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46)

<프롤로그>

최고급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고급스러운 가죽 책상과 책장, 햇살이 잘 들어오는 넓은 창을 가리고 있는 블라인드까지 주인을 닮은 품격이 느껴졌다. 최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주인의 품격에 맞게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만년필마저도 엄청난 몸값을 자랑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남자는 엄청난 포스를 뽐내고 있었다.

185cm의 커다란 키, 늘씬한 다리, 살짝 마른 듯하면서도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들이 숨어 있는 몸매, 넓은 어깨, 유난히 아름다운 목선, 자그마한 얼굴, 선명한 이목구비, 마치 신이 빚어 놓은 정교한 조각품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남자였다. 이 방의 주인인 정인우는.

“젠장.”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을 보던 그는 칠해 놓은 것 같은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잘 정돈된 검은 머리를 신경질적인 손길로 쓸어 넘겼다.

‘사귀어요, 나랑.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만.’

아직도 귓가에 선명한 해원의 목소리에 피식 헛웃음을 내뱉었다. 다른 여자도 아니고 윤해원이 저런 말을 해올 거란 걸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중요한 연봉 협상 자리에서 원하는 조건으로 저딴 걸 말하다니.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원을 봐왔지만, 그녀를 여자라 인식한 적이 없었다. 잠깐 만나는 애인일지라도 늘 최고만 고집하는 자신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여자였으니까.

자신과 어울리려면 적어도 재계 순위 100위 안에 드는 집안 여자여야만 했다. 잠깐 놀고 말 여자들에게 뭘 그리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시키느냐고 주변에서 다들 한마디씩 했지만 뭘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잠깐 놀게 될지, 계속 만나게 될지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자신이 여태껏 만난 여자들 중에 그렇게 깊게 빠진 여자는 없었지만, 잠깐 놀 생각에 가볍게 만났던 평범한 여자에게 푹 빠져 후계자 자리를 박탈당한 친구들도 여럿 봐왔다.

재계 순위 1위인 P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자신이 아무 여자와 놀다가 그 자리를 박탈당하는 그런 끔찍한 일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었다.

P그룹 계열사를 하나씩 운영하며 할아버지에게 눈도장을 찍어대느라 바쁜 사촌들과 달리 인우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접 건축 회사를 차렸다. 처음엔 해원을 포함해 직원이 몇 없는 작은 회사였지만 몇 년 사이에 회사는 순식간에 몸집을 키워 나갔다.

물론 그게 다 천재라 불리는 해원 덕이긴 했지만, 자립심을 높게 평가하는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수가 있었다. 곧 몇 년 안에 P그룹은 아마도 자신의 손으로 떨어질 것이다. 특별한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물론 그 전에 괜찮은 집안 여자와 결혼도 할 생각이었다. 덩치가 큰 P그룹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그 힘을 가장 손쉽게 얻는 방법이 바로 결혼이었고. 부디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이 푹 빠질 수 있는 최고의 여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윤해원이라니. 물론 여자가 아닌 후배로서 윤해원은 나쁘지 않았다.

올해 나이 스물여덟 살,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건축 공모전에서 최연소로 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대단한 능력자였다. 그래서 그녀를 데려가려는 건축 회사가 숱하게 많았다. 그녀가 가진 타이틀이 그만큼 매력적이었기에.

그런 그녀가 선택한 회사가 바로 자신이 세운 IW 건축 사무소였다. 어떤 조건이었기에 그녀가 움직였는지 사람들이 무척이나 궁금해했지만, 특별한 조건은 없었다. 그저 성과급을 조금 높게 불렀다는 것 말고는 말이다. 그때 순순히 자신의 회사를 택했을 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예전부터 선배 좋아했어요.’

또다시 떠오르는 해원의 목소리에 인우는 단정한 미간을 찌푸렸다.

좋다, 싫다, 기쁘다, 슬프다, 힘들다 등등, 워낙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던 그녀였다. 그러기에 저를 향한 그녀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같이 회의를 하거나, 회식을 할 때 가끔 허공에서 말간 그녀의 검은 눈과 시선이 마주치곤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 눈빛에 저를 향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니.

생각해 보니 그 눈을 마주할 때면 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심장을 울컥거리게 만드는 눈빛이랄까.

‘혼자 접으려고도 해봤어요. 그런데 잘 안 돼요, 선배.’

당황한 자신과 달리 해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참 잘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딱 그때까지만 만나요. 보니까 선배 만나던 여자들 죄다 길게 못 가던데 나도 그러지 않을까요. 멀리서 동경하듯 선배 보는 거 말고, 바로 옆에서 남자로 보면 오히려 더 쉽게 정리될 거 같아요. 여태껏 선배가 만나 왔던 여자들이 그런 것처럼.’

