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 (2/46)

<에필로그>

부천에 있는 전원주택 단지에 지어진 그림 같은 이층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우는 흐뭇한 얼굴로 집을 올려다보았다. 브라운 톤으로 모던한 느낌을 극대화시킨 집은 다양한 각도로 햇살이 들어오게 설계되어 있었다.

얼마 전, 이 집으로 해원은 젊은 건축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연소 수상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잡지에 이 집이 실렸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때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도 참 많이 받았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해원과 꾸준히 건축 사무소나 운영할 걸 그랬다. 백화점 영업 팀에 들어간 지 이제 1년 차, 팀에서 제일 막내이다 보니 온갖 궂은일과 잡일은 제몫이었다.

그 회사에 들어갈 때 절대 신분을 노출 시켜서는 안 되는 조항이 있었기에, 군소리 없이 그 일들을 견뎌야만 했다. 처음엔 사실 그게 많이 힘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그걸 누구보다 영악하게 이용하면서 살아왔기에 평범한 삶에 적응하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버티지 못하면 해원과 헤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할아버지가 내걸었기에, 인우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세상에 해원을 잃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없다는 걸, 헤어져 있는 시간 동안 제대로 배웠기에.

“그래도 집에 오니까 좋다.”

해원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토요일까지 회사에 불려 가 오전 근무를 마치고 나서야 풀려날 수가 있었다. 그 스트레스를 풀 겸 백화점 마트에 들려 싱싱한 한우를 한 근 샀다.

해원의 요리 솜씨는 점점 더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 아래에서 이 한우가 어떤 근사한 요리를 태어날지 기대를 하며 인우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저보다 먼저 집에 와 있는 반갑지 않은 인물이 보였다.

“왔어?”

손을 들어 반기는 기준을 인우는 매섭게 노려보았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아, 나는 옥돔이 들어와서. 너희 집 나눠 줄까 들른 김에 점심 얻어먹고 있었지.”

아닌 게 아니라 식탁 위엔 먹음직스러운 옥돔찜이 올라와 있었다.

“야, 삼시 세끼 찍어? 재료만 들고 오면 다야? 네가 왜 보기에도 아까운 내 아내 부려먹는데?”

“이거 원, 아내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

“억울하면 결혼하든가.”

퉁명스러운 인우의 말에 기준이 꼬리를 살포시 내렸다.

“이건 결혼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 같다. 해원이 솜씨에 입맛이 길들여져서.”

“길들여지긴 뭘 길들여져?”

“솔직히 해원이가 요리 잘 하긴 하잖아. 나 요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해원이 건축 그만두게 하고 셰프로 고용해서 레스토랑을 열까.”

“미친놈. 열어도 내가 열어. 그런데 해원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베란다 문이 열리며 잘 씻은 배추를 들고 나오는 그녀가 보였다. 설마 저 배추도 기준이 가지고 온 건가 싶어 인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저건 나 아니야. 너희 할아버…….”

기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화장실 문이 열리며 거기서 나오는 정 회장의 모습이 인우의 눈에 들어왔다.

“왔어요?”

“크흠, 이제 오는 게냐?”

해원과 정 회장이 동시에 인우를 반기며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또 여기 와 있어요? 저 배추 할아버지가 가져온 겁니까?”

“보쌈 드시고 싶어서 오셨대.”

기준이 저만 당한 게 억울했는지 이때다 싶어서 인우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점점 더 기가 막혔다. 주말이라고 오붓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불청객이 많아서야, 원.

“여기가 무슨 식당입니까? 보쌈 드시고 싶다고 여길 오고?”

정 회장은 해원을 예전만큼 싫어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툭하면 이렇게 주말에 찾아와 드시고 싶은 음식을 말해 해원을 괴롭히곤 했다. 차라리 싫어할 때가 나았다 생각이 들 정도로 자주 찾아왔다.

해원의 음식을 맛본 사람들을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다시는 사람들을 초대해 그녀의 음식을 대접하지 않겠다, 굳게 다짐을 하며 인우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정 회장을 바라보았다.

“해원이가 오라고 해서 온 거야, 이놈아.”

