

“땅을 샀으면 해요. 좀 넓게.”

“어느 지역을 매입하고 싶으십니까?”

“에이리트의 이셀트 12구역.”

“이셀트 12구역…… 말씀입니까?”

내 말을 들은 은행장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수도 에이리트의 이셀트 지구는 귀족들의 수도 저택이 몰려 있는 부촌이었다.

그중에서도 12구역은 창밖의 풍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저택과 저택 사이의 거리도 꽤 떨어져 있어서 사생활 보호에도 적격인, 이셀트 지구 중에서도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구역이었다.

‘은행장은 지금까지 시세 차이로 이익을 본 내가 왜 갑자기 처음부터 고가인 땅을 구입하는지 궁금한 거겠지.’

뭐, 이셀트 12구역의 땅값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이유도 한몫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지역은 투자를 목적으로 매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네. 이왕이면 산책할 수 있는 숲이 인접한 곳이었으면 해요. 그리고 저택도 새로 지었으면 하는데.”

“……저택이요?”

“네. 다락방 있는 2층짜리 대저택이었으면 좋겠어요.”

바로, 셀루리아 가문을 나간 뒤 샤샤와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무릇 살 집은 최고급으로 구하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건도 굉장히 충분한데 비싸고 좋은 집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참고로, 셀루리아 가의 저택은 이셀트 12구역에 없었다.

고로, 마주치고 얼굴 붉힐 일도 없단 말씀!

12구역이 좁은 것은 아니지만 한 저택에 사용되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12구역에 저택을 둔 가문은 세 공작 가문이 다였다.

물론 세 저택이 들어서고도 공간이 조금 남기는 하지만, 셀루리아 가문은 12구역에 호화 저택을 사들일 만큼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던지라 좀 빠듯하긴 했다.

‘나는 당연히 거의 세계 최대의 억만장자니까 가능한 거고.’

아, 이렇게 돈이 많은데 미성년자란 이유로 2년 더 구박받고 살아야 한다는 게 억울하고 원통하다.

이후로 나는 은행장에게 이번 투자 방향을 알려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채 떼기도 전에, 은행장이 황급히 따라 일어서며 나를 불렀다.

“해수 님,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죠?”

샤샤와 데이트 할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터라 목소리가 날카롭게 나갔다.

답지 않게 주춤한 은행장은 아까보다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녹셰에서 알려 오기를, 셀루리아 후작 부인이 해수 님에 관한 정보를 요청했답니다.”

“아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 부인이 에인시아의 메디스 부인에게 해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뭐, 가장 중요한 S등급 열람 정보만 안 넘기면 되고, 녹셰는 그 정보는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기로 나와 거래했으니까.’

엄청난 금액을 가져가는 대가로 말이지.

‘그러면 A등급까지는 셀루리아 후작 부인의 수중에 들어갔겠구나.’

나는 태평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은행장의 말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D등급 열람 정보까지만 제공했대요.”

“……D등급?”

정보료는 등급이 올라갈수록 값이 비싸다.

후작 부인이라면 거액의 비용도 선뜻 지불할 테고, 그렇다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인 A등급을 제공하는 게 녹셰로서는 이득일 텐데?

의아한 눈초리로 은행장을 쳐다봤지만, 은행장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숨을 내쉰 나는 후드를 조금 더 끌어 쓰며 말했다.

“일단 알았어요.”

“녹셰에 사람을 보내서 이유를 물어볼까요?”

“아뇨, 괜찮아요.”

피도 눈물도 없는 녹셰에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내 정보를 D등급까지만 제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곧장 은행을 나섰다.

* * *

“와, 정말 에이리트가 한눈에 다 보이네.”

나는 깊게 눌러 쓴 후드를 뒤로 조금 젖히며 탄성을 터뜨렸다.

내 목 뒤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풍경을 보던 샤샤가 동의하는 것처럼 내 목에 뺨을 비볐다.

“샤샤 너도 동의하지?”

부비부비.

샤샤가 그렇다는 듯 다시금 내 목에 제 뺨을 비벼왔다.

그 감각이 간지러워서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에이리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중앙 광장이었다.

중앙 광장은 공원처럼 조성돼서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었는데, 예전에 켈타카 은행에 가려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발견이라기보다는…… 그냥 길 잘못 든 것뿐이지만.’

