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거 말 시원해서 듣기는 좋은데 이거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할멈, 할멈은 대체 언제 뒈지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듣던 미미아윈의 앙숙 헤즈윈 출신의 사내가 큰 소리로 비웃었다. 그에 발끈한 건 히바니나 미미아윈 사람이 아닌 자리히였다.
“이 새끼가, 누구 할머니한테 뒈지라 마라야! 우리 할멈은 니 에미보다 오래 살 거다!”
“잘한다, 자리히! 내 손주!”
“자리히 치체코아, 해 보자는 거냐?”
“등신 같은 새끼들이 우르르 몰려 앉아서 쪼개기는 뭘 쪼개.”
미미아윈인들이 겪는 고초를 재미있다 즐기며 쪼개고 있던 헤즈윈인들이 서서히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헤즈윈과 친분이 제법 도타웠던 모아헤빈 쪽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녀석들, 올해는 정도를 지나치는군. 너희가 데려온 저원 녀석들이 부족 회의를 죄 망친 것도 모자라, 미미아윈의 명예로운 사피히를 다히윈의 거지새끼들이 거둔 그 배신자로 깎아내렸잖아. 어느 쪽의 문제인지는 모두 알 텐데?”
그러자 거론된 샤페이의 이름에 알게 모르게 껄끄러운 내색을 감추며 앉아 있던 다히윈 쪽에서 한 여자가 분이 터져 나왔다.
“지금 지껄인 새끼 누구야. 뭐라고? 거지새끼?”
“그러면, 매해 가지고 와 나누는 건 가장 적으면서 받아 처먹기는 제일 많이 받아 처먹으려는 네놈들이 거지새끼가 아니면 누가 거지새끼냐? 우의의 약속을 어기고 우리의 창고를 털어 가려다가 걸리자마자 ‘사정이 힘들었어요’ 징징거렸던 새끼들이 있었는데, 아, 너희들이었지?”
“매번 제일 적게 가지고 오는 건 테카스빈이야!”
그때부터는 누가 어디서 무슨 말을 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목소리가 섞여 들기 시작했다.
뫄뫄뫄뫄! 뫄뫄뫄뫄뫄뫄! 뫄뫄뫄뫄뫄뫄!
싸움은 들불처럼 번져 가기 시작했다. 사태가 그 지경이 되었을 때에야 발레리아와 사피히는 서로를 붙들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어.’
벌어지는 상황은 로리아인들마저 당혹하여 저들끼리 바짝 붙어 모이게 만들었다.
스카리는 별안간의 상황에 어이가 없어 턱을 매만지며 한숨을 삭였고, 발레리아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고, 공주님, 조심하세요.]
미미아윈의 전사들은 헤즈윈인들과 싸우고, 데모윈과 모아헤빈 사람들은 엎치락뒤치락 뒤엉켰다. 다히윈은 그들 사이에 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며 씩씩거렸고, 테카스빈은 그들이 가장 적게 가지고 오는 것으로 차별을 한다며 악다구니를 써 댔다.
한 자루의 칼도 없이 시작된 다툼은 덩치 큰 사내와 여자들이 우악스럽게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전쟁 통이었다.
“그래, 잘 됐다. 네놈들 안 그래도 진작부터 벼르고 있었다!”
“방금 나한테 이거 던진 새끼 누구야!”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단언컨대 발레리아가 원치 않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무기를 쥐고 휘두르는 대신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집어 던졌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 부딪치고 구르는 물건들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목걸이, 술잔, 접시, 옷감, 주전자, 먹던 음식, 심지어 사람까지 비행 능력을 얻은 것처럼 날아다니고 구른다.
산발을 한 채로 난장판이 된 회장을 보는 발레리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안 돼.’
날아다니는 그 물건들에 대한 약간의 수식을 더하자면 그건 로리아의 목걸이, 로리아의 술잔, 로리아의 장신구, 로리아의… 그녀의 지참금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쨍그랑 부딪칠 때마다 뭔가 하나씩 깨지고, 부서졌다.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정신 나갈 것 같은 풍경이었다.
잠자코 돌아보던 스카리가 발레리아에게 다가왔다.
“발레리아.”
스카리의 팔을 밀친 발레리아는 황급히 지참금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마치 그게 짱돌이나 되는 것처럼 잡히는 대로 마구 던져 대는 노즈윈드인들을 따라다니며 말렸다. 하지 마, 그만해!
[니들끼리 싸워, 그만해, 그거 던지지…!]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물건을 피해 막 그녀가 허리를 숙이려는 순간이었다. 낯선 손아귀가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낚아채 휙 끌어당겼다. 놀란 발레리아가 소스라치며 그 손을 떨쳐 내려던 순간이었다.
[놓지 못…!]
[공주, 화난 거 알겠으니까 일 더 키우지 맙시다. 위험하니 잠깐 이쪽으로 빠지고.]
발레리아는 그녀도 모르게 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려지는 회색 털 망토를 걸친 장신의 남자였다. 남자의 머리색이 익숙했다.
‘…은발?’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이 사람 방금 공용어를 했….’
그 순간이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접시가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팅! 발레리아는 졸도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