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98)화 (998/1,004)

998화 시위를 떠난 화살

소 황후는 방자하게 웃었다.

"제가 듣기로, 폐하 수중의 군대는 태반이 죽어 십오만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북요 황제는 정말 그녀를 죽일 수가 없었다.

북요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손을 들어 소 황후를 치려 했다.

"네 이……."

소 황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북요 황제의 손을 와락 잡아 밀쳤다.

"욕하지 마세요. 때릴 생각도 하지 마시고요. 저는 당신이 마음대로 욕하고 때릴 수 있는 후궁의 여인이 아니라고요."

"감히 내 손을 막아?!"

북요 황제는 소 황후가 밀치는 바람에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당신이 저를 때리는데, 저는 그럼 막지도 못하나요?"

소 황후는 북요 황제에게 눈총을 쏘고서 도로 앉았다.

"됐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죠. 폐하, 제 아들과 월령안의 혼사가 열흘 뒤로 결정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잊지 말고 참석해 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제가 불쾌해할 거예요.

제가 불쾌해하면 소씨 부락은 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그런 상황을 원치는 않을 거예요."

"너, 월령안과 손을 잡았어?"

북요 황제는 잇새로 이 말들을 내뱉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났다.

이 두 여자 중 한 명은 그를 배신했다. 다른 한 명은 그가 멍청하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그녀들이 먼저 손잡고 그를 상대했다.

"손잡고 안 잡고, 뭐 그리 듣기 싫게 이야기하세요. 제 아들의 아내이자 북요 미래의 황후예요. 조금 제멋대로 굴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인 제가 손아랫사람과 따지기는 무엇하죠."

소 황후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지만 시어머니의 모습은 그럴듯하게 갖추었다.

어차피 서로 낯을 붉힌 마당에 소 황후는 북요 황제와 허튼소리를 할 생각이 없었다. 북요 황제는 화가 나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이를 본 소 황후는 언짢아하며 흘겨보더니 사정없이 내쫓았다.

"그만 하세요. 제가 할 말은 다 했어요. 폐하께서도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당신…… 하!"

북요 황제는 얼굴이 시커메서 옷소매를 젖히더니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는 절대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급급히 주나라에 출병하다 보니,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이 소씨 가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후회한다고 말이다.

월령안을 일찍 죽이지 못한 게 더 후회되었다.

월령안을 일찍이 죽였다면 이렇게 많은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살은 이미 그가 당겼던 시위를 떠났다. 후회는 소용이 없었다.

일이 여기까지 오니 북요 황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혼례 일자가 정해진 뒤, 월령안은 청첩장 넉 장을 들고 월진절을 찾아갔다.

그중 한 장에는 월진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머지 석 장에는 아직 살아 있는 월씨 가문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월령안은 월진절이 못 본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그 세 사람의 이름을 한 번 말해 주었다.

월진절이 갸웃하더니 괴이하게 웃었다.

"고모께서 거사를 치르려는 모양이군요."

"그래서 감히 상대하지 못하겠어?"

확실히 거사였다. 이번 일만 끝나면 그녀는 북요를 떠나야 했다. 아니면 육일이 미쳐 버릴 것이다.

월진절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고모, 자극 요법은 저에게 통하지 않네요."

"그럼, 그들은 올 수 있겠어?"

그 세 월씨 가문 사람은 너무 깊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직 월진절을 통해 그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고모께서 그들을 부르고 싶다 하면, 그들은 올 수 있지요."

월령안이 거사를 치르려 한다면 치르게 놔두면 되었다.

마침 그도 기다리는 게 지겨웠다.

* * *

월령안은 목적을 이루자 한시도 더 머무르지 않고 뒤돌아 궁궐을 나섰다.

나가면서 월령안은 북요 황제를 만날까 두려워 오솔길을 골라 걸었다.

그녀는 북요 황제가 이 시기에 그녀를 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기만 하면 그는 아마 소 황후가 간통한 사실이 떠오를 것이다.

월령안이 빨리 도망친 건 혜안이었다.

북요 황제는 그녀가 황궁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고 궁인더러 그녀를 찾게 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먼저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녀를 다시 궁에 들어오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월령안에게 손댈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면 짜증만 쌓일 뿐이었다. 차라리 만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월령안이 별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육일은 그녀를 찾아 복명했다.

"마님, 제 쪽은 준비를 마쳤습니다."

육일은 요즘 미칠 지경이었다.

육일은 저번에 그녀를 만나자마자 육장봉에게 편지로 즉시 월령안을 호송해 주나라에 데려가야 하냐고 물었다.

육장봉은 곧장 육일에게 편지 두 통을 보내왔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육일더러 즉시 월령안을 데리고 주나라에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고 일주향의 시간도 채 안 되어, 육일은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두 번째 편지에서는 육일더러 월령안의 말에 따르라고 했다.

두 통의 편지는 선후하여 도착했고 내용은 전혀 달랐다.

육일은 편지를 보고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육일은 육장봉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편지를 들고 월령안을 찾아갔다.

월령안은 육일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수를 처결하기만 하면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곧 육일과 함께 떠날 것이라고 했다.

육일은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두 번째 편지를 가리키자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그에게 월령안의 말에 따르라고 했다. 그럼 그는 월령안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월령안의 계획을 듣고 그 수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만일 정말 성공한다면 육장봉이 북요를 함락하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내 쪽도 잘 되어 가요. 소 황후가 방금 전에 전갈을 보내왔어요. 북요 황제가 나와 야율헌일의 결혼식에 꼭 참석할 거라고 하는군요."

"마님, 제발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뒷말을 저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단 말입니다."