“맞아요. 안부 전화드렸는데 보쌈 드시고 싶으시다 해서 제가 오시라고 했어요. 이것 봐요. 할아버님이 엄청 좋은 배추도 구해다 주셨어요.”

해맑은 해원을 보며 인우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다 너 부려먹으려고 가져온 거잖아. 할아버지 집에 아주머니도 계시잖아요. 아주머니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지, 왜 해원이를 괴롭혀요?”

“쯧, 고얀 놈. 지는 맨날 해원이가 해주는 요리 먹으면서 양심이 어찌 저리 없누.”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느새 정 회장과 기준이 쿵짝을 맞추어 인우를 공격했다.

“다들 앉으세요. 얼른 보쌈 준비할게요. 그런데 이건 뭐예요?”

해원이 이번에 인우가 사들고 온 한우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한우. 오래간만에 먹고 싶어서.”

기준과 정 회장은 날선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너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 라는 뜻이 내포된 그 눈빛에 인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내가 구우려고 사온 거야. 우리 해원이 시키려던 게 아니라.”

“사오려면 좀 많이 사오든가. 쥐꼬리만큼 밖에 안 되겠네. 저걸 누구 코에 붙여?”

언뜻 보기에도 양이 적어 보이는 한우를 보며 기준이 투덜거렸다.

“불만을 제기하려거든 할아버지한테 제기해. 내 월급이 바로 쥐꼬리거든.”

“그놈의 쥐꼬리 참 크기도 하구나. 얼마 전에 영업 실적으로 인센티브도 두둑이 가져간 녀석이.”

“그건 다 제 능력으로 번 돈이잖아요. 인센티브까지 없었으면 해원이랑 저 벌써 굶어 죽었습니다.”

“야, 그건 오버다. 해원이가 얼마나 잘 버는데. 너보다 훨씬 잘 벌잖아.”

정곡을 쿡 찌르는 기준의 말에 인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넌 좀 빠지지. 난 지금 우리 회사 대표랑 이야기하고 있는 거거든.”

“평사원부터 시작하겠다는 놈은 너였어.”

“해원이랑 결혼한다고 회사에서 저 내쫓으려고 했던 건 할아버지였죠.”

끝도 없는 싸움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해원은 덤덤한 얼굴로 주방에 서서 겉절이를 담그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그런데 그때 막 멸치 액젓 뚜껑을 열던 해원이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유치하게 말싸움을 벌이던 남자들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헛구역질에 모두 대화를 멈추고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아?”

제일 먼저 곁으로 다가온 인우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체한 거 아니야? 아까 옥돔찜 할 때도 그러더니.”

“옥돔찜 하는 게 무리였나 보구나.”

각자 곁에 다가와서 한마디씩 하는 남자들에게 괜찮다 손을 내젓던 해원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주방에 남겨진 세 남자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화장실 문을 바라보았다.

“거봐요. 우리 해원이 몸도 약한데. 다들 그만 돌아가 주시죠.”

인우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두 남자는 머쓱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정 회장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였다.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

비웃으며 손을 내젓던 인우는 머릿속으로 정신없이 날짜 계산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생리 할 때가 한참을 지난 거 같다. 항상 월초쯤에 했던 거 같은데, 이번 달엔 그녀가 생리를 한 기억이 없었다.

요즘 유난히 많이 졸려 하던 해원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이 많아서 그런 거라 생각하고 기준에게 날 잡아서 전화해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병원부터 가야겠어요. 지금 이 시간에 문 연 산부인과가 있을까요.”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계를 보며 인우는 초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임신 맞는 게지?”

정 회장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아, 안 되는데.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

이 와중에 눈치 없이 일 이야기를 꺼내던 기준은 두 남자의 눈빛 공격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가족 아닌 사람은 그만 빠지지.”

인우의 말에 정 회장이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구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그렇게 반대해 놓고서 가족이라 우기시면 안 되죠.”

정 회장은 낮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기서 젤 가까운 P병원으로 가지. 내 거기 원장에게 미리 연락해 놓을 테니까.”

퉁명스러운 노인네도 아기 소식은 반가운가 보다. 나서서 병원에 먼저 연락을 해놓는다는 거 보니.

