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화 죽음, 그리고 시작
북요가 망했다.
육장봉이 떠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난 뒤, 육장봉의 십이 친위대는 악에 받쳐 목숨을 걸고 성을 공격했다.
불과 하루 만에 상경을 함락했다.
성문이 열리자 상경의 백성들은 야율헌일의 인솔하에 무릎을 꿇고 그들을 맞이했다.
어쩔 수 없었다. 어느 한 부락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육장봉의 대군을 무릎 꿇고 맞이한 다음 학살을 면하게 되자, 무릎 꿇고서 주나라 군대의 입성을 맞이하는 것은 북요의 '풍속'이 되었다.
죽기를 원치 않으면 무릎을 꿇어야 했다.
상경의 백성들도, 야율헌일도 죽고 싶지 않았다.
육일 등은 말을 몰고서 앞장에 섰다. 앞쪽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한동안 멍해져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랐다.
예전에는 입성할 때 모두 육장봉의 뒤를 따랐다.
육장봉은 곧 그들의 방향이자 이정표였다.
육장봉이 바라보는 곳이 곧 그들의 종착점이었다.
그들은 아무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상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육장봉의 뒤를 따라가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방향이 없어졌고, 그들이 뒤좇던 모습이 사라졌다.
분명 승전했지만,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이겼지만 기쁘지 않았다.
그들은 괴로웠다.
마음이 괴로웠다.
그들의 대장군이 사라졌다!
주나라의 대장군은 이제 죽었다.
세상에 더는 전신(戰神)이 없을 것이다.
주나라 군대는 분위기가 무거웠다. 하나같이 무언의 슬픔을 안고서 모두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온몸으로 대화를 거부하는 냉혹함을 내뿜었다.
때문에 야율헌일은 항복서를 들고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육일은 그의 옆을 지나가면서 눈빛조차 주지 않았다. 표정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야율헌일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 왠지 꼭 자기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만 같았다.
"큰형, 지금은 제멋대로 할 때가 아니에요."
육이가 육일의 어깨를 잡았다.
"우리는 대장군이 이끌어 준 사람이에요. 대장군의 체면을 구겨서는 안 돼요."
육일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성안의 사무를 처리할게. 너는 형제들을 잘 쉬게 해."
육일은 야율헌일을 찾아가 그와 상경 성안의 사무를 인계했다.
지금의 상경은 북요의 상경이 아니라 주나라의 상경이었다.
육일은 인계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이 이처럼 쉽게 상경을 함락할 수 있었던 것은 소 태후를 포함한, 권력가들이 육장봉이 병사들을 이끌고 온다는 것을 알고 값진 물건을 가지고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육장봉이 와서 성 전체를 학살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성안에 권력가들이 없기 때문에 시끄러운 일도 적었다.
주나라는 순조롭게 상경을 인계받았다.
보름 뒤, 육일 등 열두 명은 북요의 항복서와 야율헌일을 데리고 변경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북요의 망국 소식과 함께, 그들의 대장군이 사라졌다는 소식도 전했다.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게 무슨 뜻이냐? 지금 짐에게 장봉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냐! 짐의 대장군이 죽었다는 말이냐?"
황제는 날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캐물으며 자기가 들은 것을 믿지 않았다.
육장봉이 간 뒤, 육일 등은 육장봉의 일을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
군대의 다른 장병들도 입을 맞춰 누구도 그 일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누구의 귀띔도 감시도 없었지만 오십만 대군은 모두 대장군이 죽었다고 단언했다.
이는 한 개 단체의 거짓말이었다. 오십만 명이 동시에 거짓말을 하고, 동시에 그 거짓말을 지켰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군인이었다. 그들은 그저 군령만을 따를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장군은 군대의 유일한 신이자, 유일한 목소리였다.
대장군께서 주나라 대장군이 이미 죽었다고 했으니, 죽은 것이었다.
"네. 소인은 대장군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육일은 또 한 번 말했다.
설령 그들 대…… 아니, 이젠 그들 도련님이었다.
설령 그들 도련님이 아직 살아 있는 줄은 알지만, 매번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면 그들은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
그들 도련님은 조정에 대해 얼마나 실망했으면, 주나라 대장군이 죽었다고 말했겠는가.
"장…… 장봉을 말하는 것이냐?"
황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물었다.
육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은 잿빛이 되었다.
"장봉…… 그가……. 안, 불가능해. 그럴 수가 없어. 장봉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의 대장군이었다.
그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대장군이었다.
그가 보호하고자 했던 사촌 동생이었다.
그가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폐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육일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지금 와서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무릇 황제가 그들 도련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었다면, 그들 도련님이 어찌 실망한 나머지, 그들마저 내버려 두고 갔겠는가. 그들마저 챙기려 하지 않았겠는가.
그들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짐은 믿지 않는다! 짐은 믿을 수가 없다! 짐의 대장군은 얼마 전에 짐을 대신해 북요를 함락했다. 그가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이냐. 너희들이 짐을 속이는 것이다! 다들 짐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황제는 이 소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육일이 감히 이런 일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봉, 그가 정말…….'
