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94)화 (994/1,004)

994화 짐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인가?

육일은 한숨을 내쉬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님,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북요는 저에게 아버지, 오라버니를 죽인 철천지원수예요. 저는 당신네 누구보다도 북요가 패전하기를 바라요."

월령안은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육일을 곁눈질해 보았다.

"무슨 걱정을 하세요? 제가 이익으로 그들을 단합하게 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이익을 이용해 그들을 분열시킬 수도 있어요."

"마님, 참 대단하십니다. 마님께서 여장부이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육일은 거듭 칭찬하고서 아양스럽게 웃으며 살갑게 말했다.

"마님의 계획을 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소인이 너무 걱정이 되어서 그럽니다."

그는 정말로 그들 대장군이 걱정되었다.

육장봉의 수중에는 삼십만의 군대밖에 없었다.

북요 각 부락들이 함께 출병하고 북요 황제의 군대까지 합하면 적어도 백만은 되었다.

삼십만 대 백만,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월령안은 육일을 힐끗 한 번 훑어보더니 묵묵히 시선을 돌렸다.

험상궂게 생겼으면 웃음도 삼가야 하는 법. 웃으니 더 보기 불편했다.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월령안은 육일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먼저 한마디 물었다.

"네?"

육일은 월령안이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잠깐 멍을 때리다가 그제야 되물었다.

"마님,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설마 누가 마님 앞에서 대장군의 흉을 본 것인가? 누구지? 찾기만 해 봐, 때려죽일 거다.'

"현음 공주를 만났어요. 그분은 원래 수 오라버니께서 구해졌는데 다시 돌아오셨어요. 그분은 저를 구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했지요."

월령안은 눈빛이 살짝 차가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눈빛보다 더 차가웠다.

"처음에는 저도 믿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당신네 장군께서 현음 공주는 주나라의 현음 공주이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일깨워 주던 말이 떠올랐어요."

월령안은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분석했다.

"제가 북요에 온 것은 폐하께서 계획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폐하의 성미는 당신이나 저나 다 알다시피 그래도 정직한 편이에요. 누군가 일깨워 주지 않는다면 폐하 스스로는 이처럼 악독한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는 멀리 변경에 있어서 월진절과 연락할 수 없잖아요. 조왕은 비열하지만 육장봉을 신경 쓰죠. 그 역시 저를 미끼로 쓰겠다고 먼저 제안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떠오르는 사람은 현음 공주밖에 없어요."

며칠간 그녀는 이 일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그녀가 북요에 인질로 보내진 것은 현음 공주의 계략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현음 공주의 목적은 결코 그녀를 인질로 삼으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현음 공주는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육일은 잠깐 침묵하다가 혼잣말로 한마디 했다.

"대장군께서도 현음 공주를 의심하고 계십니다."

그 목소리는 작고 가벼웠으나 월령안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월령안이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네 대장군이 당신을 보낸 것은 의심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는 거예요."

다만 현음 공주는 어디까지나 그의 생모이므로, 체면을 남겨 준 것이었다.

육일은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쪽은 대장군의 생모이고, 한쪽은 대장군의 아내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잘못된 것이었다.

육일은 크게 헛기침을 하더니 어색하게 화제를 바꾸었다.

"마님, 대장군께서 저에게 마님을 주나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언제 갈까요?"

'마님의 계획은요?'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월령안의 마음속에 육장봉이 있고 그녀가 육장봉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 되었다.

"제가 지금 갈 수 있을 것 같나요?"

월령안은 육일을 흘겨보았다.

"제가 가면 북요 각 부락에서 출병할 것 같나요? 이 할의 이익보다 표호의 모든 수익을 독식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더 부합된단 말이에요."

"마, 마님……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육일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단어 하나하나 뗴어 놓으면 다 알 만한데 왜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을까.'

"북요 표호의 배후 가장 큰 주인은 북요 황제와 북요 대부락 족장들이에요. 알겠어요?"

월령안은 친절하게 육일에게 설명해 주었다.

육일은 금세 눈앞이 번쩍 뜨였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싸움에서 질 수 있다는 건가요?"

"무슨 야무진 생각을 하세요."

월령안은 육일에게 눈총을 쏘았다.

"저는 당분간 못 가요. 당신은 그냥 대장군께 회답만 하세요. 그러면 대장군께서 알 거예요. 될 수 있다면, 수고스러운 대로 저를 도와 수 오라버니 그들을 현음 공주 곁에서 떼어내 데려가 주세요. 현음 공주께서 수 오라버니를 팔아 버릴까 두렵네요."

현음 공주가 배후자라는 것이 확실시되자, 월령안은 그녀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 현음 공주 이야기를 해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수 맹주 그분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마님께서 언제 북요를 떠나실지는……."

육일은 잠깐 숨을 고르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문제는…… 마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제가 대장군께 편지를 보내 대장군께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럼 당신네 대장군께서 편지가 오면 다시 이야기해요."

월령안은 딱 잘라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북요의 일을 모두 해결한 다음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하다면 그녀는 앞당겨 떠날 수도 있었다. 나머지 일들은 이후에 다시 도모해도 되었다.

사람만 살아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했다.

그녀가 살아만 있다면 꼭 다시 돌아와 해결할 것이다.

