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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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33.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그사이 리조트 2차 시안 작업은 끝이 나 외부 설계는 확정되었고, 조경 설계 팀과 함께 3D 조감도 작업 중이었다.

3차에선 좀 더 세세한 설계 작업이 들어간다. 룸, 거실, 발코니, 욕실, 부대시설 등등. 세부 평면도가 완성되는 시기기도 했다.

회사의 미래가 걸린 프로젝트인 만큼 온 직원들이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 해원과 인우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둘이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건만, 단둘이 시간을 보낸 날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시간도 침대에서 격렬하게 관계를 가지느라 바빴다. 마치 지금처럼.

“하!”

좁은 질 안을 밀고 들어오는 거대한 페니스를 받아들이면서, 몸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 체위는 인우가 제일 좋아하는 체위기도 했다. 그녀의 허리를 두 손을 꽉 붙잡으며,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호흡을 맞추었다.

그가 위에서 저를 안을 때보다 더욱 깊숙이 그의 성기가 닿았다. 민감한 곳을 사정없이 찔러대는 그 느낌에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해원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높은 교성을 내질렀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 몸을 꿰뚫는 것 같은 쾌락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그녀의 신음 소리에 그가 더욱 힘주어 허리를 붙잡았다.

“알아? 지금 네 표정이 얼마나 야릇한지?”

신음 섞인 거친 숨을 내쉬며 인우가 입을 열었다.

“그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뒷머리로 가져간 그는 그녀의 얼굴을 당겨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입천장을 핥고 지나가는 혀가 단숨에 그녀의 혀를 휘어감아 깊숙하게 빨아 당겼다. 그러고는 빙그르르 몸을 돌려, 어느새 자신의 아래에 그녀를 두었다.

욕망에 사로잡힌 검은 눈, 짐승의 본능만이 남아 있는 듯한 그 눈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떨렸다. 이제 곧 두 사람을 집어삼킬 커다란 파도와 같은 쾌락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으니까.

더욱 세게 허리를 높이 들었다 내려놓으며, 그는 더욱 깊숙이 그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한 번씩 허리를 튕길 때마다 질은 미끈거리는 애액을 토해 내며 페니스를 세차게 조여 댔다.

“이제 겨우 남자를 알아 가는 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그가 반쯤 벌린 해원의 입술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입술은 흥분하면 벌어지는데. 알고 있어? 네 질 속은 흥분하면 점점 더 날 조여 댄다는 걸.”

귓가에 들리는 그의 음탕한 말에 그녀의 몸속이 움찔 수축했다. 해원의 얼굴 역시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부끄러운 것도 잠시, 더욱 속도를 높여 찔러대는 그의 성기에 해원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쾌락이 선사하는 절정이 아직은 두렵기만 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그 쾌락이 자신의 모든 걸 다 집어삼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꼭 그 순간이 다가오면 해원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잡으며 숨을 참았다. 그래야만 그 쾌락을 감당할 수 있기에.

“또 시작이네. 아파, 윤해원. 긴장 풀어. 조이는 것도 좋지만, 너무 좁다고.”

그가 혀로 부드럽게 귓불을 핥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좀처럼 긴장을 푸는 게 쉽지 않았다.

“별수 없군.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그가 하는 말에 해원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씩 웃으며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가 보였다.

“사실은 그걸 바라고 이러는 걸까.”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허리를 세웠다. 그러고는 여전히 페니스론 거센 피스톤질을 이어 나가면서 왼손으로는 여성의 꽃잎을 활짝 벌렸다.

“하, 하지 말아요.”

해원은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하지만 부풀어 있는 클리토리스를 향해 움직이는 오른손이 더욱 빨랐다.

“흣! 아, 안 돼!”

날카로운 신음을 내지르며 해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독이 오른 클리토리스를 긁어대는 그의 손가락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며 허벅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하! 말과 다르게 이 안은 엄청 뜨거워. 더욱 미친 듯이 조여 대고 있다고.”

그의 말이 맞았다. 저절로 조여졌다 풀어지는 질이 자신 역시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예민한 클리토리스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변이 마려운 것과 비슷한 배뇨감이 찾아오며 자궁이 찌르르 아파 왔다.

“돌겠네, 정말!”

그 역시 끈덕지게 따라붙으며 조여 대는 질로 인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퍽퍽,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가 허리를 움직여댔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오른손은 클리토리스를 빠르게 비벼대고 있었다.

