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흡사 ‘나 멋지지?’하고 뿌듯해하는 기색에, 구름빵을 모두 먹은 나는 얼굴 가득 웃으며 샤샤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고마워, 샤샤. 정말 너밖에 없다.”
촉, 하고 샤샤의 얼굴에 작게 입을 맞춰 줬다.
그와 동시에, 한껏 자신만만해져 있던 샤샤는 어디로 갔는지 내 손 위에는 잔뜩 부끄러워서 돌돌 똬리를 틀고 그 가운데에 머리를 쏙 숨긴 샤샤가 있었다.
부끄러워서 숨은 주제에, 꽃분홍으로 물든 꼬리는 맹렬하게 흔들고 있는 샤샤가.
‘샤샤야, 너 얼굴만 숨긴다고 다 숨어지는 게 아니야.’
너 부끄러워하는 거 다 보여…….
나는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선사해 준 은인이 저렇게 부끄러워하는데, 그 앞에서 하하하 소리 내 웃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샤샤,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까?”
오랜만에 가득 찬 포만감이 기분 좋아서, 나는 샤샤에게 말했다.
내 말에 흠칫한 샤샤가 조금 고민하다가 똬리를 풀고 나를 올려다봤다. 아직 부끄럽긴 한데, 내가 할 ‘재밌는 얘기’에 대한 궁금증이 부끄러움을 이겨 버린 모양이었다.
나를 보는 샤샤의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풋 웃었다.
저렇게 기대하니까 조금 미안해진다. 실은 별로 재밌지는 않은데.
“나, 사실은 이곳 사람이 아니야.”
샤샤가 눈을 멀뚱하게 끔벅였다. 고개도 갸웃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곳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샤샤를 쓸어내리며 이어 말했다.
“나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어. 그곳에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걔가 소설을 하나 썼거든.”
실은 설정만 짠 거지만, 편의상 그렇게 말했다.
“그 소설 속 세계가 바로 여기야.”
“……?”
샤샤는 여전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계속 샤샤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죽었어. 칼에 찔렸거든.”
‘죽었다’는 말에, 갸웃거리던 샤샤의 고개가 딱 멈췄다.
가맣게 빛을 잃어 가는 샤샤의 눈동자를 본 나는 회상에 잠길 틈도 없이 달래듯 이어 말했다.
“근데 다시 눈 떠 보니까 이 ‘에리카’의 몸 안이었던 거 있지.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둬서, 이곳 세계에 대한 설정에는 빠삭하거든. 덕분에 나중에 편히 살길도 모두 마련해 놨어.”
편히 살길 모두 마련해 놨다는 말에, 샤샤의 눈동자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안도한 것처럼 폭 숨을 내쉬는 것이 귀여워서 소리 죽여 쿡쿡 웃던 나는 이내 웃음을 갈무리하고 속삭였다.
“앞으로 2년 뒤에, 내가 여기서 나가면…… 우리 같이 살까?”
“……!”
샤샤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나를 보던 샤샤는 이내 몸 전체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면서 푸욱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서 대답도 못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소리 죽여 웃다가, 조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샤샤의 분홍분홍한 몸통을 톡톡 두드렸다.
“응? 샤샤, 대답 안 해 줄 거야?”
“…….”
“샤샤아, 응? 응? 왜 대답 안 해 줘. 샤샤는 싫어?”
‘싫으냐’는 물음에, 푹 수그리고 있던 샤샤의 고개가 불현듯 통 튀어 올랐다.
샤샤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미 샤샤를 놀리는 데 맛 들려 버린 나는 부러 서운한 척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샤샤는 싫다고……?”
도리도리!
많이 다급했던 모양인지, 분홍분홍하던 샤샤의 몸도 원래의 검은빛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모습이 하도 절박해서,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샤샤도 좋은 거 다 알아. 나 똑똑하지?”
하르르, 조막만 한 입에서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숨 돌리는 와중에도 내가 똑똑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샤샤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무의미하게 버려지던 일상에, 소소한 의미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