"마님, 또 다른 분부가 있습니까? 없으면 소인은 장군께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육장봉이 그를 북요에 보낸 것은 바로 월령안을 주나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다른 일은 모두 뒤로 미루어야 했다.

"있어요."

월령안은 얼굴빛이 굳어지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당시,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추적해서 살해한 사람들의 명단을 제게 주세요. 누구에게서 지시받고 누가 손을 썼는지, 모든 사람의 명단을 주세요."

그녀의 사람도 줄곧 조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일은 육장봉과 조계안이 관련되어 있어 매우 깊게 숨겨졌다. 그녀의 사람들은 피상적인 것만 조금 찾을 수 있었다.

"있습니다."

육일은 품속에서 누런 종이를 꺼내어 월령안 앞에 내놓았다.

월령안은 종이 위에 익숙한 염 황숙의 글씨를 보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분은…… 아직 살아 계신가요?"

"우리가 변경을 떠날 때는 살아 계셨습니다. 대장군께서 명월 산장에 보내 휴양하고 있었습니다."

방 안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육일은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월령안은 눈을 감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어요. 그만 가보세요."

육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월령안에게 읍을 하고는 소리 없이 물러갔다.

* * *

노인이 준 명단은 석 장이었다.

첫 번째 명단에는 명을 받고 일을 처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삼백 명이나 되었고 삼백 명의 이름 위에는 모두 붉은색으로 '×' 부호를 쳐 놓아 이미 죽었음을 표시했다.

두 번째 명단에는 명령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열세 명으로 그중 일곱 명은 이름에 '×' 부호를 쳤다. 나머지 여섯 명 중에서 월씨가 세 명이고 소씨가 두 명,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북요 황제였다.

마지막 명단에는 염 황숙의 이름을 선두로, 뒤에는 월령안이 익숙한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그 몇 사람들은 애당초 그녀의 아버지, 오라버니와 함께 북요로 갔던 사람들이었다.

이 명단의 이름에는 모두 주사(朱砂 - 붉은 염료)로 '×'를 쳐 놓았다. 특히 염 황숙 이름 위의 주사가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염 황숙 이름 위의 붉은색 '×' 부호는 최근 그린 것이 분명했다.

세 장의 명단에는 육장봉, 조계안의 이름도, 현음 공주의 이름도 없었다.

만약 이 세 장의 이름이 아주 오래전에 쓴 것이라는 것을 보아내지 못했다면, 그녀는 염 황숙이 이 명단으로 그때 일이 육장봉, 조계안과는 관계없다고 말해 주려 한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손가락으로 염 황숙의 이름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모르고 있는 동안, 염 황숙은 줄곧 그녀를 도와 그때 당시의 원수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죽인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나머지는 저에게 맡겨 주세요."

월령안은 아직 살아 있는 여섯 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석 장의 명단을 거두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월령안은 황궁에 들어가 북요 황제와 결혼식을 의논했다.

작별할 때 월령안은 우물쭈물해하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주 눈에 띄게 행동했다. 북요 황제가 아무리 눈이 멀어도 보아낼 정도였다.

북요 황제는 원래 상관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머뭇거리며 줄곧 구실을 찾아 떠나지 않았다.

북요 황제는 하는 수 없이 먼저 물었다.

"령안, 짐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인가?"

"으음…… 네,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월령안은 고개를 숙이고 자기 발끝을 내려다보며 감히 북요 황제를 쳐다보지 못하였다.

"할 얘기가 있으면 하게. 한인(漢人) 여자처럼 쭈뼛쭈뼛하지 말고."

북요 황제는 왠지 불편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월령안이 이처럼 옹색한 짓을 하니 어쩐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폐하, 저기…… 저기…… 다른 사람을 먼저 내보내면 안 될까요?"

월령안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궁전의 궁인들을 곁눈질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인가?"

북요 황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곧 제왕의 위엄이 드러났다.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은밀한 일이라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월령안은 표정에 나타난 난처함과 갈등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면 그냥 말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이만 가겠습니다."

월령안은 말을 끝내고 떠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뒤돌아서자마자 북요 황제가 불렀다.

월령안이 안 갈 때는 괜찮았지만 그녀가 떠나려 하자, 북요 황제는 그녀가 도대체 무엇을 말할지 궁금해졌다.

북요 황제는 궁인들을 모두 내보내고 시중을 드는 한 사람만 남겼다.

그는 월령안이 무슨 일을 할까 두렵지 않았다.

그 자신의 무공이 괜찮을 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에는 사사도 있었다. 월령안은 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말해 보게."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북요 황제는 월령안을 다그쳤다.

그녀는 침을 삼키고는 겁에 질려 입을 열었다.

"폐하…… 저기…… 제가 주나라에 있을 때, 육장봉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상장군 소영화와…… 황후 마마께서, 그러니까 그 둘이…… 두 사람이……."

그녀는 한참 동안 '그들'만 읊조리면서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북요 황제는 인내심 없이 재촉했다.

"그들은 외종 사촌 오누이 사이네. 왜 그러는가?"

"육장봉이 말하기를, 두 사람은 소씨 가문의 엄호를 받으면서 줄곧 간통했다고 했습니다. 황후 마마께서 낳은 아들은 폐하의 아들이 아니라 소 상장군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월령안은 북요 황제가 더 이상 못 기다리자, 용기를 내어 단숨에 말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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