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화 미워하는 법을 배우세요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인식하자,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월진절……!"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월진절이든, 성벽 아래에 있는 육장봉이든 다 듣지 못했다.
"고모, 마침 깨어나셨군요. 좀 보세요…… 고모께서 선택한 남자가 고모와 그의 강산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까요?"
월진절은 자신의 심술궂음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고 다시 육장봉에게 소리쳤다.
"육장봉, 당신이 싸우자고 했죠. 자…… 당신의 대군이 일 리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제가 월령안에게 활을 하나씩 쏠 거예요. 앞으로 십 리 나아가면 월령안에게 화살 열 발을 쏘게 되죠. 그리고 당신이 성을 함락시키는 순간, 나는 화살로 월령안의 심장을 꿰뚫을 거예요."
육장봉이 있던 위치에서 성문 입구까지는 대략 십이, 십삼 리가량 되었다.
그러니까 육장봉이 성벽 아래까지 진격한 다음,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가 월령안을 구출할 때까지 그녀는 먼저 화살 열 발을 맞아야 했다.
"대신 나를 쏘아라."
육장봉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월령안의 조카는 진정한 악마였다.
"나하고 월령안을 바꾸자. 내 신분이 월령안보다 더 중요해."
육장봉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나 월진절은 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당신은 제 고모가 아니에요. 제가 당신을 잡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저는 꼭 월령안에게 활을 쏠 거예요. 저는요, 그녀가 차츰차츰 절망하기를 바라요. 죽음을 맞이하는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기를 바라요. 그리고 그녀의 인생을 망쳐 줄 거예요. 당신이 저를 어찌할 건데요?"
육장봉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서 육이 등은 조급한 얼굴로, 증오의 눈초리로 성벽 위의 원진절을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어쩌면 저리도 못됐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월진절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설령 그가 볼 수 있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때, 성벽 위에서 월령안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육장봉, 싸우세요!"
"고모……!"
월진절은 놀라서 눈썹을 치켜떴다. 바로 그 순간, 육장봉은 내렸던 검을 다시 쳐들었다.
"죽여라!"
"죽여라."
육장봉의 뒤에 있던 장병들은 진작 전투 준비를 마쳤다.
육장봉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뒤에 있던 병사들은 마치 물밀듯이 목숨을 걸고 진격했다.
그리고 육장봉이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는 순간, 월진절은 주저 없이 명령했다.
"쏴!"
슈욱!
화살 한 발이 월령안의 손목을 관통했다. 화살촉은 나무판에 깊이 박혔다.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월령안은 고통스럽게 신음을 내뱉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성벽 아래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던 육장봉은 무엇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붉어졌다.
"젠장!"
그는 분노하여 소리치더니 갑자기 검을 휘둘러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을 두 동강 냈다.
피가 그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그는 얼굴을 힘껏 닦아 내고 시선을 거둬들였다. 그의 시선은 다시 앞쪽의 북요 병사들에게 옮겨 갔고 맹렬하게 진격했다.
"죽여라."
쿵…….
육장봉의 검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죽음의 시선'에 휘말린 북요 병사는 겁에 질려 말 등에서 떨어졌다.
'뚜욱!' 전마의 발에 밟혀 갈비뼈가 부러지자, 북요 병사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주나라의 군대도, 북요의 군대도 그를 위해 머물지 않았다.
곧이어 그는 군마에 밟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와 같이 운이 없는 병사가 적지 않았다. 양군이 접전할 때, 말에서 떨어진 적지 않은 병사들은 모두 말에 밟혀 죽었다.
성벽 밑에서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고 비명 소리와 싸우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면서 점점 더 많은 병사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성벽 위의 월진절은 나른한 표정이었다. 그는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로 가득 찬 대전에 있는 듯했다.
"참, 능력이 있네. 이제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일 리를 나아갔어."
월진절은 아래쪽 싸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명령했다.
"쏘아라!"
슈욱!
화살 한 발이 월령안의 다른 한 손목을 꿰뚫었다.
"아악……!"
월령안은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성벽 아래, 싸우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했다.
하지만 귀를 찌르고 난잡하게 울리는 함성 소리 속에서도, 육장봉은 월령안의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들었다.
"령안, 기다리시오. 내가 가기를 기다리시오. 조금만 더 버텨 주시오! 그리고 나를 믿어 주시오! 내가 꼭 당신을 구할 것이오!"
이번에 육장봉은 더는 고개를 들어 월령안을 보지 않았다. 그는 단호한 눈빛으로 앞쪽을 지켜보았다. 손에 쥔 검은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무릇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목이 베여 말 아래 굴러떨어졌다.
그는 마치 지칠 줄도, 멈출 줄도 모르는 듯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수중의 검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러나 그가 빠를수록 월진절은 더 빨랐다.
"쏴."
"쏴."
"쏴."
"쏴."
월진절은 말한 것을 곧이곧대로 행동에 옮기는 대장부가 아니었다.
육장봉은 호랑이가 날개를 단 듯이 북요 십만 대군을 무시하고 나는 듯이 앞으로 진격해 왔다.
이를 본 월진절은 자신이 정한 육장봉의 군대가 앞으로 일 리를 전진하면 화살을 한 발씩 쏘겠다고 한 규칙을 어기고 연거푸 명령했다.