그녀의 말이 맞았다. 길게 만나 본 여자가 여태껏 한 명도 없었다. 처음엔 대부분 자신의 외모에 호감을 가지던 여자들도 얼마 못 가 나가떨어지곤 했다.

지독한 이기주의, 자신 스스로를 제일 사랑하는 나르시시즘, 애초에 사랑이 무언지 잘 모르는 인간이 바로 저, 정인우였다.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태어났다. 그 누구보다 빼어난 외모 덕에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늘 받는 것에만 익숙한 인간으로 자라났다.

최고가 아니면 돌아보지 않았다. 윤해원을 선택한 것도 그녀의 설계 실력이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 윤해원은 달랐다. 배경, 외모, 무엇 하나 볼 게 없었다.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줄 가족도 없는 천애 고아에 단아한 외모를 가지긴 했으나 눈에 뜨이게 예쁜 미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녀의 표정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괜스레 제 머리까지 아파 왔다.

물론 같이 일하는 후배 윤해원으로는 최고였다. 묵묵히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일하는 태도, 자그마한 머리에서 나온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짝이는 건축 아이디어,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떨지 않는 듬직한 성품까지 무엇 하나 나무랄 구석이 없었다.

“그냥 계속해서 후배로만 남아 주지.”

이렇게 뜬금없이 고백을 해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연봉을 논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그녀에게 엄청나게 큰 외국계 회사가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마음 먹고 연봉도 크게 올려 주려고 했건만. 돈이 아닌 연애를 제안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딱 잘라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정말 그녀가 다른 회사로 가버릴 것 같아서. 이제 곧 단양에 세워질 대규모 리조트 프로젝트 공모를 앞두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기필코 해원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 뿐이라는 건데.”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만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 뒤에 저에게 달라붙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이번에 프로젝트만 따낸다면 더는 윤해원에게 집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회사 덩치가 커질 게 분명했다. 더 실력 있는 건축가도 데려올 수가 있었다.

깔끔하게 헤어진다는 각서를 쓰고, 이 관계를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선배 정인우가 아닌, 남자 정인우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면 각서가 아니어도 알아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말이다. 자신은 그녀에게 잘해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그러면 더는 그런 말간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일도 없겠지.

그런데 어쩐지 그 눈빛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시려 왔다.

**

“하자, 연애. 딱 63일만.”

미리 작성해 둔 각서를 내밀며 인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프로젝트 공모 마감 날까지 계산을 해보니 딱 63일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대략 두 달의 시간, 그 정도는 뭐 가벼운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신 각서에 사인부터 해. 63일 뒤엔 깨끗하게 이 관계를 끝낸다는.”

좋아서 날뛸 거란 기대를 하며 이 말을 꺼냈건만, 저를 보는 해원의 표정은 차분하기만 했다.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더니, 왜 저리 반응은 덤덤하기만 한 걸까.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부담이었겠지만, 지나치게 무덤덤한 해원의 반응엔 왠지 모르게 신경질이 났다.

“네.”

펜을 들어 사인을 하는 해원을 관찰하며 인우는 슬며시 입을 열었다.

“안 좋아? 네가 바라던 일 아니었나?”

“좋아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긴 했지만, 역시나 자신이 원하던 반응에 한참 못 미쳤다. 진짜 좋긴 한 걸까.

“다시 한 번 말해 두지만 63일이 지나고 나서, 구차하게 매달리거나 그러면 안 돼. 그럴 거 같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땐 무조건 끝낼게요. 그리고 혹시 그 전에 마음이 정리가 되면 말할게요. 63일까지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래 주면 좋지…….”

대답을 하면서도 기분이 상했다. 63일도 되기 전에 마음이 정리될 만큼 자신이 매력적이지 않은 남자라는 것 같아서. 대충대충 사귀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오기가 생겼다. 63일 되는 날 헤어지기 싫다며 윤해원이 울며불며 저에게 매달렸으면 좋겠다. 라는 이상한 오기가.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저 표정에 감정이 담기면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얼굴 중 유일하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말간 검은 눈을 응시하며 인우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보고 싶었다. 저를 간절히 원하는 그녀의 얼굴을. 동그란 눈매가 보답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단정한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그 모습이 왜 이리 보고 싶은 걸까.

변태.

누군가 귓가에 이런 말을 속삭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인우는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이런 미친 상상을 하는 속내를 해원에겐 들키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야? 나 상당히 매력적인 남자인데?”