“일단 확실한 거 아니니 저랑 해원이 먼저 갈게요. 두 사람은 그만 돌아가요.”

인우의 축객령에 두 남자는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축하드려요. 임신 7주네요.”

초음파를 들여다보던 여의사가 해원과 인우를 향해 축하의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 아기집 안에 동그란 점 보이시죠? 이게 바로 태아예요. 심장 소리 들려드릴게요.”

의사가 말을 마치자마자 쿵쿵쿵쿵, 하는 요란한 아기의 심장 소리가 진료실 안에 가득 찼다. 두 사람은 동시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너무 귀여워요.”

해원의 들뜬 중얼거림에 인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거 아닙니까?”

“원래 태아 심장 박동수는 빠르게 뛰어야 정상이에요. 분당 140에서 150 정도로 뛰다가 주수를 채울수록 점점 느리게 뛸 거예요. 아주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신호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의사의 설명에 인우는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엽산 잘 챙겨 드시다가, 2주 뒤에 오시면 되겠네요. 그땐 젤리 곰 모양의 태아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가지고 싶어 피임도 하지 않은 채 관계를 가졌는데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소식이 없어서 내심 불안하던 차였다. 올해가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병원을 찾아올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 내년을 한 달 앞두고 새 생명이 두 사람을 찾아온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 수납하고 올게.”

초음파를 보고 나온 후 인우는 더욱 조심스럽게 해원을 대했다. 의자에 앉은 해원은 아직은 아무 티도 안 나는 자신의 배로 손을 가져다 댔다.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에 뭉클해졌다. 일이 바빠 생리가 늦어지는 것도 모르고, 무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해원은 조심스레 배를 문질렀다.

찰칵.

그때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자, 핸드폰을 들고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인우가 보였다.

“선배?”

“방금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중에 우리 아기 태어나면 보여주려고. 네가 배 속에 있다는 걸 알고 엄마는 이렇게 행복해했단다, 하고.”

씩 웃은 인우가 해원의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감쌌다.

“그런데 말이야. 이제 아이도 생겼는데 우리 호칭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아이가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어? 엄마가 아빠를 선배라고 부르면.”

“그건 그러네요.”

해원이 머쓱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 그러니까 이제 불러 봐. 오래전부터 연습하고 있던 그 말.”

원래는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그 호칭으로 불러 주길 인우는 원했지만, 해원이 너무 어색해해서 매번 실패하곤 했다.

“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재촉하는 그의 말에 해원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 여보…….”

눈을 질끈 감고 그 말을 내뱉자 인우가 활짝 웃었다.

“왜 여보?”

힘들어하는 해원과 달리 인우는 너무나 능청스러운 얼굴로 그 호칭을 입에 담고 있었다.

“그, 그만 집에 가요.”

잔뜩 붉어진 얼굴로 해원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래, 여보. 같이 가, 여보. 조심해야지, 여보.”

여보랑 호칭에 맛 들였는지 주차장 가는 길 내내 그는 그렇게 부르는 걸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달고서.

**

해원의 임신에 대한 축하도 하루 종일 이어졌다. 그중 제일 기뻐한 사람은 바로 인우의 할아버지인 정 회장이었다. 손주들 중에 제일 처음으로 임신한 게 해원이라 그런지 유난히 더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사실 요 근래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정 회장은 은근히 해원을 예뻐라 했다. 그녀가 집에 만들어 준 정자도 정 회장이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고, 그녀가 해주는 요리를 맛보고 싶어 매번 주말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들의 집을 찾아오곤 했다.

덕분에 요즘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사촌들 사이에서도 요리 배우기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해원의 손맛에 넘어간 정 회장이 회사까지 넘기는 거 아니냐는 말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주란이 있었다. 얼마 전 큰아버지의 차남인 서우와 결혼에 골인했다. 서우는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나마 얼굴은 제일 인우와 닮았다. 주란이 그래서 그를 선택한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재벌가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인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강국 병원과 기어코 사돈을 맺은 할아버지에게 감탄을 할 뿐이었다.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그 끈기만큼은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주란을 포함한 나머지 사촌들의 요리 배우기 열풍을 파악한 인우는 코웃음을 쳤다.