좋게 생각해서 나쁠 건 없지.

“샤샤, 저기 보여?”

내 말에, 샤샤가 앞쪽으로 고개를 조금 더 내미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을 들어서 샤샤를 조금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저기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곳이야.”

- ……!

한차례 통 튀어 오른 샤샤가 내 어깨에 얼굴을 박았다. 어쩔 줄 몰라서 방방 흔들리는 꼬리가 눈에 선한 듯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분홍분홍 샤샤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부끄럼쟁이 샤샤가 또 부끄럼을 타는구나?”

- 아니야……

샤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발갛게 물들인 꼬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고개를 어깨에 힘껏 박고 있는 주제에, 부끄럼 타는 건 또 아니란다.

푸하핫 웃음을 터뜨린 내가 다시 샤샤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였다.

“바네사……!”

돌연 팔이 잡혔다.

뿌리칠 새도 없이 돌려세워진 나는 다급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청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누구야, 너.”

재빨리 손을 뿌리친 나는 샤샤를 후드로 가렸다.

뜬금없이 나를 돌려세운 사람은 은발에 청안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잔뜩 경계하며 상대를 노려보자, 내 목소리를 듣고 흠칫한 남자는 재빨리 한 발짝 물러서며 젖혔던 후드를 다시 뒤집어썼다.

“……죄송합니다. 사람을 착각했습니다.”

정중하게 사과하는 남자를 모난 시선으로 노려보던 나는 문득 든 묘한 기시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은발 청안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홀릴 것 같은 청초한 외모의 젊은 남자라.

거기다가 올곧음이 뚝뚝 묻어나는 저 정중한 태도까지.

‘……저건 그냥 빼박 이신아 취향이잖아?’

덤으로 성격까지 추가하자면, 금욕적이고 융통성 없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그 모든 원칙이 무너지는 바로 그―

“남주? 야, 말해 뭐 해. 그냥 중추신경부터 말초신경 하나하나까지 모두 내 취향으로 범벅해 놨지.”

‘신.로.줄’의 남주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셨다.

“남주…….”

그러고 보니 아까 나를 잡으면서 불렀던 이름이 ‘바네사’였지. 여주랑 여기서 밀회하기로 약속했었던 모양이네.

‘하긴, 바네사도 신분이 알려지면 곤란하니 나처럼 클록으로 꽁꽁 감싸고 있겠지. 착각할 만해.’

“남…… 주? 그렇게 말씀하신 게 맞습니까?”

분명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입으로 내뱉어 버린 모양이었다.

신아의 취향을 고대로 빼다 박은 ‘신.로.줄’의 남주, 세네카 공작의 외동아들, 킬리언 르 세네카가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흠칫 놀라서 서둘러 고개를 젓자, 킬리언은 더 묻지 않고 단정하게 뒤로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방금 전 무례는 다시 한번 사죄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네.”

“그럼 전 이만.”

“앗 저기, 잠시만요!”

곧장 자리를 뜨려는 킬리언을 이번에는 내가 붙잡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킬리언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재빨리 그에게서 손을 뗀 나는 최대한 선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의 팔을 그렇게 막 잡고 돌려세우는 거, 정말정말 무례한 일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그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고지식한 성격답게, 킬리언은 불쾌한 기색 없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많이 죄송하시다면, 이 일은 빚으로 달아 두세요.”

“빚…… 말입니까?”

“네. 빚이요. 별거 없어요. 그냥 나중에 제가 빚 갚아 달라고 할 때, 저를 도와주시면 돼요.”

최대한 선하게 지은 표정과는 달리, 내 속내는 상당히 음흉했다.

킬리언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원칙주의자다. 물론 그게 무너지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주 한정이지 타인에게는 그대로 적용된다는 소리다.

그런 그가 약속을 어길 확률? 그냥 0에 한없이 수렴하지 뭐.

‘고로, 남주에게 빚을 달아 두면 적어도 한 번은 완전 든든한 뒷배가 생긴다는 말씀!’

무릇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 악착같이 잡아 둬야 하는 법이라고, 신아는 누누이 내게 그리 말하곤 했다.

예상대로, 킬리언은 큰 고민 없이 내 요구를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이는 후에 빚으로 달아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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