“알아요.”

물론 본심이 뒤섞이긴 했지만 농담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데 그걸 저토록 진지한 얼굴로 받아치니 오히려 더 민망해졌다.

“그래. 어쨌든 딱 63일간만 유지되는 관계라는 거 명심하고. 나랑 사귀는 동안은 리조트 프로젝트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어. 그 프로젝트 기필코 따내야 하는 거 알지? 내 귀한 시간 투자해 너와 하는 이 연애가 헛되지 않게.”

“네. 실망 시키는 일 없도록 열심히 할게요.”

똑 부러지는 명료한 대답에 인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후배로서 윤해원은 대하기가 편했다. 여자 윤해원은 아직 뭐랄까, 적응이 되지 않아 그런지 조금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차라리 다른 여자들처럼 속을 읽기 편하면 쉬울 텐데. 그녀의 표정을 들여다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이따가 퇴근하고 우리 집으로 와. 핸드폰으로 주소 찍어 보낼 테니.”

“집으로요?”

집으로 오라는 말에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 동요가 번졌다. 무언가 음흉한 상상을 하는 모양인데 그 기대엔 부응을 해줘야겠지.

“앞으로 우리 데이트 장소는 무조건 집이야. 내가 여자를 사귀는 첫 번째 이유는 원나잇보다 안전한 욕구 충족을 위해서거든.”

싱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엔 아까보다 더욱 큰 동요가 번졌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윤해원의 동요를 보는 건. 그래서 더 심한 말로 그녀를 자극하고 싶다는 이상한 욕망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구쳤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자신에게 안기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고 말았다. 유난히 하얀 두 뺨이 열기로 인해 붉어지고, 맑은 검은 눈이 욕망으로 얼룩지는 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왔다.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그녀를 안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저 그녀로부터 동요만 불러일으키고 싶었을 뿐.

그런데 왜 이런 상상이 드는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외려 자신이 더 혼란스러웠다.

“알겠습니다.”

신경질적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는데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알겠다는 건데?”

피식 웃으면서 인우는 해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차라리 그녀가 여기서 이만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길 바랐다. 왠지 그녀와 엮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에.

“집으로 오라면서요?”

“그리고? 그 뒷말도 이해했어? 오늘 네가 우리 집에 오면 뭘 하게 될 거란 것도?”

날선 제 질문에도 그녀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요. 저도…….”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칙칙한 회색 정장 치마를 손으로 꽉 움켜잡는 게 보였다. 덤덤한 표정과 달리 꽤나 긴장하고 있다는 게 그 손짓에서 느껴졌다.

“선배랑 자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무덤덤한 목소리로 잘도 저런 말을 내뱉었다. 역시 여자 윤해원은 이상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고 해야 할까. 순간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걸 느끼며, 멀뚱멀뚱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해원을 보며 인우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이 여자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계산이 잘 서지 않았기에.

**

조용히 그의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며 해원은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말 그와 자신이 연애를 하게 된 걸까.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려 7년이었다. 선배인 인우를 홀로 마음에 담은 시간이. 처음 그를 짝사랑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감정을 금방 끊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언감생심, 제가 감히 마음에 품을 수도 없는 사람이란 걸 알기에 좋아하는 순간 이미 그를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마음 정리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향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혹시 잠깐이라도 그와 연애를 하게 된다면, 그래서 마음껏 그를 사랑하고 아낌없이 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감정 정리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긴 시간 묵혀 온 감정을 모조리 분출 시키고 나면 툭툭 털어 버리고, 마음에서 그를 진짜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을 전혀 여자로 보지 않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었기에,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란 것도 이미 계산에 있었다. 비겁하게 일을 핑계로 그를 붙잡는 게 미안했지만, 잠깐이라도 좋으니 원 없이 이 감정을 토해 내고 싶었다. 한 톨의 미련도 남지 않게.

63일간의 연애 기간 동안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줄 거란 기대는 일절 하지 않았다. 결혼조차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그의 마인드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독하게 계산적인 그에게 자신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먼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먼지 취급을 받아도 괜찮았다. 먼지가 되어 그에게 잠깐이라도 들러붙을 수 있다면, 기꺼이 먼지라도 될 자신이 있었다.

그가 털어 내면 날아가 버릴 먼지여도 상관이 없었다. 이미 끝이 어떨지 알고 시작하는 연애였기에 일말의 기대도 없었다.

이 연애는 자신에게도 단지 감정의 끝을 위한 연애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각자 다른 끝을 위한 이상한 연애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끝이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지 알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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