“제발 한 명이라도 나오면 좋겠네. 해원이보다 요리 잘하는 사람.”

후계자 자리보다 해원과 오붓하게 보내는 주말이 더욱 간절하게 그리운 남자였다.

기준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임신을 한 해원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3주간의 긴 휴가를 주었다. 물론 그 휴가를 주지 않으면 당장 해원을 그 회사에서 나오게 하겠다는 인우의 협박에 못 이겨 준 휴가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기준은 진심으로 해원의 임신을 축하해 주기도 했다. 아직 태어나려면 먼 아기 선물도 부지런히 사다 나르고 있었다. 모자, 옷, 신발, 하물며 침대까지. 곧 태어날 조카의 탄생을 누구보다 기대하는 눈치였다.

물론 선물 공세는 할아버지인 정 회장 역시 만만치 않았다. 특별히 주문한 아기 선물들을 툭하면 집으로 보내왔다. 기준과 다른 게 있다면 종종 그 안에 해원의 선물이 섞여 있다는 것뿐이랄까.

물론 카드엔 ‘오다 주웠다.’라고 퉁명스레 적혀 있었지만. 귀걸이와 함께 들어 있는 그 카드를 보며 인우는 피식 웃음을 삼켰다.

“이 비싼 걸 어떻게 오다 주워. 하여튼 좀 좋게 주면 어디가 덧나서. 우리 할아버지 성격 진짜 이상해, 그렇지?”

그는 알까? 그의 성격이 상당히 할아버지와 닮았다는 것을. 물론 그 사실을 말해 주면 난리가 날 것 같아 해원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때는 음식 재료를 사다 나르던 두 남자가 보내오는 선물만으로도 집에 아기 방이 가득 찰 지경이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배 속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꿈틀.

이제 제법 나온 해원의 배에 손을 대고 있던 인우는 아기의 태동에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우리 행복이 움직인 거 맞지?”

아기의 태명을 말하며 묻는 인우의 말에 해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와, 신기해. 행복아, 한 번 더 해봐.”

배 속 아기의 발길질에 행복해하는 인우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우리 행복이는 진짜 좋겠어요.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게. 그래도 난 여전히 널 제일 사랑해.”

해원을 뒤에서 안으며 인우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건 아이가 태어나도 변함없을 거야. 네가 없었으면 나 이런 감정 평생 모른 채 돈과 권력에만 집착하며 평생을 살았을 테니까.”

“아직도 후회 안 돼요? 나 때문에 놓쳐 버린 것들?”

“안 돼. 널 놓쳤으면 훨씬 더 큰 후회를 했을 테니까.”

해원은 단단한 그의 팔에 얼굴을 기댔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 엘 마크를 버리고 한국에 남은 걸 후회 안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귀한 것들을 얻었다. 세상 그 어떤 것들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

인우의 팔에 얼굴을 기대 손을 뻗어 배를 어루만졌다. 세 가족이 함께 하는 이 평화로운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

“행복아, 서운해하면 안 돼. 너보다 엄마를 더 사랑한다고 한 건 진짜지만, 아빠는 너도 진짜 사랑해. 그러니까 한 번 움직여 봐, 응? 삐졌어? 알았어. 엄마만큼 우리 행복이도 사랑해. 자, 이제 움직여 봐. 에이, 그러지 말고.”

잠결에 들려오는 인우의 목소리에 해원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부푼 배에 대고 열심히 말을 걸고 있는 인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하도 사랑스러워 해원은 숨죽여 웃음을 참았다.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나길 엄마랑 아빠랑 기다리고 있어. 태어나면 같이 많이 다니자. 엄마가 지은 건축물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어. 멋있냐고? 당연하지. 아빠 눈엔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아니, 예쁘다. 딱 너희 엄마를 닮았어. 너도 태어나서 깜짝 놀라지 마. 엄마가 너무 예뻐서.”

배에 대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인우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해원은 다시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사랑해, 행복아. 사랑해, 해원아.”

나도 사랑해요, 라고 마음속으로 답하면서 또다시 행복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여전히 인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배 속의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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