황제는 비통한 나머지 혼절하고 말았다.
황제가 쓰러지자, 주나라의 대장군, 주나라의 전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조정의 모든 이가 알게 되었다.
"죽었다고? 그럴 리가.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데 전쟁터에서 누가 그를 다치게 할 수 있다고?"
"깜빡 잊고 있었네…… 그 역시 인간이었지. 인간이면 다치기 마련이고, 죽기 마련이야. 내가…… 잊었어. 잊었다고……."
* * *
막 황궁에 돌아온 현음 장공주는 황제가 쓰러진 이유를 알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공주, 공주……"
시녀는 울먹이며 큰 소리로 불렀다.
현음 장공주는 목석처럼 아무 감각도 없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그녀는 대성통곡했다.
"얘야! 내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모두 나 때문이야. 내가 너를 해쳤어!"
* * *
조계안은 육장봉의 사망 소식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황궁에 들어가 하명을 청했다.
"황형, 저는 육장봉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살았으면 사람을 보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찾아볼 것입니다. 그들의 한마디에 육장봉이 죽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북요 상경에 가서 확실하게 조사할 것입니다."
황제는 허락했다.
조계안은 길을 다그쳐 상경으로 갔다. 두 사람이 죽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진 채였다.
한 달 뒤, 조계안이 돌아왔다.
"황형, 월령안이 죽었습니다. 기쁘십니까?"
황궁에 돌아와서 조계안이 한 첫마디였다.
"황형, 육장봉이 죽었습니다. 후회하십니까?"
다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장봉은 월령안을 위해서 죽은 것이냐?"
한 달이 지나자, 황제는 슬픔에서 벗어났다.
그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프지만 이제 더는 추태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에요. 월령안이 육장봉을 위해 죽었어요. 육장봉이 월령안을 죽게 만든 거예요. 아니죠. 육장봉이 죽게 만든 게 아니에요. 바로 황형 그리고 저, 우리가 월령안을 죽게 만든 거예요."
조계안이 황제의 말을 바로잡았다.
황제가 더 묻기 전에 조계안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형, 염 황숙께서는 일찍이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황실 자제 중에서 유독 제가 그분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면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말라고 했어요. 전에 저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어요. 저에게는 황형이 있는데, 어찌 그분처럼 될 리가 있겠냐고요.
하지만 이제 저는 믿어요. 저는 염 황숙을 쏙 빼닮았어요. 때문에 저 역시 평생 염 황숙처럼 외롭게 살다가 죽을 때까지 군왕의 의심을 받으며 감금 생활을 해야겠죠."
"계안……."
황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계안은 못 들은 척하고 황제에게 읍하며 차갑게 말했다.
"황형, 마지막으로 황형이라 부릅니다. 앞으로 당신은 군왕이요, 저는 신하입니다."
조계안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서 갔다. 그 뒷모습에서는 한 점의 망설임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계안……."
황제는 놀라서 소리 질렀지만 조계안은 못 들은 듯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황제는 옥좌에 주저앉아 가슴을 부여잡았다.
"계안……!"
그는 분명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가슴속이 텅 빈 것만 같았다.
* * *
현음 장공주는 입문했다.
조계안이 돌아온 다음, 현음 장공주는 상경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방에 가두었다.
사흘 뒤, 그녀는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흰옷을 입고 머리를 잘라 내고서 두 손을 합장하여 불호를 읽었다.
이로부터 주나라 황실에는 더 이상 현음 장공주가 없게 되었다.
황제는 서둘러 달려와 만류하려 했다. 그러나 현음 장공주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황제를 밀쳐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속죄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된 사람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현음 장공주는 미련 없이 떠났다.
황제는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제 자기 곁에 더는 가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약왕곡, 배나무 아래.
한 쌍의 남녀가 배나무 아래에 서로 기대앉아 있었다.
새하얀 배꽃이 하늘하늘 여인의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았다.
여인은 온몸을 남자한테 의지하고 있었다. 나른한 모습이 마치 뼈가 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정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때때로 여인을 대신해 머리에 떨어진 배꽃을 떼어 주었다.
"역시 할 일 없이 매일 저절로 깰 때까지 자고, 아니면 햇볕이나 쬐고 늦게까지 잠자는 생활이 편하군요."
여인은 눈을 감고 눈썹을 곱게 휘었다. 얼굴에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음, 당신이 지루해지면, 여기저기 다닙시다. 당신, 해외로 나가 다른 월씨 가문 사람들을 찾아보겠다 하지 않았소. 당신이 가고 싶을 때, 갑시다. 내가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가겠소."
남자는 여인을 그러안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과 부드러움이 넘쳤다.
이들은 바로 육장봉과 월령안이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머리카락을 들어 깊게 입을 맞추고 맹세하듯이 말했다.
"이제 나는 당신만의 육장봉이오.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이오."
월령안은 그 말을 듣고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알아요."
육장봉은 낮게 웃으며 쓰러지는 척 월령안에게로 끌려갔다.
약왕곡에는 그렇게 한참 동안 두 남녀의 웃음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