짧디짧은 시간 동안 월령안은 화살 네 발을 맞았다.
두 발은 무릎에, 두 발은 정강이뼈에 맞았다.
무릎을 맞힌 화살은 무릎을 꿰뚫지 못하고 뚝, 하고 떨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무릎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악……!"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질렀다.
피가 그녀의 하반신을 흠뻑 적셨다.
"윽……!"
그녀는 아픈 나머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입술에 피가 흐를 정도로 깨물어도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는 형틀에 꽁꽁 묶여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신음 소리만 낼 수 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모, 아픈가요?"
월진절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음산하게 웃었다.
"그때 당시, 저도 지금의 고모 같은 처지였어요…… 너무 아프고 아팠어요. 그런데 아무도 저를 구해 주지 않았어요. 저는 심지어 자살할 수도 없었어요."
월진절은 복어로 유쾌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고모, 후회하나요? 저를 죽이지 않은 게 후회되나요?"
"후회해…… 너를 내 오라버니 앞에 던져서 때려죽이라고 하지 못한걸!"
월령안은 두 눈이 빨갛게 되었고, 아픈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후회하는가?
후회하지만, 설령 후회한다고 해도,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직접 자기 손으로 월진절을 죽일 수 없었다.
그녀는 다만 자신이 모질지 못해 월진절, 이 악마를 가둬 두지 못하고 도망치게 한 것을 후회했다.
"후회는 패배자의 특권이에요, 고모…… 마음껏 후회하세요."
월진절은 손을 들어 다시 명령했다.
"활을 쏴라."
피슉!
피슉!
또 연이어 두 발을 쏘았다. 이번에는 왼쪽, 오른쪽 가슴에 맞았다.
"읍……!"
월령안은 결국 피를 토했다. 이미 너무 아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량의 출혈과 모진 통증에 그녀는 의식이 모호해지기 시작했지만 혼절할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니라 설령 기절했다 해도 곧 다시 깨어날 정도로 아팠다.
"고모와 육장봉은 감정이 깊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 아마 결혼하고 곧 아이를 갖고 싶겠죠?"
월진절은 순진무구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말투를 확 바꾸어 냉혹하게 말했다.
"안타깝네…… 고모는 이제 기회가 없을 거예요. 활을 당겨!"
슈욱!
이번 화살은 월령안의 복부에 꽂혔다.
월령안은 피를 콸콸 흘렸다. 이미 어떤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온몸이 피에 잠긴 것처럼 얼굴을 제외하고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성벽 아래, 육장봉은 긴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월령안을 보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마음속으로 세였다.
"두 발!"
"세 발."
"네 발!"
"다섯 발!"
그는 성벽에 가까워졌다. 이제 곧 월령안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모는 남자 보는 눈이 안 되겠군요…… 고모가 좋아하는 남자는 아직도 안 왔어요."
월진절의 귀 끝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육장봉이 곧 성벽에 올라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됐어요. 저도 이제는 충분히 즐겼어요. 마지막 화살은 제가 직접 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보이지 않지만 활쏘기를 엄청 잘하거든요. 꼭 목숨은 남겨 둘 거예요."
월진절은 목소리를 성인의 듬직한 음성으로 바꾸었다.
"나를 성벽에 올려라."
월진절은 한순간 자라난 것 같았다.
의식이 몽롱하던 월령안은 직감적으로 아차 싶었다. 그녀는 입을 벌려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활을 가져오라."
월진절은 말을 마치자 그녀를 향해 활을 당겼다.
'푸욱' 열 번째 화살이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뼈를 때리는 아픔에 그녀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입을 벌려 숨을 쉬었다. 이때, 월진절의 성숙하고도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모, 이는 제가 죽기 전에 주는 선물이에요. 앞으로 고모는 두 번째 제가 돼, 저를 대신해서 살아가세요."
그 말이 떨어지자, 월령안은 월진절이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다.
"고모, 미워하는 법을 배우세요."
육장봉은 성벽에 뛰어오르자마자 월진절이 낙엽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쿵', 소리와 함께 성벽 아래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육장봉은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한달음에 월령안에게 달려갔다. 재빨리 그녀를 형틀에서 내려놓은 다음,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꽂힌 화살은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으윽……!"
월령안은 처량하게 소리를 질렀다. 핏빛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육장봉, 마음이 너무 아파요!"
"두려워하지 마시오. 지금 곧 손불사를 찾아갈 거요.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육장봉은 월령안이 왜 마음이 아픈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월진절을 구할 수가 없었고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갑시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 조금의 미련도, 망설임도 없이 날아갔다.
"대장군!"
성문 아래에서 육장봉의 열두 친위와 오십만 대군이 육장봉이 월령안을 안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외쳤다.
"대장군!"
'우리를 버리는 겁니까.'
그러나 이들의 함성은 육장봉을 한 걸음도 잡지 못했다.
"대장군이라고 부르지 마. 주나라의 대장군은 이제 죽었다."
그는 주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육장봉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날아와, 다시 그를 부르려던 장병들을 막았다.
우우우…….
오십만 장병들은 일제히 무릎 꿇고 육장봉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대장군 육장봉은 이제 죽었다. 세상에 더는 전신(戰神)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