육일은 양손을 위로 들고 가련하게 빌었다.

월령안의 이 계획은 완벽에 가까웠다. 단 하나만 뺀다면 말이다.

월령안과 야율헌일의 혼례식은, 설령 명의만이라고 해도 그는 매번 떠올릴 때마다 벌벌 떨렸다.

그는 육장봉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대노할지 상상할 수가 있었다.

* * *

육일은 아직도 육장봉을 잘 몰랐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야율헌일에게 시집가며 혼례식이 열흘 뒤에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하지 않았다. 도리어 아주 냉정했다.

그날 밤, 그는 군사를 이끌고 북요 대군을 기습했다. 주나라 장병들을 이끌고 삼천 명을 참수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이튿날에도 계속해 군사를 거느리고 천 명을 참수했다.

사흗날 재차 군대를 거느리고 앞장서서 이천 명을 참수했다.

나흗날…….

닷새…….

연이어 아홉 날 동안, 육장봉은 지칠 줄 모르는 듯이 매일 군사를 이끌고 선두에 서서 적진으로 진격하며 등 뒤의 대군을 위해 길을 터 주었다.

북요 주력군은 이제 사십만이 되었다. 육장봉의 군대보다 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배가 많아도 소용이 없었다.

광적인 육장봉을 상대로, 그들은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연거푸 아홉 날 동안 패전하게 되자, 북요군 병사들의 사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군대를 이끄는 장군들도 전쟁터의 육장봉을 보면 엉덩이가 저리게 되어 말 머리를 돌려 도망칠 수 없는 게 한이었다.

열흘째 되는 날!

북요의 병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육장봉이 출병하기만을 기다리며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건너편 대군은 힘이 다한 듯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날이 어두워지려 하자 북요의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싸우지 않을 것 같군."

"드디어 멈추었네."

"나는 정말 주나라 사람들은 강철로 돼 있는 줄 알았다니까. 매일 싸우고, 매일 우리 뒤를 쫓아다니면서 피곤하지도 않은 모양이지."

"주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된 인간들이지? 우리가 초원으로 도망쳐 왔는데도 여전히 쫓아온단 말이야. 전선이 이리 늘어지면 보급이 따라가지 못할까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가 알겠어……. 기다려 봐. 각 부락의 군대가 미리 합류했다잖아. 그들이 오면 우리가 반격할 때야. 때가 되면, 나는 꼭 매일 병사를 이끌고 주나라를 치러 갈 거다. 주나라 병사들이 놀라서 잠도 못 자게 할 거야."

'지금의 우리처럼 말이다.'

연거푸 아흐레 동안 싸우다 보니 사람도, 말도 모두 지쳤다.

주나라에서 출병하지 않자, 북요 쪽에서도 먼저 출병할 생각이 없었다. 한 무리의 북요 병사들은 한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며 주나라를 함락한 뒤 얼마나 잘나가고, 얼마나 부유해질까를 꿈꾸었다.

그러나 북요 장병들이 긴장을 풀 무렵, 전쟁의 나팔 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적의 습격이다!"

"적의 습격이다!"

"주나라 대군이 쳐들어왔다. 말에 올라타라. 맞서 싸우라!"

열흘째 되는 날 저녁 무렵, 육장봉은 군사를 이끌고 북요를 향해 개전 이래 규모가 가장 큰 공격을 감행했다.

* * *

이 모든 것에 대해 멀리 상경에 있는 육일과 월령안은 모르고 있었다.

북요의 결혼식은 밤에 진행되었다.

신부 맞이도 저녁에 진행되었다.

육장봉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요를 공격할 때, 월령안은 별궁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혼례복을 입지 않았다.

그녀는 한편에 앉아 육일이 데려온 역용(易容 - 분장 등을 통해 외모를 바꾸는 것) 고수가 그녀와 삼 할 정도 비슷하게 생긴 여인을 조금씩, 조금씩 외모를 바꾸더니 그녀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감탄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여인이 용모를 완전히 바꾸자, 월령안은 다가가서 그 여인과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동경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똑같네요. 북요인들은 물론이고, 저조차도 분간하기 힘들겠어요."

"천면낭군(千面郎君) 초불심(楚不尋)으로 강호무처심(江湖無處尋)이라고도 합니다. 그의 역용술은 경지에 올랐습니다. 수십 년을 하루 같이 북원(北院) 승상으로 가장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단 말입니다."

여인에게 용모를 바꾸어 준 사람은 바로 육장봉이 월령안에게 북요에서 일이 있으면 찾아가라고 했던 북원 승상 목자(木柘)였다.

진짜 목자는 진작 죽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천목신교의 역용 고수 초불심이 목자 모습으로 가장하여 그를 대신해 북요의 북원 승상이 된 것이었다.

역용 고수 초불심은 낯선 여인을 월령안의 모습으로, 다시 월령안을 그 여인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바꾸기라도 한 듯, 좀처럼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역용술을 아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초불심처럼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고수는 처음 봤다.

"당신네 천목신교는 역시 숨은 인재가 많군요."

그녀는 지금에 와서 육장봉이 줄곧 북요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과거에 그는, 설령 그녀가 없어도 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괜히 좋은 명성을 얻은 것이었다.

초불심은 북원 승상의 신분으로, 월령안의 친정 책임자로서 별궁에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월령안은 홀로 북요에 건너왔다. 하지만 결혼식처럼 큰일에 여자 측 웃어른이 없으면 안 되었다.

월령안의 신분을 높여 주기 위해 소 황후는 초불심, 북원 승상을 청해 왔다.

소 황후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북원 승상을 월령안의 친정 식구로 청해 온 것은 사실 월령안이 암시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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