짐승 같은 신음성이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며 강렬한 절정에 올랐다. 인우가 천천히 정액이 가득한 콘돔을 질 안에서 뽑아내자, 왈칵하고 미처 흘러나오지 못한 애액이 침대 시트를 적셨다.

“흠뻑 젖었네. 점점 더 양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애액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여성을 바라보는 그의 검은 눈은 여전히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방금 전 가졌던 격렬한 정사로 인해 부끄러워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해원은 나른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때 아직 민감한 열기를 내뿜고 있는 여성에 그의 혀가 닿는 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해원이 눈을 뜨자, 혀를 내밀어 그곳을 핥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서, 선배! 읏!”

“먹고 싶어.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혀는 주름진 살을 가르며 미끈거리는 애액을 핥아댔다. 하지만 방금 절정을 맛본 예민한 여성에선 또다시 애액이 흘러나와 그의 입술을 흠뻑 적셨다.

할짝할짝, 끊임없이 그곳을 혀로 핥아 가며 자극하는 음란한 소리와 야릇한 해원의 신음 소리가 조용한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질을 빠르게 들락날락하는 꼿꼿한 혀가 선사하는 자극에 해원은 또 한 번 왈칵 애액을 쏟아 내며 절정을 맛보고 나서야 그에게서 풀려날 수가 있었다.

**

욕실에서 씻고 나오니 벌써 옷을 다 챙겨 입고 집에 갈 준비를 마친 해원이 보였다. 처음 관계를 가진 그날 이 집에서 잔 거 말고는, 한 번도 자고 간 적이 없었다.

마치 이 집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기 싫은 사람처럼 침대 시트도 깔끔하게 정리해 두고,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았다.

그런 해원을 보고 있으면 갈증이 났다. 젖어 있는 머리를 털면서도 그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인우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윤해원.”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입 안이 까끌거렸다. 가방을 챙겨 들던 해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네, 선배.”

“나 좋아해?”

무심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지만, 긴장으로 인해 목은 타들어 갔다. 벌써 수없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 놓고, 왜 물을 때마다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네, 좋아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오는 그녀의 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답은 참 잘해.”

“그만큼 선배를 좋아하니까요.”

“안 민망하냐? 그런 말 하는 거?”

좋아한다 말을 하는 그녀보다 왜 듣고 있는 자신이 더 민망해지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안 민망해요. 말하고 나면 여기가 평온해져요.”

미소를 지으며 심장 부근을 향해 손을 뻗는 그녀의 얼굴이 순간 예뻐 보였다. 요즘 들어 자주 이런 순간이 있었다. 윤해원이 너무 예뻐 보여 시선을 떼기 힘든 그런 순간이. 큰일이다, 정말. 더는 예뻐 보이면 안 되는데…….

“그렇게 내가 좋으면 그냥 자고 가지?”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보다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니. 내가 좋다며. 그러니까 더 오래 보고 싶을 거 아니야. 잘생긴 내 얼굴.”

민망함에 말이 빨라졌다. 어색한 얼굴로 이마를 긁적이며 하는 말에 해원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좋으니까 아껴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일도 많고요. 또 남의 집에서 자는 거 조금 불편해요.”

그녀가 택한 수많은 단어 중 ‘남’이라는 단어가 귀에 와서 콕 박혔다. 이상하게 심사가 뒤틀렸다. 그녀가 남이라 불러 주며 달라붙지 않아 주는 사실에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에 짜증이 치솟다니. 스스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그냥 해 본 말이야. 나라고 뭐 네가 여기서 자는 게 좋은 줄 알아?”

들끓는 속을 숨기지 못한 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이고 차 키를 챙겨 들었다.

“나와. 집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자신이 기사 노릇까지 자처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매번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있었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차 문을 열어 시동을 걸며 인우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는 해원의 모습에 인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창밖만 바라볼 뿐.

운전석 유리창에 반사되어 비치는 그녀 모습을 힐끔거리며 인우는 조용히 차를 몰았다. 그때 차에 블루투스로 연결된 핸드폰에 기준의 번호가 뜨며 시끄럽게 울어댔다.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자, 요란한 음악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오빠, 나야!

분명 기준의 번호가 맞는데, 뜬금없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누군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하며 슬쩍 옆에 앉은 해원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지극하게 평온했다. 이 늦은 시간에 여자한테 전화가 걸려왔는데,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나야, 나. 주란이.

“강주란? 너 진짜 주란이야?”

사실 별로 주란이 반가운 건 아니었다. 뉴욕에 유학을 간 주란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와서 반가운 마음이 살짝 있긴 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해원을 자극하고 싶다는 비뚤어진 마음에 한껏 반가운 척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야. 오빠가 날 이렇게 다 반겨 주고. 오빠도 나 많이 보고 싶었구나?

주란이 하는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그의 신경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해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가 보네. 어디야?”

-우리 자주 가는 클럽 있잖아. 거기서 놀고 있어. 오빠도 나와라. 요즘 무지 바쁜 척한다며? 모임에도 잘 안 나오고.

회사 일이 워낙 바쁘기도 했고, 짬이 날 땐 늘 해원과 붙어 있느라 모임에 소홀하긴 했다. 예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인맥 관리 차원차 모임엔 꼬박꼬박 나가곤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윤해원을 만나고 나서 모든 게 다 꼬여 버렸다.

그런데 이 무심한 여자는 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가방에서 설계 도면까지 꺼내 살펴보고 있었다. 입으론 좋아한다 말하면서, 행동이 어떻게 저리도 덤덤한 건지.

사실은 질투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더 많이 자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금은 보상 받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제 삶이.

-오빠?

주란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인우는 정신을 차렸다.

“어, 알겠어. 금방 갈게. 네가 부르는데 당연히 가야지.”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재미가 없었다. 도면을 넘기는 그녀의 손짓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자신이 뭔 짓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녀의 반응에 점점 더 지쳐 갔다.

-응. 기다릴게.

“그래.”

전화가 곧 끊어졌고, 차 안에는 다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강국 병원 외동딸이야. 너도 알지, 강국 병원?”

대한민국에서 강국 병원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네, 알아요.”

“새삼 기죽지 않아? 이런 여자들과 친한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사실에.”

할 수만 있다면 이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 자신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바닥을 내보이려고 이러는 건지.

“그러게요. 그래도 남은 기간 동안은 힘내 볼게요. 기죽지 않도록.”

정말 약속한 시간이 지나면 윤해원은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사실에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걸까.

또다시 짙은 두려움이 마음을 침범했다. 자신의 모든 걸 내던져서라도 저 자그마한 손을 붙잡고 싶게 될까 봐, 인우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커진 순간, 인우는 핸들을 비틀었다.

끼이익. 요란한 마찰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인도 바로 옆에 차를 멈춘 세운 인우는 애써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려야겠다, 너.”

해원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차라리 그 눈빛에 원망이라도 담겨 있다면 속이 이렇게까지 뒤틀리지는 않았을 텐데.

“보다시피 난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네, 선배. 가볼게요.”

비꼬듯 하는 그의 말에도 해원은 차분히 대답하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묵묵히 앞만 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게 꼭 자신을 떠날 때 그녀의 모습 같아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에서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젠장. 빌어먹을……. 돌아보란 말이야, 좀.”

돌아봐라, 돌아봐라, 돌아봐라.

미친놈처럼 수없이 되새기며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하지만 끝내 해원은 돌아보지 않았다. 택시가 그녀를 태우고 사라진 한참 후에도, 인우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정말 미친놈처럼…….

**

해원은 지친 얼굴로 택시에서 내렸다. 아직도 귓가엔 인우와 통화를 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강주란. 인우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예전에 회사에서 잠깐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의 회사가 강국 병원 공사를 맡은 적이 있을 때, 주란이 직원들 먹을 도시락을 챙겨 회사에 놀러 왔었다.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얼굴에 기품까지 있었다. 거기다 성격까지 좋아서 부잣집 외동딸 같지 않다며 직원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했었다.

인우가 결혼을 한다면 저런 여자와 하지 않을까. 감히 부러워하지도 못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현실 앞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날이었다.

“또 이런다.”

요즘 좀 인우가 잘해 준다고 그새 기대가 생겼나 보다. 주란의 전화에 이토록 마음이 쓰이는 걸 보면. 해원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열고,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코트를 벗어 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바쁜 와중에 틈틈이 인우에게 선물할 의자를 디자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 의자를 인우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헤어지기 전에 완성해서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미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자신이 작업한 강남의 한 빌딩을 보고, 마음에 든다며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손을 내밀었다. 함께 작업해 볼 생각이 없는지. 평상시 존경하던 건축가였기에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어차피 여기에 남아 있으면, 마음 정리가 힘들 게 분명했다. 아픈 기억은 모두 잊고, 인우와 좋은 기억만 간직한 채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가 그리워도 돌아오기 힘든 먼 곳으로.

“아주 가끔은…….”

그에게 선물할 의자 도안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날 떠올렸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의자가 미련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차마 마지막까지 접지 못할 그를 향한 마음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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